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u Mar 30. 2022

노견 안락사, 고민하고 있다면

안락사 결정이 어려운 이유

처음 부모님께서 제니의 안락사 이야기를 꺼내셨을 때 심장이 멎는 줄 알았다. 제니가 언젠가 내 품을 떠날 거란 건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 방식이 안락사가 될 것이란 건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어느 날 잠자듯 편안히, 그렇게 떠나가길 바랐는데, 안락사라니. 그건 제니에게도, 우리 가족에게도 너무 잔인한 이별이 아닌가.


우리는 안락사 예약만 3번을 번복했다.

때는 지난 늦여름이었다. 작년 하반기, 부모님께서 갑작스럽게 해외에 가실 일이 생겼다. 그때도 이미 제니는 홀로 거동과 식사가 불가했고, 더욱이 부모님이 돌아오시는 반년 후까지 살아있기란 불가능해 보였다. 부모님은 나 홀로 제니를 떠나보내느니, 가족이 모두 함께 제니를 보내주는 것이 모두를 위한 길이 아니겠냐며 나를 설득하셨다. 그렇게 몇 주 뒤로 어렵게 날짜를 잡고, 이별의 유예 기간 동안 제니가 아픈 후 한동안 발길을 끊었던 공원으로 산책도 나가고, 평소 좋아하던 고기반찬도 양껏 주며 시간을 보냈다.


그러던 어느 날, 잠시 들른 병원에서 제니 또래의 18살 시츄와 가족 분들을 우연히 마주쳤다. "이젠 좀 보내줬으면 하는데, 살아있는데 어떻게 그러냐고 저렇게 열심히예요. 난 그래도 내 딸이 더 안쓰럽지.." 강아지를 살뜰히 챙기는 보호자 분을 바라보며, 그분의 아버님께서 말씀하셨다. 순간 내 마음이 일렁였다. 정말 이 길이 모두를 위한 길인가? 왜 난 용기를 내지 않지? 홀로 제니를 떠나보내는 것이 뭐 얼마나 두려운 일이라고. 제니의 첫 번째 안락사는 그렇게 취소됐다. 아픈 강아지에 대한 책임을 오롯이 내가 맡게 되어 부모님께서는 떠나기 직전까지 마음이 편치 않다고 하셨지만, 한편으론 내가 끝내 용기를 내준 것에 은근히 안도하시는 듯했다. 두 분 역시 제니와의 이별이 두려웠던 거다.


그렇게 함께할 시간이 조금 더 주어졌다.

다행히 당시 나는 재택근무 중이어서 틈틈이 제니를 돌볼 수 있었다. 물론 가족들이 함께 하던 일을 홀로 하게 되니 체력적으로도, 심리적으로도 많이 고됐다. 하지만 단 몇 분 몇 초라도 제니와 더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것이 좋았다. 한번 안락사-강아지의 죽음-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고 나니, 죽음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에 신경을 쏟는 대신 얼마 남지 않은 날들을 더 의미 있게 보내는 데 집중하게 됐다. 제니를 먹이고, 씻기고, 닦이고... 그렇다고 뭐 대단한 일을 한 것은 아니지만 제니와 함께하는 매 순간을 진심을 다했다. 그렇게 제니와 함께한 마지막 가을이 저물어갔다.


"이제는 보내주시죠."

두 번째는 의사 선생님의 권유였다. 언젠가부터 제니는 새벽녘 잠에 들지 못하고 일어나 우는 일이 잦아졌고, 통증약과 패치를 붙여도 힘겨워했다. 선생님은 이 상태라면 아이가 너무 힘들 것이라며 이제는 보호자님도 최선을 다하셨으니 떠나보내는 것이 어떻겠냐고 조심스레 말씀하셨다. 아파하는 제니를 계속 살려두는 건, 나의, 인간의 이기심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다시 어렵게 안락사를 예약했다. 그런데 집에 오는 내내 마음이 싱숭생숭한 거다. 그래도 이렇게 살아 숨 쉬는데, 밥도 잘 먹는데. 동물들은 떠나기 전 자신의 죽음을 직감하고 곡기를 끊는다는데... 그날 밤 나는 선생님께 죄송하다고 말씀드린 후, 두 번째로 안락사를 취소했다.


떠날 때가 됐다는 걸 안다는 것은

"이 상태면 아이가 너무 힘들 거예요..." 나의 고집으로 안락사는 취소했지만, 내내 선생님의 말씀이 걸렸다. 정말 내가 나의 이기심에 제니를 떠나지 못하게 붙잡고 있는 걸까? 먼저 강아지를 떠나보낸 지인들에게도 물어보고 온라인에 검색도 해봤다. 하지만 더 혼란스러울 뿐이었다. 누군가는 이미 인위적인 '연명치료'를 시작한 시점부터 '자연사'는 불가능한 것이라며, 아이가 더 힘들어하기 전에 보내주는 것이 맞다고 했고, 또 다른 누군가는 그래도 살아 숨 쉬는 생명을 억지로 보내는 것은 도리가 아니라고 했다. 결국 정답은 없기에 나만의 기준이 없다면 그 어떤 선택을 해도 후회가 남을 것 같았다.   


물론 '반려견 삶의 질 지표(HHHHHMM Scale)'라는 안락사를 판단하는 데 도움을 주는 지표도 존재한다. 미국 수의학 협회에서 개발한 지표로, 통증/배고픔/수분 공급 등 삶의 질을 결정하는 7개의 척도를 기준으로 반려견의 삶의 질을 점수화할 수 있다. 진단 결과, 현재 반려견의 상태가 일정 점수 이하이면 안락사를 고려해보란 제언을 주는 식이다. 나 역시 이 지표를 참고했지만, 그럼에도 최종 선택에는 결국 나만의, 보호자만의 선택의 기준이 필요했다. 그래서 나는 가족들과 상의 끝에 '식사를 거부하는 것'을 제니를 떠나보내는 시점으로 정했다. 그로부터 한 달 후 제니는 식사를 거부하기 시작했고, 그렇게 나는 2021년 11월 4일 마침내 제니를 하늘에 보내주었다.


당신은 떠나보낼 준비가 되었나요?

이별은 예고 없이 찾아오는 것이라 아픈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헤어질 날을 아는 것 역시 기약 없는 이별만큼이나 힘든 일이었다. 무엇보다 사랑하던 반려견을 직접 떠나보내야 하는, 반려견 안락사는 보호자에게 큰 마음의 짐이다. 그래서 나는 아픈 반려견의 안락사를 고민할 때, 반려견의 상태뿐만 아니라 보호자, 스스로의 상태 역시 살펴보라고 말해주고 싶다. 지금 떠나보내도 괜찮을 것 같은지, 내 마음속 깊은 곳을 들여다 보라는 거다. 또 현실적으론 준비된 날에 떠나보내는 것도 좋다고 생각한다. 나는 제니와의 이별을 조용히 맞이하고 싶어, 연차를 내고 평일 오후에 제니를 보내주었다. 덕분에 나는 이별의 마지막 과정을 평화롭고 경건하게 보낼 수 있었다.  


아직도 나는 가끔 반려견 안락사를 고민하는 게시글을 보면 그때의 기억이 떠올라 마음이 아프다. 지금은 그 어떤 말로도 위로가 되지 않겠지만, 당시 힘들어하던 내게 작은 위로가 된 누군가의 답변으로 글을 마무리한다.

 

'당신이 어떤 선택을 하든, 당신의 반려견은 당신이 최선을 다했다는 것을 알고 있을 거예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