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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min Nov 13. 2016

선물

2016년에 태어난 조카에게 보내는 편지

태어난 지 100일이 된 조카에게.


너에게 무슨 선물을 할지 한 열흘을 고민했지만 만족할 만한 결론을 내리지 못했었어. 그러니까 너야 뭐 지금 뭘 받는다고 좋아하는 감정을 표현하기도, 기억하기도 어려울 테니, 결국 내 맘에 차지 않았던 거지 뭐.


그러다 문득 네가 태어난 날에 샀던 신문들이 생각났어. 네가 태어나던 날에는 2016년 리우 데 자네이로 올림픽이 개막했었어. 그래서 신문은 온통 그 이야기가 가득했지. 친구의 도움으로 그걸 산 뒤에 창고에 두고, 기억이 희미해져 가고 있었지. 그땐 그게 되게 멋지고 의미 있는 선물이라고 생각했고, 지금도 그렇다고는 생각해. 그런데, 좀 다른 선물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


삼촌은 요즘 부쩍 편지를 쓰고 싶었거든. 그래서 언젠가의 너에게 편지를 쓰면 재밌겠단 생각을 했어. 그런데, 그냥 태어나줘서 고맙다 이런 내용으로 채우고 싶진 않았거든. 그때, 신문들이 기억난 거지. 네가 태어난 이래로 세상이, 한국과 세계가 어떻게 움직이고 있었는지 기록으로 남겨 전달해주면 좋겠단 생각이 들었어.


물론 네가 마주할 세상에서는 어쩌면 생각 한 번에 내가 원하는 기사들이 펼쳐지고, 알아서 그걸 가지고 네가 원하는 시점에 세상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 수 있을지도 모르겠어. 요즘 세상이 변하는 속도는 어마어마하니까. 하지만 그런 거 말고, 네가 갓난쟁이 일 때 시대의 장삼이사로 혼자서 고민한 내용을 넘겨주는 것도 재미있고, 의미 있으면서 또 어쩌면 도움이 되겠다는 생각을 했어.


그래, 이건 편지야. 여기에 적힌 내용은 오롯하게 삼촌 혼자 만의 생각이야. 미디어에게, 똑똑한 친구나 인터넷의 댓글에 현혹이 되었을지라도, 그 안에서 나름대로 고민해 내린 결론 들이야. 그러니 여기 적힌 것들은 사실이 아닐 수도 있고, 논리가 빈약할 수도 있어. 하지만 그대로 또 재밌지 않을까? 




대한민국의 8월은 매우 덥단다. 장마의 영향이 남아 있다면 습도도 무척 높아지겠지. 이 시점에 지구 저 머나먼 건너편 브라질에서, 네가 태어나던 날에 맞추어 지구촌 축제라고 불리는 올림픽이 개막했어.


올림픽의 기원은, 잘은 모르지만 고대 그리스의 축제로 알고 있어. 어쩌면 고대 사람들이 폭력성을 전쟁이나 범죄까지 가져가지 않고 풀기 위한 파티 개념이지 않았을까 삼촌은 짐작하고 있단다. 하지만 그건 그리 오래가지 못하고, 올림픽이 없는 세계사가 계속 흐르다가, 프랑스에서 구베르텡이라는 아저씨가(삼촌이 체육 수업시간에 들은 내용을 제대로 기억하고 있다면) 부활시킨 거지. 목적은 지구촌을 하나로! 뭐 이런 거 아니었겠어?


대다수의 좋은 의도로 시작된 일은 그렇게 끝나지 못한단다. 내가 볼 때 올림픽도 그렇게 많이 흘러갔어. 일례로 올림픽은 '프로 선수' 가 오면 안 된다는 규정이 있지. 하지만, 작금의 자본주의 시대에서 그런 규정은 올림픽의 재미를 반감시키는 것 밖에 되지 않아. 그러다 보니 예전의 규칙들은 유명무실해졌지. 


애초에 올림픽은 '국가 대항전' 성격을 띠면서, 올림픽의 탄생 시기부터 세계를 휩쓸었던 민족주의적 의식에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었어. '국위선양'. 삼촌은 비관적이니까, 아마 이런 단어를 네가 말을 배우고 뉴스를 볼 때쯤에도 계속 듣게 될 거야. 시민이 나라를 위해 무언가를 해야 하는 거지. 뭐, 완벽하게 나쁜 말은 아니라고 생각해. '삼총사'의 말처럼, 모두를 위한 하나, 하나를 위한 모두 (All for one, One, for all) 이 된다면 말이야. 하지만 그런 경우는 잘 찾아보기 어렵지.


