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매일 글쓰기 (011/100)
업무를 10년 넘게 했으면 자랑스러운, 내세울 수 있는 업적이 3가지는 있어야 한다는 어떤 글을 보았다.
아쉽게도 레퍼런스를 찾지는 못하겠다.
꽤, 기억에 남았다. 왜 기억에 남았을까. 동의하는 부분이 있어서겠지만, 또 어쩌면 반발심 때문이었을 것이다. 저 말에 동의하지 않겠다는 자격지심.
내가 메타 인지가 부족하다고 평해주는 친구가 있었는데, 자기 비하가 너무 심하다고 했다. 스스로는 잘 모르겠다. 자기 비하를 제대로 정의를 해야 할 것 같은데. 여하튼, 나는 내가 이룬 게 별로 없다고 느끼고 있다. 자랑스러운 성과라면, 역시 아무래도 IPO 나 엑싯이나, 대기업 팀장급 이상이라거나... 뭐 그래야 하지 않겠는가. 그래서 저 위의 첫 질문에 뭐 3가지나 있어야 해? 하는 마음이 들어서 기억에 강하게 남은 것 같기도 하다. 자랑을 꼭 해야 하는가 하는 생각도 들었고. 자격지심인 것이지. 찰리 멍거 씨가 행복하려면 기대치와 성과 관리라고 했던 것 같은데 쓸데없이 눈만 높은 건가 싶기도 하다.
눈이 높다고 하니. 어렸을 때의 마음가짐 같은 것도 떠오른다. 어릴 때는 게으른 천재라는 가짜 서사에 빠져있었고, 그렇고 싶다고 생각했다. 왜 그랬을까. 타고난 재능에 대한 부러움이 있었기 때문일까, 아니면 노력이 힘들다는 것에 대한 반응이었을까. 아직은 잘 모르겠다. <록키 발보아>의 대사가 떠오른다. 얼마나 강하게 맞는지 , 그리고 다시 일어설 수 있는지가 중요할 텐데. 어릴 때는 그냥 타고는 맷집, 타고난 무언가가 없기 때문에 안된다는 생각이 있지 않았나 싶기도 하고.
반대로는 나는 충분히 노력하지 않고 있다고 말하는 습성도 있는데. 어쩌면 이게 나의 가장 심한 자기 비하라고 생각은 하고 있다. 아무래도 저 게으른 천재 서사와 자기 비하에서 비롯된 것인가 싶기도 하고. 내 타고난 무언가가 부족한 게 아니라 노력을 안 해서 그래라고 말해버리는 일종의 자기 노력 비하. 그러니까, 흔히 하는 "애가 재능은 있는데 게을러서", 뭐 이런 평가를 스스로에게 하고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음... 그러니까, 결국은 나는 내가 타고나길 잘난 사람이길 바라고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이쯤에서 아직도 기억나는, 하지만 중학교인지 고등학교인지 정확히 기억은 안나는 때의 체육시간. 100m 달리기에 대해서 설파하던 선생님 왈, 정말로 100m를 온전히 달렸다면, 마치고 나서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만큼 지쳐야 한다고 했다. 음, 그게 진실인지 어쩐 지는 모르겠다만, 그 이후로 지금까지 '최선을 다했느냐'에 대한 비유는 여기에 맞추어져 있다고 생각한다. 힘이 다 빠질 정도로 달리는 것. 그래서 이 관점에서 정말로 내가 최선을 다한 경우가 얼마나 있느냐 하면, 글쎄 생각보다 잘 없는 것 같다. 그래서 노력 관점에서 내가 충분히 노력하고 있다고 나를 평가하기가 어려웠다.
또, 인생은 길게 봐야 하니까 당연히 단거리의 비유만으로 가면 안 되는 것도 사실이고. 일본 모 광고처럼 정해진 길을 가는 것도 아니어야 하고. (인생은 누가 마라톤이래! 하는 광고인데, 레퍼런스 찾기가 또 참 귀찮아서...) 또 어떤 업무 짤처럼 Work Hard 가 아니라 Work Smart 해야 하는가 아닌가 싶기도 하고. 답 없는 질문에 답하느라 이렇게 시간 쓰는 것도 굉장히 멍청해 보이고, 나는 참 쓸데없이 시간을 보낸다 싶기도 하다. 이런 생각을 발전시키는 것도 업무에 집중할 시간을 뺏는 건데라면서. 중독적인 자기 비하의 연속.
