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매일 글쓰기 (003/100)
면접을 많이 보았다. 3개월 이내에 2~30회 정도 본 것 같다. 다른 이들의 모습을 관찰하고, 평가하는 것이 꽤나 재미는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그 줄 세움이라는 것에 대한 피곤함과 스트레스가 꽤나 컸다. 물론 부족한 사람도 있었고, 매력적이지 않은 사람도 있었지만 기껏해야 문서 수십 분 면접 수십 분으로 이 사람을 평가한다는 것인 얼마나 오만한 일일까.
그래서 큰 기업들 중에서 면접을 수 번, 수십 번 본다는 것도 이해가 되기는 한다. 중요한 자리일수록, 내부 문화가 공고할수록 그렇게 하는 것이 더 효율적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또 한편으로는 만약 이게 ‘쇼핑’이라고 비유해 본다면, 수천, 억대까지 올라가는 상품에 대한 구매인데 이 정도로 신중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지. 내가 1억이 넘는 차를 산다고 하면, 내가 아무리 돈이 많다고 해도 이것은 정말로 필요한가 다른 차에 대비해서 무엇이 좋은가. 이런 고민을 수개월은 하지 않을까 싶다. 물론 돈이 아주 아주 많으면 또 모르겠지만.
각설하고, 면접을 집중해서 여러 번 보다 보니 그래도 나름의 기준은 생겼다. 가설의 수준이 지면 현재로는 도움이 되는 편인데, 일단 커뮤니케이션을 보는 것은 유의미하다고 본다. 이 사람이 말하는 스타일이 나와 맞는가는 중요한 판단 요소인데, 이게 객관적인 지표는 아니라 지원자에게는 늘 미안한 감정이 생긴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것이 우리와 함께 한다면 우선은 나와 커뮤니케이션을 할 것인데 내가 그 커뮤니케이션에서 가치를 느끼지 못한다면, 함께하기는 어려울 것이니까.
이 관문을 통과하는 데 첫 번째는 긴장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 꽤나 똑똑하고, 엄청나게 이력이 좋아도 말이 잘 통하지 않으면 매력적이지 않은데, 긴장하면 이게 참.. 나쁘다기보다는 판단하기가 어렵다. 지금 얼마나 긴장했나요 물어보고, 여러 가지로 풀어서 이야기해 보려고 노력하는데 쉽지는 않다. 그럼 반대로 내가 긴장을 안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생각해 보면 우선은 이건 서로가 간을 보는 자리라고 인식하는 게 중요할 것 같다. 누가 우위에 있는 게 아니라 각자의 계약에 앞서서 서로의 의향과 조건을 물어보는 자리이니까. 회사와 노동자로의 계약을 하기 전에 서로의 조건을 맞춘다 는 곧 동등한 관계라는 점. 이게 우선해야 한다.
틀린 대답보다는 꾸며내는 대답 같아 보이는 게, 긴장하면 자주 보이는 것 같다. 그것이 실제로 진실인지 아닌지는 증명하기 어려운데 긴장을 하면 그렇게 보일 확률이 크다고 생각한다. 말이 꼬이고, 따라서 이 말이 이 사람의 생각인지 어디서 본 것을 그대로 외운 것인지 판단할 때 후자로 갈 확률이 크다고 본다. 계속해서 대답의 본의미를 알기 위해 여러 번 되묻기는 하지만 이 시점에서 이미 흥미가 좀 떨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또 하나의 판단 기준은, 객관적이지 않더라도 유의미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적극성이다. 이게 꼭 MBTI E여야 한다거나, 활발한 성격이나 이런 것을 의미하는 건 아니다. 예컨대 어떤 질문을 했을 때 의도를 생각하고, 내가 생각하는 나의 장점을 어필하기 위해 질문 이상의 대답을 하는 것인데. 이게 또 지나치면 - 말이 너무 기네요 - 같은 (그러나 순화된) 나의 답변을 받겠지만, 그래도 안 하는 것보다는 낫다고 생각한다.
