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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능에서 생성으로, 그리고 '우연한 발견'으로

365 Proejct (327/365)

by Jamin

내 글에 이어서 생각하기 037: 필연적 흐름과 철학적 질문 에 이어서 존중받는 불행한 다수의 역설

내 글에 이어서 생각하기 038: 합목적성과 삶의 긍정에 이어서


들어가며: 철학에서 디자인으로


앞서 우리는 '합목적성'이라는 개념이 어떻게 삶을 하나의 목적에 가두는 감옥이 될 수 있는지, 그리고 니체와 들뢰즈가 이를 어떻게 비판했는지 살펴보았습니다. 삶의 가치는 외부에서 주어진 목적이 아니라, 리좀처럼 예측 불가능하게 뻗어나가는 '생성(Becoming)'의 과정 자체에 있다는 통찰이었습니다.


흥미롭게도, 이 철학적 논의는 디자인의 세계에서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거대한 변화를 이해하는 열쇠가 됩니다. '사용자 참여의 활성화''생성형 AI의 무작위성'이라는 두 가지 물결은, 디자인의 '합목적성' 개념을 근본적으로 재정의하고 있습니다.


디자인은 더 이상 '정해진 목적을 달성하는 도구'가 아닙니다. 그것은 '창조의 가능성'을 여는 플랫폼이 되었고, 이제는 '예측 불가능한 발견'을 만들어내는 생성적 대화의 장이 되고 있습니다. 이는 철학이 이론으로 제시한 것을, 기술과 디자인이 현실로 구현하고 있는 과정입니다.


합목적성 1.0: 기능주의의 시대


디자인의 제1원칙은 오랫동안 '합목적성(合目的性)'이었습니다. 라틴어 어원 designare(지시하다, 성취하다)가 말해주듯, 디자인은 '주어진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합리적 행위였습니다.


망치는 못을 박기 위해, 의자는 앉기 위해, 자동차는 이동하기 위해 존재했습니다. 바우하우스의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Form follows function)"는 선언은 이 시대의 정신을 완벽하게 요약합니다. 이 '합목적성 1.0'의 시대에, 디자인의 가치는 단 하나의 질문으로 평가되었습니다. "얼마나 효율적으로 정해진 기능을 수행하는가?"


이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목적론과 정확히 같은 구조입니다. 새의 날개가 '날기 위해' 존재하듯, 모든 디자인 오브젝트는 명확한 목적을 위해 존재했습니다. 디자이너는 신처럼 '목적'을 선언했고, 사용자는 그 목적에 순종하는 소비자였습니다.


이 시대의 한계: 사용자는 수동적 존재였습니다. 디자이너가 정의한 '단 하나의 올바른 사용법'만이 존재했고, 그것을 벗어난 사용은 '오용'이나 '남용'으로 간주되었습니다. 이는 마치 '천국'이라는 외부 목적을 위해 '지금, 여기'의 삶을 수단으로 전락시킨 합목적성의 철학적 한계와 정확히 닮아 있습니다.


전환점 1: 사용자 참여의 혁명

그러나 20세기 후반, 사용자는 더 이상 침묵하지 않았습니다.


디지털 기술의 발전, 특히 퍼스널 컴퓨터와 인터넷의 등장은 사용자를 단순한 소비자에서 '공동 창조자(Co-creator)'로 변화시켰습니다. 사람들은 디자이너가 예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제품을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트위터의 해시태그는 사용자들이 만든 것이었고, 아이폰 앱스토어는 애플 엔지니어가 아닌 전 세계 개발자들이 채웠습니다.


웹 2.0 시대의 도래와 함께, '참여', '공유', '개방'이 새로운 시대정신이 되었습니다. 위키피디아는 전문가가 아닌 집단지성으로 만들어졌고, 유튜브는 누구나 창작자가 될 수 있는 플랫폼이 되었습니다.


이는 단순한 기술적 변화가 아니었습니다. 이것은 권력의 이동이었습니다. '무엇이 좋은 디자인인가'를 결정하는 권한이 디자이너에서 사용자로, 중앙에서 주변으로 이동했습니다.


