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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min Sep 24. 2023

좋은 제품에 관한 이야기 001

좋은 제품을 만들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가. 

좋은 제품을 만들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나요?라는 질문을 받았다.
좋은 질문을 받았으니, 가능한 좋은 답변을 해보자.



Disclaimer 


우선, 나는 좋은 제품을 만들어본 경험이 있거나, 관련한 학위를 받았거나 또는 트위터나 페이스북에서 관련한 따봉을 K 가 달리도록 수집해 본 경험은 없다. 따라서 이 답변은 그간 읽었던 몇 권에 불과한 내용과, 꽤 많은 실패를 비롯한 배움들, 그리고 건식 사우나에서 땀을 흘리며 나름의 고찰을 한 결론에 불과함을 밝힌다. (습식 사우나는 숨쉬기가 어려워서 고찰하기 힘들기 때문에)


(좋은) 제품?


무언가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그게 무엇인지를 우선 알아야 한다. 좋은 제품은 무엇인가. 다시, 한자 문화권에 파자라는 훌륭한 습관이 있는데, 대상의 정의를 포착하기 위하여 단어를 뜯어보는 것이다. 사실 영어에서도 라틴어족 (아마 대충 이런 이름의 무언가가 있겠지요?)에서 비롯하여 어원과 접두, 접미사를 바탕으로 단어의 의미를 명확하게 할 수 있을 텐데. 각설, 다시 좋은 과 제품으로 나누고. 제품을 먼저 보자.


제품은 제조공정을 거쳐 만들어진 재화를 뜻한다고 위키피디아는 말한다. 여기서 ‘제(製)’ 는 일부 명사에 붙어, 물건을 제조한 곳이나 그 재료를 나타내는 말이라고 옥스퍼드에서 말한다. 꽤나 영국적인 해석인데라고 생각했다. 제품을 기반으로 한자어 뜻을 추론한 것처럼 보인다. 일단 오케이. 품(品) 은 사물이 앞으로 좋게 될 성질이나 요소라고도 하고, 물품을 뜻한다고 한다. 오, 여기서 확실하게 알 수 있는 것은 제품이 물성을 필요로 하진 않는다는 것이다. 물품(物品)이라는 단어가 별도로 있으니까.


또, 품(品) 은 입구(口)가 세 번 반복된 형상인데. 나무위키에 따르면 회의會意 자로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의 레퍼런스를 기반으로, 눈으로 볼 수 없는, 재현 불가능한 것을 상형문자로 표현하기 어렵기 때문에, 추상적 의미를 만들기 위한 방식이라고 말하는데. 근데 한 블로그 글에서는 짐을 쌓아 놓은 모양을 뜻한다고 하기도 하고 (이 경우에는 상형에 가깝지 않을까) 또한 말이라는 것이 중요하기에 홀수로 표현한 - 그래서 품성, 인품을 말할 때 입을 바탕으로 만든 회의자라 말하는 데. 뭔가 스윽 와닿지는 않고 우리가 말하고자 하던 제품에서는 동떨어진 느낌도 있다.


그렇다면 Product라는 어원으로 가보자. Pro (앞으로)와 Duct(이끌다)라고 네이버 블로그에서 설명해 주었다. 언제 시작된 단어일지 모르겠지만 ‘제조공정’이라는 것이 필연적이라고 말하는데, 어쩌면 산업 혁명 이후로 생성된 조어일까? [이 글]에서는 라틴어, productum 즉, 곱셈을 통해 얻어지는 수학적 수량이라는 것이 어원이며, 15세기에 조성되었다고 기술하고 있다.


상업적으로 생성되는 것이라는 의미 자체는 1890년대에 부여된 것이라고 되어 있는데. 여전히 producen, 즉 발전하다, 진행하다 연장하다는 라틴어 producere, 앞으로 이끌거나 가져오다, 끄러 내다에서 유래함을 밝히고 있다. 비유적으로는 촉진하다, 권한을 부여하다, 늘리다 확장하다의 뜻도 있다곤 하는데. 정치 경제학적 의미에서 통사를 보면 1827년에 가치를 창출하다고 말했다고 하는데. 자본론이 출간된 것이 1867년이니 이미 이 시기에 관련한 논의가 산업혁명을 따라서 이뤄졌다고 봐도 무방할 것 같다.


