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어쩌란 말이냐!
2016.02.22 ~ 2016.02.28 완독
이 책은 왜(Why)에 대한 답이라고 생각한다.
들불처럼 퍼져나간 디자인은, ‘바디 디자인’에서 볼 수 있듯, 널리 쓰이는 동사가 되었다. 그러나 나는 그 정확한 의미를 알 수 없었다. 웹 디자인, 공간 디자인, 인터랙션 디자인, 서비스 디자인… 각종 방법론과 툴(Tool)들. 이를 통해 도구로의 디자인은 널리 읽혀왔으나, 그 목적에 대해서는? 인간을 위한 디자인, 인간 중심의 디자인(HCD) 등, 여러 가지가 있었지만 철학이 없었다. 사회를, 국가를 혹은 회사와 개인을 바꾸기 위한 디자인에 대한 사유는 있었다. 디자인 그 자체에 대한 규칙은 있다. 다만, 그 자체에 대한 ‘사유’ 가 사라졌다.
유행에 발맞추어 나는 소위 HCI, 나 서비스 디자인 관련 수업과 프로젝트를 진행했고, 디자인 사고 (Design Thinking)에 대해서 깊게 고민을 해 봤던 사람이긴 하다. 하지만, 디자인 학과를 나왔다거나, 관련 수업을 트랙으로 여럿 수강했다거나, 논문 수준의 프로젝트를 수행해 본 적이 없다. 나야말로 정말 디알못(디자인 알지도 못하는 사람)이다. 나에게 있어서 디자인이란 언제나 도구였다.
어느 정도의 사유는 있다. 사용성, 유용성 그리고 감성을 키워드로 나는 기존에 내가 개인적으로 하는 일들을 바꿔줬다. 디자인 사고를 배운 이후로, 가능한 ‘예쁜 쓰레기’는 만들지 않으려 노력해왔다. 하지만 바로 그 ‘디자인’의 결과가 올바른 것인가? 어떤 메시지를 던지는 것이 세상에 올바른 것인가에 대한 고민은 없었다.
거기까지 고민해야 하는가 라고 생각하는 것도 사라진 지 오래이다. 그런 나에게 책은, (인문학적 소양 조차 없는) 나 같은 사람에게는 좋은 수면제였다.
경영학과가 뭘 배우는 곳인지 나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여하튼, 난 거기서 전공수업으로 디자인 관련 수업을 접하며 처음 이 분야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었다. 그런 와중에 디자이너와 ‘디자인 사고’에 대해서 느꼈던 것은, 회사와 사회에 있어서 프로젝트의 패권을 가져가고 싶어 하는 건가? 하는 점이었다. 엔지니어 중심, 혹은 마케터 중심이 아니라 디자이너 중심으로 프로젝트를 진행시키고 싶어 하는구나 하는 생각.
솔직히 그런 생각을 아직도 크게 버리진 못하고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도, 디자인이 무슨 만사형통 키인가 뭘 이렇게 고민할 것이 많은가 하는 생각을 했다. 이름 모를 외국 학자들이 스쳐 지나갈 때마다, 수면욕구가 치솟아 올라왔다. 처음, 왜 디자인을 하는가에 대한 질문의 답이 너무나 많고 다양하고 그래서 어쩌라고 라는 말이 계속 나왔다.
디자이너가 최종 결정권자도 아니고, 엔지니어도, 오히려 웹/앱 정도로 보면 한국에서는 서비스 기획자가 해야 할 고민도 있지 않은가? (현업과는 좀 다를 수 있긴 하지만 무슨 책이라도)
옳고 그름을 따져야 하는가, 를 시작하려면 결국 디자인이 무엇인가(What)으로 회귀해야 할 것 같다. 그래서 디자인이 뭔데? 책에서 받은 느낌은 디자인이란 이데아로 가는 방법을 만드는 것, 이라는 느낌적 느낌이었다. 사실 이데아는 존재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철학적 이상향 같은 것 아닌가? 그런 곳에 도달하기 위한 지렛대로의 디자인이랄까, 약간 성스럽기까지 했다.
그러니까, 디자인은 더 나은 것을 만드는 것을 총칭한다고 봐도 무방할 것 같다. 다만, 그게 기술적인 진보보다
는 조금 더 실생활에 맞춰진 진보라는 점이 다를 것 같다. 디자이너는 과학자가 되어야 한다는 명제를 생각해보면 뭐 비슷하게 맞아 들어가는 것도 같다. 요즘 유행하는 디발자, 같은 것들도 다 이런 맥락으로 읽으면 전혀 다른 관점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은 느낌적 느낌.
