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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min Nov 29. 2021

<멸망한 세계의 사냥꾼> by 글쟁이S

어떻게 태어났는가, 어떻게 살아가는가 (아마 영원히 초고)

용은 잠들었고, 마귀는 퇴치되었고, 흡혈귀는 타 죽었고, 악령은 정화되었고, 불멸자는 봉인되었고, 이물은 추방되었으며, 마녀는 박멸했다.


멸망한 세계의 사냥꾼 표지



 제가 장르 문학을 좋아한 지 스무 해가 지난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 사이에 제가 좋아했던 많은 작품들의 편린들이 모여서, 또 새로운 모습을 보여준 작품이 있습니다. 이 작품의 주인공은 <눈물을 마시는 새>의 케이건 같기도 하고, <월야환담 채월야>의 실베스테르 신부를 닮기도 했지요. 괴물을 사냥하고, 괴물에게서 돈(칩)을 뽑아낸다는 것 자체만 보면 말이죠. 그냥 흡혈귀 사냥꾼이 아닌 진마사냥꾼의 이름을 가졌던 실베스트르. 작중 레오나와 다니는 모습의 일부는 <피를 마시는 새>의 지멘 같기도 합니다. 지금 당장 생각나는 건 이 정도이네요. 


 이런 매력적인 모습들을 가진 인물의 이름은 진(ZIN). 그는 멸망한 세계에서 사냥꾼을 직업으로 삼은 인물입니다. 그가, 새로운 인물들을 만나면서 이야기가 진전되지요. 네, 오늘 소개해드릴 작품은  글쟁이S 작가님의 <멸망한 세계의 사냥꾼>이라는 작품입니다. 


 본 작품은 이전에 소개해드린 <납골당의 어린 왕자>와 같이 포스트 아포칼립스 물입니다. 다만, 실제로 세상이 멸망했고, 국가 체계 자체가 붕괴한 정말 '멸망' 이후의 느낌이라는 게 다르지요. 오히려 <매드 맥스> 나 <워터월드>가 더 비슷한 모습일 것입니다. 국가는 붕괴했고, 새로운 질서가 세계 곳곳에 남아 있습니다. 화석연료는 이제 동이 났고, '칩'이라는 에너지원에 의해서 움직이는 세계.


 그 안에서 존재 의의를 찾는 이야기라고 하면 너무 거창한 묘사일까요. 모든 문학은, 예술은 인간성이란 무엇인지 정의하는 작업이라고 생각하는 입장에선, 당연한 이야기일 수도 있겠습니다. 도덕이 무너지고, 관습이 사라진 세상에서, 사냥꾼은 왜 살아가는 것일까요. 멸망이란 무엇일까요. 그런 고민을 하게 해주는 작품이었습니다. 


아래부터는 스포일러가 가득합니다. 



 이야기의 시작은, 이렇습니다. 세상은 멸망했고, 괴물들이 넘쳐납니다. 이들을 사냥하며 먹고사는 이들을 '사냥꾼'이라고 부릅니다. 이들은 <매드 맥스: 분노의 도로>에 그려진 세상 같은 황무지를 돌아다니는 존재들입니다. 그리고 이들 중에는 '악마사냥꾼'이라는 존재가 있습니다. 괴물 중의 괴물. 그들을 사냥하는 존재이죠. 그런데, 멸망 이후에도 이 '악마사냥꾼' 은 꽤 유능한 존재인지라, 퇴치되어 버리고 맙니다. 


 상황은 끝났습니다. 악마는 모두 사라졌습니다. 그럼에도 멸망한 세상이 바로잡아지지는 않았지요. 사냥꾼은 파괴하는 존재이지, 건설하는 존재는 아니었나 봅니다. 여전히 세상은 과거의 영광을 찾지 못하고 있지요. 그리고 결정적으로 '악마사냥꾼'은 악마의 피를 기반으로 생명을 연장하는 몸을 가지고 있습니다. 어라? 네 그렇습니다. 악마를 모두 사냥하게 되면 악마는 사라지게 된 시스템이었지요. 누가 그렇게 만들었는지 알 수는 없습니다. 악마가 사라진지는 100년이 흘렀습니다. 그럼에도 악마사냥꾼 '진'은 계속 살아갑니다. 연료원인 '칩'을 몸에 털어 넣으면서요. 


