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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ture film Nov 29. 2020

<오발탄>(1961)

[영화적 순간 003]

<오발탄>(유현목, 1961)

경찰서를 나온 철호(김진규)는 앞에서 기다리는 동생 명숙(서애자)에게 다가간다. 카메라는 롱 쇼트에서 미디엄 롱 쇼트로 전환하여 두 인물의 만남에 주목한다. 그러나 명숙은 다가오는 철호를 보지 않는다. 명숙은 가방에서 껌을 꺼내 씹을 뿐이다. 이들 사이에 대화는 없다. 철호 역시 이내 명숙에게 향한 시선을 거두고 오른쪽으로 방향을 전환하여 이동한다. 그러나 <오발탄>은 철호가 외화면으로 빠져나가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즉, 명숙 혼자 프레임에 남겨두지 않는다.      


이어지는 쇼트에서 카메라는 롱 쇼트로 명숙과 철호를 프레이밍 한다. 철호가 오른쪽으로 향하자, 명숙 역시 철호를 따라 오른쪽으로 이동한다. 이때 카메라는 고정되어 있기 때문에 충분히 철호가 외화면으로 빠져나갈 수 있다. 그러나 이번에도 철호가 화면 밖으로 빠져나가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오발탄>의 선택은 디졸브를 통해 이들을 함께 다른 공간으로 이동시킨다.      


이동한 공간에서 여전히 철호와 명숙은 걷는다. 경찰서 앞에서 전후의 차이는 있지만, 그들은 동일선상에 있었다. 그러나 이동한 공간에서 그들은 전후 차이뿐만 아니라 전경과 중경으로 분리되어 걷는다. 이를 철호와 명숙 사이에 놓인 저지선이 강조한다. 다시 철호가 화면을 빠져나가려 할 때, 영화는 이를 저지하고 디졸브로 철호와 명숙을 다른 공간으로 이동시킨다.      


철호는 전경으로 다가와 있고, 명숙은 후경으로 밀려나 있다. 이들의 간격은 벌어져 있다. 회사 앞에 도착하자 철호와 명숙은 걸음을 멈춘다. 그리고 철호는 전경에서 후경의 명숙에게 다가간다. 그러나 이번에도 명숙은 철호를 보지 않는다. 철호 역시 건물 안으로 들어간다.        

 

<오발탄>은 프레임 밖으로 나가려는 철호를 끈질기게 붙잡아 다. 그곳에는 명숙이 있다. 즉, <오발탄>은 명숙에게서 벗어난 철호를 허락하지 않는다. 둘은 40초 동안 동일한 프레임에서 걷기만 했을 뿐이다. 동일한 프레임에 놓였지만, 그들은 걸을수록 점점 멀어질 뿐이다. 외재음이 대사를 지운 장면에서 이미지/영상이 발화하는 순간이다. <오발탄>의 이 장면은 한국영화사에 처음 등장한 유의미한 걷기의 순간이다.


(2020.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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