결국 올림픽은 일종의 국력 자랑 잔치가 되어버린 모습을 지니고 있기도 하단다. 못 사는 나라가 올림픽의 메달 순위에서 상위권을 차지하는 일은 드물지. 거기에 더해서, 많은 세계 시민들이 국가주의, 민족주의에서 빠져나오는 시점이 되어서인지 이번 올림픽은 굉장히 애매하고, 재미가 없었단다. (물론 삼촌만 그랬을 수도 있어.) 


마지막으로 올림픽에 대해 이야기하면, '줄 세우기'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주고 싶어. 그러니까, 우리는 왜 1등을 해야만 하냐는 질문에 대한 이야기야. 사실, 올림픽 동메달이라고 하면 좀 과장을 더하면 세계에서 그 스포츠를 3등으로 잘한다는 거잖아? 그런데 은메달을 따지 못해서 우는 사람들도 있었어. 뭐, 사람이 가진 경쟁 심리가 있으니 그거야 그럴 수도 있지만, 올림픽에서 좋은 성적을 내지 못하면 죄송하다고 말하는 선수들이 있지. 그리고, 성적을 잘 내지 못하는 선수단의 대접이 박한 것은 한국에서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야. 더 좋은 성적을 위해 선수를 압박하는 좋지 않은 문화도 아마 남아 있을 거라고 생각해. 더 나은 결과, 그게 줄 세우기의 결과일 뿐이지만, 그걸 위해서 압박하는 게 좋은 걸까? 


아마 너도 줄 세우기의 대열에 동참하게 될 거야. 유치원에서 누가 먼저 글을 배우느냐라던가. 그 안에 미묘한 권력관계들은 내가 느끼지 못해도 남아 있겠지. 초등학교, 중학교 가면서 아마 더 잘 느끼게 될꺼란다. 다시 말하지만, 삼촌은 부정적 전망만 하는 사람이라 우리 시대에 그걸 끝내 줄 자신이 없어. 그러니 그 안에서 너는 스스로의 기준을 세우고, 자신에게 상장을 주는 법을 배워야 할 거야. 누군가는 그건 '정신승리'라고 말할지도 모르지.(이 단어가 네가 이 글을 이해할 수 있을 때에도 쓰일진 모르겠어.) 그런 사람의 말은 신경 쓰지 말아도 된다고 생각해. 물론, 사회의 기준에 너를 맞추어야 할 때도 오겠지만, 그걸 절대적으로 받아들일 필요는 없으니까.




한국의 학교들은 9월에 2학기를 시작해. (아마 네가 학교를 다닐 때도 똑같지 않을까라고 생각하고 있단다.) 이 달에는 여러 가지 일들이 기억나. 전기차, 자율주행차로 유명한 테슬라가 한국에 공식 진출을 선언했다거나, 홍콩의 우산 혁명의 주역 (그리고 패전한) 조슈아 웡의 집단이 원내로 진출했다는 뉴스가 있었지. (이 친구들인 중학교 때부터 조직을 꾸려서, 더 나은 사회를 위해 목소리를 내었단다. 대단하지?) 아이폰이라는 인류사에 중요한 이정표가 또 다른 변곡점을 발표하기도 했지. 백남기 열사 부검 관련 논란도 있었어. 


하지만 너의 본관이기도 할 경주에서 일어난 일을 언급해야 할 것 같아. 한국에서 그런 일이 '기록된 이래로'는 없었거든. 바로 '경주 지진' 이야. 마침 삼촌은 그때 고향에 있어서 그 지진을 몸으로 체감하기도 했단다. 무서운 경험이었어. 물건이 막 떨어지거나 그러진 않았지만, 꿈이 아닌가 생각될 정도로 비현실적인 물리적 힘을 체감하고 나니, 우리 사회가 얼마나 빈약한 땅 위에 서 있는가 라는 생각을 하게 됬다니깐?


더 무서운 건 그다음부터였지. 핸드폰이 잘 안되었어. 특정하자면 카카오톡이라는 온 국민이 쓰는 메신저 프로그램이 임시로 먹통이 되었지. 심각하진 않았지만, 삼촌도 약간의 패닉 증상을 겪었단다. 의사결정을 해야 하는데, 가이드라인을 받질 못했거든. 너의 할아버지 할머니와 뉴스를 보면서 주섬주섬 물건들을 챙겼던 기억이 난단다. 너의 외증조부모님 되시는 분들이 잘 계신지 확인하는 일도 있었지. 


