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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min Nov 21. 2016

<내리막 세상에서 일하는 노마드를 위한 안내서>

by 제현주


영어 ‘레이버 labor’의 어원인 라틴어 ‘라보르 labor’는 고통이 수반되는 노력이라는 의미다.

이 문장이 기억에 남는다. 저게 답은 아니겠지만, 이렇게 어원을 파헤쳐서 무언가를 설명하는 것은 참 재미있는 편이다. 그런데, 이 책에서는 그런 경우가 좀 과도하다 싶을 정도로 많았다. 저자의 지식 자랑을 위한 것이 아니라면, 잘못된 선택인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자칫 잘못하면 '원래 그런 거야'로 들릴 수 있는 전략이기 때문에, 난 이런 방식이 자주 쓰이는 것이 달갑지는 않았다. 좋은 글인데, 좀 띄겁게 들리는 것 같단 느낌도 받았고.


"KAIST에서 학사와 석사 학위를 받았다. 경영 컨설팅업체 맥킨지, 투자은행 크레디트스위스, 사모펀드 운용사 칼라일에서 기업 경영 및 M&A, 투자 분야 전문가로 10년간 일했다."라고 하는 저자의 설명은 그럴듯하다. 시대의 흐름에 맞춘 설명은 매우 재미있었다. 하지만 약간 그뿐이야?라는 생각과, 또 그건 너니까 할 수 있는 거 아냐?라는 생각이 들었다. 위에 언급한 이력들만 놓고 보면, 어디에 데려놓아도 자기 몫을 할 것 같은 사람이라는 느낌을 받게 된다.(물론 이력이 사람의 전부는 아니지만) 대한민국의 상위 0.5% 안에는 거뜬히 들어갈 지력의 소유자라고 짐작하는 것이 무리한 건 아닐 것이다. 그러니 그런 사람이 보는 세상의 내리막길에서, 본인이 택한 길을 무작정 제시하지 않았으리라. (저자의 의도가 불순하거나, 생각이 얕았다는 말이 아니다.) 






“좋아하는 일을 찾으라”는 말은 현실에서 너무 쉽게 허망해진다.


이 문장 앞에서는 가슴이 먹먹해졌다. 조금은 미안해졌다. 이때까지 내가 해 온 너 하고 싶은 거 해, 라는 말 때문이 아니다. 앞으로도 나는 그렇게 말할 것이기 때문이다. 저 말이 허망하다는 것은 어쩌면 '공리' 같은 것이 되겠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계속해서 너 하고 싶은 걸 해라고, 내가 충고를 해야만 하는 상황에서 이야기할 것이다.


그리고 그 말은 내리막 세상에서 그 사람을 나락에 빠뜨릴 가능성이 높다. 그럭저럭 살기 위해 치열하게 노력해야만 하는 세상 속에서, 그 사람을 어쩌면 낙오자로 만들지도 모른다. 다시, '내리막' 세상에서는 말이다. 이건 돌이킬 수 없는 것일까. 아마 그럴 것 같다는 느낌을 이 책에서는 받았다. 다른 책이나 글에서는? 확신을 얻을 수 있었다. 기적이라도 일어나지 않는 이상, 대체로 내리막길을 걷게 될 것이고, 심지어 그 안에서 내가 필요 없는 세상이 다가오는 속도는 가속화될 것이다. 


젠장, 나 뭐해먹고살지? 와 더불어, 내 조카가 살아갈 세상은 도대체 어떻게 생겨 먹을 것인가 하는 불안감에 휩싸였다. 난 내 조카를 위해 말 한 마리 사줄 여력도 안 되는 사람이니까 말이다. 





‘달인’들은 한결같이 일이 주는 보람을 얘기하고 그 덕에 가족을 부양할 수 있어 행복하다며.... / 당시의 ‘새로운’ 노동 윤리는 장인의 성실성을 요구하면서도 장인을 장인답게 하는 자긍심과 주체성을 원하지는 않았다. 


언제고 쓰고 싶었던 '단어' 가 책에서 반복해서 등장했다.


내가 생각하는 달인은 어려운 일을 쉽고 빠르게 처리하는 사람이다. 장인은, 쉬워 보이는 일을 매우 천천히 공들여서 어렵게 만드는 사람이다. 회사 생활의 달인들은, 모두가 머리 싸매는 문제를 그냥 이렇게 하면 쉽지 않냐며 처리해버리고 사라지는 사람들이다. 회사에 오래 다녔고, 우리가 고민한 문제를 몇 번 더 고민한 사람들이다. 장인들은, 내가 쉽게 쉽게 생각한 기획서를 들고 가면, 내 생각의 깊이의 한계에 대해서 지적하고, 나락에 떨어질 정도로 절망감을 안겨줄 수 있는 독설을 퍼붓는 사람들이다. 이건 생각해 봤어? 이건? 이라면서 날 압박할 것이다. 


나는 '장인' 이 되고 싶었던 것 같다. 하지만 '달인'처럼 회사 생활을 하고 있는 느낌이다.

(주: 이건 나 스스로 삶의 태도에 대한 개념어, 혼자만 쓰는 단어 들이고 통상 사용되는 단어에서 달인과 장인 사이의 우열관계는 성립되지 않으며, 이렇게 누군가에게 함부로 이야기했다가는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않은 개새끼 소리를 듣기 십상이다)






“정교하고 자유롭게 음을 구사함으로써 그 자체로 그것만으로 심오한 기쁨을, 타인의 승인 없이 스스로 가치 있다는 감각을 경험했다.”92) 바로 자존감을 주는 경험이다. 서넛은 루소를 인용하며 자존감 amour de soi과 자존심 amour-propre을 나누어 설명한다.

자존심과 자존감. 나는 이렇게 배웠다. 자존감 - Self-esteem. 즉 스스로를 평가하는 자세이다. 내가 어떻든 간에 말이다. 딴지일보 총수 김어준의 강의에서도 나온다. 나는 예전과 달리, 길가다 멋쟁이를 만나면 오 잘생겼는데, 뭐 나야 그냥 그렇게 생겼지만 난 내가 좋아 라는 식의 태도를 견지하고 있다. 


책의 의도와는 다르게, 나는 자존감을 '비교하지 않을 수 있는 태도'라고 생각하며, 그걸 '줄 세우는 세상에서 줄 밖으로 빠져나갈 용기'라고 정의하고 있다. 저자의 말처럼, 내리막 세상에서 줄 세우는 대로 서 있는다면 나는 아마 밑바닥에서 위에서 굴러 떨어지는 잘나신 분들을 받치느라 압사당하거나, 시지프스처럼 계속 힘에 붙여만 가는 상황 속에서 괴로워야만 할 것이다.


하지만 난 줄 밖으로 나가고 싶다. 폐병이 들어 굶어 죽더라도 아름다움만을 좇는 시인이 되고 싶다. 하지만 그런 재능은 없으니 그 자세로 내 전문성을 길러 아무거나 하나 만들고 떠나고 싶다. 개미도, 베짱이도 될 수 없다면 매미처럼 수년을 지저에서 기다리는 게 내 삶이 아닐까 한다.


뭐 기다리다가 죽을 수도 있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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