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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min Jul 28. 2017

<아날로그의 반격>
by 데이비드 색스

나는 LP 판을 살 것이다. 하지만...

 나는 LP 판을 단 한 번도 사 본 적이 없다. 턴테이블도 마찬가지. 그를 이용해서 음악을 들어본 적은? 아주 어렸을 때였던 것 같다. 그러면 나는 LP를 사고 싶으냐? 그렇다. 그럼 그것이 무엇 때문일까. 내겐 이건 작은 사치(small luxury)에 가깝다. 노래를 듣는 행위, 경험 자체를 아날로그로 되돌리고 싶진 않다. 음악을 듣기 위한 경험인 더 쉬워지고, 편해지고 결정적으로 싸졌다. 그것을 되돌리는 것은 불가능하다, 적어도 내겐.  그러니 LP판을 산다면 그 구매 행위 자체가, 그것을 진열하는 것이, 손님이 왔을 때 괜스레 꺼내서 들려주는 것이 - 그러면서 소리가 어떻고, 질감이 어떻고 오디오 애호가들은 이게 더 좋다고 하는데, 난 솔직히 모르겠다며 이야기를 풀어놓기 위함일 것이다. 


 <아날로그의 반격> (이하 책)의 전체적인 이야기는 '디지털 혁명' 이 있었지만, 아날로그가 이길 수 있는 영역이 있다는 내용이다. 하지만 책은 위에 적어 둔 내 생각을 별로 바꾸진 못했다. 아니, 적어도 현재의 '현상'에 대한 설명은 이해가 되었지만 '아날로그의 반격' 이 지속될 수 없겠단 생각을 하게 되었다고 바꾸는 게 좋겠다. 책에서 종이, 음반, 카메라 등등에 대해서 언급한 것처럼 현시점에서 '아날로그' 가 게릴라군처럼 '디지털' 제국에 저항하고 있으며, 그것이 성공적인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그 '게릴라군' 들이 중화인민공화국을 세워서 미국과 대결하는 G2가 되는 그런 그림은 - 전혀 그려지지 않는다. 


 마크 트웨인의 말을 비튼 저자의 표현, 뛰어난 밴드의 라이브가 번갯불이라면 아이팟은 반딧불이에 지나지 않는다는 문장은 반대로 - 뛰어난 밴드의 라이브는 찰나의 순간에만 빛난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종이의 경우에는? 디지털 저장매체는 분명 잘 보관되는 종이보다, 더 오랜 시간 정보를 저장하지 못한다. 하지만 데이터를 복제하고 다루는 방식에 있어서 종이는 애초에 비교 대상이 될 수 없게 되었다. 언제나 들고 다니면서 바로 쓸 수 있다는 점의 경우, 현재 기술의 한계에 대한 지적에 불과하다고 생각하며 음성으로 타이핑을 하고, 키보드보다 모바일 타이핑이 더 빠른 세대의 모습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사진도 마찬가지. 기본적으로 창조적 파괴가 일어났고, 어떤 영역에서는 파괴적 혁신이 일어났으며 혁명은 본질적으로 비가역적이다. 특히, 그것이 금전적인 부분에 관련이 되었을 경우에는.


 보드게임의 경우에는 현재 AR을 사용하는 형태로 발전, 디지털과 아날로그가 결합하는 방식으로 진화하고 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비대면 접촉을 통한 소통에 적합하지 않은 사람들이 '보드게임'이라는 피신처를 만든 것은 아닐까, 생각이 들기도 한다. 빠른 컨트롤, 헤드셋을 끼고 서로 명령을 내리는 세계 그 세계에 포함되기 어려운 사람들 - 하드코어 한 게이머이지만 디지털의 세례를 빗겨나간 중간 세대들이 찾은 곳이 아닐까란 생각도 든다. 물론, 본질적으로 우리가 정말 면대면으로 만났을 때 낼 수 있는 '디지털화'할 수 없는 무언가가 있는가 아니면 우리가 그저 직접 만나지 않아도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고 보드게임을 할 수 있는 수준의 기술을 여태 못 만든 것은 아닐까 하는 질문이 선행되어야 한다. 


