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를 위한 변호인인가 + 밀정을 보고 나서
영화의 시작은 등기 전문에서 세무 전문으로, ‘잘 나가는 변호사’가 되어가는 송우석 변호사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힘든 시절을 보내고, 꿈을 이루어낸 고졸 변호사. 뒤에서 누군가는 수군거리지만(돈만 바라는 고졸 변호사) 가족을 위하여 그리고 과거의 자신과의 약속을 위하여 굴하지 않고 송우석 변호사(이하 송변)는 성장해 나간다. 자수성가한 사람으로, 그리고 학벌 콤플렉스가 있는 사람으로 그려진다. 고등학교 동창회 씬에서 가장 부각되는 점이다. 본인은 노력하니, 바뀌었다. 본인이 꿈꾸던 아파트에 이사할 수 있었고, 가족들에게, 딸과 아들에게 자랑스러운 아버지가 될 수 있었다.
송변에게 세상은, 데모로는 바꿀 수 없는 만만하지 않은, 물렁하지 않은 세상이다. 여기서 우리가 익히, 그리고 이미 알아버린 고 노무현 대통령의 이미지를 빼보자. 조금 극화되긴 하였어도 많은 중산층 혹은 그 이상의 자수성가한 사람들의 마인드라 볼 수 있다. 특히 386 세대와 그 전후 세대에서 주로 볼 수 있는 모습이다. 현재는 2,30대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 모습 중 하나이기도 하다. 내가 노력하면 적어도 내 주위는 바꿀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이고, 실제로도 그렇게 해 왔다. 개인으로 위대한, 아버지이자 가장이다.
선배 변호사가, 국보법 변호인으로 나서 달라고 했을 때, 나는 속물 세법 변호사다,라고 말하는 장면은 인상 깊었다. 기자인 동창이 뭐라고 하던, 본인의 세계를 가지고 있는 시민이고 가장이라는 점을 보여 주었다. 자식이 태어난 이후 포기했던 사법고시를 성공을 위하여 달려온 길에서 적어도 법에 어긋나지 않은 선에서 성장해온 자랑스러운 시민이라고 믿는 사람이다. 등기 관련으로 본인들의 먹거리가 위협받은 사람들이 자신의 변호사 사무실에서 시위를 할 때, 송변은 나는 법대로 하였다고 한다. 물러설 줄을 모르는 사람이다. 본인이 믿는 것에 대해서는, 본인이 미장을 한 아파트의 아스팔트에 새겨둔 말처럼 포기하지 않는 사람이다.
그런 그가 사실, 급작스럽게 ‘진우’의 변호를 맡게 되는 것은 겉보기에는 개연성이 부족해 보였다. 그러나, 사실 본인이 스스로 말하던 속물 변호사의 가치관과 '진우'의 변호인으로의 가치관은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세금을 과징하는 경우- 법대로 처리하지 않는 경우에 그는 그것을 줄여주고 돈을 받는 사람이었다. 말 그대로 법대로 하는 것을 즐겨하는 사람이었다. 남들이 뭐라고 하건, 본인은 사회의 룰에 충실하였다. 그에게 그런 세상이 과거와 달리 나름대로 마음에 들었다. (다만, 올림픽 국가대표 멋있지 않습니까 하는 씬에서, 잠깐 고민을 나도 했다는 말을 돌려 전하긴 한다.)
때문에 그런 그가, 구치소에서 ‘진우’의 피멍 든 모습을 보고 나서, 나설 때는 큰 대의를 위해서 나선 것은 아니라고 본다. ‘법대로 하지 않았으니까’ 여기까지 그는 여전히 본인이 말하고 정의한 속물 변호사의 범주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그것을 벗어낸 것은 법대로 되지 않은 것을 발견할 때부터였다. 법정에서, 그에게는 너무나 당연한 사실이 먹히지 않을 때 그는 분노했고, 재판장의 의사진행을 방해하면서 까지도 본인이 믿는 정의를 관철하기 위해 노력한다. 상식에 호소하는 그의 모습은 사실, 법정 드라마에서 기대하는 변호인의 모습이라기보다는 지금 현재, 대자보를 쓰고 있는 대학생 및 기타 시민의 모습을 닮았다.
(물론 첫 공판에서 E.H.Carr 가 영국인이며~ 하는 부분은 법정 드라마 같았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 역시 고 노무현 대통령의 일화에서 빗댄 장면이었다. 그곳에서 송변이 말하길, 법 대로 되지 않을 때, 데모하러 나온 사람 앞에 법조인이 앞장서는 게 맞지 않겠냐고 말한다. 처음 국보법 사건을 맡았을 때의 ‘공격력’ 보다는 도가 통한 도사 같은 모습으로 법정에 서고, 부산 지역 변호사들의 대다수가 그를 변호하기 위해 나섰다는 것을 보여주며 영화는 막을 내린다.
