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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min Oct 09. 2017

<남한산성> by 황동혁

무채색의 겨울에서 노란 민들레를 기다린다. 

뜬금없지만, <왕좌의 게임>의 원작 소설인 <얼음과 불의 노래>의 마지막 2권은 '겨울의 바람'과 '봄의 꿈'이다. <얼음과 불의 노래> 극 중의 세계관에서는 '여름'과 '겨울' 이 반복되는 것처럼 그려지는데, 종장이 '봄'의 꿈이라고 하는 건 참 뻔뻔하고 마음에 드는 워딩이란 생각이 들었다. 겨울을 이야기했으니, 겨울의 끝은 봄이어야겠지. 


영화 <남한산성>의 배경은 병자호란. 12월의 겨울이다. 영화는 당시의 조선 진영의 어려운 상황을 '추위'와 함께 묘사한다. 천혜의 요지인 '남한산성'에 물자는 부족하고, 추위에 병사들은 얼어간다. 가마니는 병사들의 추위를 덮어 주었다가 굶주리는 말의 먹이가 되고, 그 말이 죽으며 다시 병사들이 먹을 식량이 된다. 


김상헌(김윤석 분)은, 조선을 생각하는 위인이다. 얼은 강을 건너게 해주는 길잡이를 걱정하지만, 그가 조선에 해가 될까 염려돼 죽여버린다. 그의 손녀 나루를 보살피기 된 심정은 어땠을까. 나루가 얼음이 녹으면 꺽지를 잡아준다고 한 것을 들으며 무슨 감정이 들었을까. 그때, 김상헌은 하얀 옷을 입고 있었다. 


김상헌과 최명길(이병헌 분)의 옷은 계속 대비된다. 흑과 백. 백과 흑. 둘은 글을 쓴다. 한 명은 근왕병을 부르려고 하는 글이고, 하나는 청에 화친을 제안하는 글이다. 글은, 흰 닥종이에 검은 먹으로 쓰인다. 눈으로 덮인 남한산성에 검은 어둠이 내린다. 두 문서는 모두 목적지에 다 달았다. 하나는 무시당했고, 하나는 - 비석이 되었다.


영화의 막바지. 청의 포격이 내리치는 남한산성에서 김상헌은 나루를 지키기 위해 끌어 앉는다. 최명길은 목숨을 바쳐서 말을 달린다. 서날쇠(고수 분)는 낫에 의지한 채로 빙벽을 오른다. 모두가 생을 위해 노력하지만, 그 끝은 그다지 희망차지는 않다. 


정명수(조우진 분)는, 김류(송영찬 분) 에게 나를 조선인으로 부르지 말라고 하며, 조선에서 노비는 사람이 아니다고 말한다. 서날쇠는 높은 사람의 말은 애초에 믿지 않았다는 투로 말한다. 그러나 그는 김상헌을 믿었었다. 그에게 조총을 손볼 수 있게 해달라 하였었고, 그를 믿고 친서를 전달하기 위해 목숨을 걸었다. 과연, 김상헌은 최선을 다했다. 그의 기준에서. 돼지기름을 구해다가 칠복(이다윗 분) 에게 전달한다. 그에겐, 그것이 최선이다. 칠복은 그 기름을 동료들에게 나눠준다. 살기 위해 청병을 찌른 칠복은, 그러나 죽고 만다.


하얀 바탕 위에 또 쓰이는 것이 있다. 글이 아닌 죽음들. 여러 죽음들이 나온다. 고라니는 죽은 후 한참 뒤, 조선 군사들의 죽음과 같이 다시 나온다. 눈을 깜박인다. 죽음에는 빨간색에 따른다. 얼어붙은 강 위에 쓰러진 길잡이, 자결한 김상헌. 또 붉은 것이 있다면 인조(박해일 분)의 곤룡포 정도일까.


전쟁이 끝나고. 인조는 궁궐에 간다. 서날쇠는 나루를 거둬 드려 함께 산다. 나루는 동네 친구들과 함께 연을 날리러 간다. 봄이 왔다. 치열한 겨울의 끝은 봄이었다. 이런 이야기를 영화는 무심하게 툭툭. 불필요한 내용을 과감히 자르고, 필요한 장면에서는 충분히 무게를 잡아가며 보여준다. 


어쨌든 얼음이 녹아야 민들레가 피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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