그렇다면 다시. 제품이란 물성을 전제하진 않으나, 무언가의 ‘공정’ ‘과정’을 거친 결과물로 말해볼 수 있겠다. 제품 주도 성장 (Product Driven Growth)이라는 말을 주로 할 때, 소프트웨어 공학적인 측면에서도 마찬가지로 사용가능하고, 그래서 그 공정을 폭포수(waterfall) 방식으로 하느니 기민한 (Agile) 하는 방식으로 하느니 논의가 계속되고. 프로덕트 매니저다, 프로덕트 오너다 하는 타이틀을 가지고 말장난이 시작된다고 본다.

하지만, 어원을 가지고 꼰대짓을 해보자면, 애초에 프로듀스 자체가 벡터다. 지속되는 무언가 이고, 어쩌면 제품이라는 것은 계속 변형되어야 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끈다는 의미는 방향이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물로 곱셈으로 얻어지는 수학적 수량을 기대하게 되는데, 그 중간 단계로의 제품은 포괄적인 의미가 ‘프로세스’ 결국 제품은 과정이다라고 논리적인 점프를 하게 되는데.


(좋은) 제품 프로세스?


첫 번째 이유는, 현대에 와서 제품은 언제나 업그레이드를 해야 하고, 소프트웨어 영역에서는 필연적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릴리즈를 얼마나 자주 하느냐가 어쩌면 좋은 제품의 척도일지도 모르겠다. 끝없는 개선. 시지프스의 형벌로 받아들인다면 그대로 좋겠지만, 어쩌면 어원에 근간한 끝없는 미지로의 탐험, <스타트랙>의 이야기 같기도 하다. 한 문장으로는 <토이스토리>의 버즈 라이트이어의 입을 빌려 “To Infinity and Beyond” 기술은 발전하고, 무어의 법칙, 황의 법칙, 파괴적 혁신 등등등등, 제품 밖이 변할 테니, 좋은 제품은 세상에 좋게 보이기 위해서 계속 변해야 할 것이다. 아니라면 우리는 아직도 스큐어모피즘 UI의 세상에서 살고 있었겠지. 


두 번째로는 물성의 유무와 별개로, 제품과 제품을 만드는 사람은 동떨어질 수 없다고 믿기 때문이다. 무슨 말이냐 하면, 첫 번째와 같이 제품이 계속해서 변해야 한다고 하면 제품의 의미를 확장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얕은 생각인데. 어쨌든 아직은 AI 가 단독으로 무언가를 만들지 못하고 있는 이 시점에서 - 인공지능이 스스로의 욕망과 의도를 가지기 전에는 나는 그렇게 해석한다 - 결국 제품과 제품을 만드는 사람 (producer)는 떨어져 있을 수가 없다.


생각해 보면, 우리가 좋은 제품을 볼 때마다 프로듀서, 제작자를 떠올리게 된다. 아이폰을 보며 스티브 잡스와 팀 쿡, 조나단 아이선을 떠올리고 더 나아가 그 이면의 디터 람스의 브라운까지 올라가게 된다. <신서유기>가 재밌다면 나영석 PD를 떠올릴 것이고. <잠>이라는 영화가 재미있었다면 그 감독과, 그 감독을 만들어냈을 박찬욱 사단까지 생각하게 된다. 좋은 제품이란, 이것을 누가 만들었을까 궁금하게 하고 - 다시 그렇다면 굳이 제품과 제품을 만드는 사람을 분리할 필요가 있을까 싶다.


좋은 (제품/프로세스)?


그렇다면 좋다는 것은 무엇인가. 가치 판단의 영역으로 가게 되면 참으로 곤란해진다. 스타트업 개론 101 정도에서 비타민이 아니라 진통제를 팔아야 한다고 하는데, 1) 비타민은 그럼 다 안 좋은 제품인가? 2) 햇빛을 많이 보지 않는 현대인이 비타민D 합성이 제대로 되지 않아 병증이 생겨난다면 비타민이 진통제보다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좋은 제품이 아닐까? 3) 고함량 이것저것 영양제들은 그렇다면 왜 비싸게, 잘 팔리는가?


