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매일 글쓰기 (006/100)
고객과 사용자에게 집중하라. 언제나 나오는 말이다. 비유적으로는 고객은 왕이다 같은 표현으로 나타난다. 자본주의에 잠식된 현대에 자본, 돈이 곧 지배자이고 단일 가치 척도이니 그리 틀리지 않았다고 할 수 있겠다.
하지만 뭐 꼭 그런가. 샤넬과 롤렉스는 그 비싼 물건을 팔면서도 ‘왕’ 들을 줄 세운다. 사실 대중문화의 시대, 군중의 소비가 중요한 이 시점에서는 ‘왕’ 은 다양하고, 많아졌다. 모두가 특별하다는 것은 아무도 특별하지 않다는 것과 같다. 분산된 권력이기에, 힘을 잃을 수밖에.
따라서 제품과 서비스가, 회사가 모셔야 하는 왕은 통계적으로 요약된 프로파일, 페르소나이다. 오트꾸띄르의 시대는 일반적으로는 간 상황이다. 최소한 메이저는 아니지 않은가. 인간의 수가 폭발적으로 늘어난 이 시점의 대중의 힘은 특별한 소수를 압도할 수 있다. 적어도 이 시대에 슈퍼 내추럴이 있지는 않으니까.
그러는 한편 고객의 수가 한정된 영역도 있긴 한데. B2B의 경우가 그럴 것. 대체적으로 커스터마이징이 많이 필요하고. 내가 일하는 바닥에서는 그래서 SI라는 산업이 생성되기도 했고, 컨설팅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고객은 왕이어서는 안 된다. B2C라고 부를 수 있는 위에서 설명한 고객 개개인이 왕일 수 없는 이유와는 다르게.
왕이라고 하면 이끄는 자이고 (그 권한과 권위의 획득의 정당성과는 별개로) 따라서 그를 따라서 무언가를 해야 한다. 그렇지만 현대의 UX 나 사업, 스타트업 쪽에서 늘 명심해야 하는 것은 ‘고객은 생각보다 모른다’이다.
고객은 보통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를 잘 모른다. B2B의 상황에서 꽤나 똑똑할 상대방 회사들도, 생각보다는 잘 모른다. 회사의 경우에도 여러 사람의 집합체이니까, 최종적으로 ‘돈을 더 벌자’ 말고의 모든 ‘왜’ 들을 잘 모르고 시작할 때도 있다.
한편으론 또 고객의 요구사항은 시도 때도 없이 들어온다. 본인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기 때문에, 이런 현상이 나온다. 계획적으로 이때 무엇을 하고 저것을 한다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영환경이, 기술이 급변하는 것도 한 몫 할 것이다.
이러한 어려움 속에서 고객은 마치 왕처럼, 의사소통의 주도권을 지니고 있다. 맥락 정보를 전달할 의무를 지지 않는 것처럼. 그저 난 대충 이런 것을 원한다고 하는 경우가 많다. 물론 이 경우는 SI 적인 경우, 명확하게 제품 단위로 주문을 확정하지 않는 SW 영역의 일이긴 하지만, 여하튼.
그래서 내가 생각하기로는 고객은 아직 말문이 제대로 트이지 않은 아기와 같이 생각하는 것이 좋다고 본다. 언제 어느 때나 우는데, 왜 우는지 아직 제대로 배우지 못한 부모들은 당황하기만 하고. 반대로 아기 스스로도 무엇이 부족한지 제대로 인지하지도, 소통하지도 못하는 상황.
이런 비유가 무슨 의미가 있는가? 일차적으로 고객의 요구사항은 가능한 들어줘야 하겠지만, 그것이 꼭 답은 아니라는 것이다. 제품을 담당하는 사람으로, 제품의 부모이기도 하지만 고객의 문제를 해결하는 부모여야 한다. 따라서 요구사항이 계속 달기만 한 사탕을 달라는 것이라면 어느 정도 조절할 필요가 있고. 단순히 요청을 들어주는 것을 넘어서 저 아기를 건강하게 키우려면 무엇을 해야 할지 스스로 고민해야 한다.
더불어서 말을 가르쳐야 하겠지, 아기에게는. 마찬가지로 고객사. 고객이 우리의 언어, 우리의 기술과 브랜드에 익숙해지도록 설득하고 또 이끌어야만 한다. 그래야지 앞으로도 계속 convention 안에서 소통할 수 있을 것이니까.
의미가 있는 비유인지는 모르겠지만 최근에 그냥 이런 생각을 했다.
초고: 2023.08.17
수정고: 2024.09.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