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amin Sep 27. 2024

좋은 제품에 관한 이야기 004

(다시) 매일 글쓰기 (005/100)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 (Form ever follows function) 무언가 만들 때 몇 번이고 되뇌는 말 중에 하나이다. 나는 디터람스의 말인 줄 알았는데, 사실은 건축가인 루이스 설리반이 한 말이다. 물론, 이 추상적인 단어들의 집합만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지만, 반복하면서 고민해 볼 필요는 있는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보다 의미 있게 보기 위해서는 문장을 해체해 봐야겠다.


형태는 무엇인가. 폼팩터인가? UI 인가? 어떻게 정의해도 외형인가? 시그니피에인가? 기존의 건축가의 말이기에, 아마도 의도상으로는 건물의 형태 - 그러니까 물성을 지닌 무언가라고 본다. 하지만 서비스를, 제품을 만드는 입장에서는 형태란 프로세스이기도 하고, 문장 하나이기도 하다. 당근마켓의 형태는 ‘앱’의 디자인 요소도 있지만, 근처의 사람들만 허용하는 중고 시장이라는 비즈니스 로직을 포함한다. 내가 보는 형태는 이렇다.


그러면 기능은 무엇인가. 버튼을 눌렀을 때 나와야 하는 결괏값이 나오는 것? 인수조건과 같은 형태 혹은 기능정의서에 쓰이는 것들을 볼까, 사용자는 로그인 버튼을 누를 경우 아이디와 패스워드를 검증한 뒤, 리턴으로 로그인 상태로 바꾸며 회원 정보에 기반하여 새로운 페이지로 랜딩 한다~ 따위의 지루한 글을 써볼 수도 있고, 이 역시 기능이다. 이렇게 보면 기획자는 기능을 설계하고 디자이너는 형태를 만든다가 의미 있을 것 같기도 하지만.


또 한편으로 앞서 형태를 확장해 버렸기에, 기능의 정의도 확장을 할 수밖에 없다. 그럼, 다시 기능을 확장해 보면 무엇일까, 제품의 관점에서. 그것은 사용자의 목적이고, 사용자의 필요이며 또 골든 서클의 왜? 에 해당한다. 왜 사람들인 이 제품을 사용하는가? 당근마켓으로 돌아가면 안심할 수 있는 중고거래이고, 쿠팡으로 보면 무엇이건 빠르게 배송받는 경험일 것이다. 그럼 다시 기능은 이 제품이, 서비스가 해결하고자 하는 ‘문제’로 조금 더 추상화할 수 있을 것이다.


따른다는 건 무엇인가? 리더십과 팔로워십을 생각해 본다. 적합해 보이진 않지만, 리더가 설정한 방향으로 가기 위해 노 젓는 사람의 비유가 쉬운 편이다. 다르게 해 보면 리더는 이끌고, 팔로워는 밀어서 무거운 무언가를 옮기는 임무를 달성한다. 이런 그림을 그려보면 따른다는 것은 ‘수반한다’ 혹은 ‘영향을 받는다’를 넘어서서, 기능의 달성을 위해 고민하는 팀원의 모습도 떠오른다. 회원 리텐션을 10%를 높이면, 우리의 수익성은 15% 개선되고 앞으로 투자도 받고, 모두 좋아!라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팀원들은 (물론 리더도 포함해서) 회의를 하고, 여러 가지 않을 내고, A/B 테스트를 하고 그 과정에서 기획도, 디자인도, UX 글쓰기도 하겠지. 많은 형태를 만들어낼 것이다.


그렇다면 고민이 된다. 형태는 독자생존할 수 없는 개념일까?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존재의 이유를 찾는 것, 삶의 목적을 찾는 게 공허할 순 있지만 객체는 주체에게 분명한 목적으로 존재한다. 의자에서는 앉아 쉰다거나, 미술품을 보면서 감동을 느끼거나. 유리창을 통해 카페 안에서도 밖의 거리를 볼 수 있다거나. 기능을 ‘목적’이라고 정의했을 때, 형태가 수단적인 성격만 가지는지 헷갈릴 순 있겠고 그것에 가치판단을 할 수는 있지만. 첫째로, 수단은 목적에 비해 열등하지 않고 둘째로 관념적인 관계를 만들었기에 범주화가 필연적이니 받아들여야지 뭐. 아름다움은 기능이고, 그러기 위한 형태가 수단인 것이 이상하다는 생각을 하진 않는다.