친구들이 경주 인근에 많이 있다 보니 친구들과도 안부를 묻는 상황이었어. 그 사이에, 나는 이 나라의 시스템에 대한 뿌리 깊은 불신을 가지고 있구나 란 생각을 하게 되었지. (실제로도 그럴 가능성이 있는 것 같긴 한데) 이 행정 시스템은 이런 지진에 대해서 대비해둔 것이 별로 없다는 느낌을 받았거든. (몇 번 강조하겠지만, 이건 삼촌 개인의 생각이야) 인터넷을 좋아하는 삼촌은 인터넷을 통해, 방송들을 통해 그 이후 이 문제에 대해서 계속 생각을 해 왔단다. 


일본처럼 지진에 대한 가이드라인이 충실하지 않은 것은 이해할 수 있었어. 우린 '일본'처럼 예산이 많지도 않고, 지진이 '실재' 했던 위협은 아니니까. 그러니 그 이전에 준비되지 않았던 것은 이해해. 하지만 앞으로가 문제라고 생각했지. 경주 인근의 남동해에는 공업단지가 밀집해 있단다. 그래서 그 공장들의 전력을 공급하기 위해서는 비-산유국인 한국의 입장에서는 원자력 발전소가 필요했지. 문제는 그 일대가 또한 단층지대라서 지진이 일어날 가능성이 다른 한반도에 비해 높은 곳이라는 점이야. 그 전 까지는 그런 문제 정도야 나라의 똑똑한 박사님들이 토의를 거쳐서, 훌륭하고 지혜로운 사람들의 판단에 의해서 가장 안전한 지역에 원자력 발전소를 지었다고 믿고, 아니 믿으려고 노력하고 있었어.


하지만 지진 이후 밝혀진 사실들을 보고 있으면, 과연 그럴까 하는 생각을 들게 했었단다. 조금 무서웠어. 너의 조부모님께 반 농담 식으로 조금 더 먼 곳으로 이사하는 건 어떠냐고 물어보기도 했었어. 그런 일이 9월에, 이 땅에 있었단다. 


시스템을 믿지 말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지는 않아. 하지만, 시스템을 감시하고, 만일을 대비해 스스로 자생하기 위해 준비를 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말을 전하고 싶어. 어디에서건, CPR, 화재 대피 교육 이런 거 있으면 지루하고 재미없겠지만 잘 따라 해 주었으면 해. 삼촌의 비관적인 전망이 틀렸다면, 네가 학교를 다닐 때쯤에는 그런 교육의 정규 교과에서 중요한 부분으로 있을 것 같지만.... 아직 확신은 못하겠어. 


그리고 한 가지. 네 안전을 우선하되, 가능하면 다른 사람을 돌볼 수 있으면 좋겠단 생각을 했단다. 스스로의 두려움에 빠져 패닉 초기 증상을 일으킬 뻔 한 삼촌관 달리 말이야. 




10월부터는 한국의 날씨는 선선해지지. 아침저녁으로는 좀 쌀쌀해져서 감기 걸리기 좋은 달이란다. 옛날 북유럽 쪽에서는 10월이 한 해의 마지막이라서 이를 기념하는 핼러윈이라는 명절이 있기도 하지. 이런 날에는 이태원이나 강남 같은 곳에서 코스츔을 입은 채 파티를 즐기는 것이 즐겁단다.(하지 마 삼촌은 파티 피플이 아니라서 이런데 가진 않았지만, 혹시나 네가 어떻게 자랄지 모르는 일이니 남겼단다). 100년을 이어 가는 오락 전문 회사 닌텐도에서는 또 하나의 혁신이라 할 수 있는 콘솔형 오락기기를 내놓기도 했고. 개인적으로 재밌게 봤던 <자백> 이란 영화가 개봉하기도 했어. 미국의 밥 딜런이라는 포크/록 가수가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는 모습과, 락스타답게 그걸 무시하는 모습을 보기도 했지. 