  칩은 멸망한 세계의 연료입니다. 멸망한 세계를 떠도는 괴물들을 사냥하면 추출할 수 있지요. 유기물이 사체가 되어 퇴적 후 수만 년이 지나야 연료원이 될 수 있는 것에 대비하면 효율적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또한 특별히 관리하지 않아도 계속해서  MCP(Mass Confussion Point)라는 세계 곳곳에 난 구멍에서 튀어나온 다는 점에서 잔량을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장점도 있겠네요. 하지만, 괴물은 대다수의 사람들을 압도하는 힘을 가지고 있고, 구체제는 무너진 상황이기에 역으로 괴물이 사람을 사냥하기가 더 용이한 세상이라는 문제가 있습니다. 


 이런 세상을 떠도는 사냥꾼 진은 우연히 '레오나'라는 사람을 만납니다. 그리고 여러 사건을 맞이하면서, 레오나가 박멸되었던 '마녀' 였다는 사실이 드러나지요. 맙소사, '악마사냥꾼'의 존재 의의가 다시 떠오릅니다. 자신의 의무인 '마녀'의 탄생은 사냥꾼을 다시 움직이게 했지요. 그러나 레오나와 여러 사건을 헤쳐 다니면서, 사냥꾼은 레오나를 사냥하지 않기로 다짐합니다. 


 왜일까요. 긴 이야기를 가능한 빠르게 요약해보겠습니다. 첫 번째. 레오나는 인위적으로 탄생한 마녀입니다. 워 그레이브(wargrave)라는 군사집단이 있습니다. 멸망한 세계에서 가능한 과거의 문명의 잔재를 가진 집단이지요. 이들은 괴물을 인위적으로 만드는 실험을 통해서, 마녀를 만들어냅니다. 왜 마녀였을까요.


 사실 워 그레이브의 뒷면에는 또 다른 악마사냥꾼이 있었습니다. 칼츠라는 이름을 가진 워 그레이브 수장. 그는 악마 중 '용' 사냥꾼 이어습니다. 그건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꿈을 꾸었습니다. 멸망의 세계를 되돌릴 방법을 꿈꾸었지요. 멸망 이전의 여러 사료를 모으면서 그는 의문을 가졌습니다. 악마는 일곱인데, 왜 여덟이 되었는가. 


정의를 위해 살 생각도 없으며, 그럴 수도 없다.
하지만, 굳이 불의를 위해 살 필요는 무엇인가.


 이야기를 다시 되돌려야겠습니다. 악마사냥꾼은 악마의 힘으로 돌아갑니다. 악마의 피를 기반으로 움직이는 존재이고, 악마의 피로 생명을 연장하며 또한 악마의 힘을 내는 존재입니다. 악마사냥꾼도, 악마와 다른 지점이 별로 없네요? 이게 의문점입니다. 왜 악마는 퇴치되어야 하고, 왜 일곱이 아니라 여덟일까. 


 왜 괴물이 나타나고, 악마가 탄생했는가. 여기까지 칼츠는 파고들어 봅니다. 왜일까요? 과거의 세상은 인류가 지배하고 있었는데 어디서 괴물이 탄생했을까. 괴물은 행성의 중심부에서 태어나고 있었습니다. 괴물은, 지구라는 행성의 가능성의 결과물인 셈이지요. 그리고 이 결과물을 과학자들은 손대기 시작합니다. 왜? 지구는 끝장나고 있었으니까요.


‘누군가의 아픔이 내 아픔처럼 느껴지는 것. 그건 ‘사랑’이라고 불러야만 하겠지.’