<실리콘 밸리의 팀장들>이라는 책에서 애플인가 어디서 인가 여하튼 꽤나 유명한 회사에서의 이야기가 인상 깊었었다. 누군가를 채용할 때, 지원자가 ‘이건 어떻게 하죠? ‘라는 역 질문을 하니 면접관이 '그걸 해결할 사람을 채용하는 거죠'라는 대답을 했다고 한다. 결은 약간 비슷하다. 좋아하는 표현은 아니지만 크게 틀리지 않은 표현 ‘회사는 학교가 아니다’. 적어도 회사가 ‘고등학교’는 아니다로 바꾸면 좀 더 명확하겠다. 명확한 교과서가 있지도 않고, 사실 우리도 모르는 거 많다. 어떤 가설과 명확한 비전이 있을 수도 있지만 언제는 포기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자기 의견이 있고 그것을 표현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래서 적극성과 긴장하지 않음이 보여야 한다고 본다. 이게 스타트업일수록 중요한데, 다른 곳도 마찬가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은 해본다. 이 과정에서 틀리더라도 가설적으로, 논리적으로 사고할 수 있는지도 엿볼 수 있다. 문제를 풀 때, 지닌 정보가 회사에 비해서 지원자가 적은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정보란 읽고, 보면 되는 거니까. 하지만 주어진 정보 아래에서 ‘틀리더라도’ 생각을 전개해 보는 것은 필요한 데, 그것이 적극성이라는 단어로 대표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다음 관문은 지극히 개인적인 부분인데. 즐거워야 한다. 개인적으로 일이라는 것이 그 자체로 즐거운 것은 어렵다고 본다. 일과 나의 관계는 즐거울 수 있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면접이라는 평가 과정이 즐겁다는 것은 이상하다고 본다. 하지만 면접 자리와 나의 관계는 즐거울 수 있다. 공자가 말한 즐기는 자가 최고! 같은 표현과 이어진다고 보는데, 이 자리를 단순히 평가받는 자리를 넘어서, 피드백을 가능한 얻어서 성장힐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하고 즐겨야 한다는 느낌인데, 참 어렵고 꼰대 x 꼰대 같기는 하다.
그러나 위의 긴장하지 않고 적극성을 가진다면, 면접이라는 자리를 충분히 내 기회, 배움의 자리로 삼을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글세, 이 넓은 세상에 내 자리 하나 없겠는가, 그리고 이 회사 아니면 내가 갈 곳이 없겠는가.라는 게 - 물론 개인이 처한 여러 가지 상황이 있으니 단순히 이렇게 말하는 것이 참 미안한 일이지만 - 필요하다. 그리고 오케이, 너의 질문은 재밌군, 나는 이렇게 생각해.라는 태도와, 그것을 표현하는 게 필요하다고 본다. 근자감 같은 거라고 봐도 좋겠다.
면접자리가 불편할 수 있긴 하지만 이 정도 불편함은 일을 하면서도 충분히 느낄 일 많지 않은가?(이야, 정말 꼰대스럽다. 물론, 이렇지 않도록 면접관/회사가 노력해야 하는 것은 맞다고 분명히 밝힌다. 그럼에도 사람에 따라서 어떤 질문이 불편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적어도 나는 면접자리에서 반대하기 위해 질문하거나, 가르치기 위해 질문하고 있진 않다고 생각한다. 때문에 이런 상황에서 즐기는 태도가 보이지 않는다면 - 마냥 "어려운 질문이다, 괴로워"라는 태도가 보인다면 최소한 우리 회사, 아마도 스타트업에서는 함께 하기 어려울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음, 사회생활을 처음 하는 경우에는 조금 다를 순 있겠지만.
뭔가 쓰다 보니 굉장히 긍정심리학적인 재미없고 꼰대스러운 글이 되고 있지만, 요즘 느끼는 심리가 이렇고, 이래서 나이 들수록, 지위라는 것을 획득할수록 꼰대가 되고 보수화 되는 이유에 대해서 짐작할 수 있는 자료가 되진 않을까 걱정도 된다. 언젠가 꼰대의 필요성, 젊은 꼰대란 무엇인가라는 글도 쓰려는 계획이 있는데 거기서 조금은 활용할 수 있지 않나 싶을 정도이다. 역시 꼰대화는 피할 수 없다는... 어쨌든!
위의 세 관문이 결국 딱히 MECE 하진 않다는 것을 눈치채신 분들이 있을 텐데, 계획 없이 두드리는 글이 꼭 그렇지 않은가. 그래서 그냥 무시하고 또 비슷할 수 있는 기준을 다시 한번 더 강조하고자 말하자면 ‘자기에 대한 확신’ 그러니까 주관이 필요하다.