사실 정확하게 이해한 것인지에 대한 확신은 없다. 그냥 이런 느낌이었다. 더 나아져야 한다. 디자인은 그런 것이다.
책을 조목조목 반박한다거나, 오 나 이해했는데, 이거 대박! 이런 반응을 내놓기에 이 책에 대한 이해도가 나는 너무도 낮다. 그래서 그냥 책을 읽고 떠오른 내 나름의 디자인에 대한 생각을 정리하는 것이 가장 합당할 것이라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다. 정말로, 열심히 읽었는데 책에서 인상 깊게 남은 구절 같은 것은 딱히 없어서…. 전반적인, 9가지 키워드로 읽은 디자인을 나는 3가지 정도로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디자인은 대상이 있다. 그리고 그것은 ‘매체(media)’ 가 된다. 디자이너의 의도는. 디자인을 통해 사용자에게 흐른다. 때문에 어쩌면 디자인의 본질은 그 ‘흐름’에 있는 것은 아닐까. 기술 발전의 끝은 기술이 아닌 것처럼, 디자인의 끝은 더 이상 ‘매체’ 가 아니게 되는 것은 아닐까. 심상 모형으로 치면, 모두가 동의하는 형태의 디자인을 ‘디자인’이라고 부르기는 어려울 수도 있겠다. 오히려 그것의 파격이 디자인이 될 수는 있어도. 예를 들어 우리 모두 그럴 것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의 경우를 들 수 있다. 침대라면 응당 그럴 것이라고 생각하는 ‘기표’ 들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본질은 ‘수면을 위한 도구’ 일뿐이고(기의?) 때문에 일상적인 형태의 침대 모양에 대해서 좋은 디자인이라고 말하지는 않는다. 이미 등호로 설명할 수 있는 관계에 대해서는 ‘디자인’의 대상이라고 볼 수 없는 것은 아닐까. 그런 생각도 들었다.
‘가’의 선언이 어느 정도 옳다고 생각한다면, 디자인은 또 ‘권력구조’의 하나이다. 디자인은 강력한 ‘매체’ 로 사용자를 강제한다. 만들어지 않은 방향으로 특정 디자인된 물건을 쓰는 것은 쉽지 않다. 또한, ‘가’의 마지막에 말한 것처럼, 이미 널리 퍼진 ‘디자인’으로 더 이상 디자인할 대상이 아닌 물건의 경우, 그러한 정도가 더 크다. 때문에 ‘좋은 디자인’에 대한 깃발 꼽기 싸움이 시작된다. 실제로 더 나은지의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 먼저 그 위치를 선점하게 되면 더 큰 권력을 지고 시장에서 싸울 수 있기 때문이다. (가끔 그게 특허나 실용신안 같은 것이 될 수도 있겠다) 결국 디자인도 대부분의 경우에는 목소리 큰 사람이 이길 수 있는 무대일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디자인’ 이 여태껏 기술/개발과 같은 비중으로 그 이름이 커져나가고 있는 것은 한 가지를 말한다. 그것이 세상을 더 나은 것으로 만들 가능성이 충분히 보이고 있다는 점. (세상이 아니라 회사나, 제품/서비스라도) ‘매체’로 ‘권력구조’의 역학관계 속에서 ‘디자인’은 혁신하고자 한다. ‘파격’. 기존의 권력구조에 물음을 던지는 것이 디자인이라는 말이다. 왜냐면 기존의 디자인 결과물은 ‘매체’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이데아에 도달하기 위해 더 좋은 사다리가 발견되면 얼마든지 갈아타야만 하는 것이다. 스큐어모픽이나 플랫 중 어느 것이 더 나은지에 대해서 고민한 결과를 우리는 만지고 있다. 그건 지금 시점에서 더 낫다는 말이다. 또 앞으로 관계는 바뀔 수도 있겠지.
(왜냐면 좋은 의 여부는 다분히 정치적인 것이라, 권력관계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니까) 중요한 건 변화한다는 것이다. 디자인은 ‘고정’을 원해서는 안 되지 않을까. 이데아가 도달할 수 없는 곳이라면, 그곳으로의 방향성과 속도를 유지하는 것이 ‘디자이너’의 역할이지 않을까.
초고: 2016.03.02
탈고: 2016.09.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