 행성에는 수명이라는 게 있습니다. 그것을 피하긴 어렵지요. 그런데, 그것을 알아차릴 정도의 지성을 지닌 생명체가 지구에 있었습니다. 인간이지요. 그들은 외항성을 찾아 떠나는 프로젝트, 그리고 화성 같은 행성을 테라포밍하는 프로젝트를 세웠지만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그것을 대체하는 프로젝트 중 하나가 세상에 더 많은 가능성의 생물을 풀어내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행성이 내뿜는 가능성의 존재들을 더 빠르게 진화시키는 프로젝트가 진행되었지요. 그것이 여섯 악마, 용 이물 악령 흡혈귀 불멸자였습니다. 매드 사이언티스트에 의해 탄생된 이들은 인류를 이끌기보다는 인류를 박멸할 수 있는 가능성이 되어 버렸지요. 


“명예라는 걸 자꾸 들먹이는 이유는
그들이 제일 불명예스러운 짓거리를 하며
살기 때문이다. ”  

 그래서 또 다른 과학의 한 축에서 - 지상 최대의 인공지능은. 이들을 사냥할 계획을 세웁니다. 과학 기술의 총체로, 악마를 사냥하기 위해 만들어진 사이보그. 일곱 번째 악마. 그래서 이름도 죄악(SIN)으로 지었습니다. 혹시나 다른 명령을 받아서 악마 사냥을 포기할까, 나머지 지식을 모두 지우고 악마를 사냥해야만 하는 의무만을 가지고 태어난 일곱 번째 악마는, 그래서 풍화된 자신의 인식표를 잘못 읽고 ZIN이라고 스스로를 인식하기까지 합니다. 인공지능 오류 인 셈이지요. 


 그럼 마녀는 무엇일까요. 정말 상징적이지요. 희생양의 대명사로 보이는 마녀. 마녀는 인류의 가능성이었습니다. 세상이 멸망해가는 와중에 인류 안에서도 무언가가 개화한 것이었지요. 마녀의 힘은 괴물과의 소통이 가능하다는 것, 또한 그 힘이 사람에게 까지 뻗칠 수 있다는 것. 그래서 가장 끔찍할 수 있는 존재였습니다. 분명 그 소통의 능력은 악마스러울 수 있지만요. 


서로를 이해하지 못해서, 단지 그 이유만으로도
수많은 일들이 벌어지고, 오해가 오해를 낳는다.


 작중에 마녀는 결국 '소통'의 능력을 지닌 신인류로 등장합니다. 심지어는 매드 사이언티스트가 기획하여 나타난 악마-괴물들과도 소통할 수 있는 능력을 지녔습니다. 따라서, 멸망하는 세상에 생명의 의지를 모을 수 있는 소중한 가능성이었다고 할 수 있겠네요. 기동전사 건담 시리즈의 뉴타입이 떠오르는 대목이네요. 하지만 악마사냥꾼은 인공지능 오류 속에서 이 가능성을, 말살해버리고 맙니다. 절대 명제; 일곱 악마를 없애라, 그런데 저 마녀도 악마 같은 존재이니까요. 


실패하리라는 걸 알면서도 같은 실수를 반복하길 결정하는 건,
그 또한 어떤 의미로는 위대한 일일 것이다.


 각설. 작중의 세계관에서 천제로 불리는 '존재'가 있습니다. 작품은 설명하기 어려운 '영혼'이 실존하는 세계이며, 이 영혼의 총합은 결국 천제라는 존재입니다. 작중 인물의 설명에 따르면 영혼이 없이 태어난 인간은 동물과 같이 자라난다고 합니다. 중요한 건, 이 천제라는 존재를 확인하게 되면서 외우주로 떠나는 프로젝트에 문제가 생깁니다. 외지구로 인류의 dna를 싣고 간다고 하여도, 이 천제라는 존재가 없다면 해당 행성에서 다시 세워질 인류 문명에는 인간이 남아있을 수가 없게 되는 것이지요. 


“인간은 스스로를 어른이라고 칭하는 순간 이미 글러 먹은 거다.”
“그건 또 무슨 흰소리지 대체?”
“자기 자신을 어른이라고 칭하는 순간 사람은 성장을 멈추거든.
명심해라, 성장은 영원한 거다."


