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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min Oct 08. 2017

순살치킨

양념과 후라이드는 탕평할 수 있지만, 순살만큼은 양보할 수 없다.

이딴 글을 쓰는 이유는 이전 글 참조. 


그렇다. 치킨에 대해서 써보고 싶어 졌다. 모두가 그렇듯 나는 치킨을 좋아한다. 지금은 아니지만 예전에는 불닭도 좋아했다. 모든 닭 요리를 좋아하진 않지만, 대체로 많은 종류의 치킨은 좋아한다.


그중에서도 나는 치킨은 '순살' 이어야 한다는 생각을 강하게 가지고 있다. 아니, 뭐 남들에게 강요하는 기준이라거나, '순살' 이 더 맛있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어떤 면에서는 순살 치킨을 만들기 위한 공정이 꽤나 이상한 과정이 될 수도 있으며, '다른 동물의 살'이라는 것은 원형 그대로 있을 때 그 본연의 맛을 드러내기 좋다고 생각하는 편이기도 하다. 큰 뼈에 한 덩이 붙어 있는 '만화 고기'가 보기에 제일 먹음직스러워 보이기도 하니까.


하지만 나는 도무지 순살 치킨 외에는 먹고 싶지가 않다. 크게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먹을 때 손에 무언가 묻는 것이 싫다. 특히, 갖은 양념이 첨가된 치킨을 즐기는 인간인지라, 그리고 수불석폰하는 인간인지라 - 손에 무언가 묻는다는 것은 크나큰 불편을 초래하는 일이다. 게다가 그렇게 살을 뜯어먹다 보면, 꼭 내 손이건 남의 손이건 옷에 한 두어 번은 스치는 식으로 양념이 나의 옷가지에 묻게 된다. 절망적이다. 세탁물이 늘었다. 물론 보통은 한 두어 번 입은 옷은 세탁기로 넣어버리는 성격이긴 하지만, 혹시라도 여기 묻은 얼룩이 지지 않는다면 어쩌지 하는 생각은 집으로 가는 길 내내 머리를 지배하곤 한다. 행여 그 얼룩이 남의 눈에 잘 띄는 곳에 있다고 하면 진짜 한 10초간 절망감을 느껴버리는 걸 어쩔 수가 없더라. 


둘째. 귀찮다. 아주. 그러니까 무언가를 먹는다는 과정이라 함은, 그 안의 즐거움이라 함은 기본적으로는 우리의 감각기관을 통한 즐거움이라고 생각하는 편이다. 눈코입 정도. 손으로 만지는 감촉이 먹을 때의 즐거움에 영향을 줄 것 같진 않다. 어쨌든, 그렇기에 입에 무언가를 넣기 위한 과정에 더 많은 '작업'을 요구하는 것은 비효율적이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니까 나는 고기를 구워 먹을 때에도, 그 집의 고기가 맛이 있느냐의 여부에 더해서 - 고기를 구워주는 집인가가 매우 중요하다. 스테이크는 참 맛있지만 그걸 썰기까지의 과정이 귀찮다는 감정을 버리기가 또 어렵다. 게다가! 순살이 아닌 치킨은 먹고 난 뼈다귀를 처리하기도 매우 곤란하다! 


그래서 나는 순살치킨을 좋아한다. 


여기서 '나'에 관해 좀 뽑아 보자면.


 1. 매우 귀차니즘에 심취한 사람이다.

     1.1 효율성이라는 말로 합리화를 시도했으나, 저것은 어쨌든 뭐든 덜 하겠다는 것 아닌가?

     1.2 만약 본인이 생각하는 더 중요한 일을 위해 에너지를 아끼겠다는 의도가 포함된 것일까?

 

2. 수불석폰하는 인간이다.

     2.1 연락 오는 곳도 잘 없는데 왜 그러는 것일까?

     2.2 심심한 것을 잘 못 견디는 사람?

     2.3 먹는다는 행위에 가치를 그다지 두지 않는 사람일까? 

 

3. 맛에 관하여 꽤나 둔감한 편이다.  

     3.1 미식하는 사람들(내가 보기에)이 주변에 있는 편이라 그렇지, 사실 혼자서 맛집을 찾아가진 않는다.

     3.2 어떤 음식이라도 오래 기다려서 먹어야 할 정도로 훌륭한 것은 없다는 친구의 주장에 동의하는 중.

     3.3 또한, 자극적인 음식 - 어린아이 입맛이라고 볼 수 있겠다. 


이 정도가 나올 것 같다.


다음 글에서는 1,2,3 중 하나를 조금 더 깊게 파보거나, '마블 영화'를 왜 좋아하는지를 써봐야겠다.


171008 자기분석.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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