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매일 글쓰기 (004/100)
이 주제로 이미 글을 썼지만, 최근에 링크드인에서 신수정 님의 글을 읽고 다시금 써보게 되었다. 그 글은, 즐겁다고 할 일을 선택하지 말라였고, 마라톤 선수, 피겨 스케이트 선수와 골프를 치다 죽겠다는 아마추어 골퍼의 비유를 통하여 논지를 전개했었다. 기본적으로 일이 괴롭다는 것은 동의하는 면이지만, 반대로 - 일을 해내야겠다는 사명감과 꿈에 대한 이해가 이어져야 하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매일 달리기 하는 사람 중 건강하지 않은 사람이 없고, 매일 독서를 하는 사람 중 현명하지 않은 사람을 찾기 어렵다는 식의 인스타그램 동기부여 짤(meme)을 본 기억이 난다. 계속한다는 것은 중요하다. 마라톤 선수가 괴롭지만 뛰고, 신수정 님 글에서 인용한 것처럼, 차라리 저 차에 뛰어들어 죽는 게 편하지 않을까 할 만큼 노력하는 것도 중요한 순간이 몇 있을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하나, 일단, 그들은 슈퍼스타이다. 업계의 탑이고, 잘은 모르지만 타고난 성향(nature)과 주변의 상황으로 인한 양육이 (nurture) 그들을 그런 사람으로 만들었을 것이라 확신한다. 기본적으로 그들이 비해서는 모두는 <실리콘밸리의 팀장들>에서 말한 락스타 (rock-star)이다. 꿈과 일은 별개일 수도 있고, 죽을 만큼 해서 세계 1등이 될 생각도 없다.
베스트셀러 <세이노의 가르침>의 인용구를 <썸원의 뉴스레터>에서 가져온 글을 봤다. 접시 닦는 것도 정성을 다해 일하던 누군가가, 세계 수위의 레스토랑 기업 매니저로 승진하게 되었다는 일이다. 그는 접시 닦는 일을 어떻게 생각했을까. 물론 그 글만 놓고 보면서 여러 생각을 했는데, 기본적으로 수 일 노력한 것으로 보상받길 기대하는 마음은 버려야 한다는 생각에 동의하면서, 또 개인적으로 받는 것 이상을 해야 승진하고 성공한다는 서술이 자칫 윤서인 님이 말한 100을 바라면 120을 더 하라는 논지와 크게 다르지 않게 해석되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으로도 이어진다. 기본적으로 보수적 가치란 이런 지점에서 닿아 있는가 싶은 생각도 들었다.
물론 개인의 자기 계발은 필요하고, 그것이 회사 안에서 이뤄져서, JD 이상의 일을 해낼 때 성장하고, 승진한다는 말 자체가 틀렸다고 생각은 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것을 위한 전략과 생각이 조금 나는 다르다. 일단은, 노력이 보상받는다는 마음가짐을 가지는 것은, 의지만의 영역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마시멜로 실험’을 떠올리는 순간이 몇몇 있는데, 참을성을 가지게 되었을 때 더 큰 보상을 얻게 된다는 성향이 결코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주위의 환경의 영향을 받는다는 최근의 연구 경향을 읽은 적이 있어서 그렇다. 마시멜로 실험 이후에, 많은 부모들이 자신의 자제가 그런 자제력이 없음을 한탄했는데, 한편으로는 그러한 믿음을 지켜주도록 하는 ‘심리적 안정감’ 이 없기 때문에, 가난한 집의 아이일수록 빠르게 마시멜로를 택한다는 글이었다.
노력이 보상받는다는 경험을 요즘 잘 주는 곳은, 어린 세대일수록 ‘게임’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물론 이것은 나의 편향으로 인한 것이지만, 대체적으로 생각해 볼 가치가 있는 곳이란 생각은 든다. 그곳의 보상 체계는 빠르고, 중독적이다. 이것을 <도둑맞은 집중력>이나, <유리 감옥> 및 무수히 많은 석학들이 지적하고, 위험하다고 말한다. 트위터 같은 곳에서 사용하는 행동 경제학적 다크 패턴을 <넛지>에서도 경계하고 있다. 나는 그 분야에서 일하기 때문에 간혹 이게 맞나 하는 생각을 하곤 하는데, 각설하고.
