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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HYU Aug 01. 2023

새로운 도전이 이렇게나 어렵다

면접 망한 썰

망했다.


오늘도 여느 때와 같이 면접투어를 다녔다. 비록 한군데지만 지금 사는 곳과 꽤 먼 회사이며, 이제는 퇴사한 회사와 지하철 한 정거장 차이나는 거리의 회사이다. 아침부터 준비하고 그 전날 면접 때 물어볼 많은 예상 질문에 열심히 찾아보고 자료를 정리해 놓았기에 그저 가서 점심을 먹고, 카페에 앉아 다시 보기만 하면 되었다.

유독 더운 날. 어느 누구느 힘이 빠지는 그런 더운 날.

편안하게 입는 걸 좋아하는 난 면접에 맞춰서 나름 깔끔하게 긴바지에 셔츠를 입고 더위를 물리쳐가며 지하철에 올라탔다.


사실 까마귀가 울 때부터 이상했다. 징조가 좋지 않았다.(뭐든 현재 탓하고 싶다)

더운 날 땀을 삐질삐질 흘려가며 지하철에 내려 버스를 타고 회사 주변에 가 밥을 먹고 카페에 앉았다. 오늘 면접 본 곳은 대기업이다. 지금까지 다녔던 회사인 스타트업과는 차이가 났고, 금융분야에서 늘 일하다 전혀 다른  분야인 게임업계에서 연락이 와 이렇게 나의 능력을 누군가에게 말해주기 위해 나온 이유이기도 하다. 단지 대기업이라서. 나의 커리어에서 대기업은 무조건 거칠 것이다라는 굳은 다짐이 있었기 때문에 나에게는 아주 좋은 기회였고, 어렵고 보수적인 금융 쪽 도메인보다는 실 사용자의 피드백을 직접적으로 받을 수 있고, 비교적 자유로운 문화를 가진 게임 쪽이 나에게는 뭔지 모를 설렘을 주었다.

역시 대기업은 대기업인가.... 건물부터 다르구나를 연신 감탄하며 그 더운 날 이곳까지 온 것에 아무런 불평이 없었다.

스타트업에서도 일한 만큼의 대가를 생각보다 많이 받지만, 역시 정승집 개가 되어야 한다고  지금 연봉보다 작더라도 대기업에서 경험을 쌓으면 한 계단 올라갈 거 시간이 지나면 두 계단 올라가지 않을까라는 기대감도 있었다. 또한 나에게는 새로운 도전에 가까웠다. 전혀 다른 분야의 업무는 도전의 재미까지 주는 부분이 컸다.


면접장소에서 면접을 기다리면서 게임회사의 자유로움과 일하기 좋은 느낌의 내부 모습을 둘러보았다. 물론 퇴사한 회사의 복지와 환경도 난 굉장히 좋아했는데 역시 크기와 많은 사람들이 주는 에너지는 무시하지 못했다. 그러고 시간이 흘러 면접이 시작되었다.


결과를 먼저 말하면 망했다.

1시간 동안 면접을 봤다. 내가 이야기를 하면서 내 머릿속에서는 빨간불이 연신 빙글빙글 돌았다. 축구에서 경고 2장이면 퇴장이라고 했던가. 자신 스스로가 말을 하면서 느꼈다. 이건 망했다. 그냥 망했다. 많은 말들을 했지만, 머릿속에 생각한 말들을 말했지만 그냥 내가 느낀 분위기, 내가 내놓은 여러 답들이 나 자신도 마음에 들지도 않았다. 나도 면접관이었을 때가 있어서 그러한 느낌을 받았으리라 생각하며 하나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나의 답들이...

아무리 많은 말들을 하고 나의 경력에 대한 이야기 등을 해도 이미 내놓은 말은 정답이 되었음에도 머릿속은 그건 정답이 아니야! 라며 빨간불을 연신 울린 것이다.


그렇게 그 거대한 건물 입구에서 광활하게 내리쬐는 햇빛을 보며 '아직 난 여기 올 때가 아니구나. 더 열심히 다음을 노려야지' 라는 긍정적인 생각을 하려 했지만 머릿속은 '두괄식으로 말했어야지.', '왜 그런 답을 내놓은 거야', '그러게 안심하지 말고 더 자료를 찾아보지.''준비가 덜 되었네'... 등등 후회들이 넘쳐나며 그 더운 날 허탈함으로 땀을 적셨다.


기회는 올 때 잡는 게 맞다. 당연한 소리다. 근데 준비가 안되어 있는데 기회를 잡으면 도망친다. 그러고 새로운 준비의 결심보다는 후회가 더욱더 많이 남는 것 같다. 더욱 매너리즘에 빠질 수 있고, 단지 "더 준비해야지. 아자아자 할 수 있다." 같은 뻔한 결심은 TV에서나 보는 것들이라는 생각이 든다.


더운 날 아쉬움 없는 후회만 가득한 날 난 그렇게 나의 능력을 이상하게 뽐내다 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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