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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개의 글, 그리고 글쓰기를 포기하지 않을 이유

365 Proejct (280/365)

by Jamin

내 글에 이어서 생각하기 020 : 디지털 동반자 에 이어서

내 글에 이어서 생각하기 021 : MBTI, Nature of Nurture 에 이어서

내 글에 이어서 생각하기 022 : 100일간 글쓰기1년 글쓰기 목표 에 이어서


올해 1월 1일, 나는 꽤 거창한 글을 썼다. "단백질 러닝 머신"이 되겠다며 365개의 글로 이루어진 성장 서사를 꿈꿨고, Carol Dweck의 성장 마인드셋을 인용하며 "개인의 성장이 사회의 발전으로 이어지는 선순환"을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AI와 함께 통찰을 다듬고, 폴 그레이엄의 글을 바탕으로 나만의 관점을 더하겠다는 포부도 빼놓지 않았다.


9개월이 지난 지금, 매일 글은 쓰고 있지만 뭔가 이상하다. 조회수는 여전히 한두 자릿수를 오가고, 댓글은 거의 없다. 사실 무시당했다는 느낌보다는 그냥 아무도 관심이 없다는 게 더 정확할 것 같다. 더 솔직히 말하면, 내가 쓴 글들을 다시 읽어보니 AI가 다듬어준 그 정교한 문장들이 오히려 낯설게 느껴진다. 내 목소리라기보다는 누군가의 논문을 요약한 것 같달까.


오늘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정말 성장하고 있는 걸까? "생각이 정리됐다"고 스스로 위로하지만, 그게 구체적으로 뭔지는 모르겠다. "통찰이 깊어졌다"고 믿고 싶지만, 그걸 어떻게 측정할 수 있을까. 반면 매일 반복되는 일상의 비효율은 너무나 명확하다. Logseq에서 예전에 작성한 노트를 찾는데 매번 5분씩 헤매고, Toggl로 시간 추적 리포트를 뽑는 방법을 또 까먹어서 구글링하고, 분명 지난달에 해결했던 엑셀 수식 문제를 오늘 또 처음부터 찾아본다.


그래서 생각을 바꿔보기로 했다. 거창한 통찰이나 지평을 넓히는 글 대신, 그냥 내가 매일 쓰는 도구들의 사용법을 정리해보면 어떨까. 남들이 잘 안 쓰는 Logseq나 Toggl 같은 도구라도 상관없다. 어차피 내가 쓰니까. 완벽하게 활용하지 못해도 괜찮다. 오히려 초보자가 삽질하면서 알아낸 방법이 나중의 나에게는 더 도움이 될 수도 있으니까.


1월의 나는 "365개의 작은 성장이 모여 만들어낸 새로운 나를 발견할 것"이라고 썼다. 지금 생각해보니 조금 부끄럽다. 하지만 이제는 다르게 접근해보려 한다. 365개의 성장이 아니라 365개의 작은 매뉴얼을 만드는 거다. 미래의 나를 위한, 가장 실용적이고 이기적인 기록들. "AI 시대의 메타러닝 전략" 같은 거창한 제목 대신 "Logseq 데일리 노트 템플릿 설정하기"처럼 단순하지만 확실한 도움이 되는 글들로 채워나가는 거다.


어쩌면 이게 진짜 성장인지도 모른다.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허세를 내려놓고, 나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인정하는 것. 간디의 명언이나 Carol Dweck의 이론보다, 내일의 내가 오늘의 삽질을 반복하지 않도록 돕는 것이 더 가치 있다는 걸 받아들이는 것 말이다.


9개월 동안 매일 글을 쓰면서 얻은 가장 큰 깨달음은 아이러니하게도 이거다. 글쓰기의 첫 번째 독자는 다른 누구도 아닌 '미래의 나'여야 한다는 것. 그리고 그 독자를 만족시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 있다는 것. 이제 남은 3개월은 조금 다르게 써보려 한다. 거창한 러닝 머신이 아니라 소박한 기록 머신으로, 하지만 그게 오히려 더 정직한 성장의 모습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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