그렇다면 규칙을 만드는 입장에서, 개인에게 그것을 보장해 주는 게 더 나은 방식이 아닐까. 이것은 진보- left side의 특성일까. 개개인의 특성이 한계를 부여하는 나쁜 습관일까, 경계도 하지만. 또한 큰 변화는 예측 불가능하고 어려운 일이니, 개개인의 전략으로는 세이노 님이나 신수정 님의 글을 따르는 게 맞지 않나 생각도 든다. 그러나, 그들도 ‘슈퍼스타’이다. 물론 다시, 모두 평범한으로 시작하고, 수십 수백일이 넘는 수련을 통해서, 사이타마가 한계를 부수고 원펀맨이 되듯, 그 안의 고통을 이겨내어 마침내 환골탈태하는 모습을 나는 좋아한다.
<드래곤 라자>에서 운차이가 해당 말을 언급하며 결국 변화에 대한 사람의 선호와, 종국에는 신이 되고 싶은 작자들이라고 냉소하는 장면이 떠오른다. 현재를 부정하는 것은 그런 의미에서 마냥 좋진 않지만 - 또한 개개인의 세포적인, 신체적이고 지극히 물리적인 영역에서의 진화와 변화는 불가능할 것이라는 생각에 다시 - 내가 보수적인 사고 체계라고 부르는, 그러니까 어쩌면 소승불교적이고 도교적이고 유교적인, 혹은 청교도적인 나의 진화, 진보와 발전을 통해서 사회를 더 낫게 한다거나 하는 부분이 썩 와닿지는 않는다. 개인에게는 분명한 한계가 있다고 믿는 편이라.
일을 즐긴다는 것은 무엇일까, 일의 끝에 오는 보상을 즐기는 것일까. 아니면 함께 일하는 사람과의 관계를 즐기는 것일까. 문제 해결을 통해서 오는 즐거움을, 혹은 그에 수반하는 보상을 아니면 그 안의 관계를. 아니면 결국은 행복의 근원은 불행이라 (이영도 작, <행복의 근원>), 불편한 상태를 벗어나는 그 끝이 중요한 것일까. 그렇다면, 첫 번째로는 일을 잘게 쪼개고 그를 통해서 ‘끝맺음’의 상태가 자주 발생하는 것이 필요할 것. 그리고 성장의 경험을 성공의 경험으로 만들어내기 위한 축하 의식도 필요하겠다. 더불어 더 많은 기록을 통하여 내 성장의 기록을 통해 기쁨을 나눌 수 있게 해야 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모든 과정은 불편하고, 힘들 수 있기 때문에 동료가 필요하다고 믿는다. 혼자서 운동을 잘하는 사람이 있겠지만, 그렇지 않은 다수가 무언가를 이루는 방식의 첫 번째. 같이 하는 것, 멀리 가려면 같이 가야 한다는 말이 그래서 나오는 게 아닐까. 사회적인 동물로 일종의 ‘진화’를 한 우리가, 굳이 그 방식을 채택하지 않을 필요가 있을까. 내가 힘들 때 기대 갈 수 있다면?
풀스택이라는 말이 한 때 유행했는데, 그거 나는 이제는 확신한다. 불필요하다. 아니, 개인은 풀스택일 수 없고, 그래서는 안된다. 시간은 한정적이고 사람의 몸은 기계가 아니다. 손흥민이 골키퍼를 볼 필요도 없고, 이정후가 투수가 될 이유는 없다. 그런 케이스로 대표적인 이도류, 오타니 가 있다고 하더라도, 혼자서 야구를 할 순 없다. 같이 이뤄내야 한다. 함께 하는 방법에 대한 고민은 그래서 중요하다. 더 멀리, 더 잘나아가기 위해서는, 조합으로 완성되어야 한다. 1+1이 2가 아닌 방식 페어, 바이서스의 생각법이라고 말한 <드래곤 라자>의 후치 네드발의 마지막 말, 이영도 작가의 초기작으로 인간 찬가를 부르던 그 순박한 이야기를 이제는 나는 이해할 것도 같다. 물론, 그 한계에 대한 여러 이야기들이 이후에 이어졌다곤 하지만.
