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위한 시간
파 썰고 양파 송송 넣고 새송이 버섯 넣고 된장 풀어서 3분 전자레인지에 돌리면 맛있는 된장국이 된다.
내가 이렇게 맛있는 음식을 만들었다고? 밖에서 사 먹는 것보다 더 맛있잖아?
재료들이 섞여 하나의 맛있는 요리가 된다는 것, 재료 하나하나의 악기들이 어우러져 입안에서 오케스트라가 연주되는 듯한 느낌이다.
요리를 시작한 것은 내가 어른이 되고 내가 나를 위해 건강함을 줬다는 만족감이 크다. 내가 나를 위해 움직이고 나를 위해 사랑하는 시간이다. 나를 위해 음식을 하는 것도 기쁜데, 내 가족을 위해 음식을 하는 것도 기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근데 엄마는 가족을 위해 음식 하는 것도 귀찮아했다. 동생을 위해서는 반찬 하나라도 더 해주려 했지만 내게는 그런 수고로움조차 아까워했다. 이해 안 되는 부분이다. 엄마가 딸을 대하는 게 아니고 엄마가 경쟁자 여자를 대하는 느낌이다. 그러니까 음식을 해주는 것조차 짜증이 났나 보다.
내가 요리를 등한시했던 건 엄마가 내게만 여자로 태어났으면 요리를 할 줄 알아야 한다고 강요했다. 난 그게 싫었다. 내가 여자로 태어나고 싶은 것도 아니었고 난 동생과 동등한 위치에 있는 엄마의 자녀인데 내게만 하라고 강요하는 게 싫었다. 자매였다면 억울할 일이 아니었을 수도 있다. 같이 강요받았을 테니까. 엄마의 말끝은 항상 '여자는~, 누나가 돼가지고~'이런 성역할을 구분 짓는 것이었고 여자로 태어난 게 억울했다. 그래서 요리를 처음부터 선 그었던 것 같다. 엄마가 성역할로 내게 요리를 강요하지 않았다면 자연스럽게 요리에 관심을 가졌을 수도 있다. 하라니까 더 하기 싫었던 청개구리 마음이 동하여 아예 요리에 관심을 거뒀었다. 엄마와 나는 이렇게 평행선이다. 마음이 만날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