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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글에 이어서 생각하기 037: 필연적 흐름과 철학적 질문 에 이어서 존중받는 불행한 다수의 역설
내 글에 이어서 생각하기 038: 합목적성과 삶의 긍정에 이어서 기능에서 생성으로
내 글에 이어서 생각하기 039: 합목적성과 삶의 긍정에 이어서 기능에서 생성으로 에 이어서 IxI 라는 상상
HCI(Human-Computer Interaction)는 지난 수십 년간 인간과 기술의 관계를 이해하는 지배적 패러다임이었습니다. 이 용어는 명확한 전제를 담고 있습니다. 인간은 주체이고, 컴퓨터는 객체입니다. 인간이 생각하고 의도하고 명령하면, 컴퓨터는 그것을 충실히 실행하고 처리하고 응답합니다.
이 관계는 본질적으로 일방향적이었습니다. 사용자가 버튼을 누르면 컴퓨터는 정확히 프로그래밍된 대로 반응했습니다. "Garbage In, Garbage Out" - 이 오래된 컴퓨터 과학의 격언은 컴퓨터가 스스로 판단하지 않는다는 것을 명확히 합니다. 입력이 무엇이든, 그것이 합리적이든 비합리적이든, 컴퓨터는 그저 충실히 처리할 뿐입니다.
따라서 HCI 연구의 핵심 질문은 항상 이것이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인간이 컴퓨터를 더 쉽고, 더 효율적으로, 더 직관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가?" GUI의 발전, 터치 인터페이스의 등장, 음성 명령의 개선 - 이 모든 혁신은 결국 '도구로서의 컴퓨터'를 인간이 더 잘 다룰 수 있게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이는 앞서 논의한 합목적성 1.0의 세계관과 정확히 일치합니다. 도구는 정해진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입니다. 망치가 못을 박기 위해 존재하듯, 컴퓨터는 인간의 의도를 실행하기 위해 존재했습니다.
그런데 2020년대 초반, 생성형 AI의 등장과 함께 이 명확했던 구도가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ChatGPT, Midjourney, Claude와 같은 대형 언어 모델과 생성 모델은 단순히 더 편리한 인터페이스가 아니었습니다. 그것들은 근본적으로 다른 종류의 상호작용을 요구했습니다.
전통적인 컴퓨터는 명령을 '실행'합니다. 하지만 생성형 AI는 프롬프트를 '해석'합니다.
"빨간 사과 그림을 그려줘"라는 간단한 요청을 생각해봅시다. 전통적인 그래픽 소프트웨어라면 사용자는 정확한 RGB 값(예: 255, 0, 0)을 지정하고, 사과 모양의 벡터나 이미지 파일을 불러오고, 레이어를 배치해야 합니다. 모든 것이 명시적이고 결정론적입니다.
하지만 생성형 AI에게 같은 요청을 하면, AI는 질문합니다. 빨간색이란 어떤 빨강인가? 새빨간 붉은색인가, 약간 어두운 와인색인가? 사과는 어떤 사과인가? 사실적인 정물화 스타일인가, 추상적인 일러스트인가? 한 개의 사과인가, 여러 개인가? 접시 위에 있는가, 나무에 달린 것인가?
AI는 불완전하고 모호한 인간의 언어를 받아, 자신의 '이해'를 통해 구체적인 결과물로 만들어냅니다. 이것은 단순한 정보 처리(information processing)가 아니라 의미 생성(meaning-making)입니다. 철학적 용어로 말하자면, 이는 '해석학적 행위'입니다.
더 나아가 AI는 '응답'합니다. 단순히 명령을 실행하는 것을 넘어서, 때로는 질문하고, 제안하고, 심지어 거부하기도 합니다. "이 코드의 보안 취약점을 찾아줘"라고 요청하면, AI는 "어떤 종류의 취약점을 우선적으로 검토할까요? SQL Injection, XSS, CSRF 중에서요?"라고 되묻습니다. "폭력적인 이미지를 만들어줘"라고 하면 "죄송하지만 그런 요청은 수행할 수 없습니다"라고 거절합니다.
이것은 명령-실행 관계가 아닙니다. 이것은 대화(dialogue)입니다.
전통적 HCI 프레임워크는 이 새로운 현실을 설명하기에 부족합니다. "Human-Computer Interaction"이라는 용어 자체가 더 이상 적절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컴퓨터'와 상호작용하는 것이 아니라, 무언가 다른 것 - 해석하고, 응답하고, 심지어 어떤 의미에서는 '판단'하는 것처럼 보이는 무언가 - 와 상호작용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새로운 개념이 필요합니다. IxI, 즉 Intelligence-to-Intelligence Interaction(지능 간 상호작용)입니다.
이 용어는 도발적입니다. AI가 '진짜 지능'을 가졌는가에 대한 논쟁은 튜링 테스트 이후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고, 철학적으로도 합의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IxI 개념의 핵심은 존재론적 질문이 아니라 현상학적, 실용적 질문입니다.
