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 보면 후회하는 순간이 꼭 있다.
학교에 가기 전, 늦었다고 엄마에게 짜증을 낸 일.
친구와 다툴 때, 하지 않았으면 좋을 마음에도 없는 말.
그리고 나의 가장 큰 후회는
더 빨리 남자친구와 헤어지지 않은 일이었다.
만약 그때, 남자친구가 사준 내게 작은 운동복을 던지고,
어쩌면 나는 다이어트약을 손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지방 흡입 수술을 3번이나 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무리한 운동으로 햄스트링이 찢어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의 휴대폰에서 다른 여자와 "리틀 포레스트" 영화가 재밌었다는
문자를 보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어쩌면 적반하장으로 바람피운 놈이
나를 미친 여자 취급하는 일을 겪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아니다.
그가 쓰레기가 아니었어도, 그와 진작 헤어졌어도
나는 이 모든 일을 겪었을 거다.
내가 정말 후회할 일은 내가 나를 버린 일이다.
내가 나를 보호해야 하는 순간은 여러 차례 있었다.
학교 소풍 사진에 나만 옆으로 서라고 했을 때,
혼자 화장실로 달려가 울었던 일.
더운 여름에도 까만색 가디건으로 몸을 가리라는 엄마의 충고에
아무 말 없이 가디건을 걸친 일.
학창 시절, 날 돼지라 놀리는 아이들에게 보태준 거 있냐며 화내지 않은 일.
내가 묻기도 전에 미리 사이즈가 없다는 백화점 점원의 오지랖에 조용히 옷을 내려놓고 나온 일까지….
나는 나를 지키지 않고, 결국 모진 말을 듣도록 내버려 뒀다.
자신을 버려둔 부작용은 한꺼번에 몰려왔다.
다이어트약으로 정신은 온전치 못하고,
매일 굶고 토한 탓에 치아는 벌어지고, 위는 시도 때도 없이 경련이 일어났다.
지방 흡입 수술 후, 피부는 이상하게 딱딱해졌고,
내 몸을 망가트리며 지키려던 첫사랑은 떠났다.
내 인생을 지우개로 벅벅 지우고 다시 그리고 싶었다.
그게 안 된다면 먼지처럼 사라지고 싶었다.
내가 가엾어서 안아주고 싶다.
10대는 왕따로 보내고,
첫사랑은 마른 지지배 따라가고,
꽃다운 나이지만 반쯤 대머리에, 몸은 수술 흉터가 가득했다.
이쯤 되니 상황은 지랄 같은데 마음은 편하다.
원래 인생이란 잃을 게 없으면 편해지지 않던가.
그래도 다 잃었다고 생각한 순간 겨우 건질 게 하나 있었다.
바로 상처받은 나 자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