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기는 온 세계를 감싸고 있습니다
마침 잘 오셨습니다. 탈레스의 제자 아낙시만드로스.
[아낙시만드로스 등장]
(아낙시만드로스) 탈레스 선생님이 아르케가 물이라고 말씀하셨지요? 애석하게도 물은 모든 것의 근원 아르케가 아닙니다. 아르케는 ‘아페이론’(ἄπειρον), 그러니까 ‘무한정한 것’입니다. 이 ‘무한정한 것’에서 하늘과 세계가 생겨났고, 그것들은 다시 아페이론으로 돌아갑니다. 아페이론은 영원하고, 모든 세계를 둘러싸고 있는데 중요한 것은 이것이 움직인다는 것입니다. 이 움직임 때문에 뜨거운 것과 차가운 것, 메마른 것과 축축한 것 등이 아페이론에서 분리되어 나옵니다.
[아낙시만드로스 퇴장]
(데오) 무한정한 것? 아페이론? 무슨 뜻인지 잘 모르겠어요.
무한정(無限定)한 것이란 한계가 없다는 뜻입니다. 아낙시만드로스는 무엇인지 알 수 없는 어떤 ‘일자’가 있는데 그것이 어떤 것으로 고정되어 있지 않고 다양한 것으로 제한 없이 변화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무엇인지 알 수 없는 어떤 것이 ‘아페이론’입니다.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물이나 돌, 나무와 같은 것처럼 구체적이고 물은 물로, 돌은 돌로, 나무는 나무로 규정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아페이론’은 구체적인 것도 아니고 규정되어 있지도 않은 것입니다. 그래서 아페이론은 그것이 무엇인지 알 수 없는 어떤 것을 뜻합니다. 규정되어 있지 않은 ‘아페이론’이 운동을 해서 무한히 다양한 것으로 규정되는 것이죠. 규정되지 않고 무한정한 어떤 것을 아낙시만드로스가 ‘아페이론’이라고 부른 것입니다.
(데오) 제자인데 스승의 생각과 많이 다르네요.
스승의 생각과 다르게 생각을 하는 게 서양 철학의 특징이자 장점입니다. 다르게 생각하면서 더 나은 생각을 하려고 애쓰거든요. 여러분도 철학자와 똑같이 생각할 필요가 없습니다. 다르게 생각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마세요. 누구나 자신만의 방을 가질 수 있듯, 자신만의 생각을 가질 수 있습니다. 우리가 만나는 철학자와 다르게 생각해보세요. 그리고 더 나은 생각을 하려고 애써보세요. 그것이 ‘철학하기’입니다.
(필로) 만물의 근원이 무엇인지 생각해보라고 하셔서 생각을 하고 있는 중이었는데, 탈레스 제자의 이야기를 듣고 깜짝 놀랐네요. ‘청출어람 청어람’입니다. 아낙시만드로스가 탈레스보다 더 나은 생각을 했네요. 설득력 있었습니다. 그리고 탈레스는 어떻게 일자가 다자가 되는지 설명을 하지 않았잖아요. 아낙시만드로스는 어떻게 ‘일자’에서 ‘다자’가 되었는지 설명을 하잖아요. 움직임이요. 그렇지요?
(소피) 그런 것 같아요! 저도 아낙시만드로스의 생각에 동의합니다. 이 사람 이야기를 들으니 이게 철학이구나 하는 느낌이 확 오네요. 뭔가 추상적이고, 있어 보이잖아요. ‘아페이론’, 좋았어요!
여기서 만날 분이 한 분 더 있습니다. 아, 저기 멀리서 오고 계신 것 같네요. 저분의 이야기를 듣고 나면 여기 튀르키예에서 밀레토스학파 세 명의 이야기를 모두 듣게 되겠네요. 그런 후에 누구의 생각이 더 나은 것 같은지 여러분의 생각을 들어보기로 하죠.
소개합니다. 아낙시만드로스의 친구 아낙시메네스입니다.
[아낙시메네스 등장]
(아낙시메네스) 내 친구 아낙시만드로스의 생각에는 문제가 있습니다. ‘아페이론’이라니요. 아페이론이 실제로 존재하는지 어떻게 알 수 있겠습니까. 그 친구의 생각은 모호하기만 합니다. 존재하는지도 알 수 없는 것이 어떻게 근원일 수 있겠습니까. 그럴 수 없어요. 모든 것의 근원은 ‘공기’입니다. 탈레스 선생님은 물이라고 하셨지만 사실 물보다 공기가 더 근원입니다.