합목적성 2.0: 공동창조의 시대


사용자 참여의 물결은 디자인의 '목적' 자체를 재정의했습니다.

좋은 디자인은 더 이상 '완결된 기능'을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창조의 가능성'을 열어두는 것이 되었습니다. 디자이너는 최종 결과물이 아니라 '놀이터'와 '시스템'을 설계했습니다.


대표적 사례들:

레고 블록: 집을 만들라고 정해주지 않습니다. 블록이라는 시스템을 제공하고, 사용자가 성, 우주선, 또는 상상할 수 없는 무언가를 만들도록 합니다.

오픈소스 소프트웨어: 리눅스는 '완성된 운영체제'가 아니라 전 세계 개발자들이 함께 만들어가는 '살아있는 생태계'입니다.

마인크래프트: 게임이지만 '게임의 목적'이 없습니다. 사용자들이 스스로 목적을 창조합니다.


이것이 '합목적성 2.0'입니다. 디자인의 목적은 "사용자의 창조를 가능하게 하는 것"으로 확장되었습니다. 들뢰즈의 언어로 표현하자면, 디자인은 하나의 뿌리에서 정해진 방향으로 자라는 '나무(�)'에서, 예측 불가능하게 접속하고 뻗어나가는 '리좀(�)'으로 진화했습니다.


디자이너의 역할도 변화했습니다. 그들은 더 이상 '문제 해결자(Problem Solver)'가 아니라 '조력자(Facilitator)' 또는 '플랫폼 건축가'가 되었습니다.


이 시대의 특징: 사용자는 능동적 창조자가 되었지만, 여전히 '통제권'은 인간에게 있었습니다. 사용자는 레고 블록을 자신의 의도대로 조립하고, 코드를 자신의 목적에 맞게 수정했습니다. 창조의 주체는 여전히 명확했습니다.


전환점 2: 생성형 AI의 등장


그리고 2020년대, 우리는 두 번째 거대한 파도와 마주하고 있습니다. 바로 생성형 AI입니다.


ChatGPT, Midjourney, Stable Diffusion 같은 생성형 AI는 단순한 도구가 아닙니다. 이들은 '창조적 파트너'입니다. 사용자가 프롬프트를 입력하면, AI는 사용자조차 예상하지 못한 결과물을 내놓습니다.

여기서 결정적인 차이가 발생합니다:


레고 블록은 예측 가능합니다. 빨간 블록과 파란 블록을 어떻게 조합할지는 사용자가 완전히 통제합니다.

생성형 AI는 예측 불가능합니다. 같은 프롬프트를 입력해도 매번 다른 결과가 나옵니다. AI 내부의 확률적 과정은 '블랙박스'입니다.


이는 '통제의 상실'이자, 동시에 '우연성의 발견'입니다. 디자이너와 사용자, 그 누구도 의도하지 않았던 뜻밖의 결과물이 '툭' 튀어나옵니다.


이것은 디자인 역사상 전례 없는 상황입니다. 창조의 과정에 '비인간(Non-human)'이 진입했고, 그 비인간은 단순히 명령을 수행하는 도구가 아니라 자신만의 '무작위성'을 가진 존재입니다.


합목적성 3.0: 우연한 발견의 시대


생성형 AI의 등장은 '합목적성'이라는 개념을 다시 한번 근본적으로 진화시킵니다. 이것이 바로 '합목적성 3.0'입니다.


세 시대의 비교:

1.0 (도구): 사용자는 망치를 '통제'하며 정해진 목적을 달성합니다.

2.0 (플랫폼): 사용자는 레고를 '통제'하며 자신만의 목적을 창조합니다.

3.0 (파트너): 사용자는 AI에게 프롬프트를 '제안'하고, AI가 내놓는 '통제 불가능한' 결과물을 '발견'합니다.


디자인의 새로운 목적은 '효율적인 기능'이나 '창조의 가능성'을 넘어, '경이로운 우연성(Serendipity)을 발견하게 하는 것'이 됩니다.


