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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min Nov 02. 2017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by 벤 스틸러

경험. 사랑.

원제는 <The secret life of Walter Mitty>이다. 단편소설. 영화는 소설에서 '공상'이라는 소재만 가져온 듯하다. 공상을 하는 자가 '월터 미티'라고 불리는 문화가 있을 정도로 미국에선 유명한 소설이라고 한다. 나는 딱히 재미있게 읽진 못했다. 하지만 영화는 달랐다.


아마, 처음 본 것은 트위터를 통한 시사회에서였을 것이다. 인상 깊은 영화였다. 특히, 이것저것 상상의 나래를 펼치기를 좋아하는 나에게는 정말 - 감동적인 영화였다. <Space Oditty>가 조롱의 도구에서 격려의 도구로 바뀌는 장면부터는 감탄을 금치 못하면서 봤던 기억이 난다.




여기서부터는 스포일러다.


데이팅 사이트에 벤의 정보가 하나 둘 채워질수록 좋아요(윙크)가 늘어나는 내용도 흥미롭게 봤었다. 사람은 경험의 덩어리이다. 그러니 그 덩어리들이 어떤 것이냐에 따라서 사람이 규정되는 것이겠지. 물론, 그게 아니더라도 사이트 관리자가 처음 말했던 것처럼 월터가 그 덩어리들이 건너뛴(Skipped)것은 옳지 못한 행동이다. 어느 이성을 꼬시려고 하건 말이다. 


자신의 이상형 앞에서 공상을 하는 월터 미티. 그는 그가 될 수 없는 무언가를 꿈꾼다. 초능력자 같은 능력으로 그녀의 반려견을 구하거나. 혹은 방금 탐험을 마치고 온 등반가의 모습 같은 것들. 하지만 그녀의 마음을 움직인 것은 그녀의 아들에게 스케이트 보드를 가르쳐준 것, 그리고 롱보드를 선물한 것이 아니었을까 생각해본다. 


영화에 등장하는 전설적인 사진가. 그는 매우 프레임 속에 포착하기 어려운 스노 레오파드를 목격하고는, 때로는 방해하고 싶지 않아서 사진에 담지 않는다고 말한다. 폭발하는 화산을 찍기 위해 복엽기 위에 서서 날아가며 셔터를 누르던 모습과는 대조적이란 생각을 처음엔 했었다. 하지만 두 번째 보면서 약간은 이해가 되긴 했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아름다운 것들이 있고, 그게 정말 아름다울 때에는 감히 셔터를 누리지 못하리라. 가끔 그런 사람들도 있었던 것 같다. 내게도. 빛이 나다 못해서, 다가가기에는 어려운 사람들이 있다. 뭐, 예쁘거나 잘생긴 걸로 그런 사람도 있지만 행동거지로 그러는 사람들이 꽤 있었던 것 같다. 


각설. 영화의 마지막에 월터의 모습이 담긴 라이프지의 표지를 보고 있노라니 그런 생각이 들었다. 있는 그대로. 왜 우리는 다른 이의 꿈, 공상을 하는 걸까. 지금에 만족하지 못해서? 지금에 만족하지 못하는 것은 지금의 상황에 만족하지 못하는 것, 그리고 거기에 있는 '나' 에게 만족하지 못하는 것이다. 월터의 상상에서 보통은 그 두 가지 중에서 상황이 아닌 '나'를 바꾸는 모습이 많이 나온다. 


'나'는 무엇으로 바뀌는가. 다시 소셜 데이팅 사이트의 예로. 나는 내 경험의 총체이다. 월터는 작중에서 어린 나이에 생계를 꾸리기 위해서 스케이트 보드를 그만둔 사람이다. 스케이트 보드를 타던 당시에 그는 평범한 아이가 아니었다. 모히칸 머리를 한 아이. 특별한 아이였다. 모든 아이가 그렇듯. 하지만 그는 너무 빨리 남들이 필요로 하는 자신으로 살아야만 했다. 그런 일반적인 경험들은 결국 그를 일반적인 행동으로 묶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가 아이슬란드에서 다시 스케이트보드를 타기 시작했을 때. 아니 사실은 그린란드에서 헬기를 타기 위해 뛰어오르고, 배에 오르기 위해 바다로 뛰어내릴 때에 그는 새로운 경험으로 자신을 채우게 된다. 그래서 비로소 자신을 변화시켰고 - 사실은 자신을 회복할 수 있었다.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목표를 얻고자 떠나는 여정은 영웅 서사와 닮은 바가 조금은 있다. 그것이 사실은 자신의 내면에 (이 경우에는 자신의 집에) 있었다는 방식도 새로울 것은 없다. 


그러나 그 '소중한 물건'을 월터는 보지도 않고 회사에 제출한다. 그것을 담보로 어떤 거래도 하지 않는다. 다만, 이력서를 쓴다. 그 물건을 찾기 위해 겪었던 일들을 적어 내려가기 시작한다. 결핍을 채우러 떠난 여행이었지만, 진정한 결핍이 무엇인지 발견한 그는 자신을 되찾기 위한 여정을 마무리한 것 같다. 그로써 아마 일도 사랑도 자신이 원하는 결과를 얻게 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가끔은 이런 - 그렇게 행복하게 살았습니다가 나오지 않지만, 그런 상상을 하게 만드는 영화가 삶에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정체성에. 삶에 지친 현대인들에게 유쾌한 동화 같은 역할을 하는 좋은 영화였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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