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슨한 마법사 사회를 바라보며 남긴 머글/노마지의 푸념
난 해리포터 팬이 아니다. 오히려 싫어하는 입장에 속했다. 왜 저걸 좋아하지 라고 질문을 던졌다. 오만한 생각이 있었다. 뭐랄까, 해리포터의 세계는 너무 엉성했다고 생각했었다. 체계라는 것이 딱히 없고. 그저 해리포터의 성장 일기 정도랄까. <죽음의 성물>을 읽고 나서야 좀 그런 기분이 나아졌지만 아직 그 생각은 변함이 없다. 해리포터 월드는 엉성하다.
이유야 뭐, 간단하지 않을까. 애초에 이런 대작이 될 것으로 생각하고 기획된 것이 아니니까. 그러니 현실을 기반으로 하는 세상을 상상해내었지만, 영국 중심으로 많은 것들이 돌아가는 세상이었고. 아시아 권역 등은 대다수가 무시되었고. 실제 근, 현대사의 흐름을 제대로 좇지도 못했다. 하지만 무슨 상관이랴. 해리 포터의 이야기는 그런 엉성함 속에서도 충분히 매력적이었고, 어쩌면 그 엉성함 그 자체로 매력이었다.
하지만 내가 말하고 싶은 엉성함은, 그 세계관과 현실과의 관계의 괴리 같은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세계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을 때 '마법사 사회' 자체가 가진 엉성함, 그것이다. 잊고 있었던 그 생각이, 이번 영화를 보면서 좀 분명하게 드러났다.
해리 포터의 세상은, 현실과 다르게 영웅이 실존하고, 개인이 시스템과 맞서 싸울 수 있는 세상이다. '알버스 덤블도어' 만 하더라도, 마법부 장관과 그렇게 싸우지 않는가. 그게 가능한 이유는 한 개인에게 주어질 수 있는 힘의 크기가 현실과는 다르기 때문이다. 마법사 개인이 가진 힘은 너무도 거대하다.
어쩌면 그 영역은 '기술' 보다는 '예술'의 영역에 가까운 것 같다. 또한 '재능'에 꽤나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마법사의 소양을 타고 태어나지 않은 사람은 애초에 갈 수 없는 곳. 그러니 개개인의 특성이 크게 발현되는 매력적이지만 위태롭고 엉성한 사회가 형성된 것은 아닐까.
해리 포터의 원작 세계를 보면, 정부는 '마법부 장관'을 중심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그 선정 과정은 매우 의심스럽다. 2000년대의 영국 정부와 분명한 관계를 가지고 있는 것 같지만, 장관은 수상이 딱히 임명하는 것 같지도 않고, 마법 사회의 일원들이 투표를 행사해서 뽑는 것 같지도 않다. 재판정은 있는 것 같지만 뭔가 제대로 기능하는 것 같지도 않다. 과거의 기억을 되살려서, 증거를 얼마든지 찾아낼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물론 반대로 그걸 조작할 수 있는 개인의 능력도 크니까, 그것 만으로 판결하는 것도 이상하겠지만)
마법사 군대는 없고, 경찰 조직과 같은 사람들만 있지만, 힘이 충분하지 않아 보인다. 경찰력이나, 공권력이 이렇게 개인의 힘 앞에 약한 곳에서 정부가 권위를 가지는 것을 보면 마법사 사회가 얼마나 착한 사람들로만 구성되어 있는지 알 것 같다. 그러니 볼드모트 같은 사람들한테 휘둘리기나 하지... (응?)
비교적 <신비한 동물 사전> 속의 미국 마법사 사회는 좀 촘촘한 시스템을 가진 것 같긴 한데... 글쎄. 일단 마법사 사회의 대통령은 과연 선출직일까 의문스럽고. 사형을 재판 없이 언도하는 것을 보니 1900년대 초 미국 마법 사회의 민주주의는 정말이지 땅끝까지 떨어져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그런 한편 흑인 여성이 대통령인 것을 보면서, 역시 개인의 능력이 최고인 사회에서는 인종주의가 발현할 여지가 없고, 오히려 능력을 가진 혈통이 우대받을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슬리데린 만세!)
