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UHYU Jul 25. 2023

나무에 가려진 가로등

그냥 마구잡이 감상평

시끄러운 큰길을 걷기보다는 좁고 복잡하며 한적한 골목길을 선호한다.

산책을 하며 볼 건 많이 없지만, 그런 꽉 막힌 곳 안에서 궁시렁되며 여러 생각들이 떠오른다. 그러면서 새로운 길을 발견할 때면 한껏 좋아하고, 주위를 둘러보며 내가 지금까지 온 길을 생각해 본다.

'이렇게 오지 말고, 이 지름길로 왔으면 더 힘들겠지만 재미있었겠어.'

라며, 굳이 편한 길 놔두고 힘든 길을 찾는 수고스러움을 한다.


내가 사는 곳은 생각보다 오래된 동네이고, 길이 잘 정비되어 있다거나 깨끗하다거나 하지는 않다. 늘 널브러져 있는 담배꽁초부터 감시한다는 표지판아래에 늘 놓여 있는 쓰레기들까지 2023년 깨끗한 거리를 만들겠다는 여러 공약과는 정반대의 동네이다. 하지만 난 이 동네가 좋아 10년 가까이 살았고, 눈을 감고도 대략적인 장소들을 머릿속에 그릴 수 있다. 요즘은 산책을 매일 나가서 동네에서 점점 벗어나고 있긴 하지만... 여하튼 재미있고 사람냄새가 물씬 나는 동네라고 생각한다.

또한, 이곳은 지역 토박이보다 지방에서 와서 생활하는 사람들이 굉장히 많다. 유동인구가 그렇게 많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그 지역에 어릴 때부터 산사람보다 대학교 때문에, 직장 때문에 온 사람들이 더 많은 독특한 동네이기도 하다.


그래서 그런지 새로운 게 많고, 새로운 게 많다는 건 그 자리에 있던 것. 내 기억 속에 늘 머물러 있던 많은 장소들이 짧은 시간에 많이 바뀐다. 더욱 좋게 보다는 박힌 돌을 빼고 새로운 돌이 들어와 박힌 돌이 되고 다시 새로운 돌이 들어오는 적응하기 어려운 동네 같기도 하다. 이제와 생각해 보면...


산책을 하다 가만히 나무에 가려진 가로등을 봤다.

"간접조명 인테리어했네 골목이..."

오래된 건물들 사이에 어두워 바닥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가려진 가로등에 나도 모르게 불만을 토로할 만했지만, 어두워 무섭고 불편하기보다는 분위기 좋은 인테리어로 치장한 길거리에 몇 초 간 나무를 바라봤다.

지금 바라보는 가로등 또한 나무에 가려져 원래 밝혀야 할 길을 밝히지 못하고 그저 어둡게 만들었지만, 다시 생각해 보니 내가 지나가려던 그 길을 더욱 운치 있게 만들어줬다.


난 집이 밝은 게 싫어 집에서 웬만하면 불을 켜지 않는다.


밝으면 누웠을 때 눈이 부시고 왠지 약간의 어질러짐이 나 자신에 들킬 것 같아 일부러 보지 않기 위해 불을 꺼놓는다. 나 자신은 바깥에서는 늘 불을 켜고 다니지만 혼자 있을 때는 늘 불을 끄고 나 자신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 숨겨뒀다.

그러한 나의 행동을 바꿀 생각은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숨지는 않아야지 그저 나를 가리더라도 분위기에 취해지는 사람이 되어야지 약간의 생각을 해본다.



작가의 이전글 예상가능 한 일은 세상에 많지 않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