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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숫제 Jan 30. 2024

피타고라스

온 우주는 하나의 음악입니다

여기는 이탈리아 남부 크로토네라는 도시입니다. 여기서 만날 철학자는 여러분들이 많이 들어봤을 이름 피타고라스입니다. ‘직각삼각형에서 빗변 길이의 제곱은 빗변을 제외한 나머지 두 변 길이 각각의 제곱의 합과 같다’는 ‘피타고라스 정리’의 주인공이죠. 그는 영혼은 불멸하며 사람이 죽으면 다른 동물의 몸으로 들어간다고 믿었습니다. 유명한 일화가 있습니다. 하루는 길을 가다가 개가 심하게 맞는 것을 보고 피타고라스 자기 친구의 혼이 그 개의 몸에 있으니 때리지 말라고 말렸다는 것입니다. 인간을 포함한 이 세상의 모든 동물을 동족으로 여긴 것이죠. 피타고라스는 ‘지혜에 대한 사랑’이라는 뜻의 철학(philosophia)이라는 말을 처음 쓴 사람이기도 합니다.

    

[피타고라스 등장]

(피타고라스) 나는 내 교의(敎義)를 외부에 잘 알리지 않습니다. 허나 많이 알려진 이야기니 말씀드리지요. 만물은 수(數)입니다. 그러므로 수학은, 온 세상을 이해하는 도구입니다. 수학의 원리가 곧 만물의 근본 원리이지요.


가령, 여러분은 지금 의자에 앉아 있습니다. 그 의자가 만들어질 때 제작자는 의자의 길이를 얼마로 할지 결정했겠지요. 그런데 길이는 수로 표현됩니다. 의자의 각 부분들은 수가 새겨진 자로 그 길이를 잴 수 있지요. 여기 레몬밤차를 올려둔 이 넓고 튼튼한 탁자의 높이도 잴 수 있고요. 탁자 옆 난로 위에 있는 주전자의 무게도, 저 작은 창문의 크기도, 창문 밖 나무를 흔드는 바람의 속도도, 나무 옆 긴 장대의 길이도, 구름 사이로 내리쬐는 햇빛의 각도도, 그 빛의 온도 역시 수로 표현할 수 있지요.     


우리가 볼 수 있는 모든 것은 다 수와 관련되어 있습니다. 우주는 수적인 구조를 지니고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수야말로 자연의 원천입니다.  

   

모든 ‘형상’(모양)을 가진 것이 수와 관련이 있다는 말이지요?     


(피타고라스) 그렇지요. 모양과 크기를 식별할 수 있는 것은 모두 수와 관련이 있습니다. 삼각형, 정사각형, 직사각형 모두 수로 표시할 수 있습니다. 즉, 모든 형상은 수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형상이 없어 보이는 것들에도 수적인 질서는 있습니다. 특히, 음악은 중요합니다. 낮은 도와 높은 도의 비율은 2:1, 도와 솔의 비율은 3:2, 도와 파의 비율은 4:3입니다. 아름다운 음악에는 수로 이루어진 비율의 질서가 숨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세계는 수로 가득 차 있습니다. 온 우주는 하나의 음악입니다.  

   

당신들이 사는 곳의 사람들은 건강에 관심이 많다지요? 그렇다면 수를 잘 알겠군요. 인간의 몸도 수와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건강해지려면 각자의 몸에 알맞은 수를 계산해두어야 합니다. 악기의 현을 적절한 수의 비율로 조율하듯 몸도 조율해야 하지요.


Liam Porisse, Pythagorean theorem, painting, 210x140 cm, 2012


(필로) 진짜 그래요. 다이어트를 위해서 칼로리를 계산하고, 몸을 건강하게 만들기 위해 트레이닝을 하는데, 이때도 운동량이나 시간 등을 계산하거든요.     


(피타고라스) 그렇군요. 칼로리가 뭔지 모르겠으나 수를 표시하는 단위겠지요? 하나 더 이야기할 것이 있습니다. 몸도 중요하지만 영혼은 더 중요합니다. 영혼에도 수가 깃들어 있습니다. 수의 계산이 몸을 건강하게 만들듯 영혼도 건강하게 만듭니다. 수는 만물의 근원이어서 영원하고 불변합니다. 인간의 영혼이 깨끗해지려면 수의 영원함과 불변함에 참여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수를 계산하는 일이 더러워진 영혼을 깨끗하게 만듭니다.      