주관이란 회사 입장에서는 양날의 검이긴 할 것 같다. 우리와 다른 주관, 태도 철학을 가진 사람을 뽑는 것은 위험하니까, 피하고 싶은 일이다. 나의 경우에는 그럼에도 주관을 가진 사람을 뽑자고 생각하는 입장인데, 마냥 다른 사람을 뽑아서 다양성을 채우는 것이 필요하다기보다는 결은 비슷하지만 다른, 그러니까 포카 드나 스트레이트 플래시의 비유에 천착하고 있는 입장이다. (언젠가 이런 글을 썼었다)
좀 다른 결이긴 한데, 성인이 되고 나서는 스스로의 주관을 세우고, 거기에 책임을 질 필요가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링컨인지 누구인지 나이 사십이 되면 스스로의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 했는데 난 그것이 주관, 생각이나 글로 치환될 수 있다고 본다. 얼굴은 상징이고 메타포니까. 드러나는 무언가가 얼굴과 같이 확연하게 구분될 수 있어야 하고, 그것을 책임질 수 있는가.
때문에 ‘지원자분에게 좋은 제품이란 무엇입니까?’라는 질문과 그로 파생되는 이야기가 어떻게 전개되는지가 나에겐 중요했다. 단순히 그냥 좋은 제품을 말하는 것은, 그러니까 잘 알려진 제품들 같은 건. 뭐 꽤나 재미없다고 느껴진다. 나랑 다르게 제품을 평가하는 사람을 만나면? 공격받는다는 기분보다는 재밌다는 생각이 든다. 나라면 그 제품을 좋다고 했을까? 그래서 여기서 이런 면이 있지 않나요 했을 때 방어하는 논리도 재미있다.
그리고 여기서 우리 직군(Product) 면접자 중에서 가장 인상 깊은 대답을 한 사람이 있었는데. ‘내가 담당한 직전 제품’이라고 답한 사람이었다. 엄청 시니어였고, 처우를 우리 수준에서는 도무지 맞출 수 없어서 모시지 못한 분이었는데, 이 대답은 꽤,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것이다. 음.. 우리 팀에는, 그리고 나에게는 이러한 주관과 자신감이 필요하고, 키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 쓰다 보니까.... 그럼 이런 과정을 거쳐서 뽑은 사람은 과연 일을 잘할까. 모르는 일이다. 알 수 없는 영역의 일이지 않나? 최선을 다할 뿐이지.
— 스포일러 주의—
갑작스럽지만, 이쯤에서 팀원과의 아이스브레이킹 시간에 인생 영화로 <컨택트> by 드뇌 빌뵈브 가 나왔는데. 그 영화를 말한 팀원이, 이미 예견되는 미래가 있다고 해도 그 길을 결정하는 주인공에 대한 연민과 어떤... 것을 느꼈다고 했는데. 그런데 나는 수년 전에 이 영화를 보고 일어날 일은 일어날 것이고, 그것을 마주하는 태도는 가능한가에 대해서 고민했다.
나는 그것을 선택으로 볼 순 없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러니까, 어차피 고정된 것이면 선택한 것도 아니지 않은가? 또 한편으론, 이게 저 이야기 안에서는 성립하지만 미래에 대한 것은 반증 불가능한 상태이고 따라서 어차피 알 수 없다고 보이기에. 그럼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그래서 어쨌든 미래가 고정되어 있건 말건 우리는 아직은 알 수 없다. 물론 이영도 아저씨는 <퓨처 워커>에서 (사실은 다른 물리학자 아저씨인지 철학자가 말한 것일 순 있다.) 미래는 과거가 고정됨으로써 결정되어 있다고 말하는데. 따라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현재에서 고정될 수 있는 과거를 만드는 것이고. 그 과거들이 미래를 결정하리라 믿는 것. 그러니 이러한 시도가 의미 있다고 믿고, 그러나 의심하며 계속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 싶다.
그러니 가설을 세우고 (오늘 이 글도 가설덩어리들이다. 이런 사람이 일을 잘하지 않을까 하는) 검증해 보는 거고. 그렇게 과거를 채워 미래를 닦아야겠지. 음.. 면접자도 그래야 할 것이고 면접관인 나 스스로도, 계속 그래야 하겠지. 어쩔 수 없이.
초고: 2023.08.25
탈고: 2024.09.25
탈고하면서.
별로 생각이 많이 달라지지 않을 걸 보면 줏대가 있는 것인지 발전을 하지 않은 것인지.. 헷갈리긴 한다.
그래도 하나는, 저런 기준으로 뽑은 지난 일 년간의 사람은 충분히 일을 잘하고 있다는 것.
추가로, 탈고가 시간이 더 걸리는 것 같다.... 왜냐면 일 년 묵혀서 보고 나니 말도 안 되는 표현이나 문장이 너무 많아서. (여전히 남아 있겠지만 이제는 지쳐서 못 고치겠다)
Disclaimer.
당연하지만, 글쓴이의 회사의 인재관이나 입장을 대변하진 않습니다.
또, 그렇다고 저런 기준만 가지고 사람을 뽑지도,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