 왜 우리는 만나서 게임을 플레이할 때 더 즐거워하는 것일까? 그건 기술로 재현할 수 있는 영역은 아닌가? 대화의 영역, 교감의 영역이 꼭 '아날로그' 여야만 할까? 책에서도 직접 말한 것처럼 그저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보드게임' 이 아니라 '쿨' 한 곳에서 재미난 시간을 보내는 것이 아니었을까, 동일 비교를 할 수 있는 부분은 아니고 힙스터들의 취향에 따라서 아날로그 영역들이 살아나고 있는 것은 아닌가? 그 취향이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주류에 대한 반항이고, 디지털이 너무나도 주류이기에 - 그러기에 아날로그에게 힘이 되는 형태로 반항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최근 론칭한 닌텐도사의 '스위치' 게임기의 속성을 보면, 기본적으로 '가족과 함께 즐기는 게임기'에서 '외부에서 친구와 즐기는 게임기'로 중심축이 슬쩍 옮겨간 것이 보인다. 보드게임의 영역은 어쩌면 '가정'의 해체와 '집'이라는 공간의 속성 변화로 인하여 '비디오 게임기'를 통한 소통의 단절에 대한 반발로 형성된 것이고 그 부분을 잘 캐치해서 '스위치' 가 나온 것이 아닐까란 생각도 든다. 한편으로는 집이라는 공간 자체가 중산층 이하에게는 매우 귀한 것이 되기도 하고, 가정의 규모가 줄어들며 집의 크기도 줄어들었을 것이며 부동산 위기로 인하여 더 이상 '초대하는 공간'으로 기능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고 - 사회적인 단절, 그리고 사적인 공간의 완벽한 분리가 발생하는 건 아닐까, 여러모로 생각을 하게 된다. 


 어떤 면에서 이 책의 저자와, 이 책의 저자가 바라본 밀레니얼 혹은 그 이후 세대들은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경계선상에 선 이들이기에 - 그 교체기의 풍랑 속에서 아날로그의 반격에 동참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테크놀로지의 발전으로 비디오 게임이 '고립된 경험'이 되기도 했지만, 물리적 제한을 극복한 경험이 되기도 했다. 그 차이 안에서 현재를 살고 있는 이들은 그것을 고립된 것으로 보기도 하고, 반대로 더 열린 세계라고 느끼기도 하는 것이다. 


이 책에서도 나온 <유리 감옥>의 내용을 많이 떠올릴 수밖에 없기도 하다. 어쩌면 이 책은, <유리 감옥> 혹은 '우버 라이트'의 약화된 버전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은 아닐까. '아날로그'가 반격을 하고 있다기보다는 '아날로그'는 살아남아야 해!라고 외치는 느낌을 받았다. 물론 저자가 엄밀히 따진 숫자로 본 세계의 모습은 '아날로그'가 반격을 시작했다고 보이게 만들었지만. 사실 반격(Strikeback) 보다는 복수(Revenge)에 가깝지 않나 생각도 들고. 이미 '아날로그' 제국은 무너지기 시작했고, 남은 후손들이 일부 영역에서 복수하고 있는 것 수준이랄까. 이미 '디지털'과 '아날로그'는 동일 선상에 놓기에는 격차가 벌어지고 있는 건 아닐까란 생각도 들고. 


 이러니저러니해도 나는 LP판을 구매할 것 같다. 조만간. 집을 구하게 되면. 오디오 시스템을 구축하게 되면 말이다. 하지만 그건 그저 '소유'를 위한 것. 물리적인 (tangible) 한 것에 대한 노스탤지어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정말 좋아하는 책의 경우 구매를 해서 책장을 장식하겠지. 보드게임 모임에 나갈 것이지만 플레이타임은 '클래시 로열'을 따라오긴 힘들 것 같다. 


 또 한편으로는 계속해서 유튜브 레드를 쓸지, 새로운 음원 서비스를 찾을지 고민할 것이다. 종이와 노트를 항상 챙기지만 카카오톡 나와의 대화에 메모를 할 것이며. 몰스킨 노트를 살 돈을 아껴서 새로운 블루투스 키보드를 사고, 패드를 업그레이드할 것 같다. 보드게임을 살 돈을 아껴서 닌텐도 '스위치'를 살 것이고.


 뭐 그렇다는 말이다. 반격은 있겠지만, 따끔하면 다행일까. 디지털 혁명으로 탄생한 골리앗들은 특별한 약점도 없어 보이고, 다윗보다도 빨라 보이고 영리해 보이며 - 심지어는 다윗을 자기편으로 부릴 줄도 아는 것 같다. 아마존이 오프라인을 대하는 방식. 구글이 데이터화 되지 않는 것들을 데이터화 시켜 버리는 방식. 애플이 디지털 경험으로 아날로그 경험을 파괴하는 모습. 페이스북이 사람들의 커뮤니티를 데이터 화하는 과정들. 아날로그는 '독립' 할 수는 있겠지만 더 이상 예전 모습이긴 힘들 것 같다. 그리고, 앞으로 많은 영역이 그렇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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