이렇게 큰 일들이 많았지만, 대한민국의 2016년 10월을 지배한 뉴스는 최순실이라는 사람이었어. 어떤 사건인지는 아마 네가 뉴스 검색을 하면 금방 알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 삼촌은 한 편으로는 큰 충격을, 또 한편으로는 역시 그랬구나 하는 감정으로 뉴스를 보곤 했었단다.


몇 가지 여기에 관련된 생각들이 있어서, 아직 정리가 되진 않았지만 남겨 볼게. 우선 종교에 대한 생각을 조금 했어. 찾아보면 알겠지만, 최순실 씨 관련 논란에서 핵심적인 내용 중 하나가 그의 아버지인 '최태민' 씨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퍼져있는 '사이비 종교' 관련 이야기거든. 그 사람은 한국에서 '기복신앙'과 '기독교' 적 구원자 이야기가 결합된 일종의 종교 집단의 리더라고 이야기가 되고 있어. 


한국에는 아마 지금도, 그리고 네가 이 글을 이해하는 그때에도 '종교' 가 많을 거란다. 등록된 종교의 신자 수가 국민의 숫자를 넘어간다는 말도 있을 정도니까 말이야. 물론 그거야 '등록' 제도의 문제인 거고. 실제로 미사, 예배 아니면 법회나 다른 종교 행사에 가는 사람의 수는 많이 적을 거고, 네가 '종교'에 대해 고민할 때쯤에는 더 적겠지. 그게 요즘 트렌드니까.


하지만, 그래도 종교를 믿는 사람들은 있을 거야. 그건 참 좋을 거라고 생각해. 11월에 일어난 일이지만, 기독교와 루터교 대빵들이 모여서, 우리 이제 싸우지 말자!라고 선언한 일이 있었지. 대단한 일이야. 수백 년을 싸워온 둘이거든. 그러니, 종교는 고리타분하긴 하지만 조금씩 발전하면서 인류에 도덕(Morality)에 대해서 근본적으로 고민하는 집단이라고 생각해서 그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 (최근에 책을 읽으며 든 생각이란다, 그 전에는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라는 생각에 좀 더 가까웠거든)


문제는, 대중이 '종교' 적 '상징'에 기댈 수밖에 없는 상황이 있단 거지. 네가 태어나기 몇 해 전, 우리는 많은 목숨을 잃는 사고를 겪어야만 했단다, 이 땅에서. 그런 극단적인 상황에서 사람들은 절대적인 존재를 갈망하기 마련이거든. 거기까지는 아주 좋아, 시나리오가. 그런데 여기에 그 상황을 이용하려고 하는 사람이 등장하며 피곤해진단 말이야. 아니, 끔찍해지기도 한단다.


이름을 거론하기 무서울 정도로, 그 세가 큰 종교 집단은 아직도 많고, 그들이 과연 '정당한' 집단인가에 대해서는 삼촌은 잘 모르겠어. 믿음을 매개로 장사를 하고, 착취를 하는 집단은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어. 최순실-최태민 씨의 경우, 뉴스를 설명하기 위해 언급했지만 나머지 단체의 이름은 언급하지 않도록 할게. 무서워서인 부분도 있지만, 네가 조금 더 편견을 갖지 않고 그들을 '알아' 보았으면 하거든. 


개인적으로 삼촌은 네가 종교에 관심이 없었으면 한단다. 하지만, 그건 삼촌의 바람이고. 좋은 종교 아래에서 벗들을 사귀고 같이 공동의 선을 좇는 다면 그것 만으로도 삶의 많은 가치가 채워진다고는 생각해. 다만, '절대자'의 말이라도 '의심'을 하는 자세는 필요하다고 생각해. 이건, 조금 복잡할 수 있긴 한데, 절대자가 있다고 해도 그 메시지가 발현되는 방식은 불완전한 우리, 혹은 우리가 만들어낸 문자나 사물들로 이루어질 것이니까. 우리가 달을 보라고 가리킨 손가락을 보면서 절대자가 손가락을 들었다!라고 하는 모습을 보이면, 그분도 슬퍼하지 않으실까? (물론 이것도 인격신만 있다고 가정한 상태에서 말한 거긴 하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너 스스로 고민하고, 공부해야 할 때가 분명 언젠가 오지 않을까, 삼촌은 생각하고 있어)


이런 말을 전했지만 삼촌도 '빈첸시오'라는 세례명을 지닌 천주교 영세자란다. 성당에 안나 간지 5년이 되어 가는 것 같긴 하지만 말이야. 



