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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숫제 Feb 06. 2024

헤라클레이토스

변화하고 있단 말입니다


우리는 이탈리아 크로토네를 떠나 다시 튀르키예 도시 셀축으로 왔습니다. 여러분이 서 있는 이곳, 셀축 도심 외곽은 오래전 에페소스라고 불린 큰 도시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여기 이 길을 따라가면 아르테미스 신을 모시던 고대 그리스의 거대한 신전이 나옵니다. 지금은 기둥 하나만 남아 있습니다. 거기서 신전에 자신의 책을 바쳤던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를 만나기로 했습니다. 가시죠.

  

[헤라클레이토스 등장]

(헤라클레이토스) 뭐라고요? 피타고라스의 이야기를 듣고 왔다고요? 저런. 피타고라스는 허튼 소리하는 사람들의 원조입니다. 그런 자의 소리를 귀담아들을 필요는 없습니다. 그자는 만물이 수라고 생각합니다. 말도 안 되는 소리입니다. 수가 눈에 보인단 말입니까? 보이지도 않는 수를 만물의 근원이라고 믿는 것은 조롱받을 일입니다.

    

우리는 눈, 코, 귀와 같은 감각 기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감각 기관은 세상을 파악하는 도구입니다. 그중에서도 눈은 아주 정확한 이 세계의 증인이지요.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세계는 어떤 세계입니까? 한 마디로 말해, 변화하는 세계입니다.


세계가 변화하고 있다는 것, 여러분은 이것을 놓쳐선 안 됩니다. 태양은 날마다 새롭습니다. 언제나 계속해서 새롭습니다. 그리고 여러분은 같은 강물에 두 번 걸어 들어갈 수 없어요. 한 번 강물에 들어갔다 나오면 처음 들어갔던 그 강물은 이미 흘러가 없어져 버리고 맙니다. 다시 강물에 발을 넣으면 새로운 강물이 그 자리를 차지합니다. 우리가 발 디딘 이 세계는 강물과 같습니다. 과거의 것은 지나가고 새로운 것은 흘러옵니다. 만물은 끊임없이, 끊임없이 흐릅니다. 모든 것이 생겨나고 또 소멸합니다. 만물은 변합니다. 변화하고 있단 말입니다.


Joel Innes, Lament of Heraclitus, Painting, 38.1 x 50.8 cm, 2011.


(소피) 놀라워요!     


(헤라클레이토스) 모든 것이 변하지만, 변하는 것이 끝은 아닙니다. 강이 변하고 있지만 강은 여전히 강이며, 강으로 들어갔다 나온 여러분도 여전히 여러분입니다. 나에게 강은 다른 것이 아닌 강이며 여러분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렇듯 세계는 계속 변하지만 통일을 유지하며 존재합니다. 왜 변하면서도 통일성이 유지될까요? 로고스(λόγος) 때문입니다.   

  

(필로) 로고스가 뭔가요?     


(소피) 교회에서 들은 적이 있어요! ‘말씀’이라는 뜻으로 알고 있는데….    

 

말씀하신 대로 로고스의 일차적인 뜻은 ‘말’입니다. ‘이성’, ‘원리’, ‘법칙’ 등으로 이해해도 좋습니다. 로고스가 헤라클레이토스에게는 만물에 깃든 원리 혹은 사물의 본성을 의미합니다.  

   

(헤라클레이토스) 변하는 모든 것을 유심히 살펴보기 바랍니다. 서로 대립하고 있습니다. 차가운 것과 뜨거운 것, 젖은 것과 마른 것, 살아 있는 것과 죽은 것, 깨어 있는 것과 잠든 것, 젊은 것과 늙은 것. 대결이라도 하듯 마주하고 있지요. 그런데 이렇게 대립하고, 투쟁하고, 불화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도 실은 조화를 보여줄 뿐입니다. 대립, 투쟁, 불화가 실은 조화입니다. 로고스 덕분이지요.

    

로고스는 이 모든 대립을 묶어주는 원리입니다. 병에 걸리지 않는다면 건강의 소중함을 알 수 없을 것이고, 피로하지 않다면 휴식의 달콤함도 알 수 없겠지요. 그러니 모든 것은 하나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리고 하나는 모든 것입니다. 이것은 저것이 되고, 저것은 이것이 됩니다. 하나이자 모든 것이며 모든 것이자 하나인 이것을 나는 불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세계는 언제나 있었고 앞으로도 있을 것이며, 영원히 살아 있는 불로서, 적절하게 타고 또 적절하게 꺼지는 것입니다.