<더 골>이라는 생산 관리 분야의 책에서 나오는 비유. 행군을 할 때 속도를 정하는 것은 가장 못 걷는 사람, 우리가 기계적으로 말하기 쉬운 병목,. bottleneck 이 있다. 비유가 적합하진 않았을까, 모르겠다는 생각도 든다. 여하튼, 속도를 더 늘리기 위해서 그 속도가 가장 느린 사람에게 맞추고, 그의 짐을 덜어주는 것으로 모두의 속도가 늘어난다고 해서, 병목 자원 자체가 문제라고 보는 것은 책을 오독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병목의 역할이 있고, 그것이 더 빨라지기 위해서는 다른 속도를 조절하면서 가는 것이라는 가르침은 어쩌면 팀워크에 있어서 더 상기해봐야 할 부분이 아닌가, 여러 생각을 하게 만든다.
최근에 주니어급의 면접관으로 활동하면서, 1. 면접이 끝나면 피드백을 주자, 2. 그들에게 조언이 될 만한 것들, 예컨대 책을 추천하자. 1,2가 내가 꼰대라는 증거가 될 수 있겠지만, 그럼에도 <실리콘밸리의 팀장들> 이 말 한 것처럼 조언은 선물이라고 생각하자. 그러나, 그 방식에 대해서 유의하자를 실천하고 있다. 그러면서 짧은 면접 과정에서도 성장하는 모습을 보이는 이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함께하지 못하게 되긴 했지만 그 순간이 즐거웠다고 말할 수 있겠다. 오 이 친구는, 이런 것을 배웠겠구나. 물론 내가 그냥 들인 시간에 대해서 누군가의 감사 인사를 받는 경험 자체가 기쁜 것일 지도 모르겠다는 경계는 있긴 하지만.
이러한 피드백이 팀 내에 생긴다면 어떨까? 물론 이 과정 전체는 그렇게 좋지는 않았다. 안 그래도 바쁜데 시간을 더 쓴다고 혼나기도 했고. 또 한편으로는 시간적으로 실질적으로 부족해서 월화수목금금금 나가야만 했다. 조언을 하는 것은 사람에게 즐거운 일이라 이것을 즐겼을지도 모르지만, 불편한 이야기를 전달해야 하는 상황 자체를 즐긴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너 이거 못해 를 잘 표현하기 위해서는 꽤 많은 뇌내 자원을 할당해야 했다. 그렇지만, 결론적으로 즐겁다. 나는 그래서 이건 일이 즐겁다로 표현할 수 있는 영역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또, 결론적으로 일이 잘 안 풀리고, 기분이 안 좋은 일도 꽤나 많았다. 여전한 걱정과 감정적인 피로감이 체력에도 영향을 주고. 2주간 지속하던 운동을 못하게 만드는 - 그러니까, 매일 감정과 관계없이 운동 가라고 외치는 동기부여 메시지가 기분 나쁘게 느껴지는 상태가 되었다. 그러나 이 모든 게 나의 성장이고 발전이다. 슬픔과 눈물을 즐긴다는 게 아니라, 그 과정을 통해서 나가는 과정은 즐겨야 한다고 믿는다. 그래야 오래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나는 그냥 몇 마디로 정리하면, 신수정 님의 말을 따르긴 어려울 것 같다. 철학으로 나는, 일은 즐거워야 한다고 믿고, 카도노 코우헤이 가 <나는 덧없는 꿈을 달에게 듣는다>에서 스치듯 언급한 즐겁지 않으면 즐겁게 한다라는 격언을, <실리콘밸리의 팀장들>의 첫머리에 동아리라는 평을 듣더라도 일하는 곳을 즐겁게 만들고 싶다는 내용을, 여전히 따를 것 같다.
초고: 2023.09.02
탈고: 2024.09.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