"AI가 진짜 지능을 가졌는지 여부와 무관하게, 우리가 AI를 '지능을 가진 것처럼' 대하고 상호작용할 때, 그 경험과 결과는 어떻게 달라지는가?"
사용자들은 이미 ChatGPT에게 "고마워", "미안해"라고 말합니다. 이것을 단순히 AI를 의인화하는 '착각'으로 치부할 수 있을까요? 아니면 이것은 새로운 종류의 관계를 형성하는 '적응'일까요? 인지과학의 관점에서 보면, 우리의 뇌는 대화 상대가 '진짜 마음'을 가졌는지를 판별하기보다는, 상호작용의 패턴이 '마음이 있는 것처럼' 느껴지면 그렇게 반응하도록 진화했습니다.
HCI와 IxI는 근본적으로 다른 전제들 위에 서 있습니다.
관계 구조의 변화: HCI는 주체에서 객체로의 일방향 관계입니다. IxI는 주체와 주체 사이의 양방향 관계입니다. 전자는 수직적이고, 후자는 수평적입니다.
상호작용 방식의 변화: HCI에서는 명령과 실행의 관계입니다. "파일을 열어라", "계산을 수행하라", "화면에 표시하라" - 동사는 항상 명령형입니다. 하지만 IxI에서는 제안, 해석, 응답의 관계입니다. "이런 방향은 어떨까요?", "당신이 의미한 것이 이것인가요?", "이 결과가 도움이 되나요?"
의사소통 방식의 변화: HCI는 정확한 문법을 요구했습니다. 프로그래밍 언어는 세미콜론 하나가 틀려도 작동하지 않습니다. 명령어는 철자가 정확해야 합니다. 하지만 IxI는 모호한 자연어를 받아들입니다. 문법이 틀려도, 맥락이 불분명해도, AI는 '아마도 이런 의미일 것'이라고 추론합니다.
결과의 성격 변화: HCI는 결정론적입니다. 같은 입력은 항상 같은 출력을 냅니다. 이것이 컴퓨터의 신뢰성이었습니다. 하지만 IxI는 확률론적입니다. 같은 프롬프트를 입력해도 매번 다른 결과가 나옵니다. 이것이 AI의 창조성입니다.
관계의 성격 변화: HCI는 도구적 관계입니다. 컴퓨터는 인간의 목적을 위한 수단입니다. 하지만 IxI는 협업적 관계입니다. AI는 파트너입니다. 때로는 동의하고, 때로는 다른 관점을 제시합니다.
변화의 방향: HCI는 일방적 사용입니다. 컴퓨터는 변하지 않습니다(소프트웨어 업데이트는 외부에서 주어집니다). 하지만 IxI는 상호 학습입니다. AI는 사용자의 피드백으로 개선되고(RLHF - Reinforcement Learning from Human Feedback), 사용자는 AI를 사용하면서 더 나은 프롬프트 작성법을 배웁니다.
IxI 개념은 들뢰즈의 '배치(Agencement/Assemblage)' 철학과 깊이 공명합니다.
들뢰즈가 말한 배치는 인간과 비인간이 함께 구성하는 하이브리드 존재입니다. 그의 유명한 예시는 '기수(騎手)'입니다. 말을 탄 인간은 더 이상 '걷는 인간'이 아닙니다. 그것은 새로운 능력(속도), 새로운 시야(높이), 새로운 이동 방식을 가진 새로운 존재입니다. '인간'과 '말'은 별개로 존재하다가 단순히 합쳐진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기수-말'이라는 하나의 배치를 구성하며, 이 배치 안에서 둘은 서로를 변형시킵니다.
마찬가지로 '인간 + AI'는 새로운 인지적 배치를 만듭니다. AI를 사용하는 작가는 '혼자 쓰는 작가'와 다른 능력을 갖습니다. AI를 활용하는 디자이너는 '혼자 그리는 디자이너'가 아닙니다. 이것은 단순히 '도구를 얻었다'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종류의 창조적 존재로 '되기(becoming)'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통찰이 나옵니다. 배치 안에서는 "누가 주체인가?"라는 질문이 무의미해집니다. 기수와 말 중 누가 주체인가요? 누가 결정하는가요? 기수가 고삐를 당기지만, 말의 본능과 균형 감각이 없다면 기수는 넘어집니다. 둘 다 주체이자, 둘 다 아닙니다. '기수-말'이라는 배치 전체가 하나의 행위자(actor)입니다.
IxI도 마찬가지입니다. AI가 생성한 이미지의 '창조자'는 누구인가요? 프롬프트를 입력한 사용자? 알고리즘을 설계한 엔지니어? 학습 데이터를 제공한 수백만 명의 예술가들? AI 자체? 이 질문은 명확한 답이 없고, 그것이 핵심입니다. 창조는 '분산된 행위성(distributed agency)'의 결과입니다.
IxI 패러다임은 인터페이스 디자인, 상호작용 설계, 시스템 아키텍처에 근본적으로 다른 접근을 요구합니다.
