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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min Jul 22. 2017

<던 케르크> by 크리스토퍼 놀런

참혹함을 배경으로 그려낸 인간 찬가

<던 케르크>(이하 영화>를 보았다.


영상과 음향이 어우러져, 몰입하는 경험을 만들어내었다. 경이로운 연출과 편집이었다. 감독의 전작 <인터스텔라>에서 '우주'를 그려낸 방식과는 또 달랐다. 수십 년 전의 전쟁 속에 빠져든 것 같은 경험으로, 106분에 달하는 러닝타임이 전혀 지루하지 않았다. 허투루 볼 수 있는 장면이 없었다. 여백까지 훌륭한 경험이었다.



뛰어난 연출, 좋은 서사와 음악 속에서 부연 설명은 필요 없다. 물론 감독의 상업적 성공이 뒷받침되었기에 그렇겠지만. 영화는 부연설명 같은 잔가지를 잔혹하게 쳐내었다. 때문에 영화적 완성도는 한없이 올라갔지만, 과연 이게 상업적으로 흥행할지는 의문이긴 하다. <인터스텔라> 때처럼, 역사, 영화 덕후들의 글을 찾아 헤매게 될 것인가. 어쨌든 나는 '던 케르크'의 배경이 된 2차 세계대전과 다이나모 작전에 더 흥미를 느끼게 된 것은 사실이다.


그러면서 감독의 훌륭한 고증 앞에 경험할 수 있었던 2차 세계대전 발발 초기의 모습과, 2차 세계대전이 끝나갈 무렵에 대한 내 지식이 충돌이 일어나는 것을 느꼈다. 저런 전쟁에서 핵폭탄으로 끝난 전쟁. 전쟁이란 무엇인지 고민하게 만들었다. 곧 <군함도>의 개봉을 볼 터인데. <택시운전사>를 보게 될 것인데. 국가와 집단의 폭력에 사람은 무엇이 되는 것일까, 고민하게 만든다.


감독의 대답은 꽤나 명쾌해 보였다. 그럼에도 사람에 대한 시선은 무심한 듯 따듯했다고 생각한다. <인터스텔라>에서 끝까지 사람의 미래에 대한 찬사를 보냈던 것처럼. <다크 나이트>에서 그럼에도 사람들은 괜찮다고 역설했던 것처럼. 어쩌면 감독의 내면에서는 '조커'라는 또 다른 자아가 계속해서 질문을 던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때문에 이러한 영화를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은 아닐까 상상해보았다.


<인셉션>에서는 사람의 내면에 대해서 끝없이 들어가는 모습을 그리면서, 마지막에 이르러서야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서로를 사랑할 수 있다며 - 하지만 그 모습은 '현실' 일지 아닐지 모르겠다고 그렸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감독은 끝까지 내면을 직접적으로 비추지 않으면서도,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담담히 전해준다. 농담처럼 10줄도 안 되는 대사로 연기한다는 평을 들은 '톰 하디'의 연기와, 오래된 전투기, '스핏파이어'와 독일군 전투기들과의 도그파이트 - 그리고 마지막에 영국이 자랑하던 롤즈로이스 엔진기 꺼진 상태로 활강하는 모습까지. 아무도 그렇다고 말하지 않았지만, 나는 감독의 따듯한 시선이 느껴지는 것만 같았다.


