여행은 크리스마스나 명절처럼 달력의 빨간 날 같이느껴진다. 나만의 빨간 요일이라 더 즐겁다. 굳이 무언가를 하지 않아도 되고 , 낯선 곳에서 이방인이 되어 낯선 사람과 낯선 풍경 속에 홀로 주인공이 된 듯한 착각에 빠지는 날이기도 하다. 그동안 먹어보지 못했던 색다른 음식을먹으며 행복해하기도 하고, 멋진 경치가 혹은 오래된 역사가 전해주는 황홀함에 전율을 느끼기도 한다. 어떤 순간이 그리고 어떤 시간이 무척이나 감사하게 느껴지기도 하는 날이다.
그리고 그 빨간 요일은 시간이 지난 어느 날 정지된 한 컷의 사진처럼 머릿속에 저장되어 있다가 가끔씩 나의 말들로 그려져나만의 전설 속의 이야기가 되어준다.
한 해를 그냥 보내기가 아쉬워 나는 아이와의 빨간 요일을 한번 더 만들어보기로했다.
꽁꽁 얼어붙은 겨울의 빗장을 열고 무작정 택한 여행지는 영주. 가보지 않았던 곳이고, 가볼 만한 곳이 있는 곳이었다. 너털 걸음으로 걷다 보면 우연히 보고 싶은 사람을 마주치거나 뜻하지 않은 행운과 만나는 것처럼 영주 여행도 특별한 계획을 갖지 않았다.
영주를 가기 전 남편은 제천쯤에 멈춰서
청풍호반을 들렀다. 케이블카를 탄다고 해서
비싼 케이블카가 실망스러울까 봐 살짝 걱정스러웠지만 기분 좋은 여행을 위해 속으로만 생각했다. 하지만 비봉산으로 둘러싸인 청풍호를 내려다봤을 때 풍경은 놓치고 싶지 않은 모습으로
나의 걱정을 무색하게 했다.
우연히 담은사진-나무에 케이블카가 걸려있는 듯 하다^^
케이블카 정상에서 내려다본 경치
산의 능선은 귀엽고 동글동글했고 산과 만나는 호수는 산을 조용히 감싸며 품어주고 있었다. 굽이굽이 산으로 둘러 쌓여 돌아 돌아 깊은 곳까지 펼쳐진 호수는 목마른 겨울산을 촉촉이 적셔주고 있는 듯했다. 산과 호수 곳곳에 아기자기하게 자리한 마을은 어떤 영화 속 배경을 뚝 띠어다 놓은 듯 비현실적인 모습이었다.
언젠가 또 다른 계절에 한 번쯤은 더 와보고 싶은 그리움을 만드는 풍경이었다.
늦은 출발 덕에 첫날의 여정은 조금 아쉽지만
청풍호와 맛있는 떡갈비와 따뜻한 커피 한 잔으로 마무리하고 영주로 차를 돌렸다.
두 번째 날의 여정은 부석사였다.
영주 하면 가볼 만한 곳 1위로 검색되는 영주 부석사는 이름만으로도 기대되는 곳이었다.
언젠가부터인지 모르게 여행지에서 만난 절은 나에게 계절에 관계없이 따뜻함을 전해주었던 기억을 담아 발걸음을 옮겼다. 예산 수덕사의 소박한 듯 절제된 모습도, 합천 해인사를 안내하는 아름다운 길들도, 바다를 끼고 자리한 양양의 낙산사도, 인제 백담사의 고요함도, 전나무 숲길과 같이한 월정사도, 청도 운문사의 아기자기함도, 경주 불국사의 화려함도 모두가 엄마품에 안긴 듯 따뜻함으로기억되는 곳이다.
말로만 듣던 부석사는 과연 어떨까?
부석사들어가는 입구
천왕문을 지나 무량수전까지 겹겹이 계단을 따라
펼쳐진 부석사 내부는 산을 품고 자리한 요새 같았다. 오랜 세월을 품은 건물은 빛바랜 모습이지만 화려함도 잃지 않았다. 차가운 계절에
헐벗은 나무 사이에서도 아름다운 빛을 뿜어냈다.
무량수전
절의 가장 안쪽에 자리 잡은 무량수전은 우리나라 최고로 오래된 목조건물이라고 한다.
이런저런 풍파를 겪으며 재건된 건물이지만 나무가 주는 질감의 소박함에 추운 겨울날에도 따뜻함을느낄 수 있었다.
영주부석사 삼층석탑
우리나라 보물인 영주 부석사 삼층석탑은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담아낸 모습으로석탑 옆에 서면 부석사의 아름다운 모습을 한 장면으로 담아낼 수 있었다.
봄이었다면, 혹은 가을이었다면 더더욱 화려 했겠지만 민낯 같은 겨울의 부석사의 모습에서도 그 아름다움을 감출 수는 없었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