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생을 다 읽고 쓰고 싶어 진 반성문.
해피엔딩은 진부하고, 기계장치의 신을 불러오며 작품을 망치는 큰 요인이다. 그럼에도 난 그 끝에 모두 행복하게 살았다는 이야기를 좋아한다.
자기계발서에 대한 식자와 청춘의 분노, 아프면 환자라는 외침에 동의한다. 하지만 굉장히 보수적인 노력이 보상을 받는다는 이야기에서 눈을 돌릴 수는 없었다. 거기에는 구조적인 문제로 끝이 보이지 않는 싸움을 이야기하기보다는 개인의 해피엔딩으로 끝나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라는 결론을 내기 위해서는 지금까지 행복하게 살아왔을까, 내 삶에 대해서 반추할 시간이 필요했다. 지난 수년간 한 해를 돌아보는 글 들은 이 이유로 썼다. 이번에는 내 26년 간 짧은 인생에서 가장 강렬했었던 경험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반성하는 글을 적어 보고자 한다.
2014년 11월. 지금의 나는 회사원이다. 하지만 그 전엔 난, 창업을 경험했었다. 그 경험을 적어보고자 한다. 그러나 나는 감히, 창업을 위해서, 성공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지는 않다. 그런 길이 있었으면 이미 내가 성공을 했을 것이다. 통계는, 법인 설립 이후 1년을 버티는 곳도 그렇게 많지 않다고 한다. 8~90%는 그대로 망해버리고 폐업신고를 하거나 식물 법인 상태로 남아있게 된다.
나는 99%였다. 군 제대 후, 인턴 생활을 마치고 한 후배와 창업을 결심하였다. 인턴생활을 하면서 느낀, 직장인으로의 한계를 견딜 수 없어서였다. 모 외국계 가전제품 회사에서 인턴 생활을 했었고 7개월 동안 많은 것을 배웠다. 하지만 스스로 만족하지 못했다. 경영학을 통해 배운 이론들, 실제로 써보고 싶었다. 자신에 넘쳤고, 저건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을 했었다.
첫 번째 실패 요인.
2010년 여름. 스마트폰이 대중화되어서, 앱 기반 창업이 유망했었다. 하지만 우리는 작은 사업을 생각했다. 홈페이지 기반의 광고 사업이었다. 사업에 대한 이해보다는 당장 그들이, 경쟁사가 될 곳의 매출에 대해서 듣고 나서 결정한 것이었다.
창업의 아이템은 이런 식으로 나올 수도 있지만, 이렇게 결정해서는 안된다. 누구에게 무엇을 팔 지, 그들이 왜 우리 물건을 살 것인지에 대한 분명한 이해가 있었어야 한다. 치열하게 공부하고, 뛰어다녀야 했지만 나는 숫자에 혹하여 시작하였다.
두 번째 실패 요인.
시작한 후, 당장 우리는 당연히 아무것도 못했다. 그래서 알음알음 사람을 모집하기 시작했다. 큰 비전을 공유하기보다는 당장 쉽게 쓸 수 있는 사람들 위주로 — 친분으로 사람을 데리고 왔다. 그리고 여러 문제들이 터졌다.
운영에 대한 경험이 없지만, 조직의 인력 운영은 이런 식으로 되어서는 안 되었다. 분명한 각자의 역할, 업무분장과 조직에 대한 비전을 공유할 수 있어야 했다. 가장 친하고, 믿는 사람일수록 체계로 움직여야 한다.
세 번째 실패 요인.
또 우리는 누군가를 믿었다. 개발비와 사무실을 지원해준다는 말에 한없이 기다렸다. ‘사업가적’ 마인드는 거래에 대한 개념을 분명히 알고, 계약관계를 만들었어야 한다. 누군가를 가장 신뢰한다면, 사업할 때에는 분명하게 계약을 하고 진행했어야 한다. 우리는 그렇게 소중한 몇 달을 허비했다.
네 번째 실패 요인.
드디어, 정부 지원 사무실을 얻고, 직원을 채용하고, 그리고 정부 지원 프로그램, 예산을 타게 되었다. 회사로의 골격을 갖추었었다.
우리 사업을 시작하기도 전에 우리는 누군가의 관리를 받게 되었다. 정부의 돈은 그냥 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서류 서류 그리고 또 서류. 제출할 것들과 짜인 예산 안 속에서 움직이는 것. 간섭과 통제는 신생 조직이 움직이기에 최악의 조건이다.
결정적으로 이 당시 우리가 하던 아이템에 대해서, 우리는 심각한 결함을 알고도 바꿀 수 없었다. 예산을 놓치긴 싫었다. 그래서 우리는 대학생에게 인터넷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쉽지 않은 계획에 의구심을 가지고 계속 시제품을 개발했다. 시장은 바뀌고, 가정은 틀릴 수밖에 없다. 수정하고, 바꿔가면서 시장에 적응해 살아남는 것이 창업 초기의 자세다. 하지만 당장의 생존을 핑계로 그러지 않았다.