[헤라클레이토스 퇴장]     


(데오) 매력적인 철학자예요. 모든 것이 변한다는 사실은 정말이지 중요한 것 같아요. 변하는 만물을 불이라고 표현한 것도, 저는 시처럼 느껴졌어요. 불은 한순간도 멈추지 않고 쉼 없이 움직이잖아요. 우리가 사는 세상도 사실 늘 변하는 것이었어요.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내가 다르듯이요. 철학자들을 만나기 전과 만난 후가 다르기도 하겠지요. 모든 게 변한다는 게 왠지 모를 위로가 되기도 해요. 변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이 삶을 견디며 살겠어요.     


(소피) 흥미로워요! 철학은 말이에요. 밀레토스학파의 이야기를 들을 때만 해도 무엇이 ‘아르케’인지 생각하는 사람들이 계속 등장하겠지 예상했거든요. 그런데 피타고라스도, 헤라클레이토스도 새로운 이야기를 꺼내서 깜짝 놀랐어요. 철학자들을 만나면 이렇게 계속 새로운 이야기를 듣을 수 있는 건가요? 만약 그렇다면 앞으로 또 어떤 새로운 이야기가 펼쳐질지 궁금하네요.   

  

(필로) 저도 헤라클레이토스가 흥미로운 인물처럼 보였습니다. 그렇지만 마음에 드는 건 아닙니다. 뭐, 약간 도사 같은 느낌도 들고, 그러니까, 저는 같은 강물에 두 번 들어가는 게 불가능하다는 말이, 받아들이기가 어렵달까요. 한강에 들어갔다가 나와도 한강은 여전히 한강이니까 같은 강에 다시 들어가는 거잖아요. 왜 같은 강이 아닌지 모르겠네요.     


(소피) 같은 강이에요. 같은 강인데 변한다는 이야기 아닌가요?


(필로) 아, 그런가요? 뭐, 암튼, 헤라클레이토스에게 신비스러운 면이 있어 보이긴 했습니다.    


Cody Hooper, Sky fire, painting, 91x91cm, 2021.


그럼, 이쯤에서 지금까지 만난 철학자를 한번 정리해볼까요? 탈레스, 아낙시만드로스, 아낙시메네스, 피타고라스, 헤라클레이토스까지. 다섯 명을 두고 투표를 한번 해봅시다. 투표에 부담 갖지 않으셔도 됩니다. 투표는 우리가 대화하며 생각하기 위한 장치라고 생각하면 좋겠습니다.     


다섯 명 중에 누가 마음에 들었나요? 마음에 든 이유는 무엇일까요? 마음에 들지 않은 사람은 누구일까요?  

   

(소피) 저부터 이야기할게요. 저는 헤라클레이토스와 아페이론을 이야기한 아낙시만드로스가 마음에 들었어요. 두 사람이 특히 다른 사람들보다 생각을 깊이 한 것처럼 보여요. 다른 사람들보다 한 층 더 내려간 느낌이랄까요. 그리고 이건 제 생각인데, 아낙시만드로스가 말한 ‘아페이론’이 헤라클레이토스가 말한 ‘로고스’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어요. 전혀 근거가 없는 생각일 뿐이지만요. (웃음) 이렇게 제 생각을 막 얘기해도 되는 거겠죠?  

   

괜찮습니다. 얼마든지 편하게 말씀해도 괜찮습니다. 철학자의 이야기를 들은 후 든 생각이라면 어떤 생각도 환영합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철학하기’이니까요.  

   

(소피) 그럼, 조금 더 이야기를 해보면요. 그러니까 저는, 로고스가 아페이론 같아서 세상의 모든 게 조화로워진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아페이론이 무한정한 것이잖아요. 그렇다면 아페이론은 이것저것으로 바뀔 수 있다는 뜻이고, 그렇다면 헤라클레이토스가 말한 변화도 가능한 거잖아요. 두 사람의 생각이 이렇게 연결될 수도 있지 않을까 싶은 생각을 했던 거예요.     


상상이 지나친 것 같기도 하고. 아무튼요. 두 사람이 제가 평소에 그리던 철학자의 이미지에 들어맞는 사람이었어요. 세상을 깊이 있게 볼 줄 아는 사람이요.

 

그리고 제가 생각을 해봤거든요? 피타고라스가 말한 영혼을 정화하는 게 무엇일지. 저는 그게 음악이었어요. 피타고라스가 말한 것처럼요. 그렇지만 저는 피타고라스처럼 음악이 수(數)의 구조를 띠고 있어서 아름답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어요. 음악이 왜 아름다운지는 잘 모르겠지만 수 때문은 아닌 것 같아요. 음악이 아름다운 다른 이유가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저는 피타고라스가 마음에 안 들어요.  