그럼에도, 다시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가서 자랑스러울만한 일이 없었는가 하면, 또 없지 않았다. 사실 나 개인으로 보면 딱히, 글쎄... 싶은데 이제 팀으로 일하게 되면서. 아니, 정말로 팀으로 일하는 법에 대해서 고민하면서 생겨난 자랑스러운 순간들이 있긴 했다. 그중 몇 가지들을 앞으로 좀 써봐야 하지 않나 싶은데. 일단 지금은 어떤 1:1에 대해 생각하고 있다.
1:1을 50번쯤 했을까, 그 사람과. 어느 순간, 내가 더 이상 코칭할 게 있나 하는 순간이 있었다. 적어도 그 순간, 그 팀원이 하고 있는 업무에 관해선. 나랑 거의 싱크로나이즈드된 상태라고 느꼈는데, 처음에는 약간 무서웠다. 어쩌면 나의 그릇된 편견을 심은 게 아닐까 하는 걱정이 크긴 했다. 내가 뭐라고, 이 사람을 이렇게 바꾸어놓았는가?
글쎄... 아니라고 생각한다. 일단 뭐, 내 성과로 내세우면서 하긴 그렇지만, 사람이 그렇게 쉽게 바뀌지 않는데, 그 사람의 성장(이라고 내가 주장하는 변화)이, 나와의 관계 만으로 일어나진 않았을 것이고. 또 그 사람이 가져오는 결과물이 적어도 회사 내부에서 보기에는 나쁘지 않았으니까. 뭐, 그래 더 나은 결과가 있을 수도 있겠지만 내 기대치 이상의 결과가 나오고 있었고, 그 팀원은 내가 바라는 방향과 목표, 그 이상으로 성장해 있었다.
청출어람이라는 고사가. 스승이 제자에게 바라는 가장 큰 것. 혹은 <눈물을 마시는 새>에서 나오듯 창조주가 창조물에게 바라는 가장 큰 게 어쩌면 자신을 뛰어넘는 그 순간이지 않은가 하는 그 순간. 그때의 감동을 아직도 돌이켜보면, 실제로 소름이 돋는다. 진짜로. 정말로 기뻤고, 감동했다. 무서움을 이겨내고 어쨌든, 이 사람이 변했다는 것을 보면서. '사람은 바뀌지 않는다'라는 명제를 드디어 뛰어넘었다는 감동.
물론, 사실 그 성장은 나의 코칭이나 무언가가 아니라 그 사람 개인의 능력과 노력, 그리고 다른 주위 환경과 시간의 영향이 더 크지 않았을까 하는 의심은 여즉 사라지지 않고, 사실 그 비중이 더 큰 것은 사실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럼에도 내가 하는 일이 의미 없지 않았다를 증명했다고 생각해서 자랑스럽다. 누군가에게 내세울 수 있느냐? 어딘가 면접에 가서 이야기할 수 있느냐 하면, 흠... 잘 모르겠다. 지금은 그렇다고 생각하긴 하는데, 이게 객관적으로 도움이 되는 성과는 아닐 것 같긴 하다.
하지만 진짜로, 뭐 남들이 뭐라고 하건 자랑스럽다. 매니저가 되고 나서, 팀원을 성장시켜 제품을 발전시키고 고객을 만족시킴으로 회사를 성공으로 이끌어야 한다는 명제를 세우고 나서 첫 증명된 사례라고 생각했으니까. 뭔가 정확하게 수치적으로 알 순 없겠지만 정말로 그렜다.
그러니 이 순간은 내 트로피라고 할 수 있고, 아마 오랫동안 어쩌면 평생 기억할 순간이지 않을까 싶다.
초고: 2024.09.26
탈고: 2024.10.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