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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의 '불변성'과 '24K'의 진짜 의미

365 Proejct (329/365)

by Jamin

TIL 2025_01: 순금은 왜 24K라고 부르나?


오늘 금(Gold)이라는 하나의 주제로 대화를 나누며 아주 흥미로운 생각의 흐름을 따라가게 되었습니다. 시작은 단순한 '시세'였지만, 끝은 인류의 '역사와 관습'에 닿아있었습니다. 이 배움을 잊지 않기 위해 글로 정리해 봅니다.


1. 시작: 널뛰는 금값, 그 이유는 '공포'와 '믿음'


대화는 최근의 금값 동향으로 시작됐습니다. 2025년 내내 금값은 무섭게 치솟았습니다. 중동과 유럽의 지정학적 불안, 인플레이션에 대한 공포로 인해 사람들은 "무엇을 믿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으로 금을 선택했습니다. 주식이나 화폐는 한순간에 종잇조각이 될 수 있지만, 금은 그렇지 않다는 믿음 때문이죠. 그 결과 금값은 연일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습니다.


그런데 바로 2025년 10월 22일경, 이 미친듯한 상승세가 하루아침에 꺾였습니다. 무려 12년 만의 최대 일일 낙폭을 기록하며 폭락했습니다. 이유는 간단했습니다. 시장이 과열됐다고 판단한 투자자들의 대규모 '차익 실현'과, 미-중 무역 협상 등 잠시 긴장이 완화된 틈을 탄 '심리 변화'였습니다.


이 널뛰는 시세를 보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금은 참 이상한 자산입니다.


2. 금의 가치: 실용성 vs 불변성이라는 '약속'


금은 그 자체로 배당이나 이자를 주지 않습니다. 물론 부식이 안 되고 전도성이 뛰어나 최첨단 반도체, 우주선, 정밀 의료기기에 쓰이는 '실질적인 가치'도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금괴(Gold Bar)'를 사는 이유는 반도체에 쓰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우리는 금의 '불변성(Immutability)'에 베팅하는 것입니다.


수천 년 전 이집트의 파라오도, 신라의 왕도, 그리고 2025년의 우리도 "이 노랗고 반짝이는 것은 귀하고 변하지 않는다"는 하나의 '사회적 약속'을 공유하고 있습니다. 즉, 금의 가치는 그 실용성보다는 인류가 수천 년간 쌓아 올린 '신뢰''역사' 그 자체에 있습니다. 종이나 디지털 숫자로 표현되는 화폐의 가치는 변해도, 금의 가치는 영원할 것이라는 강력한 믿음이죠.


3. 순금의 기준: 왜 100%가 아닌 '24K'일까?


이 '불변'과 '순수함'에 대한 믿음이 금의 핵심이라면, 우리는 그 순수함을 어떻게 측정할까요? 우리는 모두 순금을 '24K'라고 부릅니다.


여기서 대화는 흥미로운 방향으로 흘러갔습니다. "왜 하필 24일까?"


우리는 10진법의 세계에 살고 있습니다. % (percent, 100분율)가 훨씬 더 직관적이고 과학적입니다. 100%라고 하면 될 것을, 왜 굳이 24라는 숫자를 기준으로 삼았을까요? (참고로 18K는 18/24, 즉 75%의 금 함량을, 14K는 14/24, 즉 58.5%의 금 함량을 뜻합니다.)


그 기준이 되는 24라는 숫자는 도대체 어디서 왔을까요?


4. 발견: '캐럽(Carob)' 한 움큼이 24개


놀랍게도, 그 유래는 매우 과학적이거나 수학적인 이유가 아니었습니다. 바로 '캐럽(Carob)'이라는 중동 지역의 콩과 식물 열매였습니다.


아주 오래전, 정밀한 저울이 없던 시절, 중동의 상인들은 무게가 놀라울 정도로 균일했던 이 말린 '캐럽 씨앗'을 저울추 대신 사용했습니다. 금이나 소금, 보석 같은 귀중품의 무게를 잴 때 이 캐럽 씨앗을 기준으로 삼았던 것입니다. (우리가 다이아몬드 무게를 '캐럿(Carat)'이라고 부르는 것도 여기서 유래했습니다.)


그렇다면 24는 어떻게 나왔을까요?


가장 유력한 설은, 당시 어른이 손으로 이 캐럽 열매를 한 움큼 쥐었을 때 잡히는 개수가 평균적으로 24개였다는 것입니다.


즉, '한 움큼'이라는 가장 원시적이고 아날로그적인 기준이 순도를 측정하는 단위가 되었고, '순금'이란 '24개의 캐럽 열매 무게'에 해당하는 기준, 즉 '24/24'로 정의된 것입니다.


5. 오늘의 배움: 절대적 가치와 상대적 기준의 아이러니


이 사실을 알고 나니 금이라는 존재가 다시 보였습니다.


우리는 금을 '절대적 가치', '과학적 불변성'(원자번호 79, Au)의 상징으로 여깁니다. 하지만 그 절대적인 순수함을 측정하는 표준(Standard)은, '어떤 상인의 손 한 움큼'*이라는 지극히 인간적이고, 상대적이며, 심지어 부정확할 수도 있는 아날로그적 '관습'에서 비롯되었습니다.


100%라는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기준 대신, 24K라는 역사와 이야기가 담긴 기준이 수천 년간 살아남아 글로벌 표준이 된 것입니다.


결국 금의 가치는 화학적 안정성에서만 나오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캐럽' 열매를 손에 쥐어보던 고대 상인들의 이야기, 그리고 그 이야기를 수천 년간 믿어 온 인류의 역사가 함께 만들어낸 것이었습니다. 금값이 폭락한 오늘, 그 금속에 담긴 오래된 이야기를 배운 흥미로운 하루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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