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밥은 먹지만 토했고,
정상체중이지만 전보다 더 다이어트 강박은 심해졌다.
남자친구의 이상형인 "마른 여자"가 되었지만,
남자친구는 더 이상 내게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우리와 자주 어울리는 헬스장 친구들도 찬 바람 부는 우리 관계를 눈치챘다.
"수타일아, 지방 흡입해 본 적 있어?
너처럼 소아비만은 다른 사람보다 지방세포 수가 많아서 문제래.
그래서 지방 흡입해서 확 빼야 살이 다시 안 쪄. 나도 어릴 때, 살쪄봐서 알아."
아…. 언니의 말을 들으니 다시 귀가 팔랑거렸다.
다이어트약이 효과 있던 건 사실이고,
나와 남자친구 둘 다 친한 언니가 내게 나쁜 걸 추천할 리 없었다.
의사를 만났다.
오랜 운동으로 근력이 좋은 나를 의사는 조목조목 지적했다.
"복부에 살이 좀 있네요. 여긴 1,000cc는 뽑아야겠네요.
다리도 한번 볼까요?
지방 빼면 근육이 더 도드라질 텐데 보톡스도 같이 해서
라인을 정리하면 어때요? 지금은 근육이 너무 많아요."
한때, 내가 자랑스러워하던 근육이었다.
하지만 의사에게는 라인 정리가 필요한 문제 많은 환자였다.
의사는 필요한 부분을 볼펜으로 표시했고, 의사와 상담이 끝난 뒤,
내 몸은 온통 줄이 그어져 있었다.
수술이 필요하지 않은 곳은 고작 발바닥이나 두피 정도?
상담과 함께 수술은 바로 진행되었다.
두 시간 뒤, 수술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왔다.
온몸은 피멍이 들었고, 수술 부위마다 지방을 녹인다는 용액이 피와 섞여 흘렀다.
손도 잘 구부러지지 않을 만큼 온몸이 부었다.
지방 흡입이 아프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생각보다 더 아팠다.
피멍이 가득한 배는 화장실에서 힘만 줘도 악 소리가 절로 났다.
그뿐만이 아니다.
최소 한 달은 매일 입어야 하는 압박복은 정말 최악이다.
압박복을 입은 채로 자고, 걷고, 생활해야 했다.
게다가 화장실 갈 때마다 입고 벗는 일이 얼마나 거추장스러운지….
한 달을 살이 빠질 거라는 희망으로 압박복을 견뎠다.
한 달이 지났다.
부기가 빠지고 지방 흡입 결과를 확인하기 위해 다시 병원에 갔다.
나는 절망했다.
의사가 말했다.
"수타일님 몸은 근육이 많아서 그래요. 그래도 라인은 좀 정리가 된 겁니다.
원하시면 다시 재수술해서 조금 더 지방을 빼고 다듬을 수 있습니다."
다시 수술하면 살이 확 빠지냐는 질문에 의사는 지금보다 더 나아질 거라고 말했다.
나는 한심하게 의사의 말을 또 믿었다.
그리고 다시 수술대에 누웠다.
다시 한 달 뒤, 지방 흡입 흉터만 진하게 남았을 뿐, 이번에도 효과는 없었다.
의사는 내게 다시 지방 흡입을 권했다.
벌써 세 번째 수술이었다.
돈은 돈대로 들고, 고생은 고생대로 했지만, 결과는 미미했다.
세 번째 수술이 끝나고, 집으로 가는 지하철 안, 휴대폰을 켰다.
오늘 나의 지방 흡입 재수술을 알고 있지만, 남자친구는 아무런 연락도 없었다.
지하철 창문에 비친 나는 예전에 남자친구가 사준 운동복을 입고 있었다.
"마른 여자"를 좋아하는 남자친구가 사준 내게 작았던 운동복….
예전에 내게 작은 운동복이었는데 이제는 너무 커서 헐렁하기까지 했다.
우습게도 이 운동복은 작거나, 헐렁해서 한 번도 내게 잘 맞은 적이 없다.
수술에 대한 불만은 옷을 향한 분노로,
분노는 다시 다른 곳으로 향했다.
내게 다이어트약을 권하고, 지방 흡입을 권했던 친한 언니는
정작 자신은 약도, 흡입도 해본 적이 없다.
'이 언니, 대체 뭐지?'
언니를 거쳐서 내 분노의 마지막은 남자친구였다.
'어떻게든 체중 50kg 유지하라면서, 수술이 잘 끝났는지 연락도 안 해?'
나는 다이어트약으로 반쯤 정신이 나간 뒤, 지방 흡입 수술로 돈을 잃은 뒤,
흉터가 가득 남은 몸이 된 뒤에야 깨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