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사지원서에 대한 소고
입사지원서에 취미와 특기에 무엇을 써야 하느냐에 대한 옛날에 쓴 답변.
확실한 건 포토샵, 영상편집이 특기에 적혀 있다면 곤란할 것이다로 요약할 수 있는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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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력서의 일반적인 형태는 고정되어 있다(fixed form). 그중 답하기 의외로 어려운 항목이 특기와 취미이다. 입사 지원서를 50개 가까이 작성했다. 하지만 그 항목의 존재의 이유를 이해할 수 없었다. 어떤 측면의 특기를 원하는가? 빠르게 책을 읽는 것이 특기일까? 컴퓨터를 조금 한다. 하지만 더 잘하는 사람들은 더 많다. 작은 칸에 두 세 글자로 한 개인의 유일함(Unique)를 찾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럼 특기란은 왜 존재하는가? 정말 특기는 누구와 비교해 얼마나 더 잘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일까. 그게 아니라면 왜 묻는 것인가. 1등을 원하는 사회에서 특기라고 내세울 법한 것을, 나는 하나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래서 무섭다. 특기라니. 남들과 똑같은 삶, 재미없는 삶을 산 것처럼 느껴졌다. 내가 잘못된 삶을 살았다고 느껴졌다.
취미도 이상하다. 난 다양한 책을 사고, 읽는 것을 즐긴다. 한국 드라마를 보며 미/영국 드라마, 가끔은 일본 드라마도 보는 것을 즐긴다. 만화책, 애니메이션도 보는 편이고 노래는- 거의 항상 듣는다. 잘하지는 못해도 노래방도 즐긴다. 게임도 많이 하지 않더라도 즐긴다. 그런데 그중 무엇이 나의 취미인가? 그중에 꼭 하나 진짜 이건 내 인생의 취미라고 할 게 있는가. 유일한 것(Only one)이 필요한가? 나이 들면 골프를 좋아할 수도 있고 테니스일 수도 있고. 조깅을 좋아하는 날이 올 수도 있고. 취미는 계기만 있으면 바뀔 수도 있는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그리고 좋아할 수도 있는 다수의 행위에 중 단 하나를 나의 취미다!라고 말하는 것은 재미없다. 아니면 매니악한 수준으로 즐겨야만 취미라고 할 수 있는 것인가.
그리고 과연 특기와 취미는 이 사람은 어떤 사람인지 조금이라도 더 알기 위한 것일까. 기업의 문화, 팀의 문화와 새로운 신입사원의 조화는 중요한 것이다. 요즘 유행하는 '케미'라는 말, 하지만 그게 특기와 취미로 규정될 수 있는 것일까. 우선 거기에 의문이 든다. '탑(Top Line)에 서면 정신병자고, A형이면 소심하고 남자는 이래야 하고 여자는 저래야 한다'의 연장선으로 보인다. 그래서 사람을 규정하는 질문은 무섭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서 이야깃거리가 떨어지면 취미나 특기를 묻기도 한다. 혈액형을 묻고, 거기에 맞추어 사람을 판단한다. '범주화'라는 것이 세계 인식의 기본적이고 편한 방법이라는 것에 동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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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사람은 단면체가 아니다. 정치적 성향이나 성적 취향이나, 종교관. 가끔은 지역이나 스포츠 팀의 팬이라는 이유로 - 우리는 쉽게 범주화를 한다. 그것은 사회활동을 위한 일종의 더미(Dummy)로 역할한다. 가면(Persona)을 쓰고 살아가는 세상에서, 캐릭터(Streotype)를 받아들이는 편이 온전한 타인을 이해하는 것에 비해 백배 편하고 효율적이다. 하지만 가끔 그것을 심각하게 받아들여서 반응하는 사람이 있고, 많다. 아니, 이력서와 같은 형태(form)가 그것을 더 강화한다.
'A' 하는 사람은 모두 B 하다'라는 명제가 형성되는 영역은 적다. 살인을 밥먹듯이 하는 걸 보니 살인마구나, 그럼 넌 나쁜 놈 이런 명제가 아닌 이상 대다수는 맥락(Context, case by case) 아래에서 판단되어야 한다. 객체, 타자에 대해서 우리는 너무도 쉽게 누군가를 판단하고, 재단하고, 결론짓는다. 그리고 그 대상은 항상 빠져 있다. 제품과 서비스라면 그나마 낫다. 우리는 제삼자의 이야기를 한다.