비록 눈으로 볼 수는 없지만, 공기는 모든 곳에 있습니다. 공기가 없는 곳은 없습니다. 심지어 우리 몸 안에도 공기가 있지요. 호흡을 하잖아요. 인간은 공기를 호흡하지 않으면 살 수 없습니다. 이렇게 공기는 온 세계를 감싸고 있습니다.
공기라는 일자(하나)가 어떻게 다자(여럿)가 되는지 궁금하겠지요? 공기는 움직이면서 응축(짙어짐)과 희박(옅어짐)이라는 밀도 차이를 만듭니다. 모든 다양한 것들은 이 밀도 차이에서 생겨난 겁니다. 공기가 응축되어 바람이 되고, 공기가 희박해져 불이 된 것입니다. 알겠습니까?
[아낙시메네스 퇴장]
이제 밀레토스학파 세 사람의 생각을 들어보았습니다. 어떤가요? 누구 이야기가 설득력이 있었는지 선택해 보면 좋겠네요. 소피님께서 먼저 말씀해 주시죠.
(소피) 철학이 원래 이렇게 헷갈리는 건가요? 아낙시만드로스 얘기를 들을 때 ‘그렇지’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아낙시메네스 이야기를 들으니까, 아낙시메네스 말대로 아낙시만드로스가 모호하다 싶었어요. 음. 그런데 저는 문득, 그러니까 탈레스가 대단한 사람이구나 했어요. 아낙시만드로스나 아낙시메네스는 스승인 탈레스 덕분에 자신의 생각을 가지게 된 거잖아요. 만약 누군가에게 선택해야 한다면 저는 탈레스를 선택하고 싶어요. 그나저나 탈레스는 그나마 괜찮은데 아낙시, 만드로스, 아낙시만, 드로스, 아낙, 시메네스, 아낙시, 메네스, 철학자들 이름이 참 어렵네요.
그럴 수 있습니다. 차차 익숙해질 테니 걱정 마세요. 다음은 필로님.
(필로) 아낙시만, 아니 아낙시멘, 아니 아낙시메네스가 꽤 설득력 있다고 느꼈어요. 그치만 저는 아낙시만드로스의 생각이 아낙시메네스의 생각보다 그럴듯하게 들렸어요. 어떻게 보면 물이나 공기나 비슷한 거잖아요. 자연에서 근원을 찾는 게 자연스러울 수도 있겠지만 자연이 자연의 근원이 아닐 수 있잖아요. 자연의 근원이 자연이 아니라는 말이 이상하게 들리네요. 암튼, 아낙시만드로스는 자연철학자이지만 자연을 넘어서는 철학자 같은 느낌이에요. 아페이론이란 게 그렇게 느껴져요.
좋습니다. 데오님은 어떤가요?
(데오) 저는 아낙시메네스를 선택할게요. 아직 저는 철학자들의 이야기가 와닿진 않아요. 그래도 아낙시메네스가 그중에서 제일 합리적인 것 같아요. 나중에 등장하는 사람이 이전에 등장한 사람보다 나은 생각을 해서 철학사에 이름이 남겨진 게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었어요.
철학자를 선택하는 일에 부담가질 필요는 없습니다. 누가 더 설득력 있느냐 생각해보는 것은 철학자들이 씨름했던 주제를 함께 고민하면서 생각해보기 위한 장치일 뿐입니다. 철학을 공부할 때 여러 철학자의 주장이 다르기도 하고 때로 서로 충돌하기도 한다는 것을 유념해야 합니다. 철학이라는 학문은 하나의 학문이 아니라 여럿의 학문입니다. 무수히 많은 생각과 주장들 틈에서 길을 헤매지 않으려면 철학자들의 생각과 자기 생각을 정리하면서 따라가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어떤 철학자가 자기 생각과 더 가까운지 느낌 정도는 유지하면서 새로운 철학자를 만나는 게 좋습니다. 세 사람 중에 내 생각과 가까운 사람은 누구인가요? 이제 튀르키예를 떠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