많이 팔리는 것은 수학적 곱셈의 결과로, 제품에 수반한 무언가라고 본다. 좋다, 나쁘다의 결정은 그전에 이뤄진다. 고흐의 작품이 당대에 팔리지 않았다고 좋지 않은 ‘제품’ 인가? 시대와의 공명이 좋은 제품의 조건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그것이 프로덕트-마켓-핏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하지만, 제품이 프로세스라면, 그것을 찾는 과정과, 그 안에서 고생하는 사람들도 포함하게 되니까 이건 의미가 없기도 하겠다.


나에게 좋은 제품이란 무엇일까. 아주, 아주 기초적으로는 나의 문제를 해결해 주는 제품이었다. 특히 소프트웨어 적으로는,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이거 저거 다 불편해도 예쁜 것을 택하는 경우가 있었다. 심미적 아름다움과 감성도 UX의 요소이고, 이 역시도 나의 만족감이라는 문제를 해결하고 있으니, 다시 문제 해결로의 제품이 좋은 것일까.


소프트웨어로 돌아가보면, ‘재미있는’ , 아니 물성을 지닌 제품에서도 나는 재미있는, 새로운 시도를 응원한다. 나의 철학에 연결된 내용일 텐데. 철학이라고 하니 괜히 젠체하는 느낌이네, 그냥 나의 선호. 아니 나의 고집 같은 것인데. 삶은 즐겁고, 행복해야 하고 따라서 즐겁기 위한 요소가 있는 무언가는 가치가 있다고 본다. 이 역시도 나의 문제를 해결한다고 넓은 의미에서 정의할 수는 있겠지만.


문제는, 모든 사람의 ‘문제’가 각기 다르다는 것이다. 따라서 누군가에게 좋은 제품은 다른 이에게 안 좋은 제품일 것이다. 고혈압 약이 저혈압을 앓는 이에게 좋은 제품일 리가 없지 않은가? 그래서 우리의 사용자가 누구인지 가설을 세우고, 계속해서 고민하고 필요하고 가능하다면 만나는 게 중요한데, 각설. 이런 방법론을 떠나서 모두에게 좋은 제품이라는 것은 실존할 수 없다는 것은 인정해야 한다. 그것은 모두에게 아름다워 보이는 미녀/미남이 있다고 믿는 것과 같다.


음, 취소. 그것은 가능할지도.... <눈물을 마시는 새>에서, 그런 존재를 ‘나늬’라고 표현했고 각자의 시대에 독창적인 아름다움으로 사람들을 이끈다고 서술했다. 음, 이건 너무 마이너 하니, 장르문학을 넘어 다시 어원 공부 시간. 정형돈의 <제목 없음 TV>에서는 다른 책을 인용하여 (책 이름은 기억이 안 난다) 아름답다의 어원은 ‘나답다’라고 말한다. 둘레를 측정하는 단위인 한 아름~ 이 나의 팔 너비에서 비롯된 것을 보면 그럴싸하고, 또 아름답다의 어원에 관한 이야기가 아름다웠다. 생각해 보면 <눈물을 마시는 새>에서의 나늬도, 모두 '나다운' 존재들이었고. 


다시, ‘나 다운 것’으로 사람들을 이끌 수 있을까. 인정한 내용, 모두를 이끌 순 없겠지만 우리가 프로덕트 마켓 핏을 찾았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을 이끌려면 어떤 아름다움, ‘나 다움’을 가져야 할까? 결국 또 관념적인 이야기, 추상어, 상징어 속에서 길을 잃어버리고 마는 게 아닌가 하는 걱정이 이쯤에서 들었다면 너무 늦었다. 어차피 우리는 아지랑이를 겨냥하고 논의를 시작했었으니까. 그러나 끝까지 가보자.


