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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min Jan 25. 2019

평면이란 무엇인가

평면이란 무엇인가. 풀어쓰면 평평한 면. 평평하다는 것은 고르게 퍼져있다는 뜻이고, 면이라 함은 수학적으로 보면 폐곡선을 의미하는 것일까. 2차원적인 부분을 생각해보는 게 쉬울 것 같다. 자주 보던 XY평면. 


이걸 가지고 도대체 무슨 말을 쓸 수 있을까. 쉽지 않은 주제이다. 고르지 않음을 주제로 글을 펼쳐나갈 것인가. 혹은, 3,4차원을 넘어 다차원 인식을 해야 하는 현대인의 고뇌를 이야기해야 할까. 어떤 말을 해도 진부하고 재미없을 것 같다. 


꼭, '평면' 이 소재이거나 주제여야 하는가 하는 반발심도 생긴다. 그냥 이렇게 평면이라는 단어를 여러 번 쓰는 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을까. 특정 어플을 통해 글감을 전달받고 글을 쓰는 방식 자체가 글쓰기에 장기적으로 비효율적임을 어필해보는 것은 어떨까. 어쨌든 자신 마음속에 있는 이야기를 끌어내야 하는데, 그 곳아 닿을 지점에 내리는 닻이 이렇게 고정되어 있어 버리면 글쓰기가 방황하게 된다라던가. 


하지만 글쓰기 프로젝트를 제안한 사람 입장에서 우스운 이야기가 되고 말 것이다. 또, 적어도 이렇게 하나의 닻이 있을 때 덜 돌아가는 경우도 있으니까. 그런 식의 주제로 이야기하려면, 매일매일 쓰는 행위를 강제하는 것 까지 비판해야 할 것이고 그러다 보면 나름 힘겹게 이어가고 있는 프로젝트를 모독하는 것 같이 느껴질 것이다. 

다시, 평면으로 돌아가야겠다. 평평한 면. 물리학을 잘 모르지만 이런 식의 실제 물건은 거의 없다고 알고 있다. 마찰력이 0 인 상태를 만들 수 있을까. 물론 그에 무수히 가까운 것은 만들어내기도 하지만, 그게 어려우니까 수학자들이, 물리학자들이 사고 실험을, 수식으로 증명을 하는 것이 아닐까. 이론물리학자들은 어떻게든 유사한 상황을 만들어내려고 하겠지만, 그것은 우리가 측정 가능한 세상에서의 '평면' 일 뿐. 우리가 볼 수 없는 영역에서는 어떻게 되어 있을지 누가 안단 말인가?


그렇게 생각해보면 우리가 흔히 쓰는 개념들이, 실제로는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생각해보게 된다. 진짜로 평평한 면이 어디에 있을까. 얼음바닥도 마찰력이 있고, 굴곡이 있어서 컬링 선수들이 스위핑을 하고 있는데. 또 어떤 것이 있을까. 직각이라는 것도 그럴 것이고. 우리가 측정할 수 없는 영역을 알 수 없기에 그냥 그럴 것이라고 생각하는 개념이. 뭐, 무엇인가 있지 않겠는가. 완전한 곡선이라거나 완벽한 무언가 들이. 

물론, 실제 공간에서 존재하지 않거나, 그렇다고 측정할 수 없기 때문에 평면이 그 중요성을 잃는 것은 아니다. 일단, 측정할 수 없을 정도의 오차라는 말은 대체로 평면으로 간주해도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는 말이고 따라서 우리가 목공을 하거나, 프라모델을 만들거나, 삼각대의 수평을 만들 때에 우리가 신경 쓸 수 없는 세세한 단위는 무시하곤 한다. 실제로 우리가 매우 초초 초고배율 현미경으로 관측하지 않는 이상. <앤트맨> 이 되어서 그곳에 붙어 있지 않은 이상 우리에겐 그건 그냥 평면이 맞다. 


또한, 이론적으로 '평면' 임을 가정하고 풀어나가는 행위들이 많이 있다. 무시할 수 있는 오차들이 아니라, 수학적인 증명 같은 곳에서는 이런 가상의 개념들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가상의 어떤 상태를 가정한 채로 우리는 여러 가지 수식들을, 공식들을 개발 혹은 발견해왔고 어쨌든 고전역학 체계 안에서 이만큼의 과학적 발전을 이루어냈다. 우리가 측정 가능한 세계를 넓혀 가면서, 사실은 그게 아니지요!이라고 외치는 과학자들이 등장하고 있긴 하지만, 아직까지 나나, 일반적인 사람들이 살아가는데 큰 영향을 미치진 않는다. 


이렇게까지 생각해보다가, 사회과학적인 개념들을 생각해보게 된다. 평등, 정의. 인권.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것들이다. 또한, 가상의 개념이고 상상의 집합체라고 보기에 관측을 할 수도 없다. 정의도 세상 사람들 마다 제각각 다를 수 있는 것들이다. 그렇기 때문에 종종 무시당한다. 우리에게 보이지 않고, 어떤 것이 진짜 이것인지 말해주지는 않으니까.


그러나, '평면' 이 그렇듯 '평등' 같은 가치가 보이지 않고, 알 수 없는 혹은 실제로는 달성 불가능한 곳이기 때문에 무시해서는 안된다. 그것은 우리가 가야 할 방향이라고 정의할 수도 있고, 그것을 가정한 채로 우리는 사회 역학을 추정해볼 수도 있다. 결정적으로 공동의 상상의 집합체는 우리를 다른 동물로부터 다르게 만들어주는 결정적인 조건이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같은 생각'을 본성을 뛰어넘어서 할 수 있느냐는 매우 중요하다. 


<아픔이 길이 되려면>에서 김승섭 교수는 사회의 발전 척도는 그 사회의 가장 취약 계층에게 신경을 쏟는 정도로 추정되어야 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 (기억이 정확하진 않지만 대체로 비슷한 말이었던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평등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된다. 우리가 꼭, 태어난 그대로의 모습을 벗어던지고 더 나은 내가 되기 위해서, '초인' 이 되기 위해 노력할 필요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좀 더 고귀해지기 위해서, 평등을 추구하기 위해 노력할 수는 있는 게 아닐까. 


 그래서 '평면'을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평면'은 실제로 없다. 사람들은 완벽한 '평등' 은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물론, 어쩌면 그럴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납골당의 어린 왕자>의 한 겨울은 말했다.  '세상이 원래 그런 것과, 원래 그래야 하는 것은 매우 다른 거다, 나쁜 새끼야.' 지금 평면이 없다고, 앞으로도 없어야 하는 법은 없다. 지금 평등하지 않다고 앞으로 그것을 해결할 방법이 없다고 단정하는 것은 마찬가지로 말이 되지 않는다. 우리가 모든 것을 측정할 수 없다는 가정이 맞다면, 어떤 식으로는 가능성이 0이 될 리가 없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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