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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HYU Jul 15. 2023

예상가능 한 일은 세상에 많지 않다.

맥도날드가 나에게 준 '이건 예상못했지?'

비가 온다.

휴일. 늦은 시간에 일어나 똑같은 하루의 반복이다.

지금 처지에 휴일이 어디 있고, 일하는 시간이 어디 있겠냐 만은... 누군가는 그랬다. 지금 내 인생의 가장 큰 리프레쉬 기간이니깐 편안히 하고 싶은 거 다 하라고. 넌 뭐든지 잘할 것 같다고...


'딱히 하고 싶은 게 없어서 마음이 안 편하네요~'
'저도 만능이 아니라 그렇게 세상 예상 가능한 대로 돌아가지 않아요....'


엎친데 덮친 격, 설상가상, 병상첨병, 불행의 금상첨화.

지금이 내 인생에 가장 큰 굴곡의 파도가 몰아치는 시기인가 싶다.

회사와의 이별에,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에, 그 이별 뒤에 오는 수많은 풍파와 외면, 이제는 예상이 안 되는 부정적인 기대감까지...


"정말 되는 게 하나도 없네요!"


저 말이 딱 맞는 것 같다.

오늘도 무슨 집에 있기 싫은 병에 걸린 건지 간단히 옷을 입고 씻지도 않고 집에서 나간다.

어제 새벽에 산책하다가 본 맥도날드(집주변에 있다가 사라졌다)를 가기 위해 정말 할 일 없이 나선 것이다. 집에서 가까운 맥도날드는 두 개가 있는데, 둘 다 걸어서 30분, 45분이 걸린다.

매일 롯데리아의 햄버거만 먹다가 내 입도 질렸는지 새로운 브랜드의 햄버거를 찾는다. 사람이 그래도 일말의 욕구라는 게 있구나 싶다.


비가 기분 나쁘게 미스트처럼 내린다.

난 굳이 조금 더 멀고, 걸어서 가보지 않은 지점의 맥도날드를 목표로 잡고 걷기 시작했다. 걸으면서 내 머릿속은 이미 갈 때는 느리게, 다시 돌아올 때는 새롭지만 아주 빠른 길을 목표로 잡으며, 많은 기대감을 갖게 한 언덕길을 오르기 시작했다.(언덕을 오르고 다시 내려가야 맥도날드가 있다)

세상은 어느새 비와 구름, 토요일 오후시간에 맞춰 회색으로 물들었다.

난 걷다 말고, 우산을 접어 적당히 내리는 비를 맞기로 결정하고, 눈에 보이는 것과는 느낌이 전혀 다른 아이돌 노래를 들으며 열심히 다리를 움직였다. 언덕을 오르고, 아파트 단지를 나왔다가 들어갔다가 산책하는 고양이랑 이야기도 하면서 참 의미 없는 시간을 보내며 그렇게 맥도날드에서 만드는 햄버거를 받기 위해 목표를 향해 나아갔다.


난 그렇게 맥도날드를 좋아하지는 않는다.

롯데리아에서는 그나마 먹는 햄버거가 두 개가 있는데 맥도날드는 단지 1종류의 햄버거 밖에 없기 때문이다.

'계란프라이가 들어간 불고기 버거' 유일하게 그나마 맛있다고 생각한 햄버거이면서, 맥도날드의 그 많은 메뉴들이 내 머릿속에서 사라지고, 단일메뉴로만 보이게 한 꽤 나름 괜찮은 달달한 햄버거.

정말 몇 년 만에 그 햄버거가 먹고 싶어 이렇게 비 오는 우중충한 날 여행 같은 산책을 하고 있다.

요즘 매일 산책을 하면서 느끼는 건 생각을 정리하려고 한 산책이 생각을 하지 않으려고 하는 행동으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산책을 하지 않으면 정말 머릿속에 쓸데없는 가정과 기대감으로 가득 차서 "혹시나, 역시나" 라는 말을 반복하며 우울해지기 때문에 그냥 바깥으로 나오게 된다.

(뭐 언제까지 이러고 있을 순 없지만, 나한데도 이러한 이별의 아픈 과정이 있나 보다. 몰랐다. 처음이니깐)


그렇다고 햄버거를 핑계로 이 먼 거리를 걸어서 비 오는 날 적당히 기분 나쁘게 옷도 젖고, 몸도 젖게 될 줄은 몰랐지만, 그냥 그렇게 아무 생각 없이 걸을 수만 있다면야 뭐든 괜찮지 않을까라는 생각으로 맥도날드에 도착했다. 생각보다 크고 롯데리아 보다 뭔가 외국 냄새 더 나는 햄버거집. 오랜만에 방문해서 그런지 약간은 서로 어색했다.


얼른 햄버거만 사서 빠르게 집으로 돌아가리라. 내가 여기 혼자 앉아서 먹기보다는 얼른 집으로 돌아가 더욱 처량하게 먹을 거라는 다짐으로 주문을 했다.


'에?'


그 모든 햄버거 중에 유일하게 내가 먹는 햄버거만 주문이 안된다. 굳이 내가 여기까지 걸어올 결심까지 하게 만든 그 목적이 이렇게 단순하게 '주문불가'라는 단어로 무너졌다. 50분 넘게 걸어온 목적과 목표가 의미가 없어졌다. 참 세상 예상되로 대는 게 정말 없구나. 물론 예상이라는 생각 자체를 안 했지만, 이건 예상도 못했다.


요즘 참으로 내가 바라는 대로 되는 게 없다. 내가 그렇게 생각해서 세상이 돌아가고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약간의 희망이라도, 기회라도, 기대감에 맞게 결과도 나와줘야 좋게 생각을 하지 정말이지 긍정적일 수가 없다. 햄버거 하나에 이렇게 나의 인생을 한탄하게 될 줄이야 그것도 예상하지 못한 부분이다. 그냥 롯데리아에서도 살 수 있는 불고기버거를 고를 수밖에 없게 만든 이 맥도날드를 한탄했다.


모든 일 똑같다. 많은 시간을 들여 오르막, 내리막을 걸어서 원하던 위치에 도달했음에도 예상하지 못하는 돌부리에 걸리거나 그 결과는 단지 오아시스 같은 허상일 수도 있다. 다른 대안을 물론 찾겠지만 그 대안을 찾더라도 결과에 도달하기 위한 과정 때문에 만족하지 못하는 경우가 수두룩하다.


그걸 난 다시금 오늘 깨달았고, 지금이 손만 되면 뭐든 되지 않는 우울함 가득한 기간이란 걸 느끼게 되었다.

언제까지 갈지 모르겠다. 이러한 생각과 생각 속 아픔이 언젠가는 상처 위에 피딱지가 붙고, 간지럽고, 새살이 돋아 흉터로 남아 아무렇지 않은 시간이 오겠지만, 지금은 그냥 뭐든 되지 않는 이 순간을 햄버거 하나로 느끼게 된 것에 허무한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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