좋음이 가치 판단의 문제이고, 우리가 <스타크래프트>의 ‘프로토스’ 종족처럼 하나의 넥서스에 모두 연결된 군집으로의 정신체로 진화하지 않는 이상, 각자의 좋음의 기준은 모두 다를 것이다. 어렵다. 하지만 작가주의는 실재한다. 어떤 작가는 현실을 해체하여 자신의 이야기를 빚어내고, 이것이 좋다고 사람들에게 전달한다. 어떤 셰프는, 이질적인 두 재료를 조합하여 자신이 ‘좋다’ 고 믿는 것을 서빙하고, 미슐랭 스타를 받는다. 결론적으로 틀렸지만 스티브 잡스는 아이패드에 스타일러스는 필요 없다고 믿고, 그렇게 제품을 만들어서 세상에 선뵈었다. (틀렸지만, 예전의 마우스 제품일 때 버튼 하나면 충분하다고 밀어붙인 이야기도 기억난다)


무엇이 좋은가. 그것을 아는 사람을 비저너리라고 부르는가? 나는 아니다고 본다. 결국 애플의 마우스, 트랙패드도 여러 가지를 지원하고, 바뀌었다. <실리콘 밸리의 팀장들>에서 스티브 잡스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나는 언제나 옳다고 말하지 않았네. 언제나 똑바로 한다고 했지. 스티브도 다른 사람처럼 실수를 하지만, 자신이 실수를 저지를 때 지적을 해달라고 직원들에게 강력하게 요구하거든. 그래서 결국에는 문제를 바로잡지” 나는 이 문장을 읽고, 오랜만에 스티브 잡스 뽕을 맞은 것 마냥 뉴발란스 992를 사야 하는가 당근마켓을 서성였다. 뛰어넘어 결론으로, 안 샀고 이유는 만약 스티브 잡스라면 이런 따라쟁이 구매를 어떻게 생각해 보니, - 음 팬심으로 이해할 것 같진 않아서.


또 각설. 좋은 제품은 좋은 프로세스이고, 또 그것은 무언가가 좋다고 믿는 사람에 의해서. 그리고 그런 사람들의 상호작용에 의해서 만들어진다. 우와, 다시 또 뻔한 말, 재미없는 이야기이려나 싶지만. 무엇이 좋다고 믿는다는 것과, 제품을 만드는 사람 간의 상호작용은 어떤 것인지 보자.


좋다고 믿는 것과 자신의 멋


좋다고 믿는 것은, 자신의 주관, 자신의 멋이 있어야 한다. 자신의 기준. 예컨대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라거나. 그게 우리 제품의 원칙이고, 우리가 좋다고 믿는 가치이다. 요즘 빠진 시가 있는데, 박노해 시인이 <진정한 멋>이라는 글이다. 


옮겨 적어보자면


사람은 자신만의 어떤 사치의 감각이 있어야 한다.
자신이 정말로 좋아하는 것을 위해
나머지를 기꺼이 포기하는 것.
제대로 된 사치는 최고의 절약이고
최고의 자기 절제니까.

사람은 자신만의 어떤 멋을 간직해야 한다.
비할 데 없는 고유한 그 무엇을 위해
나머지를 과감히 비워내는 것.
진정한 멋은 궁극의 자기 비움이고
인간 그 자신이 빛나는 것이니까


나는 이 시를 읽으며, 제품을 만드는 사람은 ‘곤조’가 있어야 한다는 나쁜 표현을 고쳐야겠다고 다짐하고, 이 시를 4번 정도 필사했다. 외울 때까지는 가끔 반복할 것 같다. 음, 그래 나의 멋은 무엇일까? 그것도 모두가 다르다는 문제는 있겠지.


그러니 무엇이 좋은 제품인지 논의하고, ‘지적당해야 한다’ 나는 홀로 풀스택인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는데. 오타니 쇼헤이도 혼자서 야구는 못하지 않나? 그러니 우리가 서로 도와야 하고, 서로에게 각자의 멋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어야 한다.