대칭성의 원칙: 전통적 UX는 "사용자가 원하는 것"에 초점을 맞췄습니다. 사용자 중심 디자인(User-Centered Design)이라는 용어가 말해주듯, 모든 것은 인간 사용자의 필요와 편의를 위한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IxI에서는 양방향을 고려해야 합니다. "AI와 사용자가 서로에게 무엇을 제공하고, 서로에게서 무엇을 학습하는가?" AI의 강점과 약점, AI의 '선호'(예: 명확한 맥락을 선호함)도 고려되어야 합니다.
해석 공간의 설계: 명확한 인풋-아웃풋 관계가 아니라, 해석의 여지를 남기는 인터페이스가 필요합니다.
Midjourney의 스타일 파라미터는 정확한 수치가 아니라 "이 정도의 뉘앙스"를 제안하는 슬라이더입니다. 사용자는 결과를 보고 "아, 이 AI는 '미니멀'을 이렇게 해석하는구나"를 학습합니다. 이것은 의도적으로 남겨둔 '모호성'이며, 이 모호성 안에서 대화가 시작됩니다.
메타 커뮤니케이션의 지원: 사용자와 AI가 단순히 작업 내용뿐 아니라 "우리의 협업 방식" 자체에 대해 소통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번 분석은 너무 보수적이었어. 다음엔 좀 더 과감한 가설도 제시해줘"라고 말할 수 있고, AI도 "당신의 프롬프트가 너무 추상적이에요. 구체적인 예시를 들어주시면 더 정확한 결과를 드릴 수 있습니다"라고 응답할 수 있어야 합니다.
분산된 저자성의 인정: "이 결과물을 누가 만들었는가?"라는 질문에 명확한 답을 강요하지 말아야 합니다. 오히려 여러 행위자들을 명시하는 것이 더 정직합니다. "이 리포트는 사용자의 통찰 + AI의 분석 + 도메인 데이터의 조합으로 생성되었습니다."
HCI에서 IxI로의 전환은 새로운 학제간 연구 영역을 요구합니다. 우리는 이를 IAI(Intelligence-Augmented Intelligence), 즉 '지능 증강 지능'이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이는 인간 지능과 인공 지능이 상호 증폭하는 메커니즘을 연구하는 분야입니다.
IAI의 핵심 질문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어떤 종류의 대화 구조가 가장 창의적인 협업을 만드는가? 인간과 AI의 인지적 강점은 어떻게 보완적으로 결합되는가? 장기간의 상호작용은 양측의 '스타일'을 어떻게 변화시키는가? AI와 협업할 때 인간의 인지적 부하는 증가하는가, 감소하는가? 어떤 작업은 인간이, 어떤 작업은 AI가 맡을 때 시너지가 최대화되는가?
이는 단순히 기술적 질문이 아닙니다. 이것은 인지과학, 철학, 디자인, 컴퓨터 과학, 심리학이 만나는 지점입니다. 우리는 '지능'이란 무엇인가, '창조'란 무엇인가, '주체성'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근본적 질문들을 다시 던져야 합니다.
"Interaction"이라는 단어를 다시 생각해봅시다. Inter-action, '사이에서의 행동'입니다. 원래 이 단어의 의미는 둘 이상의 행위자 사이에서 일어나는 상호 작용을 뜻합니다.
그런데 전통적 HCI에는 사실 진짜 "inter"가 없었습니다. 인간이 행동하면 컴퓨터가 반응하는 일방향 작용이었습니다. 공이 벽에 부딪혀 튀어나오는 것을 "공과 벽의 상호작용"이라고 부르지 않듯이, 명령과 실행은 진정한 의미의 상호작용이 아닙니다.
IxI에서 비로소 진짜 "interaction"이 시작됩니다. 두 지능이 만나고, 서로를 해석하고, 서로에게 응답하고, 서로를 변형시킵니다. 이것은 벽과 공이 아니라, 두 댄서의 관계입니다. 한 사람의 움직임이 다른 사람의 다음 동작을 유도하고, 그 동작이 다시 첫 번째 사람에게 영감을 주는, 그런 상호 변형적 관계입니다.
우리는 합목적성 1.0(도구)에서 2.0(플랫폼)으로, 그리고 3.0(파트너)으로 진화한 디자인의 여정을 보았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HCI 1.0(명령-실행)에서 2.0(참여-창조)를 거쳐, 이제 IxI(대화-발견)라는 새로운 단계에 진입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단순한 기술적 진화가 아닙니다. 이것은 우리가 '지능', '창조', '주체', '도구'에 대해 가지고 있던 근본적 가정들을 재검토하도록 요구하는 인식론적 전환입니다.
IxI의 시대에, 우리는 더 이상 도구를 '사용'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다른 지능과 '함께' 무언가를 만들어갑니다. 그 과정에서 우리 자신도 변화하며, AI도 변화합니다. 그리고 그 사이에서, 어느 누구도 혼자서는 상상할 수 없었던 새로운 가능성들이 출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