11월 13일 가족들이 모여서 너의 탄생 100일을 기념하며 식사를 했단다. 기억은 못하겠지? 다들 너와 함께 사진을 찍어 두었으니. 언제고 나이 들어서 보면 좋은 추억이 될 거야. 


2016년엔 - 여느 해와 마찬가지긴 하지만 - 참 새로운 기록들이 있었단다. 108년 만인가? 시카고 컵스라는 미국의 야구팀이 우승을 했어. 108년 전이 순종 황제가 있던 시절이니까, (그러니까 대한제국 시절이란 게지) 참 오랜 시간이었어. 삼촌은 연장 10회 끝까지 봤는데, 참 그 선수들의 기분이 짐작이 안 가더라고. 삼촌은 하루 종일 못 깨던 게임 한 판만 깨도 엄청 기쁘던데. 어떤 기분일까? 


미국에서는 트럼프라는 사람이 대통령이 되었어. 재선이 된다면, 네 나이 9살까지 대통령을 할 테니, 어렴풋이 기억할 수 있는 시기에도 대통령을 하고 있지 않을까. 많은 생각할 거리를 준 선거였지. 남의 나라였지만 말이야. 뭐, 미국과 중국 두 나라의 파워는 계속 줄지 않을 거라는 가정 아래로 보면... 너도 우리가 왜 그 선거에 그토록 관심을 보였는지 이해할 거야. 어떤 의미에서는 지금의 '세계 대통령' 이 '미국 대통령'이라고 보면 되니까. 


트럼프 당선인의 이야기는 정말 해야 할 게 많은데, 그 보다 더 중요한 일이 한국에서는 있었단다. 너의 100일 잔치 바로 하루 전에 있던 일이지. 서울 광화문, 시청, 경복궁 앞 이런 곳에 시민 100만 명이 모였어. DJ들이 음악을 틀기도 하고, 뮤지션들이 공연을 하기도 했지. 깃발을 흔드는 사람도 있었고 스피커를 들고 앞서간 사람도 있었어. 경찰 버스 위로 올라가는 사람을 삼촌은 직접 보기도 했지. 그 사람에게 내려와라고 소리치는 사람의 목소리도 생생하게 들었어. 


삼촌은 2008년에, '광장'이라는 곳의 중심부까지 가 본 적이 있단다. 이게 다 친구를 잘 둔 덕분이지. 친구 따라서 올라간 수십만 군중 위의 단상에서 다리가 후들거려서 남는 기억이 별로 없어. 그 친구는 신문 1면을 장식하기도 했었지. 그리고 그때의 기억과, 2016년 11월 12일의 모습은 조금 달라서 - 이번 거는 기억에 좀 잘 남는 편이었단다. 그때와 같이 사람들이 다양하게 많이 나왔는데, 스피커들이 힘을 쓰지 못하는 모양새였어. 그러니까 예전에 '데모'좀 한다던 사람들은 소외되는 느낌을 받았달까?


나중에 확인하니 여기저기서 울려 퍼지기도 했다지만 전반적으로 '민중가요'는 들리지 않았어. 넌 이 단어를 들어볼 일이 있을까? 삼촌은 이 '민중가요'가 필요 없는 세상을 꿈꾸는 사람이야. 하지만 이 광장이 그런 세상이었던 것은 아니야. 다만, 그 노래의 가사와 멜로디가, 메시지가 '효과'적이라거나, 사람을 연대하게 만들 수 있는 장치가 더 이상 되지 못하는 세상이었던 거지. 


결과적으로 목소리는 분열되었다고도 생각해. 비교적 명확한 목적을 가지고 사람들은 광장으로 나와었거든? 박근혜 대통령이 하야하거나, 그에 준하는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말이야. 그 이면에는 우리의 '뜻'을 모아서 대통령에게 주었더니, 웬 이상한 사람이 그 뜻을 휘둘렀기 때문에 우리는 화났다 라는 메시지가 깔려 있었단다. 사실, 그렇잖니. 네가 빵을 주문했는데, 밥이 나오면 그게 맛있는 거라고 하더라도 화가 나기 마련이잖아? 그런데 이 밥이 심지어는 상한 것 같단 말이야. 화가 나지 않을 수가 없는 상황이 된 거지. 그런데, 이때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냐 하면, 지금의 '사회'에서는 뭐 선택지가 없어. 그러니 광장으로 나갈 수밖에. 그런데 이렇게 삼삼오오 온 사람들의 목소리가 하나로 통일되는 일은, 참 어렵지. 그러니까 첫 문장처럼 삼촌은 수많은 군중의 다양한 목소리를 듣게 되었었어.