그래서 피드백, 커뮤니케이션이 중요하고, 따라서 심리적인 안정감이 중요하다. 여기서 심리적 안정감인 회사가 내일모레 망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을 덜어내는 것에 더하여, 인간적인 안정감이 중요하다고 말하는데. <두려움 없는 조직>에서는 제품을 만드는 과정에서 다른 불안함 보다는 사람에 의한 것이 두려움을 만든다고 말한다. 심리적 안정감은 구글의 성공을 이끈 다른 요소, 분명한 역할과 목표, 신뢰할 수 있는 동료, 자신의 업무가 중요하다는 믿음, 그 업무가 팀에도 중요하다는 믿음과 함께 중요한 요소라고 말하는데. (이건 줄리아 로조브스키라는 양반이 말함)


<두려움 없는 조직>의 저자는 심리적 안정감을 ‘인간관계의 위험으로부터 근무환경이 안전하다고 믿는 마음’이라고 정의했다. 그러니까, 외부적인 환경요인으로 인한 스트레스보다 더 위험한 것은 바로 내가 목소리를 높여서 나의 멋에 관해 이야기했을 때, 우리는 들을 준비가 되어 있는가? 하는 부분. 그리고 그럴 수 있는 솔직함에 대해서는 <실리콘밸리의 팀장들> 에서 자세히 말하고 있는데, 여튼. 


비유적으로 어떨지는 모르겠지만 <원피스>에서 고잉메리호와 안녕을 고해야만 할 때, 어쨌든 우솝은 루피에게 말을 할 수 있었다. 그들은 동료이니까. 감정적으로 격앙이 되었고, 여러 가지 문제가 있었지만 그들은 새로운 배를 타고 더 먼 곳으로, 끝을 향해 나아갈 수 있었다. 나는 이 장면을 좋아하는데 여러모로, 조직의 안정감과 목표 등등 여러 가지를 생각해 볼 수 있으니까, 그러는데.


다시 또 각설. 그래서 좋은 제품을 만들기 위해서는 우리가 좋은 제품이 무엇이라는 각자의 아집이 있어야 하고. 그렇지만 서로의 대화를 통해, 개인의 아집을 우리의 아집으로 다듬어 나갈 수 있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는 외부 환경에 스트레스와 별개로 굳건한 동료로의 믿음을 서로 나누고, 지적과 조언을 나눌 수 있는 환경을 구축해야 한다.


마음먹기


그리고 이 모든 것은, 그러기로 결정함으로써 달성 가능하다. <뉴스룸>에서 찰리 가 윌 맥어보이에게 ‘우리는 방금 좋은 뉴스를 했어’라고 말하고 왜 그럴 수 있었는지를 물은 다음 자문자답을 한다. “우리가 그렇게 하기로 결정했으니까 We decide to” 아론 소킨 작가의 작품 <뉴스룸>에서 내가 자주 인용하던 것은 “문제를 해결하는 첫걸음은 문제를 인식하는 것이다”라는 파일럿 에피소드의 대사였는데, 이제는 바꿀 때가 되었다고 느낀다. 그러기로 하는 것, 이 어떨 때는 더 중요하다.


좋은 제품이, 프로세스이고 그러기 위해서는 에어비앤비 CEO 인지가 말한 것처럼, "If you don't name on it, don't ship it" 같은 태도가 필요할 것이다. 그것은 나는 좋은 제품을 만드는 사람이라는 생각과, 그러지 못한 것들을 거부하고 나아가는 자세일 텐데. 이 모든 일들은 내가 그럴 사람이 되기로 선언함으로 시작일 것이다. 아이고, 일체유심조 같은 꼰대 소리로밖에 보이지 않겠나 싶지만, 진심이다. 


TLDR: 그래서 좋은 제품을 만들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하는 질문에 답을 하자면

- 많이 많이 건너뛰고.


그러기로 하는 선언이 중요하다고 본다. 

물론, 거기에 수반한 수많은 해야 할 일들은 그러기로 마음먹은 다음에 이야기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되묻고 싶은 건, 우리는, 당신은 좋은 제품을 만들고 싶어 하는가요?라고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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