다섯 번째 실패 요인.
사실 이 와중에서 우린 실제 매출을 발생시킨 다른 프로젝트도 진행했다.
그럼에도 그 일에 온전히 매달릴 수가 없었다. 기존의 성공요소 — 예산을 얻어낸 그 아이템에 매달렸다. 승자의 저주. 새로운 곳으로 나아가야 할 시간에 우리는 기존의 성공 요소를 끌어안고 가라앉고 있었다.
정말 망하기 좋은 많은 요인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이 실패 요인들은 ‘실패’가 아니다. 다른 회사들도 많은 실패 요인을 가지고 사업을 한다. 위자드웍스도 위젯에서 실패 요인을 찾고, 솜 노트로. 작은 실패는 자연스럽다.
창업가 정신은 타고나는 것이라는 의견이 있다. 아니다. 창업가 정신은 만들어진다. 무수한 실패들 속에서 계속해서 사업을 영위하고자 하는 불굴의 의지가 바로 창업가이다. 때문에 다섯 가지, 혹은 그 이상의 실패 요인들이 정확하게 ‘실패’는 아니다. 한국만 이런가? 구글의 다양한 서비스 실패 사례는 너무나 유명해서 일일이 열거하기도 어렵다. 에릭 슈미트 구글 회장은 그 모든 것들이 밑거름이 되어 지금의 구글 제품이 나오고 있다고 말한다. 스티브 잡스의 리사, 뉴튼의 실패도 유명하다.
회사의 실패도 무수히 많다. 죽음의 계곡. 창업 초기 90%가 빠져나오지 못한다. 이걸 빠져나오면 대박이라고 하여도, 다양한 이유로 못 나온다. 기존의 서비스를 끌어 앉고 익사하거나, 저희처럼, 실제 운영 자금이 다 떨어질 수도 있다. Fab.com은 심지어 자금을 조달하고도 실패한다. 그럼에도 실리콘 밸리가 지금처럼 최전성기를 누릴 수 있는 이유는 실패에 대해 관대한 문화라고 지적한다. 실패한 자를 단순히 능력의 부족으로 바라보진 않습니다. 실패를 통해 배울 수 있는 것은 있다. 분명히.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실패를 한 이유를 알아야 한다. 실패하고도 살아남는 자들과 그렇지 않은 자의 차이는, 결국 ‘왜(why)’에 대한 이해이다.
그러한 Why에 대해서 명확하게 보여주는 요즘 용어. 사업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한 장의 도표로 표현하기 위한 도구로 비즈니스 모델 캔버스가 있었다. 그리고 린 캔버스도 생겼다. 아니 린스타트업에 생겼다.
MVP라는 개념이나 Pivot 많은 것들이 생겨났다. 하지만 사실 그 본질은 장사라고 본다.
예를 들면, 아이팟이나 아이튠즈. 아이튠즈는 CD에서 mp3, 혹은 음원 파일을 판매할 수 있는 플랫폼을 구축했다. 왜냐면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CD 가 아니라 음악이니까. 가치 있는 제품과 서비스는 음악을 듣는 경험치를 향상하였다.
신사업인가? 신 기술이다. 하지만 신 사업은 아니다.
미생의 대사. ‘장사’ 장사를 하자. 신사업에 신이 어디 있는가?
아이디어는 어쩌면 어디선가 다 시도하고 있는 것들이다. 그래서 그게 가치가 없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다음의 캠프, 밴드가 나와서 겁먹었었다. 그럴 필요가 없었다. 실제로 그것을 구현하고 ‘장사’로 만들었을 때 사업이 되는 것이다. 캠프는 소리 소문 없이 가라앉았고, 밴드도 가입자수를 미친 듯이 늘려 왔지만 장사를 하는지는 의문이다.
경영학이 그리 천대받을 수 있는 다양한 조건에도 불구하고 각광받을 수 있었던 점도, 이 장사에 대해서 굉장히 명확히 가르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요즘 핫한 디자인 사고 관련 수업을 듣다 보면, 종종 일반 매점 등에서 사람들이 새로운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것을 볼 수 있다. 현장에 답이 있다는 HBR 아티클도 있다. 그 모두는 결국 장사의 지점에서 무언가가 만들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우리는 장사를 하지 못했다. 우리는 굉장히 의미 있는 사업 놀이를 하고 앉았었다.
장그래가 빠르게 안 것을 나는 알지 못했고,
내 곁엔 오 과장은 없었다.
권진언의 ‘자랑’을 들으면서.
초고 2014.11.24
탈고 2017.07.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