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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HYU Aug 07. 2023

열탕 갔다가 냉탕 잠깐

갑자기 시원해져

한여름이다.

요즘 낮에는 꽤 많이 덥다. 그냥 서있어도 땀이 날 정도면 찜질방에 있는 게 아닌가 싶다.

습하기도 해서 불쾌감이 꽤 많이 올라가는 것 같다.

예전에는 땀이 나기만 해도 찝찝하고 그날 하루는 온신경이 쓰여서 더운 날을 그렇게 좋아하지 않았다.

손에 땀이 좀 나는 편이라 연애할 때 손도 제대로 잡지 않을 정도였다. 그게 상대방을 위한 나름의 배려였다.

그렇게 여름을 그렇게 좋아하지 않았다. 다만, 여름이라는 것에 마음에 들었던 건 겨울에 비해 옷이 가벼워져 발걸음이 가벼워진다는 것 정도일 것이다.


늦은 밤에 걷다 보면 낮과 다르게 그렇게 많이 덥지는 않다. 그렇다고 선선하다는 건 아니다. 아직 열대야라고 말하기에는 무리가 있는 기온 정도이다. 그래서 산책을 나갈 때 옷이 매우 가벼워지는데 운동화도 신지 않고, '쪼리'라고 부르는 아주 편한 신발에 반바지, 반팔티로 집 주변 산책 나오는 TPO를 맞추고 2시간 정도 걷는다. 이런 복장 때문인지 그렇게 엄청 막 덥지 않다.

저번 연도 까지는 더위에 땀에 정신 못 차릴 정도였는데 요즘은 그냥 걸을 때 땀이 나는 대로 놔두는 편이다. 일부로 땀을 식힌다던가 하지 않는다. 어차피 씻을 거고, 옷은 빨면 된다는 당연한 생각으로 땀이 나면 더 많이 나도록 노력 중이다. 나는 좀 운동한 것 같은 느낌? 뭔가 몸으로 열심히 한 느낌? 걷는 것의 결과물이 눈에 보이는 최적화된 활동의 증거라 생각하는 것 같다. 그렇게 매일 걷는 편이다.


햇빛으로 달궈진 아스팔트와 시멘트의 숲에서 나와 산주변을 걷다 보면 갑자기 올리브영에 들어간 것 같은 느낌이 들 때가 있다.(올리브영이 여름에 그렇게 시원하다. 걷다 보면 열어놓은 문에서 시원한 바람이 마치 거대한 에어컨인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땀을 흘려 가슴팍이 색이 점점 변해가고 있는 와중에 차가운 바람이 불어오면 산책을 하는 것 중 소소한 기쁨이 아닐 수 없다. 물론 산에서 나는 그 특유의 다양한 냄새와 함께 차가운 바람은 다가오지만, 냄새보다 그 시원함은 걷다 지친 나의 몸을 다시금 힘나게 한다. 그저 목표 없이 걷다 보면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곳에서 주변을 둘러보다 익숙한 길로 다시 들어가는 발견의 기쁨과 약간 같을 때도 있는 시원함.


단순 걷는 것이지만 이러한 온도차이에서 생각을 했다.


난 아직 뜨겁다. 그래서 땀을 흘린다.


그래서 많은 것을 선택할 때나 말을 할 때나 내가 하려고 하는 모든 것에 확신이 없고 찝찝함이 약간씩은 있다. 100% 만족하지 못하고 10~20% 정도는 부정적인 답변에서 오는 찝찝함을 매번 느낀다. 예를 들어 연애를 할 때도 그리고 헤어짐을 겪을 때도 나의 선택이 오는 것에 꽤 큰 불쾌감을 느끼고, 이미 흘린 땀에 진득함이 묻어나듯 아직 그 찝찝함과 진득거림에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그 찝찝함에 한순간 시원함이 올 때가 있는데 나의 행동에 대해 상대방이 매우 만족하거나 내가 예상한 것보다 더욱 좋게 다가왔을 때 그 순간만큼은 찝찝함을 잊고 상쾌함과 신선함으로 다가온다. 물론 그게 길게 가지는 않지만, 그 순간만큼은 한 장의 사진처럼 기억이 된다.


잠깐의 시원함을 잊지 못해 긴 뜨거움을 버텼는지 모를 일이지만, 걷고 있는 지금은 그 잠깐의 시원함 때문에 걷는 것을 멈추지 못하는 건 확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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