어쩌면 광장이란 이래야 하지 않을까를, 그 광장을 벗어나서 페이스북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었어.(너 때도 페이스북이 많이 쓰일지는 모르겠네) 사람들은 이 집회가 어떻게 해야 한다, 이건 안된다, 저렇게 해야지 라며 갑론을박을 펼치고 있었지. 비슷한 뜻 아래 모였지만 하는 말, 선택한 도구는 모두 달랐어. 진부하게 들리겠지만 '민주주의'가 여기 살아 숨 쉬고 있잖아!라고 외치고 싶은 기분이었단다. 너의 100일 잔치를 마치고 서울로 돌아오는 4호선 열차 안에서, <레 미제라블>의 <Do you hear people sing>을 반복해서 들으면서 사람들의 논쟁을 보고 있었단다. 


그런 논쟁을 보다가, 한 홍콩 사람이 남긴 댓글도 봤어. 우리보다 좀 전에, 홍콩 사람들도 큰 시위를 했었거든. 결과가 좋았냐고? 글쎄. 그건 아마 네가 신문으로 확인하게 될 것 같다. 홍콩에 대해서 이야기하려면 또 엄청 긴 글을 써야 하니 그 이야긴 여기서 끝낼게. 다만 그 시위는 분명하게 무언가 남겼다고 보기에는 힘들었어. 반 쪽 승리였달까? 하지만 앞서서 말했던 것처럼 조슈아 웡의 동지들이 원내(의회)에 진출하는 것처럼, 변화는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지.


삼촌은 많은 걸 무서워해. 그중 제일 무서워하는 건 자기 확신이야. 시위에 나가서 경찰에 연행된다? 물대포를 맞는다? 심지어 목숨이 위험하다? 엄청 무섭지만, 그렇다고 스스로의 행동을 완벽하게 제한할 정도는 아니었어. 그런데도, 끝까지 시위에 나가볼까 말까 고민한 이유는, 올바름에 대한 확신이 없다는 것과, 확신하는 내가 무섭다는 거지. 난 틀릴 수 있거든, 아니 틀릴 거야. 우리의 가장 최선의, 최고를 위한 선택은 언제고 틀리고 마련이야. 내가 - 안 되겠지만 - 유려한 언변을 지니고 사람들을 이끌어서 사람들이 지금 당장 원하는 (적어도 그 광장의 100만 명이 원하던) 것을 이루어낸다고 하더라도, 그 결과가 좋을 거라는 장담은 못하겠어. 하야한다? 2개월 만에 이뤄진 대선에서 우리는 올바른 대통령을 뽑아낼 수 있을까? 대중, 민중, 시민에게 거는 기대만큼 삼촌은 실망도 크단다. 벌써 몇 번째 말하지만, 난 비관적인 전망을 즐겨하는 소시민이거든. 


그런데, 갑자기 네가 생각났었어. 다른 사람처럼, 나중에 너나 혹은 있다면 내 자식이 그때 아버지는 뭐했어요? 리고 묻는 건 뭐 어렵지 않았어. 삼촌은 시위에서 자기 목소리를 내는 것만큼이나 자신의 일상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믿는 사람이니까. 다만, 여기의 모습을 네게 전달해주고 싶단 생각을 했어. 이 아이가 접할, 광장의 모습은 지금의 미디어가, 다른 사람들이 기록한 모습들이겠구나. 난 그래도 나만의 시각으로 여기의 모습을 전달해주고 싶다. 뭐 그런 생각이 든거지.


난 이 집회가 올바르다 올바르지 않다고 여기에 남기고 싶지가 않다. 정치적 올바름? 기계적 중립? 그런 게 아냐. 이건 너 만을 위한 편지니까, 너에게 맡기고 싶어. 언제고 - 만에 하나 이 편지를 읽고, 그때가 궁금해진다면 어디선가 또 엉뚱한 생각이나 하고 있을 삼촌에게 물어봐주면 고맙겠어. 조금 꼰대같이 그때 말이지~ 하고 말을 늘어놓는다면 무시해도 좋아. 지금의 내 생각에, 그런 말이라면 너에게 해주고 싶단 생각이 들지 않으니까. 다만 네가 가진 의문에 대해 함께 의논할 자세가 준비되어 있는 미래의 '나' 라면, 서로 즐거운 대화를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봤어. 