 그래서 칼츠라는 인물은 대량 살상을 기획합니다. 천제는 영혼의 총체입니다. 하지만, 천제에게 속하지 않은 영혼은 모두 '인간'으로 살아 있습니다. 천제를 생포하여 외우주로 떠나기 위해서는 인류를 모두 멸망으로 이끌어야 합니다. 또한 천제가 현현할 정도로 다수의 영혼이 원망에 사로잡혀 있는 지옥도를 그려야만 합니다. 천제는 집단 무의식의 총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특별한 의도나, 큰 뜻이 있진 않지만 그 안에 속한 영혼들의 복수심이나 원한, 부채의식 등을 모두 모은 존재입니다. 때문에 수많은 - 억울하고 잔혹한 죽음은 그저 존재하기만 하던 천제를 현현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지요. 실제로 이 계획은 성공합니다. 


 하지만 또한 실패합니다. 이 천체를 수만, 수억 광년을 넘어서 운송하기 위해서는 그 시간을 견뎌낼 수 있는 '조종사' 격이 있어야 하기에 진을 끌어들였지만, 사냥꾼 진은 칼츠를 사냥해버리고 말지요. 하지만, 그 계획을 폐기하지 않고 이어 가기로 결심합니다. 그래서 이제는 딸과 같이 사랑하게 된 레오나를 냉동시킨 채로 닿을지 확신이 없는 새로운 천체로 여행을 떠나가면서 이야기는 에필로그로 향합니다. 

 14권에 달하는 책을 요약하다 보니 이것저것 맞지 않는 부분도 있겠습니다만, 대략적으로 이런 흐름으로 이야기가 흘러갑니다. 흥미로우신가요? 저는 재미있었습니다. 약간 지쳐가던 장르문학 - 판타지 문학 읽기란 행위에 다시 불을 붙이는 책 중 하나였습니다. 



 사족.

이 글을 원래 쓰기로 한 지 일 년이 넘게 지났습니다. 일이 바쁘기도 했고, 코로나19와 함께 온 삶의 방식의 변화는 무기력증을 선사했했거든요. 바뀌어버린 세상, 그리고 그것에 겨우 적응해나가면서 갑자기 이 쓰다만 글을 다시 가져와서 올려 봅니다.


 본래는, 마녀라는 것의 함의라거나, 인공지능에 대한 이야기. 혹은 차별받은 이로 태어난 이에 대한 이야기와 태어난 것과 살아가는 것의 차이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만... 악마의 일종으로 태어났기에 스스로를 믿지 못하던 '레오나' 나, 자신의 존재 의의에 반하여 '마녀'를 학살해버린 죄에 매몰되가던 '진'이나... 모두들 상황 속에서 태어났고, 자기 의지대로 빛을 내던, 그런 멋진 이야기였습니다. 더 나은 리뷰가 마땅한 글이지만... 뼈대도 없이 쓰다 마무리되지 않은 글에서 그걸 되살리긴 어려워서 이렇게 사족으로나마 남겨 둡니다. 


마지막으로 중간중간에 쓰려고 했던 Quote 몇 개만 남기고 글을 마무리하겠습니다. 



생존에는 총과 빵이 필요하다. 하지만 살아가는 데에는 무엇이 더 필요한가.



“너의 순수를 증명해야 할 필요는 사실 어디에도 없다.”


(이건 아무래도 <월야환담>을 떠올리게 하는군요)



꽃의 이름은 벌개미취. 꽃말은, 너를 잊지 않으리. 하지만 지금. 그 모든 것을 말해줄 사람은 없다. 나는 이제 모르는 꽃이 없노라고 말해줄 사람은 이미 오래전에 죽었다.

(이건 아무래도 <눈물을 마시는 새>를 떠오르게 합니다)


“어떻게 태어났는지는 중요하지 않아.
어떻게 살아가느냐가 중요하지. 나는, 나는 그렇게 생각해.”


그렇기에, 이 풍경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행복했으면 좋겠노라고 여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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