그리스의 신화에 등장하는 탐탁잖은 신들은 수의 영원함과 고귀함을 지니지 않은 존재입니다. 그들은 신이라고 불릴 뿐 우리 인간과 별 차이가 없습니다. 내가 경멸하는 디오니소스를 따르는 이들은 춤과 노래에 빠져 동물의 피를 마시는 일로 영혼을 정화하지요. 터무니없는 일입니다. 그들의 행위는 영혼을 정화하는 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영혼을 혼탁하게 할 뿐입니다. 영혼의 정화를 위해선 나의 가르침을 따라야 합니다. 수가 깃든 음악이 영혼의 정화에 도움이 되긴 하나 수학을 연구하는 게 영혼의 정화에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소피) 수학이 영혼을 정화한다니 받아들일 수 없는 얘기네요. 저는 수학이 골치만 아프던데요.  

   

(피타고라스) 그렇군요. 올림피아 경기를 본 적이 있습니까?      


(소피) 올림픽을 말씀하는 거라면 당연히 본 적이 있죠.    

 

(피타고라스) 올림피아 경기장에는 세 부류의 사람들이 있지요. 경기장 주변에서 음식과 물건을 팔아 이익을 취하는 사람, 경기를 뛰는 사람, 경기를 구경하는 사람. 누가 가장 훌륭한 사람이라고 생각합니까?     


(소피) 그야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사람 아닐까요?     


(피타고라스) 가장 훌륭한 사람은 경기를 구경하는 사람입니다. 그들은 지금 무엇이 일어나고 있는지 확인하고 왜 그런 결과가 나왔는지 분석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확인하고 분석하는 사람들이 가장 훌륭한 사람입니다. 과학자, 수학자 그리고 나같은 철학자 말입니다.   

  

‘이론’(theory)이라는 뜻을 지닌 그리스어 ‘테오리아’(θεωρία)가 ‘보다’, ‘관찰하다’라는 ‘테오레오’(θεωρέω)에서 유래한 것을 짚어주는군요. 관찰하는 행위를 통해서 이론을 세우게 된 것이죠.   

  

(피타고라스) 그렇습니다. 이론이 중요한 이유는 이론이 영혼을 돌보기 때문입니다. 진정으로 중요한 것은 영혼의 문제입니다. 과학과 수학은 관찰하고 이론을 세웁니다. 이론을 통해 이 세상을 참된 모습을 발견합니다. 수학은 우리를 영원하고 질서 있는 세계로 이끕니다. 우주가 수로 표현될 수 있다는 것은 우리가 지금 바라보고 있는 온 우주가 조화롭고 아름답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아름다운 사람은 비율이 좋은 사람이 아니던가요? 결국, 영혼의 아름다움 역시 수의 문제입니다.

[피타고라스 퇴장]     


Ernando Febrian, Pythagoras Pop Art, digital artwork, 2022


자, 피타고라스의 생각을 여러분은 어떻게 들었나요? 밀레토스학파와 비교해볼 때, 더 나은 생각을 한 것 같은가요?     


(필로) 저는 감동했습니다. 밀레토스학파와는 차원이 다른 이야기를 한 듯합니다. 아르케가 무엇인지 찾는다고 했을 때 어떤 물질적인 것을 계속 생각하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피타고라스는 생각의 방향을 바꿔버렸어요. 수, 수, 왜 저는 수를 생각하지 못했을까요? 정말 멋집니다.     


(데오) 저도 피타고라스의 말에 많은 부분에서 설득이 되었어요. 그렇지만 세상의 모든 것이 다 수로 설명된다는 말에는 의구심이 생기긴 했어요. 정말 그런지는 잘 모르겠어요. 좀 생각을 해봐야 할 것 같아요.     


(소피) 저는 아까도 이야기했지만 수학은 골치가 아파서요. 꽤 맞는 이야기를 한 것 같지만 아직은 그래도 밀레토스학파가 이야기한 아르케를 먼저 찾아야 할 것 같아요.  

   

좋습니다. 이제 다음 철학자를 만나러 가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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