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박은 아니지만 지키려는 것
과거 패션종사자로 있을 때 습관 중 하나는 사람을 얼굴부터 보기보다는 아래부터 위로 훑고 지나가는 것이었다. 아래부터 보는 건 신발을 기준으로 그 사람이 옷을 어떻게 입었는지 보기 위해서였다. 패션의 완성은 얼굴이라는 말이 있듯 얼굴을 기준으로 보고 옷을 논하는 순간 패션을 이야기하기가 상당히 어려워진다. 그렇기에 패션쇼에 서있는 모델들도 얼굴의 개성만 있을 뿐 그 사람의 몸과 비율을 중점적으로 보고 런웨이를 걷게 되는 것이다.
다시 이야기로 돌아와 산책을 하다 보면 간혹 보게 되는 여러 사람들 중 운동을 끝마치고, 혹은 운동을 하러 가는 사람들의 모습들을 많이 본다. 이 동네가 1인가구가 많기에 주변에 헬스장부터 각종 운동과 관련된 다양한 건강을 중요시하는 혹은 취미를 하기 위한 인프라가 잘되어 있다. 그래서 그런지 밤시간에도 운동복 차림으로 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그러면서 신발을 보면 대부분 나이키 이거나 뉴발란스를 신고 있는데 내가 신발을 눈여겨 본건 그들이 신은 신발과 양말 때문이었다.
나이키 신발에 아디다스양말을 신는 건 무슨 조합일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차라리 아무 로고가 없는 양말을 신었다면 이해를 했겠지만, 그랬다면 운동하는 사람보다는 정장양말에 운동화를 신은 느낌이 될 것 같다는 이상한 생각을 하며 산책을 했다. 그러다 내가 그걸 불편해하는 이유가 내가 꼭 지키는 것 중에 하나가 그것이라는 것을 떠올렸다.
그래서 나 자신을 한번 파악하기 위해 내가 무의식 중에 혹은 의식을 강하게 하면서 지키고 있는 게 무엇인지 적어보고 싶었다.
1. 나이키 신발에 나이키 양말 신기
같은 브랜드의 신발과 양말 신기가 맞을 것 같다. 난 다양한 신발브랜드와 양말을 보유하고 있는데 혹시나 세탁이 필요해 나이키양말이 없다면 나이키신발을 신지 않을 정도로 그것에 대해 약간의 강박이 있는 것 같다.
2. 아침과 저녁 다른 샴푸 쓰기
난 같은 물건 중에 특성이 다른 제품이 늘 2개씩은 있는 것 같다. 그중 샴푸도 두 개가 있는데 아침에는 산성샴푸를 쓰고, 저녁에는 세척력이 좋고 시원한 샴푸를 늘 쓰고 있다. 그래서 아침샴푸를 저녁에 사용하지 않고, 저녁샴푸 또한 아침에 사용하지 않는다.
3. 아침과 저녁 폼클렌징 순서 다르게 쓰기
폼클렌징 두 개를 사용 중이다. 약산성폼클렌징과 기본 세척력이 좋은 폼클렌징 사용 하는데 큰 의미가 없는 건 알지만, 이 두 개를 샤워 시에 무조건 사용한다. 대신 아침과 저녁에 순서를 달리해서 사용하게 되는데 아침은 약산성부터 저녁은 세척력이 좋은 것부터 사용한다.
4. 모든 샤워 용품은 똑같은 게 없다.
거의 대부분 똑같은 걸 사용해 본 적이 없다. 그렇게 수없이 많은 세정용품들이 세상에 있는데 내가 죽더라도 그 모든 걸 다 못쓰고 죽을걸 알기에 그냥 한번 써본 건 다시는 써보지 않는다. 그래서 새로운 제품을 사야 한다면 늘 검색을 해서 신상이든, 오래된 제품이든 내가 접해보진 제품을 계속해서 사용하는 것 같다.
5. 하루에 샤워는 두 번 한다.
귀찮은 일을 수도 있지만, 샤워는 두 번 한다. 만약 2번을 못하는 경우라도 무조건 1번은 한다. 고향집에 내려가서도 매일 아침 목욕탕을 방문해서라도 할 정도니 그렇게 깔끔 떠는 건 아니지만, 뭔가 이제는 그렇게 하지 않으면 조금 찝찝한 느낌이 들어 마음이 편치 않은 것 같다. 과거 졸업작품전 준비를 한다고 밤을 새우면서도 굳이 택시를 타고 집에 가서 샤워를 하고 왔을 정도이니 이건 무조건 지키는 것 중에 하나라고 하겠다.
6. 세탁 시 섬유유연제는 두 종류를 넣는다.
그냥 그렇게 생각했다. 하나의 향보다는 두 개의 향을 동시에 많이 넣으면 옷에서 두 가지의 향이 섞여서 나지 않을까라는 생각. 물론 주변사람들이 하는 말은 무슨향이냐면서 다들 긍정적으로 생각했던 것 같다. 참고로 섬유유연제도 웬만하면 같은 제품을 지속적으로 사용하지 않는다. 다른 브랜드의 다른 향을 늘 검색해서 계속 테스트하는 형식으로 지금까지 자취생활을 이어왔다.
