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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min Aug 25. 2018

<급진주의자를 위한 규칙>
by 사울 알린스키

6.13 지방선거를 맞아 마무리한, 그러나 공개하지 못했던 글

6.13 지방선거가 코앞으로 다가왔다. 그래서 오래 묵힌 글을 가져와서 수정하기로 마음 먹었다. (2018.06) 

그리고 쓰면서 꼬인 생각을 정리하지 못하여, 발행하지 못한 채로 두달이 흘렀다. (2018.08)



아래 이미지는 문화일보와 서울대 폴랩이 공동으로 만든 나에게 딱 맞는 후보 찾기 이다. 나의 경우에는 평균에서 많이 벗어난 축에 속한다. 그러나, 투표를 그렇게 했느냐 하면 그렇진 않다. 17대 대선 이후로는, 항상 이길 수 있는 가능성을 따져 왔다. 이런 유권자를 셈법에 넣어 정치를 하는 것은 얼마나 귀찮은 일일까. 그런 마음으로 예전에 써 둔 사울 알린스키의 <급진주의자를 위한 규칙> 의 독후감을 고쳐 보았다. 

http://2018vote.munhwa.com/index2.php?region=%EC%84%9C%EC%9A%B8&survey=2185496832&fb_action_ids=2483814928310571&fb_action_types=og.shares


 정치란 무엇인가. 2016년 겨울은 나에게 정치를 무엇인지에 대해서 깊게 고민하는 시간이었다. 변화를 위해 정치는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 것인가. 변화를 위해서 나는 어떤 정치를 해야 될 것인가. 


 또 나는 가끔, 내가 진보적인가 보수적인가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한다. 주로 논쟁적인 어떤 사안에 대해서 평소의 정치적 스탠스와 다른 의견을 가지게 될 때 난 이게 무엇인지에 대해서 고민하게 된다. 나의 평소에 생활 모습을 보았을 때 나는 보수적인 정치적 스텐스를 가지고 확률이 높은 사람이다. 위험을 회피하는 성향, 변화를 싫어하는 성향 등은 보수의 더 가까운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진보적인 정치성향을 지지한다. 더 나은 삶을 위해서는 브레이크보다는 엑셀을 더 밟아야 한다고 믿는다. 이런 내 생활 습성에서의 보수성과, 더 나은 미래에 대한 믿음으로의 진보적 스텐스는 항상 해결되지 않은 채로 남아 있었다. 다행히  <급진주의자를 위한 규칙>(이하 책)에서는 다원적인 가치를 인정하는 사회에서 개인은 그저 특정 상황에서의 스텐스만 의미있다는 뉘앙스로 논지를 전개한다. 맞는 말이다. 누구에게나 처한 상황이 있고, 거기에 따른 해석은 언제나 '원칙'을 따를 수는 없다. 선 위치가 다르면 풍경이 다른 법이다. 때문에 책에 대한 신뢰도가 올라갔으며, 그렇다면 급진주의자에게는 왜 규칙이 필요한지 궁금하게 되었다. 


그래서 해본 정치 좌표 테스트

https://www.idrlabs.com/kr/political-coordinates/1/38.9/1/50/result.php


좌파-자유주의에 대한 해설


 미국 드라마 <뉴스룸> 시즌 1 에피소드 1에는 매우 유명한 장면이 나온다. '왜 미국은 위대한 나라인가' 거기서 주인공 윌 맥어보이는 미국 민주당을 향해서 사람들이 '왜 너희를 싫어할 줄 알아? 너네가 지기 때문이야!'라고 말한다. 민주당 지지자인 작가가 공화당원 캐릭터를 내세워하는 말이기에 더 재밌었다. 한편으로는 통렬한 지적이다. 왜 우리는 지는가? 내게는 바꾸고 싶은 사회의 모습 있는데 왜 우리는 그곳으로 가지 못하는 것일까. 내가 똑똑하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 사람들조차 실패하는 모습을 뉴스를 통해서 많이 볼 수 있었다. 단순히 지적 수준이 부족해서는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급진주의자를 위한 규칙>(이하 책)은 이렇게 변화를 꽤 하는 이들이 '성공'하기 위해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에 대한 책이다. 2016년 촛불이 있기 전까지 진보 세력, 혹은 당시 야당에게 마키아벨리적 의식화가 필요하다는 의견과 기본적인 궤를 같이 한다. 하지만 책은 그 보다는 개인이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 '지침'에 더 가까운 내용들로 채워져 있다. 


