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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min Oct 05. 2017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by 리테쉬 바트라

가끔은 틀려도 좋을 텐데.

* 본 리뷰는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https://youtu.be/Cche-h83qNQ


몇 가지 동의하기 어려운 지점이 있었지만 중앙일보의 리뷰가 인상 깊었다. 특히, 이 대목.


영화 제작 과정에서 원작자 줄리언 반스는 리테쉬 바트라 감독에게 말했단다.
“감독으로서 충실하려면 책의 내용에 충실하지 않는 게 좋다”
 “내 기대를 배신하라”
바트라 감독은 그 말대로 했다.
원작과 상호 보완적이면서도 확실한 배신을 택했으니.

전체적인 이야기에 관해서는 책 리뷰를 먼저 썼었기에, 그 내용으로 갈음함.



시간


책에서 시간은 정적이다. 토니 웹스터의 기억에 의존한 서술들. 하지만 영화는 텍스트와는 다른 연출로 관객들을 현혹한다. <덩케르크>를 떠올리게 하였다. 혹은 <라쇼몽>을. 어떤 면에서는 <라쇼몽>의 변주라고 할지도 모르겠다. 몇 번의 반복적인 영상 클립들. 우리가 기억을 떠올릴 때 그렇게 하지 않았던가 하는 생각을 하게 해준다. 감독은 훌륭하게 소설에서 말하는 기억. 역사. 사실 들의 관계를 영상으로 표현해내었다.


토니가 애드리언 등과 함께 찍은 사진으로 엽서를 쓴 장면에서, 타자기로 편지를 쓰는 장면 까지를 끊어서 편집한 장면은 경탄을 자아내게 하였다. 가끔은 우리가 기억하고 싶은 순간 까지만 기억하지 않는가. 충분히 그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게 하였다. 영화를 먼저 보고 책을 나중에 봐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책보다는 더 그럴싸하다는 생각을 하게 하였다. 토니가 기억을 속이는 방식을 그대로 관객에게 전달한 셈. 


영화를 본 지 일주일쯤 지나서일까. 60년대를 그리는 영화의 장면과, 현재를 그리는 장면에서의 색감이 사뭇 달랐던 기억이 든다. 60년대는, 토니가 영화상 오리지널 설정으로 된 아마추어 사진사이자 - 라이카를 파는 사람이라는 설정처럼, 그런 느김의 색감을 보여주는 듯하였다. 아날로그. 동년배 친구들이 페이스북을 하고, 스마트폰이 널리 퍼진 세상이지만 홀로 유리된 생활을 하는 것 같은 토니. 그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은 어쩌면 60년대에서 멈추어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들게 하였다. 


시간이 흐르고, 사건이 해결되어 가며, 토니는 집을 방문하는 우편배달부에게 조금 더 친절해진다. 사진기 판매점 손님에게도 꽤나 불친절하게 대하던 모습이 영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과거의 기억을 접한 후의 그는 잠시나마 조금 더 '이 시대'를 살게 된 것 같은 느낌이었다. 딸과 있을 때에는 레즈비언 커플이라니 무슨 상관이냐느 투로 말했지만 아내에게는 레즈비언 커플이 아이를 가진다니 세상에! 하던 모습을 보여주던 토니는, 사라졌을까? 글쎄. 



사진기


토니가 사진을 찍는 설정은 내 조악한 기억을 뒤집어 보았을 때, 책에서는 없었던 것 같다. 어쨌든 기억이란 부정확하기 일쑤이긴 하지만, 그런 것을 전제로 이야기를 해보자. 왜 사진기인가. 처음 베로니카를 만나던 장면에서도 사진기가 등장한다. 베로니카는 토니에게 사진을 가르쳐주는 스승이다. 왜인지 모르게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 가 떠올랐다. 사진기사가 등장하는 그 뮤지컬. 두 주인공은 각자 사진을 찍고, 그림을 그려 서로에게 전달한다. 어쨌든 그 시간을 고정하여 남기고자 하는 의도가 아닐까. 지금 이 순간.


애드리언의 일기장은 또 어떤가. 영화에서는 (또 내 조악한 기억력에 의존해보자면) 책에서 내 머릿속을 복잡하게 만든 수식은 등장하지 않는다. 사진기와 같은 형태로, 당시의 기억을 외부에 저장하는 행위. 그러나 그 일기장은 끝내 전달되지 않는다. 토니가 찍은 무수한 사진들도 어느 다리 위에서 버려진다. 


사진도 일기도 남아있지 않고. 그 이후 교류가 끊겼기에, 베로니카와 에드리언에 대한 모든 것들은 토니의 기억 속으로 남아있다. 60년대. 베로니카가 아름다웠고, 사랑스러웠으며 미치도록 미웠던 그때. 애드리언이 부럽고, 자랑스러웠으며 마찬가지로 죽여버리고 싶을 정도로 저주했던 그때. 그렇게 기억이 사라지려고 할 때에 사라 포드 여사의 유언이 날아들어온다. 그녀는 왜, 일기장을 남기고 싶어 했을까.


어쨌든 친구들의 기억처럼, 그 당시의 애드리언은 행복했었다면 좋았겠단 생각이 들었다. 영화를 보면서 토니의 감정에 완전히 빠져들게 되었다. 조금은 과하다고 싶을 정도로 거리감이 생기게 하는 행동들이 빈번했지만, 영화 초반에 그가 읊조리는 것처럼, 어쨌든 평균 칙에서 그는 그다지 벗어난 사람은 아닐 수도 있다. 그러니, 그에게 일어난 일은 그 형태가 다를 뿐, 우리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지 않겠는가.  



손글씨와 타이핑


토니 웹스터는 고루한 사람이다. 여전히 편지를 쓰면 되지 하는 사람이고. 그건 60년대의 방식이다. 그는 그렇게 많이 성장하지 못한 사람일 수도 있겠다. 우리 모두와 마찬가지로. 처음에는 어쩌면, 손글씨로 사진 뒷면에 눌러쓴 행복하라는 메시지와, 타자기로 두드린 엄청난 저주의 말들 사이에서의 연관관계를 고민했었다. 손글씨의 진심과, 타자기의 진심은 얼마나 다른 것 일가. 말은 또 어떤가. 


손글씨와 타이핑이 생각났다. 손편지를 써 본 적이 있었다. 아니 쓰려고 노력했던 적이 있었다. 어쨌든 글쓰기의 수단이 바뀌면 여러모로 글 내용도 바뀌기 마련이다. 회사에서 쓰는 키보드와 맥북 키보드, 그리고 집의 키보드가 다르고 - 그 키보드로 쓸 때마다 쓰는 글의 방식과 분량, 내용이 미묘하게 차이가 난다는 것을 최근에 발견했었다. 그러니 손글씨에는 얼마나 더 많은 차이가 있을 것인가. 어쨌든 손글씨를 꾹꾹 눌러쓰려고 했던 그때에는 더 예쁜 글씨를 위해 미리 다른 종이에 연습을 했던 기억이 난다. 


눈물을 참으면서 펜으로 엽서에 몇 자를 적던 그때와, 분노에 차서 타자기를 두드리던 그때 모두가 실재했던 일이라고 생각해보면, 참 사람이란 여러 가지 마음을 가지고 있구나 라는 생각이 든다. 그 표현 도구와 방식을 통제하면 어쩌면 우리는 서로의 기억에만 의존하는 것보다는 더 나은 삶을 살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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