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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min Sep 07. 2016

<고스트 버스터즈>

홀츠먼 만세!

리부트 판 <고스트 버스터>는 내게 많은 고민거리를 안겨 주었다. 왜냐면 그다지 재미가 없었기 때문이다. 장면 장면의 전환이 부자연스러웠고, 몇몇 캐릭터는 개성 없이 떠다녔고. 통쾌한 카타르시스를 못 느껴서 그런 걸까 생각했다. 그리고, 연이어 이게 성반전 때문에 내가 불편하게 느끼는 것인가 걱정했다. 역시, 나는 아무리 이해하려고 해도 내 마음 한편에 남성성은 역시 나를 지배하는 것일까. 나는 변하지 못하는 걸까.




사실 나 하나 변하지 않는 건 그렇게 슬픈 일은 아니다. 근데, 나 말고 당신들도 변하지 못한다고 생각하니 무섭다. 나 하나 잘못되는 거야 상관없지만, 모두가 잘못되면 그냥 모든 게 잘못되는 거니까. 왜 잘못되냐고? 세상은 변하기 때문이다. 내가 알고 있던 '어떤 것' 은 시간이 지나면서 진짜였다가 가짜가 되기도 한다. <사피엔스>에서 유발 하라리가 말했던 것처럼, 혹은 <그것은 알기 싫다>에서 물뚝심송이 말한 것처럼. 가치란 모두의 공통된 상상에서 나온다. 우리가 권력이 왕좌에 있다고 믿기 때문에 왕좌가 그렇게 권위를 가지는 것이고, 모두가 종이 쪼가리의 가치에 동의하기 때문에 돈이 가치를 가지는 것처럼. 


그러니까 앞서 말한 문장을 거꾸로 돌리면, 모두가 바뀌면 세상은 바뀔 수 있다. (참 쉬운 말이다.) 사실 충분히 힘 있는 소수가, 혹은 상대 다수가 바뀌기만 해도 세상은 뒤집어질 수도 있다. 노예제가 철폐될 때 모두가 거기에 동의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 않은가. 이 땅에 민주화가 이뤄지던 때에도 군부정권을 더 선호하는 사람이 있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두 가지 문제. 얼마나 많은 사람이 바뀌어야 하는가, 그리고 우리는 정말 바뀌어야 하는가.


 



두 번째 질문은 어렵지만, 쉽게 대답할 수 있다. 우리가 의도하고 바꾸지 않아도 우리는 바뀐다. 분명히. 지구가 도는 것만큼이나 당연한 사실이다. 사회라는 상상의 하부 구조에는 수많은 욕망과, 물질들이 존재한다. 인간이 모두 하던 일을 멈추지 않는 이상 물질은 돌아가고, 욕망은 뒤섞인다. 그리고 어디론가 향해 갈 것이다. 그 종착지가 꽤나 어두운 곳일 수 있다는 이야기를 몇몇 똑똑하단 사람들이 하는 거고.


그래서 누군가는 브레이크를 잡자고 말한다. 변화를 멈출 때가 되었다고. 뭐, 의견은 존중받을 수 있지만, 사람들의 생각, 욕망, 집념이 모여 돌아가는 이 엔진은 우리 모두가 하나의 정신체에 연결, 통일되어 한 뜻을 가지지 않는 이상 멈추지 않을 것이다. (인류의 미래는 프로토스... 근데 걔들도 아마 계파싸움이 있..)


그러니 이제껏 우리는 변하는 대로 생각해오는 삶을 살아오다 지난 몇 백 년간 우리가 생각하는 데로 세상을 디자인할 수 있는 힘을 가지기 시작했단 것이다. '이젠' 각자가 살아오다 보니, 우연히 진화한 것과 달리 우리가 원하는 미래를 그려나갈 힘을 가졌단 것! 그러니 바뀌어야 하지 않을까? 더 나은 세상으로?


그럼 그 변화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함께하면 좋은가? 시작은 51%라고 생각한다. 왜냐면 어떤 길이라도 정답은 아니기 때문이다. 되돌아 갈 수 있어야 하니까. 우리가 가는 길도 낭떠러지 일 수 있거든. 언제라도 핸들을 돌릴 수 있도록 말이다. 


물론 다수결, 공리주의 뭐 이런 게 결코 진리이거나 항상 옳다거나 그런 것은 아니다. 하지만, 기존에 잘못 잡혀 있는 인식을 바꾸기 위해서는 적어도 51%가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유색인종에게, 여성에게 참정권을 부여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그 의사결정에 관여하는 사람의 과반 이상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말로 설득을 하거나 돈으로 매수를 하거나 폭력을 쓰거나. 어쨌든, 인생의 답은 42가 아닌 51일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와 넘버 쓰리가 떠오른다)




그래서 사실 나는 고스트 버스터즈를 보면서 내가 변하지 않은 것인가 라는 실망을 했다. 이 영화는 페미니즘 영화는 아니지만, 페미니즘을 가지고 이야기할 만한 것이 많았으니까. 내가 변하지 않은 가부장적 꼰대라서 이 영화가 재미가 없었던 것인가 하는 고민을 했다. 왜냐면 여성의 지위에 대한 문제가 확 뒤바뀌려면, 그게 51이 되려면 (단순히 생물학적 의미에서) 남성들이 4~5% 이상 이 문제에 공감하고, 행동에 나서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나도 그러지 못하면 다른 사람에게 그것을 해야 한다고 권유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뭐, 어쩌면 이런 문제에 대해서 고민하고 글을 쓰는 것이 시작일 수도 있다. 아니면 진짜 나 같은 사람에게 이번 <고스트 버스터즈>가 재미가 없었던 것일 수도 있다. 흔한 꼰대 덕후처럼 원전에 대한 미화가 심해진 것일 수도 있다. 어쨌건, 이 영화는 벡델 테스트를 통과했고, 남성 중심의 시각이 충분히 녹아 있던 원전을 반전시켰으며 그리고 흥행으로도 평작 수준의 성적을 내었다. 그러니 내가 고민하는 것이 내 변화의 시작이듯 영화계의 변화의 시작도 여기에 있지 않을까. 여성 히어로가 멍청한 남성을 구해내는 그림이 먼저 오는 게 맞는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은 들었다. 이 기울어진 운동장에서는. 


fin.

(고스트 버스터즈 리뷰입니다. 진짜로.)




사족 1. 오리지널 1,2편을 보았는데, 아무래도 이런 발상 자체 - 유령을 잡는 사람인데, 그것이 과학적인 방법으로 이뤄진다는 것 자체가 가지는 매력이 아무래도 강했던 것 같다.


사족 2. 오리지널의 남성들은 이걸 가지고 돈벌이할 생각을 했는데, 이 여자들은 그러지 않는다. (적어도 지금은) 뭐 앞으로 뭐 해 먹고 살아갈지 큰 걱정이지만... 뭐 잘 하겠지.


사족 3. 오리지널에 비해서 뭔가 설명이 좀 부족한 것은 확실히 흠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 스타트랙처럼 타임라인을 아예 리붓시키는 사건이 있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의견. 예를 들어 엄청난 고스트 아포칼립스를 막기 위해서 오리지널 멤버가 어마 무시한 짓을 저지르고, 어찌어찌 돌아갔지만 새 세상을 구하는 히어로는 오리지널 캐릭터가 아니라 뉴 캐릭터인 그런..


사족 3. 홀츠먼 님은 멋있다. 힙해하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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