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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HYU Aug 06. 2023

웃을 일은 있지만 좋을 일이 하나도 없네요

친구와의 수다와 잃어버린 지갑을 담은 일기

오래간만에 친구와 술 한잔 했다.

대학교 때부터 친구이고, 가장 친한 친구 중 하나이다. 같은 동네에 살지만 한 가정을 책임지는 그를 위해 나는 매번 딱히 연락을 해서 친구를 귀찮게 하지 않는다. 그렇게 대학교 때 말썽만 피우는 친구였기에 나보다 빨리 결혼하고, 나름 안정적이게 살거라 예상을 못했는데 세상일은 정말 모르는 거라고 막살 던 친구가 사람이 되었다.


친구는 수입차를 타고 다닌다. 자기가 처한 현실에 대비해서 과하긴 하지만, 두 가지 이유로 수입차를 타고 다녔다. 첫 번째는 남이 볼 때 좋은 걸 타고 다녀야 그 좋은 걸 타고 다니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는 이유였고, 두 번째는 일단 지르고 처한 현실에 어떻게든 해결하기 위해 사는 채찍형 인생을 살고 있는 것이다. 사고를 수습하기 위해 계속 사고를 치다 보면 인생을 열심히, 잘 살게 된다는 한편으로는 어이없는 주장이지만, 잘 살고 있다. 사람을 나보다 많이 많나고 사람에게서 돈을 만들어내는 직업을 가진 그는(영업담당) 여전히 사람에게서 스트레스를 받고는 있지만, 열심히 살고 있다. 몇 년 전만 하더라도 남자가 하지 말아야 하는 모든 것(술, 도박, 여자)을 다 경험한 그는 큰 깨달음을 얻은 듯 진중해지고, 하나의 목표만을 가지고 사는 것에 행복함을 느끼는 것 같다.


술을 먹다 내가 면접 때 받은 질문을 한번 그 친구에게도 해보았다.

"너의 인생을 돌아가게 하는 원동력이 뭐야"

"나? 지금 같이 사는 부인이지"


역시 재수가 없다. 철이 든 건지. 사랑꾼 행세를 하려는 건지 욕을 한 바가지 했지만, 저런 답에 한편으로는 부럽기도 했다. 나의 인생에 남을 위해 산다라는 건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고, 그 남이 누구냐를 결정하는 것이 여간 어려운 일인 것 또한 알고 있다.


친구가 술을 마시자고 한 이유는 두 가지였다. 전화가 왔을 때부터 대략 예상은 했다. 지금 구상 중인 사업방향과 사람 때문에 받은 스트레스를 친구에게 하소연하기 위함이었다.

구상 중인 사업은 배달사업이었는데 사실, 난 그렇게 내키지 않은 것임에도 최대한 열심히 도와주기 위해 나도 열심히 찾아주고 조언을 해주고 있다. 조언이라기보다는 도움을 주기 위해 나도 노력을 하고 있다. 배달을 위한 음식점을 하고 싶다기보다는 그런 음식점을 경영하는, 시스템을 만드는 일을 하고 싶다는 친구를 위해 나도 숟가락 얻으려 아이템에 대해 와닿지는 않지만, 약간의 도움을 주고 있다.

두 번째 사람에게 받는 스트레스는 사람을 설득하여 이득을 취하는 직업이니 만큼 갑과 을이 확실하고 그것에서 오는 갑질을 하소연하기 위함이었다. 같이 욕해주고, 소주 한잔 먹고 그 친구보다 더 욕해주고 소주 한잔 먹고를 반복하며 하소연을 최선을 다해서 들어주었다.


번외로 나는 친구를 만나도 나의 이야기를 웬만하면 잘하지 않는다. 친구가 나의 걱정을 스스로 알고 물어봐주길 원하는 이상한 성격 탓에 그저 흘리기만 할 뿐 "나 지금 너무 힘들어"라는 표현은 일절 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을 만나면 많이 듣는 역할이었고, 그것에 실없는 농담과 과한 흥분, 장난으로 나의 힘듦을 숨기기 바빴다. 그러면서 만나고 난 뒤에는 늘 후회하지만 그렇게 계속 사람을 대해 왔다.