예술의 영역은, 글쎄 잘 모르겠다. 그럼에도 일반적으로 우리가 ‘작가주의’라는 표현을 쓸 때, 예술가들은, 작가들에게는 분명한 의도가 있음. 의도 없음 조차도 의도임을 가정하게 되지 않던가. 목적을 부정하는 것은 마치 코끼리를 생각하지 마!라고 외치는 것과 같단 느낌이 든다. 계속해서 더 떠오를 것이고 종래에 머리를 가득 채우게 될 것이다. 여하튼, 어렵게 생각하지 말자. 관념적으로 범주화를 시도했기에, 그냥 받아들이는 게 속편 하다. 차라리 그 이전 가정이 틀렸다고 하는 게 올바른 비판이리라.


정리. 형태란 수단이고 기능은 목적이다. 이 정의가 얼마만큼의 울림이 있는가,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가 원어만 놓고 보면 라임도 되고 여러모로 예쁘긴 하다. 목적과 수단이라는 단어가 정치적으로 오염된 부분도 분명 있고. 어쨌든 이렇게 본다면 제품을 만드는 이들은 목적을 분명히 하고, 수단을 세심하게 고르고, 결과물을 평가할 때는 목적 - 기능이 충분히 구현되었는가를 보아야 할 것이다.


‘재난문자’를 제품으로 놓고 보자. 형태란 무엇인가? 몇 가지 코드를 가지고 통신사 기지국을 통하여, 각 단말로 매스미디어와 같이 송출한다. 단말단에서는 코드를 가지고 긴급, 재난 혹은 알림 여부를 구분하고 시끄러운 소리를 내고 팝업 형태로 정보를 전달한다. 일반적으로 이동통신단말의 기본 OS 단의 디자인을 따르며, 소리의 경우 경고음의 형태를 취한다.


그럼 기능은? 소리가 울리는 것이 기능인가? 아니다. 필요한 정보를 제때에 알리고, 필요한 사람이 충분한 정보를 전달받고 행동하도록 하는 것이다. 그럼 여기서 또 다른 형태를 고민해봐야 하는데 언제 이 정보를 알릴 것인가? 어느 주기로 할 것인가? 또 한국으로 놓고 보면 주무부처를 어떻게 둘 것이냐 혹은 누가 보낼 수 있을 것인가. 새벽 시간대에 꼭 발송해야 하는 정보는? 이런 프로세스도 ‘형태’ 일 것이다. 어쨌든 또 최종적으로 언제 알림을 받게 되는지는 이 프로세스를 통해서 결정되니까.


‘재난문자’의 형태는 기능을 충분히 따르고 있는가? 그럼 이 질문으로 돌아가보자. 잘 모르겠다. 아직 발전할 수 있는 여지가 더 많다. 경고음을 기반으로 주의를 확실하게 끄는 방식이 가져올 수 있는 위험도 고민해봐야 한다. 운전 중이었다면? 청각적으로 예민한 사람이 있는 곳에 모든 핸드폰이 동시에 울린다면?


좋은 제품의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 이건, 내가 생각할 때 크게 잘못된 부분을 찾을 수 없는 표현이다. 아니, 충분히 추상화되어 있는 공리에 가깝게 머리에 들어와 있다. 그럼 이걸 어떻게 만드냐? 는 다시 - 언젠가 기회가 되면 더 자세히 봐야겠지만 - 기능을 먼저 정의하는 것. 그것이 바른 기능인지 고민하는 것에서 시작해야겠지. 


사이먼 시넥은 <Start With Why>라고 했고, 디자인싱킹 계열에서는 우선 ‘공감’ 하여 문제를 찾으라고 한다. 많은 스타트업 하는 사람들이 스스로가 ‘문제해결자’라고 말한다. <뉴스룸>에서 아론소킨은 윌맥어보이를 빌어 문제 해결의 첫 번째는 문제를 인식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래, 거기서 시작하면 어떨까.



초고: 2023.09.05

탈고: 2024.09.26



좋은 제품 시리즈

좋은 제품에 관한 이야기 001 

좋은 제품에 관한 이야기 002

좋은 제품에 관한 이야기 003 

매거진의 이전글 일을 즐긴다는 것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