(데오) 저는 헤라클레이토스요. 이유를 앞에서 이야기하긴 했는데. 생각해보니 제가 헤라클레이토스가 마음에 드는 이유는 삶을 이야기해주는 것 같아서예요. 삶은 이런 것이야 라고 말하진 않았지만, 저는 그가 세상이나 만물이 아니라 삶을 이야기하는 것처럼 보였어요. 이상하죠. 이야기하지 않았는데 이야기해주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니까요. 저는 그랬어요.  

   

어릴 때 교과서에 나온 김소월의 시 ‘진달래꽃’을 읽으면서 시를 쓰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있거든요. 그 시에 ‘역겨워’라는 말이 있는데요. 역겹다는 말은 아름다울 수 없잖아요. 그런데 그 시에선 그 단어가 슬프기도 하고 아름답기도 하더라고요. 그래서 깨달았어요. 세상의 나쁜 말들을 아름답게 만드는 사람이 시인이라는 것을요. 그래서 나중에 커서 나쁜 말은 좋은 말로, 더러운 말을 아름다운 말로 바꾸는 시인이 되면 좋겠다고 생각했었어요. 그렇다고 소질이 있지는 않았어요. 남들보다 시를 더 많이 좋아하지도 않았어요. 사춘기 산들바람처럼 잠깐 스쳐지나간 생각이에요.


그런데 지금은, 언제 시를 읽어봤는지 기억도 안나요. 시랑 전혀 상관없는 일을 하는 제 모습을 보면서 제가 참 많이 변했다는 걸 새삼 느껴요. 하지만 헤라클레이토스가 말했잖아요. 모든 건 변한다는 걸요. 그래도 저는 저고요. 변하기도 하고 변하지 않기도 하는 게 삶이라는 걸 이제는 알 나이가 됐죠. 헤라클레이토스의 이야기를 저는 그렇게 들었어요. 밀레토스학파나 피타고라스는 헤라클레이토스에 비하면 딱딱한 사람들처럼 느껴졌고요.

  

(필로) 다들 헤라클레이토스를 좋아하셔서 망설여지긴 하지만, 저는 피타고라스가 좋았습니다. 멋진 사람이더라고요. 왜냐면 피타고라스는 수(數)라는 보이지 않는 것을 통해 보이는 모든 것들을 설명해주니까요.

    

철학자들이 관심을 가진 게 ‘여럿’(다자)과 ‘하나’(일자)의 관계였잖습니까. 그래서 ‘아르케’를 일자라고 상정하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는데, 피타고라스는 보이지 않는 ‘아르케’로 보이는 ‘다자’를 설명하는 길을 만들어준 것 같더라고요. 아낙시만드로스도 그렇지만 피타고라스의 수학은 진짜 그렇잖아요. 궁극의 이론 같은 느낌이 드는 겁니다. 그리고 인류 문명에 어마어마한 영향을 끼친 사람인 것 같았습니다.   

  

밀레토스학파도 나름 좋은 시도였다고 생각합니다. 철학을 시작하게 만든 사람들이니까요. 헤라클레이토스는 방금 말씀드렸지만, 매력적인 사람이라는 생각은 듭니다. 물론, 저에게는 와닿지 않는 매력입니다. 이상입니다.


지금까지 다섯 명의 철학자를 만났습니다. 앞으로 만날 철학자를 위해서라도 이렇게 한 번씩 철학자를 앞에 두고 자기 생각을 정리해보면 좋겠습니다. 우리의 여행은 이제 시작입니다. 지금까지 만난 철학자들보다 더 매력적이고 더 설득력이 있는 철학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앞으로 만날 철학자들을 잘 이해하려면 지금 만나고 있는 철학자부터 차근차근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기대하는 마음으로 다음 철학자를 기다려주기 바랍니다.


다음 시간에 만날 철학자는 모든 것이 변한다는 걸 강조한 헤라클레이토스와 달리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는 주장을 하는 철학자라는 점만 힌트로 알려드리죠. 그를 만나러 다시 이탈리아로 떠납시다.     

  

(소피)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고요? 어떤 철학자가 그런 주장을 해요? 말이 안 되는 주장인데요? 그 이야기를 듣고 설득이 될까요? 안 될 것 같은데요?     


의심의 눈초리로 철학자를 보는 것은 좋은 태도입니다. 철학에서 의심은 먼 길을 떠나는 여행객의 배낭처럼 필수적입니다. 안 될 것 같은 일을 해낼지 못해낼지 의심을 거두지 말고 만나보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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