친구와의 술자리는 1차의 안주 30개의 대폿집을 끝내고, 2차로 시원한 맥주에 아이스파인애플을 먹기 위해 왔다. 사람들이 북적거리기에 서로 큰 목소리로 세상 돌아가는 꼴이 말이 아니라며 이제는 하소연에서 아저씨들의 안주거리인 사회와 정치, 과학의 주제로 바꿔서 이야기를 이어갔다. 서로 의견을 열변을 토해가며 아직 해도 안 떨어진 그 시간에 얼굴이 빨개질 정도로 마시고 이야기하기를 반복했다. 오랜만에 정말 편한 사람과 이야기하는 것에 난 기쁨과 행복을 느껴서인지 지금 지나가는 시간이 아쉽긴 했지만 그 순간을 최대한 즐기기 위해 난 맞장구를 쳐가며 시원한 맥주를 연신 들이켰다.


오랜만에 술을 많이 마셨던 건지 더운 날 더 몸이 노곤거리고, 화끈거렸다. 그냥 누우면 바로 잘 수도 있겠다 싶은 그 기분을 만끽하며 친구와의 좋은 만남을 뒤로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와서 유튜브를 켜 나의 지식을 영상으로 채워 넣으며 그 시간의 편안함에 녹아들었다. 침대와 한 몸이 된 나는 이른 시간 잠에 들었고, 1시간 남짓 뒤에 일어났다. 술을 먹으면 진통제를 먹는 습관 때문에 진통제를 욱여넣으며, 정신을 차렸다. 입에서는 알싸한 알코올향이 나며 하루를 이렇게 끝내는 것도 나쁘지 않구나 생각을 하며 시원한 커피 한잔을 먹어야겠다 생각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폰을 챙기고, 이어폰을 챙기고, 지갑을 챙..... 지갑이 없다. 수많은 카드가 들어간 나의 카드지갑이 없다.

신분증과 자격증카드와 다양한 은행의 신용카드들 그리고 약간의 현금, 로또가 들어간 나의 지갑이 없다. 침대에 서둘러 앉아 침대에 떨어진 것이 아닌지 여기저기 들춰보고, 혹시나 내가 집안에서 옷을 벗을 때 떨어진 게 아닌지 세탁통을 뒤져보았다. 당연히 발견되지 않음에 약간의 불안함과 귀찮음을 느꼈다. 수많은 카드를 재발급받아야 하는 시간적 귀찮음과 신분증을 다시 발행해야 하는 부분까지 기다려야 하는 불편함까지 짜증이 났다.

'아니야 나의 옷에서 탈출하려면 친구와 같이 간 술집들 밖에 없어'

라는 생각을 하며 서둘러 지난 술집들을 돌아다니기 위해 집 밖을 나왔다.

1차 대폿집에서 사장님을 찾아 지갑의 행방에 대해 물어보았다. 없었다. 2차 맥주집에서 아르바이트생을 찾아 지갑의 행방에 대해 물어보았다. 없었다.

약간의 불안함과 귀찮음이 아주 커지면서 허탈함과 짜증이 순식간에 몰려왔다.

날이 좋아 친한 친구와 기분 좋게 술 마시고, 이야기하며 보낸 시간은 어느새 온데간데없고 지갑 때문에 그날 하루를 다 망치게 되었다. 시원한 커피를 마시겠다는 목적은 어느 순간 잊고 터덜터덜 집으로 돌아오며

'인생정말... 제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네.'

를 연신 생각하며 나를 탓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각 은행과 주민센터를 돌아다니는 나의 모습을 상상하며 귀찮은 일이 생겼다라며 한숨을 내뱉었다.

집에 도착해 이미 포기한 지갑을 생각하며 허탈함과 귀찮음, 짜증에 웃음밖에 안 나왔다. 티브이는 나의 마음도 모른 채 웃음소리가 들려오고, 깜빡거리며 새로운 흥미로운 것들을 보여주었다. 의자에 앉아 머릿속에 어떤 것부터 분실신고를 하고, 진행할까를 머릿속에 그려보았다. 어떻게 해야 최적의 상황으로 덜 귀찮게 이 상황을 벗어날까를 고민하며, 의자에 엉덩이를 비비적 대었다.


'응?'

"에?"


지갑을 찾았다. 비비적대는 엉덩이에 이질적인 딱딱함.

아이디어 상품이라며 산 알루미늄으로 된 카드지갑을 찾았다.

나의 눈과 귀와 손으로 찾은 게 아닌 엉덩이로 찾았다. 지갑을 쥐고 지갑 한데 못해준 모든 것들을 잘해줄 거라며 다짐까지 하면서 연신 욕한 바가지를 내뱉었다.


하루 참 버라이어티하다.

이렇게 끝내는 나의 글도 참 버라이어티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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