기억나는 장면 중 몇 가지. 하나는 영국인 소년이 되게 아무렇지도 않을 것 같은 순간에 픽 하고 쓰러지고, 죽어버리는 그 순간. 폭력, 전쟁이란 것에 대해서 이렇게 무심하게 표현할 방법이 있을까 싶다. 그러다가도 감독은 끝내, 그의 친구를 통해 그의 꿈을 영화 말미에 이뤄버린다. 반면, '영국'과 '프랑스' 군인이, 살기 위해 버려졌던 어선 속에서 다투고, 함께 배에 난 구멍을 막으려다가 종국에 파국에 가까운 결말을 맞이한 그 시점에. 그리고 그러고 한참이 지나서 패잔병들이 영국의 어느 지역에 도착할 때까지. 담요를 나눠주던 노인이 왜 고개를 들지 않았는지. 그러나 신문에 나온 '처칠'의 연설문을 통해서. 혹은 해군 제독에게 전해진 '공식' 명령과 '비공식' 명령 사이에서의 갈등에 대해서도. 감독은, 영화는 끝까지 몰아붙이지 않고 담아 두었다가 하나하나 보여주면서 사람에 대한 희망을 잃지 말 것을 주문한다. 결국 영국 해군 제독은, 영국 군인과 프랑스 군인까지 대다수를 대피시키는 '다이나모 작전'을 완수한다.


'나무 위키'에서 '다이나모 작전'을 보면, 이 작전 이후에 '영국'과 '프랑스' 군인 사이에서의 감정 격화 등, 이 이야기도 결국은 '그렇게 모두 행복하게 잘 살았답니다' 와는 다른다는 것을 잘 알 수 있다. '나무 위키'의 공신력에 의문이 든다고 하더라도, 2차 세계대전이 그저 좋은 편과 나쁜 편의 싸움으로 끝나서, 결국 이렇게 행복한 세계질서가 만들어졌습니다라고 쉽게 말하기는 어렵다. 그런 결말을 보고 싶을 때는 곧 개봉할 <킹스맨:골든 서클> 같은 영화를 보는 것이 맞다. 또한 감독의 '인간 찬가'는 그런 식이 아니다. 인류애는 '나치즘' 같은 분명한 적을 가지고 있지 않다. 오히려, 침몰하는 어선 속에서 누군가 내려야 한다면 그건 '우리' 가 아닌 '남' 이어야 한다는 매우 넓은 - 글을 쓰는 나와, 글을 읽는 당신들 속에 자리 잡고 있을 그것이 인류애의 적이다.


그렇다고 인류애가 필요하다, 우리는 서로 다르기 때문에 서로를 사랑할 수 있다는 식의 설교는 없다. 감독은 영화를 통해서 그저 보여줄 뿐이다. 살아남고자 하는 사람들. 구하고자 하는 사람을. 전쟁이라는 상황은 무대의 배경에 불과하다. 때문에 톰 하디의 도그 파이트 연기를 빼면, '밀덕' 들이 좋아할 만한 장면은 거의 나오지 않는다. '무시무시한' U보트는 인물들의 대화 속에서 언급될 뿐이며 영화는 그 이후의 것에 주목한다. 사람들. 어떤 영화평론가의 말처럼 장대한 장면 속에 어마어마한 '전쟁'을 담기보다는 그 어마어마한 하늘 속에 남겨진 '사람 하나, 전투기 하나'를 담았을 뿐이다. 그 안에 느껴지는 고독, 떨어지는 기름과 시간 싸움. 그것을 내레이션이나 독백으로 처리하지 않고 좁은 공간 안의 연기 만으로 표현해낸 '톰 하디'를 그저 칭송할 뿐. 한편으로는 전쟁이 파괴한 이성과, 그럼에도 제정신을 차리기 위해 노력하는 군인의 내면을 짧은 순간에 그려낸 '킬리언 머피' 에게도 그리고 그 어떤 장면에서도 어색함이 없었기에 모든 출연진과 제작진에 노고에 경의를 표한다.


그럼에도 우리는 살아갈 것이다. 그 하나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수백만의 목숨을 앗아간 전쟁 후에도. 끔찍한 테러 속에서도 우리는 살아갈 것이다, 살기 위해 서로를 경멸하게 되겠지만 우린 살아갈 것이다. 그리고 아마 - 더 나아질 것이다. 그런 느낌을 받았다, 영화를 보고 나서는.


때문에 그 감정을 다시 느끼기 위해 한 번 더 이 영화를 볼 것 같다, 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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