 특히, 변화를 추구하는 혁신가들 내부에 발생할 수밖에 없는 모순들은 안고 가라는 지점에서 조언의 현실적인 측면이 극대화된다. 좋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운동하는 사람은 행복해지기 어렵다는 사실조차도 인정해버리는 그 문장들을 보면서 이 지침에 대한 신뢰도는 높아질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변화는 어떻게 끌어내야 하는가? 뜬금없지만, 회사 이야기를 해보자. 회사에서 우리는 혁신적인 어떤 아이디어를 들고 나온다. 돈을 벌기 위해서는 앞서 나가야 하니까. 하지만 우리는 반대세력에 부딪칠 수밖에 없다. 특히 그 혁신이 기존에 업무 방식을 바꿔야 하는 것이라면 더욱 그러하다. 사람들 사용자의 행동을 바꾸기 위한 UX 디자이너도 마찬가지이다. 아주 새로운 형태의 어떤 좋은 서비스를 발견하도록 하더라도 그것은 사람들의 기존 행동양식에서 많이 벗어나는 것이면 좋은 성과를 얻기가 힘들다. 사람들의 변화는 느리다. 


 하지만 우리는 그 변화에 대해서 그저 좌절하고 새로운 것을 만들지 말라는 결론을 내리지 않는다. 당연하지 않은가. 우리는 변화를 추구한다. 회사가 잘 되어야 내가 월급을 잘 받을 수 있으니까. 때문에 우리는 변화를 유도하는 방식을 바꿀 수밖에 없다. 신제품을 출시하는 전략을 단계적으로 세울 것이고, 회사 내부에서는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지키기 위한 세력을 만들 것이다. 당장에 매출을 내지 못하고 사용자들에게 외면받는 서비스의 가치를 수치화하고 기록하고, 그것으로 설득하여 동지를 만들고, 그 동지들이 회사에서 세력을 얻어가면서 외부 세계에 우리의 혁신이 인정받는 순간에 변화의 주도자는 인정을 받고, 보상을 받게 된다. 


 사회적인 변화도 마찬가지이다. 특히 사회의 변화에 있어서 도덕적인 어떤 가치를 마냥 추구하는 것은 회사에서 좋은 제품을 만들었는데, 왜 팔리지 않지라고 말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사울 알린스키는 이 부분을 지적하고 있다. 


 변화를 도모하는 이는 변화에 결과 다른 '대안'에 대해 명확한 비전을 제시해야 된다. 혁명은 그런 비전을 제시하기 어려울 때가 훨씬 많다. 혁명이라 하면 기존의 체제를 거의 완벽하게 부정함으로써 새로운 체제를 다시 찾는 것을 의미한다. 그 새로운 체제를, 특히 현대와 같은 고도화된 사회를 인간이 제로 베이스로 '디자인'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매우 회의적이다. 

 

 어떤 사회라도 문제를 내재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 모습은 또한 기존에 발생했던 수많은 문제들을 디버깅한 결과로 나타나는 버전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효율적인 측면 혹은 우리가 결국 최선으로 가고자 하는 방향으로 도달하는 시간 차원에서, 어쩌면 체제 안에서의 변화를 추구하는 것이 혁명 보다도 빠른 길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민주주의적 시스템을 갖춘 사회에서 사회운동에 많은 방향은 어떤 힘을 위하여 어떤 변화를 만들어내는지에 대한 청사진을 어떻게 제시하는지에 달려있다. 


 힘이란 현대사회에서는 크게 사람의 수 혹은 돈의 수로 나눠 볼 수 있다. 그러나 자본주의 시장이 언제나 그렇듯 자본은 집중하는 경향이 있고,  그 집중된 부는 특정 소수의 개인의 것이 된다. 그리고 다수는 그 개인에게 충성하는 경우가 많다. 자본은 모이고, 사람은 흩어진다. 그리고 그 자본을 가진 소수는 기존의 변화를 달가워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그래서 돈을 가지고 변화를 이룩하는 것은 쉽지 않다. 그렇다면 변화를 이룩하기 위해서는 사람을 어떻게 모을까를 고민해야 한다. 단순하게 얘기해서 우리가 어떻게 선거에서 이기는지에 대해서 이야기해야 되는 것이다. 한 편으로는 어떻게 여론을 형성할 것인지에 대한 말도 된다. 그 말의 핵심은 변화의 가치에 동감하는 사람을 더 많이 만들어 내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변화의 가치를 대다수의 평범한 사람들의 가치체계 안에서 이해될 수 있는 형태로 바꿔 줘야 한다. 대다수의 변화를 추구하는 사람들의 가치체계는 평범한 사람들과는 그 궤를 달리한다. 그것이 정당한가, 올바른가와는 별개로.


예를들어 반려동물의 권리에 대해서 생각을 해보자. 반려동물을 키우지 않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비교적 다수이다. 그들에게 반려동물에 대한 가치는 상대적으로 적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을 '생명의 가치'로 바꿔 이야기한다면 어떨까. 조금 다른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초고: 2018.01.27

탈고: 2018.05.31

다시수정: 2018.0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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