기억나는 것들만 적어 보았단다. 사실, 이것보다 더 많은 인들이 엄청나게 있었겠지. 세상이 그렇단다. 너는 아무것도 못하는 와중에 네가 살아가야 할 세상은 이렇게 변하고 있지. 두려워할 필요는 있지만, 쫄 필요는 없어. 사람은 가능성을 가지고 있으니까. 


무엇이 진실인지 헷갈릴 때가 있을 거야. 아니면, 어느 게 정의인지 판단 내리지 못할 때가 올 거야. 그런 어려운 순간이 네 나이 얼마쯤에 올 지 모르겠다. 난 2002년이었던 것 같아. 아니 그보다 좀 전이었나? 미국 대통령이었던 부시 대통령에 대한 항의 내용이 한국을 뒤덮을 때였던 것 같기도 하고. 이라크 파병 문제로 고등학교 교실에서 토론을 하던 때였을 수도 있어. 그리고 지금도 그렇지. 그 순간이 찾아오고 나면, 어쩌면 삶에서 가장 크고, 평생을 따라다니게 될 짐을 얻는 거라고 할 수 있단다. 그리고 동시에 가장 즐거운 경험을 할 수 있을 거야. 고통스러운 순간이 많을 것이고, 영광의 순간은 대체로 짧단다. 세상은 혼자 사는 게 아니기 때문이지. 뭐, 일부는 이기기만 하는 재미없는 게임을 계속하고 있을지도 모르지만, 삼촌이나 너희 아버지 어머니나 말을 살 정도의 재력가가 아니어서, 네가 혼자 출전해서 금메달을 따는 일은 아마 없을 것 같단다. 포기하고 싶고, 도망가고 싶은 준비의 시간을 거쳐서, 넌 네가 서고 싶은 곳에 갈 수 있을 거야. 


이 말을 하는 것은 미안하지만, 너에게 그런 세상과, 그런 기회를 남겨 두는 것에 대해서는 미안하지 않단다. 네가 만들어갈 세상은 네 친구들과 네 스스로 만들 세상이기 때문이지. 남겨진 숙제들에 대해서 내가 지금의 486 세대를 욕하는 것처럼 내 세대를 욕할지도 모르겠어. 취직 자리를 알아보면서, 왜 우리 집은 저 친구처럼 잘 살지 못하나 라고 짜증을 부려도 좋아. 그 모든 게 네가 살아갈 세상이니까. 너라는 드라마를 위한 조연으로, 나는 그리고 네 부모님은 조만간 내려가야 할 거니까. 새로운 이야기는 새로운 캐릭터가 이끌어나가는 법이고, 우리는 이제 저녁 드라마를 벗어나 아침 드라마로, 케이블 재방송 드라마로 밀려나갈 거야. 한 편으론 슬프지만, 더없이 기쁘게 그 순간을 기다리고 있단다.


어여쁘게, 아니면 건강하게. 바르게 이렇게 자라란 말은 네 부모님께 많이 들을 거야. 난 그냥, 네 멋대로 자라라고 말해주고 싶다. 네가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기 위해, 열심히 노력을 하도록 하렴. 부족한 게 있으면 준비를 하고. 그러다 조언이 필요할 때, 네 나이가 그때가 되었을 때 바라건대 지금 보다는 현명한 사람으로 준비되어 있을 삼촌, 부모님, 할아버지 할머니를 찾아가면 될 거야. 그럴 수 있도록 나도, 지금부터 많은 준비를 할 꺼란다.


100일 축하 편지랍시고 썼는데, 알아먹지 못할 말을 주저리주저리 늘어놓은 것 같네. 네가 이 편지를 읽을지도 모르고, 읽고 만족할지는 정말 모르겠어. 그래도 난 마음이 편해졌어. 조카에게 줘야만 하는 선물이라면, 이런 거라고 생각하고 있거든. 못난 삼촌이지? 어쩌겠어. 그래도 밥벌이는 먹고 하고 살 것 같으니 종종 들를 때 선물 하나씩 챙겨 갈게.


돌 까지, 유치원에 갈 때까지, 학교 갈 때까지, 지금의 나 보다 더 나이 들어서도,

있는 힘껏 행복해지렴.


삼촌이.

2016.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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