커피숍에서, 바에서 우리는 그 공간에 없는 누군가를 판단한다. 누군가의 이력서를 보며 이 행위를 인사, 채용을 담당하는 사람도 진행할 것이다. 만나본 적도 없고 들어 본 적도 없는 사람에 대해서 틀(form)을 잣대로 판단하고, 비교해야 한다. 때문에 구직자들은 스스로를 포장한다. 이런 상황을 묘사한 글이 있다. 건국대에 붙은 한 대자보에서는, 나는 김광석의 노래를 좋아하는데, 마냥 걷기를 좋아하는데 이걸 왜 적지 못하는가 물었다. 그래서 안녕하지 못하다고 답하였다. 입사 지원을 위해 본인의 취미와 특기를 회사에 맞추고자 하는 사람도 보았다. 내가 어쩔 수 없이 독서와 컴퓨터를 적어둔 것을 보고 그러면 안된다고 충고도 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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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공채 시스템 아래에선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정보의 비대칭과, 선발기준의 모호함. 그리고 제한된 일자리와 경제 불황은 구직자들을 고개 숙이게 만들었다. 지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뛰어난 인재이나 많은 지원자가 몰려 이번 기회는 함께 하지 못해 죄송합니다. 좋은 인연이었습니다. 그 답변들은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는다. 그저, 남은 자들이 모이고, 먼저 간 사람들 붙잡고 이야기하여 추측해 맞추어 나갈 뿐이다. 그리고 스스로를 범주화, 두려워한다. 물론, 거기에서도 취미와 특기가 무엇이냐가 중요한 화제는 아니다. 면접을 준비하면서 해당 항목에 대해서 답변은 준비하겠지만- 당락의 기준으로 취미와 특기를 이야기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렇지만 사람들은 그 항목조차도 두려워한다. 기업의 기준에 맞추고자 한다. 나를 판매(Sales)하는 입장이기에? 그리고 그 작은 판단도 범주화를 가져오기에? 하지만 판매의 비유를 들자면 본인이라는 상품을 허위광고로 포장하는 행위에 지나지 않는다. 그리고 소비자는 그 항목은 그다지 신경 쓰지도 않는다. 다만, 그게 거짓이라는 것이 드러나면 화낼 것이다. 그러나 본질적으로 구직을 판매 과정(Sales)으로 비유하면 전술한 건국대의 대자보가 묘사한 바와 같이 푸줏간의 돼지고기가 되는 기분을 느낄 수밖에 없다.
구직의 과정을 '그것은 알기 싫다'에서 '춘심애비' 가 묘사한 바에 따르면 결혼, 소개팅과 같다고 하였다. 맞춰 가는 과정(Matching)이다. 소개팅에 대해서 최근에 들은 이야기를 인용하면, '너무 간절하면 될 것도 안된다' 그리고 구직 역시 마찬가지일 수 있다. 또 한 번 비틀어 생각해 보자. 거짓말을 해야만 들어갈 수 있는 회사라면, 그 회사 안에서 계속해서 거짓말을 하며 살아가야 할 것이다. 남에게 혹은 자신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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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특기와 취미란을 비워두자는 말인가. 혹은 입사지원서의 양식을 바꾸자고 짱돌이라도 들어야 하는가. 그러나 입사지원서의 형태(form)는 바뀌더라도, 고정될 수밖에 없다. 그리고 형태(form) 보다는 고정(fix)되어 있다는 것이 본질적인 문제이다. 작금의 한국 공채 시스템에서 자율적인 형태의 이력서를 채택할 수 있는 기업은 적다. 몇십대, 몇백대 심지어는 몇천대 까지 올라가는 경쟁률 속에서 기업의 인사팀은 죽을 고생을 하고 있다. 때문에 행정편의상, 그리고 비용 문제와 시간문제를 고려해서도 고정(fix)이라는 점을 바꾸기는 어렵다. 열린 채용은 비싼 채용의 다른 말이다. 지금의 사회 인식에서 채용에 그렇게 신경 쓰는 회사들이 주류(Major)가 되기는 어렵다. 그렇다면 공채라는 방식 자체를 바꾸어야 한다는 말일까. 아니다. 구조적으로 비틀린 것에 대해서 말하고자 나는 글을 쓸 깜냥이 되지 않는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김광석 노래를 좋아하고, 걷는 것을 좋아하고- LoL 랭크가 얼마나 높은지 이야기 하자는 점이다. 이력서가 아니더라도. 사실 전략의 문제이다. 결국 비슷한 사람들 가운데에서 누가 더 잘났는가로 갈리는 사람의 경우에는 이런 글 자체가 도움이 될 리가 없다. 이런 글을 볼 일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비슷한 사람들 사이에서는 달라지는 것이 중요하다. 다르다는 것을 만들어내기 위하여, 꾸며낼 필요는 없다. 스스로를 잘 아는 것이면 충분한 것이다. 물론 전략적으로 버릴 것은 버려야 하겠다. 회사 별로 전술한 바와 같이 어울리는 인재상이 있고, 거기에 합당하지 않은 것을 굳이 끄집어낼 필요는 없다. 다만, 스스로에 대해서 자신감을 가지고 드러내야 하는 것이다. 나는 내 특기와 취미를 잘 모르지만 그 고정된 형태(fixed form)에서 바라는 바와 같이 남들보다 더 많이 빠져 있는 것이 독서이고, 보다 더 잘하는 것이 컴퓨터이기에 썼다.
