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매일 글쓰기 (009/100)
스티븐 킹의 창작법에 관한 책 <유혹하는 글쓰기>를 읽었다. 문법, 단어의 중요성과 같은 일반적인 이야기에서, 플롯보다는 내러티브에 집중하라는 이야기. 잠언 같은 조언들도 녹아 있었다. 그리고 읽다 보니 내가 좋아하는 이야기 글에 대한 생각을 전개하게 되었다.
개인적으로 장르 문학을 좋아한다. 일본의 라이트노벨, 한국의 판타지, 무협 혹은 그 파생 장르들. SF도 그럭저럭 좋아하고, 영미권의 판타지도 좋아한다. 이사카 코타로를 좋아하는 것은 장르 문학의 요소를 즐겨 써서이다. 그럼 이런 글은 왜 재밌는 것이고, 나는 그런 글을 쓸 수 있는 날이 올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여전히 항상 머릿속에 남아 있는 아는 분의 조언. '네가 좋아하는 것을 왜 좋아하는지 설명할 수 없다면, 그것은 진짜로 좋아하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이 번 기회에 또 내가 왜 이런 글을 좋아하는지도 써보려고 한다.
내가 좋아하는 세계는 대체로 '다른 세상'이다. 장르 문학에서 금서로 칭하는 '이고깽(이 세계 고교생 깽판물)'도 '이 세계'라는 것 하나로 볼 수 있을 정도로 '다른 세상'을 좋아한다. 처음에는 중2적인 현실도피 감성이었지만, 날이 가면 갈수록 내가 더 좋아하는 것은 그 '다른 세계' 그 자체. '세계관'을 좋아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잘 짜인 소설 속 세계는 현실과 구분하기가 어렵다. 나는 <눈물을 마시는 새> 나 <피를 마시는 새>에서 그런 것을 느꼈다. 소설 속의 종족인 '레콘'이 선천적인 공수증을 극복하는 모습을 보면서 경이로움을 느끼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 세계가 충분한 설득력을 지니고 나에게 다가와서이다. 다른 소설도 마찬가지이다. 어떤 내러티브라도 마찬가지다. 완전한 공상은 없고, '그럴듯한 구라'를 전달해주어야 한다. 때문에 <SKY 캐슬> 은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았다. 하지만 다큐멘터리는 재미가 싫다. 구라가 아니니까.
그러니까 '그럴듯한 구라' 라 함은, 내게 매력적이면서 납득할 수 있는 거짓말이어야 한다. <원피스>의 악마열매를 이상하다 여기진 않지만, '패기'라는 개념으로 파워 인플레이션을 일으키는 것은 좋아하지 않는다. 예컨대 '자기 완결성'이 있어야 한다. '혼이 담긴 구라', <타짜>에서 평경장이 말하듯 '구라가 곧 나고, 내가 구라인 경지'에 올라야 한다. 적어도 이야기 안에서의 충돌은 발생해서는 안된다.
그런 거짓말 속에서 '캐릭터'가 살아있어야 한다. 감정이입을 할 수 있는 대상. 다만 그것이 '동일시' 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그 사람이 된 기분을 통해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것은 '이고깽' 이면 충분하다. 내가 좋아하는 캐릭터는 결국 '개성'이다. 수많은 클리쉐 속에서도 발견할 수 있는 개성이 있다면 충분하다. <데스노트>의 '라이토'가 매력적인 것은 이런 개성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똑똑한 고등학생, 갑자기 얻은 슈퍼 파워 속에서 단순한 '선'이 아닌 '라이토'의 모습이야 말로 개성이다.
하지만 '멋' 역시 있어야 한다. 이건 고전적인 카타르시스의 영역이다. 혹은 클리쉐의 영역이다. 다만, '이 세계'에서는 이 클리쉐를, 고전적인 서사를 새롭게 풀어낼 수가 있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상징, 클리쉐적인 인물을 '가짜 세계'에 대입하며 그려낸 캐릭터는 개성과 함께 멋을 함께 가질 수 있다. 엘론 머스크가 나온 지 50년이 지난 아이언맨 세계에 들어가져 영화 <아이언 맨>의 모습으로 화한 것처럼. (물론 이건 로다주가 잘했다.)
한편 필력이나 표현은 중요하지만, 결정적이진 않다. 결국은 서사이다. 플롯을 짜건 말건, 뒤틀 후려 갈기는 서사, 혹은 빨려 들어갈 수밖에 없는 고전적 서사. 그 이야기 속에 작가가 그려낸 가짜세상 속의 가짜 캐릭터의 이야기와 대화의 디테일이 일부 아쉬워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결국 내가 읽는 것은 '이야기' 이니까. 지금은 아니지만, 옛날 엣적 <가즈나이트>를 좋아한 것은 필력도, 표현도 아니고 캐릭터 속의 이야기 그 하나였다.
마지막으로 시대성을 담아내는 것은 꽤나 중요하다. 읽으면서 불편하지 않기 위해서는 시대정신을 담을 필욘 없지만, 위반하지는 않는 글이어야만 한다. <해리포터>를 지금 읽으면 이렇게 나이브한 세계와, 불평등한 구조에 대해서 불평하게 된다. 수많은 '이고깽' 물들을 비롯한 것들은 젠더 감수성이 빻았고 - 내가 봐도 -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 속의 과학기술들은 낡았다. (이미 2001년도 지났고. 물론 그럼에도 가치가 있는 작품이지만 내겐 매력적이진 않다)
결국 내가 좋아하는 작품은, 매우 정교한 톱니바퀴로 짜여 막이 바뀔 때마다 완전히 바뀌는 뮤지컬 무대와 같은 설정. 그 무대를 뛰어다니는 익숙하지만 새로운 캐릭터들. 뻔하지만 무대를 벗어나지 않으면서 요즘 노래를 부르는 모습. 그런 것이다.
이런 글을 쓰기 위해서는 고전적인 글쓰기의 방식으로 접근하면 안 되지 않을까. 새로운 배우를 캐스팅하는 마음으로 캐릭터를 만들어내고, 게임을 만드는 심정으로 세계를 써 내려가야 하고 표현만큼은 최신을 유지해야 한다. 음, 역시 내가 하기엔 무리인 것 같다. 잘 읽기나 하자.
초고: 2018년 12월.
수정고: 2024년 9월 26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