얼마나 비인간적이게 엉성하냐면, '호그와트'의 삶을 좌지우지하는 기숙사를 고르는 것은 개인의 선택이 아니라, 사람의 인성이나 품성을 '마법 모자' 가 '미래' 까지 거의 내다보듯이 판단해서 이뤄지고 있다. (비문이다) 물론, 이를 마지막에 어딜 가건 상관없고, 간절히 바라면 우주가 도와주어서 가고 싶은 데 갈 수 있다고 말하지만... 재능을 미리 판단하는 (그리고 그게 사실인) 사회가 얼마나 비참한 것인지 참...
반면 <신비한 동물사전>에서는 재능을 억압받다 못해서 터져나가서 문제가 발생한다. 타고난 개인의 특성이 억압받다 보니 결국 터져나가는 것. 좋은 이야깃거리이다. 나와 다르다고 해서, 특출 난 재능을 가진 이를 핍박하지 말아야 할지니. 그런데 그렇다고 해서, '신비한 동물'을 보호한다고 해서 '뉴트 스캐맨더'의 모든 것이 합리화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결국 그도 영화 말미에, 미국 마법 사회가 정한 바와 같이 마법 세계와 현실 세계가 충돌하지 않도록 힘을 쏟는 것을 보면.... (뭐, 특정 재능을 지닌 이들만 마법 사회에 속할 수 있으니, 그렇게 구분 짓는 게 맞는 것일지도 모르지만...) + 그의 부주의함이 야기한 문제들은 영화 속에서는 동화처럼 해결되었지만, 그게 그렇다고 끝날 문제인가 (....)
어쨌든 졸라 파워풀한 개인이 존재할 수 있는 해리포터 월드 속 마법사 사회는 머글/노마지 사회와 구분되도록, 어느 시점에 합의를 해서 빠져나온 것 같다.(영화 속에 그런 표현이 있었다) 얕은 생각으로는 그건 나쁘지 않은 생각이었던 것 같다. 대신에, 그 사회 자체는 머글/노마지 사회와 다르게 전근대, 혹은 중세적인 가치를 여전히 가진 사회로 성장할 수밖에 없었지만 말이다. (2000년대에 론의 아버지가 자동차나 다른 머글의 기계를 연구하며 신기해하는 것을 보면, 엉성하기 짝이 없어 보이는 마법부가 의외로 그런 일은 잘 처리했던 것 같다. 아니면 그냥 해리의 시각으로 표현되었기에 멍청하게 짝이 없게만 표현되었거나...)
뭐, 저렇게 엉성한 사회를 계속 말하는 것은, 실제로 우리 사는 사회에는 시스템보다 거대한 개인은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이 명확해서가 아닐까. 영웅의 시대는 갔고, 국가의 시대가, 자본의 시대가 우리 곁에 와 있다. 사람들의 이야기는, 그 상상의 합의를 통해 영웅을 만들 수는 있지만 진정한 의미의 영웅은 이미 간 지 오래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우리 머글들은, 마법사 사회와는 다르게 촘촘한 사회를 만들어야만 한다. 우리에게는 '알버스 덤블도어' 도, '세베루스'도 '해리 포터' 도 없으니까. 그래서 시스템을 잘 만들고, 그것을 제대로 운영하는 게 중요하다. 개인의 감정, 능력에 기대기에는 인간의 능력의 한계는 보잘것이 없으니까(한편으로는 무한하지만, 다른 한 편으로 아무것도 아닌 게 인간의 능력 아니던가)
어쩌면 요즘 내가 화났던 것은 그것 때문이 아닐까 한다. 우리는 개인에게 '해리 포터'에게 '살아남은 아이'라고 추켜 세우면서, 비웃었던 것처럼 너무 많은 기대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