7. 매일 다른 옷을 입는다.
일주일 동안 같은 옷을 입은 적이 없다. 매일 다른 옷을 입어야 하며, 다른 느낌이 나야 하는 것 같다. 늘 사람들에게 옷이 많다는 걸 약간은 자랑하는 느낌으로 옷을 입고 다닌다. 대신 비싼 옷을 입고 다니네라는 이야기를 듣는 걸 즐기지 않기 때문에 굳이 비싼 건 티 내지 않고 입고 다니길 선호한다. 하지만 요즘은 다른 느낌은 아니지만(편안한 옷을 선호), 어제 입은 옷을 오늘 입지는 않고 있다.
8. 매일 과일을 먹는다.
이건 규칙이라기보다는 습관 같은 건데, 사실 과일 살 돈으로 생활비가 다 나가는 느낌이다. 그만큼 과일을 좋아하는 것도 있고, 이제는 뭔가 안 먹으면 하루가 끝난 것 같지 않은 느낌이 든다. 하지만, 참고는 있다.
9. 반바지에 긴 티셔츠를 입는다.
과거 상당히 말랐었던 경험이 있다. 그 와중에 다리가 이쁘다는 말을 자주 들었는데 그래서 다리는 들어내는 반바지에 마른 상체를 가리는 긴 티셔츠를 입는 습관이 들었다. 그래서 지금 약간 살이 붙은(그래도 내 눈에는 마른 것 같다) 상황에서도 반바지에 긴 티셔츠를 입지 않으면 뭔가 사람이 없어 보이는 느낌이 들어 옷 입는 스타일이 변한 적이 없는 것 같다.
10. 길거리에서 나와 같은 옷을 입은 모습을 보거나 신발을 신은 모습을 본다면 다음부터는 그 옷과 신발을 나의 코디에서 제외시킨다.
괜한 나의 심술 같다. 나만이 입고 싶은데 남이 입었다는 것에 대해서 옷에 질투가 나는 것인지 괜한 심술로 한동안 그 옷과 신발을 쳐다보지 않는다.
11. 매일 헤이즐넛 커피를 마셨다.
과거에 6년 가까운 시간 동안 편의점에서 파는 헤이즐넛향 커피를 매일 1잔 이상씩은 먹었던 것 같다. 그래서 그 당시에 아이디를 헤이즐넛이라고 할 정도로 좋아한다기보다는 편의점에 가면 그냥 한잔씩 샀던 것 같다. 물론, 이제는 안 먹은 지 3개월이 되었다. 그냥 갑자기 손이 안 가게 되었다.
12. 다이소에 들리면 쓸모없더라도 1개는 무조건 사서 나온다.
강박인지 모르겠지만, 다이소에 들어가면 사고 싶은 게 없더라도 그냥 1개씩은 무조건 사는 것 같다. 정말 필요 없는 기름종이를 산다던가, 언젠가 쓸지 모른다며 마스크를 사고 나오던가 하면서 그냥 들어가면 1000원 이상은 그곳에 주고 오는 것 같다.
13. 혼자 있을 때는 음식은 먹던 것만 먹는다.
뭔가 꽂히면 그 음식만 먹게 되는 것 같다. 최근 몇 개월 전부터는 햄버거만 먹고 있는데 일주일에 6일 정도는 점심으로 햄버거만 먹고 있는 것 같다. 햄버거가 완전식품이라고 하지 않던가.
14. 술 먹으면 집으로 간다. 무조건.
앞서 말한 대로 씻으러 집으로 간다. 그냥 집에서 씻는 게 편하다. 과거 한창 놀 때 친구들과 이성과의 좋은 만남을 했을 때도 집에 가야 한다며 좋은 만남을 깬 적이 있다. 사실 집에 뭐 아무것도 없지만, 그냥 집에 오는 게 편했다.
15. 집에서는 전등을 켜고 있지 않는다.
집을 구할 때 중요하게 생각하는 게 햇빛이 잘 들어오는 곳이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웬만하면 집에서는 전등을 켜지 않는다. 이상하게 밝은 게 싫은 것 같다. 나의 편안함이 너무 밝은 느낌이 싫다.
16. 영양제는 6종류 이상 먹는다.
몸에 좋은걸 굳이 1종류만 먹을 거라면 먹지 않는다. 이왕 먹는 거 많이 먹는 걸 선호한다. 오남용을 하는 것이 아닌 그저 종류를 다양하게 먹는다. 현재는 남자 한데 좋다는 영양제는 다 먹는 것 같다. 총 13알 정도 되는 것 같다.
글을 쓰면서 생각나는 게 이 정도였다는 것에 조금 놀랐지만, 더 있을 것이라 예상해 본다.
뭔가 나의 사용설명서 같은 느낌이지만, 글을 쓰면서 혼잣말을 해본다.
"나.... 왜 이렇게 사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