전반적으로 이야기를 끌어 가는 것은 — 대다수의 송강호 주연 영화가 그렇듯 송강호 씨의 연기력이다. 빼어난 조연들의 연기에도 불구하고, 송강호 씨만 부각된다. 영화 자체가 그에게 초점이 맞춰져 있는 것도 있지만- 본인의 연기력 자체가 설국열차 이후로도 계속 더 성장하고 캐릭터에 얽매이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어 좋았다. 더 나은 배우가 될 수 도 있다는 것은, 관람객의 입장에서는 즐거운 일이니까.
사실 영화는 실화에 바탕했다고 말해도 무방할 정도의 스토리 전개이지만,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방식과 송변의 방식은, 그 성장은 차이가 있어 보였다. 사실, 노무현 대통령의 자서전도 좀 읽어 보아야겠다고 생각한 점이, 실제로 학벌의 문제점을 인식하고 그것을 벗어나 성공하기 위해 노력했던 노무현이라는 사람이, 판사까지 -어느 정도- 역임한 사람이 이 정도로 ‘순진’할 수 있을까 궁금하다. 영화 속의 송변은 순진하고 또 순수하다. 순수하게 법을 믿다가 배신당했고 순진하게 사건을 대하여 나간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일생에 그러한 모습이 보이지 않는 것은 아니나, 영화 속 송변의 모습은 그 보다는 전현적인 자수성가한 사람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질문을 던져보자. 그렇다면 영화의 제목은 변호인이다. 그렇다면 누구를 위한 변호인인가? 최소한 진우만큼은 무죄라고 믿는 그가, 영화에서는 변호가 아닌 등기와 세무 업무를 하던 그가 변호인으로 나섰을 때, 누구를 위해 나섰는가. 마지막에 나오는 말을 다시 쓰면 이렇다. 법이 지켜주지 못할 때, 법조인이 더욱더 앞으로 나서야 한다. 정확하게 ‘잘못된 법’이라고 정정하면 어떨까. 영화는 이 땅에 상식을 믿는 사람들에게 상식을 변호하라고 외치는 것은 아닐까.
2016년 개봉작 <밀정>에서 송강호가 연기한 '이정출'과 송변이 겹쳐 보이는 것은 왜일까.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선택했던 길. 그리고 모진 고문을 당한 지인을 보며 결심을 하는 모습. 그리고 법정에서의 열연. 접점이 없어 보이지만, 한 사람의 '변화'를 담아낸 송강호라는 배우의 연기가 두 영화를 이어서 생각하게 만들어 준다.
그 '변화'의 시작은 <밀정>에서 장채산(이병현)의 말처럼, '마땅히 해야 할 일'에 대한 자각이다. 정확히는 넘어서지 말아야 할 어떤 선을 넘은 대상에 대한 반발이랄까. 그리고 그 기저에는 누구보다 충실히 소시민적인 삶을 영위하는 개인이 있었다.
'개인'이 중요하다. 그래서. 물론, 이데올로기나 물질의 변화로 인한 자연스러운 사회 변화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더 나은 '인간'을 위한 사회는 언제나 개인의 내적 동기들의 집합이 만들어낸 흐름이 끌어갔었다. 우리도 사람답게 살고 싶다, 흑인도 사람이다, 혹은 여자도 당연히 정치 참여를 할 수 있다 등등. 어차피 우리가 신으로 붙어 부여받은 소명으로 이 땅위를 걷고 있는 것이 아니라면, 우리가 믿는 가치는 개개인이 모여 집단적으로 '상상'한 이미지이니까.
최근에 <밀정>에 관한 다룬 엔터미디어의 황진미 칼럼니스트의 리뷰를 보았다. '이정출'이라는 사람이 어떻게 '의열단원'으로 활동하기로 결심하였는가. 이 글에서 '김장옥의 가벼운 발가락'과 '너무나 작은 연계순의 시신'을 통해 실존의 가벼움을 끌어낸 것이 인상 깊었다. 삶에서 어쩌면 민족자결주의니, 동아시아 공영권 같은 큰 이야기는 중요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우리 삶은 가벼우니까. 그래서 의미가 없는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자신이 믿고 원하는 바를 행하는 것은, 그냥 그게 더 나은 길이니까 선택하는 것이 아닐까.
때문에 영화 처음부터 계속해서 '가짜'라고 매도되는 '미륵보살 반가 사유상' 이 영화의 마지막에는 제 가치를 인정받고 '팔릴 수 있게' 된다고 생각했다. 반대로 자신의 집에 전시하던 일본의 훈장은 가치 없는 것으로 전락하고. '가치'란 우리가 그것이 중요하다고 믿는 것에 부여되는 것이니까. 삶, 인간.... 실존의 가벼움 속에서 '영감은 독립이 될 것 같소?'라고 웃으며 말하면서도, 자신의 시간을 타인에게 맡기는 행위를 할 수 있는 것이 결국은 사람이니까.
사족 1. 시계 건네는 것은 윤봉길 의사와 김구 선생의 일화에서 따온 것 같다.
사족 2. 두 영화 모두 절대적으로 '송강호' 에게 의지하는 부분이 많은 것은 사실... 무서운 배우.
초고: 2013. 12. 27
탈고: 2016. 09. 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