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 뒤의 배우에 관하여
https://www.youtube.com/watch?v=iIluBvQ77Bk
2008년의 기억이 난다. <배트맨 비긴즈>에 감명을 받았던 나. <스파이더맨>의 연이은 흥행에 이어, 새로운 '배트맨' 트릴로지의 2편. 서울에 홀로 살이를 한 지 3년 차에, 생에 첫 이별을 했고, 또 생에 첫 입대를 앞둔 청년은 <다크 나이트>의 개봉이 입대일임을 알고 절망했었다. 그런데 웬걸, 입대 바로 전날에 <다크 나이트> 가 개봉하게 되었다! 열악한 지방 환경에서였지만, 당연히 <다크 나이트>를 관람하였었고, 압도당하여 나왔던 기억이 난다.
현대인을 위한 신화라고 할 수 있는 미국의 코믹스에서 비롯된 '히어로' 들의 이야기. 그러나 영화를 지배한 것은 '배트맨' 이 아니었다. '조커' '배트맨'의 숙적인 그의 연기. 만화 같은 이야기 속에서, 가장 현실적이지 않은 행동을 하는 캐릭터였지만, 놀란의 배트맨 유니버스에서 가장 리얼리티가 높았다고 느낀 캐릭터는 바로 이 조커였다.
그리고 '히스 레저'의 죽음을 알게 되었다. 애도했지만, 그의 필모를 깊이 이해하고 있지는 않았다. <기사 윌리엄>을 재밌고 보았고, <브로큰백 마운틴>이 좋은 영화라는 이야기 정도를 들었을 뿐이다. 그리고 2008년에 '조커'라는 캐릭터에 감명을 깊게 받았던 나는, 2017년에 '히스 레저'를 만나게 되었다.
<아이 엠 히스 레저>는 '히스 레저' 가 평소에 찍어 둔 영상들 (주로 셀프 카메라)과 고인의 지인들의 인터뷰로 구성된 다큐멘터리다. '히스 레저'라는 인물의 발자취를 따라가면서 그의 생각과 행동에 대해서 생각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영화이다. 나는 이 영화를 통해 그가 얼마나 빨리 세상을 떠났다는 것인지 실감하게 되었고, 그 나이에 엄청난 연기에 더하여 예술적인 영상을 만들어낼 줄 아는 사람이며, 그러기 위해 그가 노력했을 수많은 시간을 엿볼 수 있었다. 영화 내내 나오는 수많은 그가 찍은 영상들. 가끔은 아무렇게나 찍은 것 같단 생각이 들다가, 그가 '연출' 한 영상물이 나올 때 그가 평소에 관심을 가지던 것들, 찍어 가는 것들이 모여 저 모습이 나오는구나 감탄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짧은 나이, 시간 동안에 그런 성취를 이루는 동안 그에게 어떤 생각과 감정들이 있었을지 상상하게 되었다. 영화를 통해 짐작해본 그는, 어쩌면 내면으로는 꽤나 예민한 사람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주변 사람들을 살뜰히 챙기고, 새벽녘까지 일에 몰두하는 모습들, 생각이 많아서 잠이 들지 못한다고 하는 부분들. 결국은 그를 죽음으로 이르게 한 약에는 수면제도 포함되어 있었다.
'조커'라는 영화 속의 캐릭터 뒤에는 '히스 레저' 가 있었다. 그의 삶. 내가 그의 삶을 파파라치처럼 좇을 필요는 없었겠지. 하지만 그 안에 어떤 사람이 있는지에 대해서, 조금은 더 궁금해해도 되었을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짙은 분장과 과장된 연기 속에, 그것을 만들어내기 위해 어떤 사람이 어떤 노력을 했는지를 알아주고 싶어 하지 않았을까, 생각을 했다. 대중은. 어쩌면 그는 대중에게 그런 기대를 하지 않았겠지만, 나는. 나는 그랬으면 좋았을 것 같단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짧은 삶 속에서 자신의 목표를 따라 날아간 그는 어쩌면 '개츠비'를 닮았던 것 같기도 하다. 물론 그의 삶의 방식은 '개츠비'의 것과 많이 다르지만, <위대한 개츠비> 속에서 닉 캐러웨이가 말했듯 가장 낙관적인 사람으로 그를 보게 되었다.
그를 다시 보고 싶어 졌다. 은막 뒤의 그를 조금 알고 나니, 은막 속의 그를 다시, 보고 싶어 졌다.
그럴 수 없어서 슬픈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