그리고 겁먹지 않았다. 이게 판단의 기준이 된다니, 실제로 그렇다면 얼마나 무성의한 회사인가. 정말로 타인에 대해서 알기를 원한다면 그만큼의 노력이 필요한 것이 아닌가. 회사에 적합한 인재를 뽑기 위해 이 정도의 노력도 할 수 없는 조직이라면 지속 가능성이 의심된다. 대신 나는 내 취미와 특기에 대해서 보다 더 깊게 생각을 하는 시간을 가졌다. 왜, 뜨는 시간이 생기면 중고 서점으로 가는지. 컴퓨터에, 핸드폰에 쓰지도 않을 새로운 프로그램을 깔기 위해 왜 밤을 새우는지. 남들보다 '조금' 다른 지점을 고민하고 나에 대해서 분석하였다.
회사가 특기와 취미를 당락의 기준으로 삼아 내가 떨어졌다면, 그냥 그 회사를 비웃으면 된다. 아니라면 다른 이유로 떨어졌을 것이다. 반면, 빈칸에 대해서 나름의 고민을 통해 스스로를 알게 된다는 것은 중요하고, 도움이 된다. 회사 입장은 고려할 필요가 없다. 본인에 대해서 더 생각해 보는 것, 그게 중요하다. 회사가 취미와 특기를 물었을 때, 회사의 입장에서 답하는 것은 최소한의 - 탈락 유발 요인이 되는 사항에 대한 소거법적 접근이면 충분하다. 의미 없는 빈칸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으나, 그것을 기회로 삼을 수도 있다.
일자리는 없다. 반면 사람도 없다. 다른 사람을 원하지만 같은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사회 구조적으로 만들어낸 한계는, 앞서 말한 것처럼 제외하자. 다른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 '다름' 은 온전한 내가 되는 것에서 시작한다. 회사 입장에서는 아무 의미 없는 '취미' '특기'란일 수 있다. 그것을 채워 넣는 것은 '범주화'에 대한 타협일 수 있다. 하지만 스스로를 알 수 있다면 손실 부분보다 이익 부분이 더 많다고 나는 단언한다. 어느 직종에서 어떤 직무를 맡고 싶은지에 대한 비전이 사회 경험이 없고 수능 점수로 맞추어간 학과 생활을 한 사람에게 얼마나 있을까. 비록, 얻어걸린 기회이지만 입사지원서를 쓰는 순간은 스스로를 돌아보는 기회로 삼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특히 이 글을 그래도 읽는 사람은 '대졸 신입'으로 가정하고 있기에, 늦지 않았기에 이제 시작하기 좋은 시점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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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책임한 발언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 글모음을 시작하면서 이야기한 것처럼, 스스로를 존경해야만 한다. 아무런 특기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 별다른 취미가 없다는 사람이 있다. 그것은 '비교의식'에 빠졌기 때문이다. '나'의 취미 '나'의 특기이다. 내가 좋아하는 것, 내가 잘하는 것이 남들과 비교되어서 나올 필요가 어디 있는가? 심지어 그 항목이 크게 '비중이 없는' 항목이라면 면접 가서 이야기할 거리라도 있는 것을 적는 것이 더 유리하고 - 합리적인 판단이라고 생각한다. 모두의 인생은 모두가 주인공이라는 진부한 말이 있는 이유는, 모두가 너무나 다르기 때문이다. 영어로 개인은 Person이지만 사람들은 People 이 된다. 다르기 때문에.
우리는 너무나 다르다. 지금의 기준으로 그 다름이 나쁨일 수 있고 혐오가 될 수도 있다. 그러나, 다르기에 살아갈 수 있는 것이 아닌가. 빈칸(fixed form)은 아무것도 아니다. 채워야 할 것은 스스로에 대한 믿음과 확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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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투를 빈다.
2014.01.01
서울, 신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