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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ture film Dec 02. 2020

초희의 붙잡음과 뿌리침

<소리도 없이>(홍의정, 2020)

※ sututre film의 모든 글에는 스포일러를 포함합니다.



<소리도 없이>(홍의정, 2020)

★★★★     


<소리도 없이>는 창복(유재명)과 태인(유아인)이 시장에서 계란을 파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멀리서 봐도, 그리고 가까이 다가가서 봐도 그들의 장사는 문제가 없어 보인다. 이어지는 쇼트에서 창복은 노래를 흥얼거리며 운전을 하고 태인은 고단한 듯 잠을 자고 있다. 그들이 탄 트럭은 전형적인 목가적 풍경의 한 요소로 안착한다. 타이틀이 올라가고 이어지는 쇼트에서 트럭은 건물 앞에 도착한다. 카메라는 계란을 팔던 창복과 태인을 담았던 구도로 다시 그들을 본다. 하지만 그들은 그곳에서 계란을 팔지 않는다. 트럭에서 내린 그들은 “성실한 땀방울, 내일의 미소”라는 문구 아래에서 옷을 갈아입는다. 그리고 그들의 새로운 일이 시작된다.      


무미건조하고 기계적으로 움직이면서 그들은 ‘사망중’인 사람들의 시작과 끝을 담당한다. 죽은 자만 다루던 그들에게 지금까지와는 다른 산 사람과 관련된 일이 하달된다. 창복은 이 일을 거절하려 하지만, 그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 어쩔 수 없이 시작한 일로 만난 11살 소녀 초희(문승아)는 그렇게 창복과 태인 아니 태인의 삶에 들어온다. 제대로 된 물건, 제자리에 놓인 물건 하나 없는 태인의 집은 초희가 들어오면서 하나씩 변한다. 이때 중요한 것은 초희가 태인과 동생 문주(이가은)를 가족으로 받아들여서가 아니라는 점이다. 초희 역시 생존을 위해서 움직인다.      


그러나 탈출을 감행한 초희가 달 빛 아래에서 태인을 마주했을 때, 태인은 가만히 서 있는다. 마치 가라고 말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때 태인을 끌고 가는 것은 초희였다. 그리고 태인은 초희를 업고 집에 돌아온다. 태인과 문주의 생존과 초희의 생존이 만나는 어떤 지점에 가족이 있을 수 있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전면화되지 않는다. 예를 들어 <담보>(강대규, 2020)가 지향점을 가족에 두었다면, <소리도 없이>의 마지막 장면은 그간 꼭 잡고 있던 태인의 손을 뿌리치고 선생님에게 달려가 태인이 유괴범이라고 말하는 초희이다. 관객은 태인의 선택 즉, 어딘가로 팔려가는 초희를 구하는 일, 그리고 초희를 학교로 데려가는 일에서 태인의 변화를 감지한다. 그리고 ‘어떤 가족의 탄생’을 기대한다. 하지만 영화는 이러한 관객의 기대를 철저히 배신한다.     


(2020.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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