생성적 대화의 설계

합목적성 3.0 시대의 디자이너는 무엇을 하는가? 그들은 이제 '대화 설계자(Conversation Designer)' 또는 '우연성의 큐레이터'가 됩니다.


그들이 설계해야 하는 것은:

1. 질문의 구조 (프롬프트 아키텍처)

어떤 질문(프롬프트)이 AI로부터 가장 창의적인 '무작위성'을 이끌어낼 수 있는가?

너무 좁으면 AI의 잠재력을 제한하고, 너무 넓으면 사용자는 혼란에 빠집니다.

예: 미드저니의 파라미터 시스템은 사용자가 AI의 무작위성을 '조율'할 수 있게 합니다.


2. 반복의 흐름 (이터레이션 디자인)

사용자가 AI의 예측 불가능한 결과물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편집하고, 다시 발전시킬 수 있는가?

AI와의 대화는 일회성이 아니라 순환적입니다. 결과 → 피드백 → 새로운 프롬프트 → 새로운 결과.

예: ChatGPT의 대화형 인터페이스는 이 반복적 탐색을 자연스럽게 만듭니다.


3. 안전망의 설치 (가드레일 설계)

이 통제 불가능한 과정 속에서 사용자가 '길을 잃지 않고' 새로운 영감을 '발견'하도록 돕는 장치는 무엇인가?

완전한 자유는 때로 마비를 낳습니다. 적절한 제약과 가이드가 필요합니다.

예: DALL-E의 안전 필터는 무작위성의 방향을 윤리적으로 조율합니다.


4. 우연의 포착 (발견의 순간 디자인)

사용자가 AI가 생성한 수많은 결과물 중에서 '아, 이거다!' 하는 순간을 어떻게 알아차리고 포착할 수 있게 하는가?

저장, 북마크, 버전 관리, 비교 기능 등이 중요해집니다.


새로운 창조의 주체


합목적성 3.0에서 흥미로운 철학적 질문이 등장합니다. "누가 창조자인가?"

AI가 만든 이미지의 창조자는 누구인가? 프롬프트를 입력한 사용자? 알고리즘을 설계한 엔지니어? 학습 데이터를 제공한 수천만 명의 예술가들? AI 자체?

이 질문은 명확한 답이 없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핵심입니다.


들뢰즈가 말한 '리좀'은 단일한 뿌리나 중심이 없습니다. 합목적성 3.0의 창조 과정도 마찬가지입니다. 그것은 '분산된 창조성(Distributed Creativity)'입니다. 인간과 비인간, 의도와 무작위, 통제와 발견이 뒤섞인 하이브리드 과정입니다.


결론: 새로운 디자인 패러다임

합목적성이라는 개념은 폐기된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 의미가 더욱 심오하고 풍부해졌습니다.


합목적성의 진화 요약:


합목적성 1.0: 정해진 기능을 위한 디자인 (효율성의 추구)

합목적성 2.0: 사용자의 창조를 위한 디자인 (가능성의 개방)

합목적성 3.0: AI와의 대화를 통한 우연한 발견을 위한 디자인 (경이로움의 창조)


"목적에 맞지 않는 디자인은 폐기된다"는 낡은 명제는 이제 "새로운 발견을 창조해내지 못하는 디자인은 폐기된다"는 새로운 시대정신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철학에서 실천으로

우리가 첫 번째 글에서 논의한 철학적 통찰은 이제 구체적인 디자인 원칙이 됩니다:


니체의 '운명애(Amor Fati)'는 AI의 예측 불가능한 결과를 "이것도 나의 창조 과정의 일부다"라고 긍정하는 태도가 됩니다.

들뢰즈의 '리좀'은 중앙집중적 통제 없이 인간과 AI가 함께 만들어가는 생성적 네트워크의 설계 철학이 됩니다.

'생성(Becoming)'의 개념은 완결된 결과물보다 끊임없이 진화하는 프로토타입과 이터레이션을 중시하는 디자인 방법론이 됩니다.


합목적성 3.0의 시대에, 디자이너의 가장 중요한 질문은 이것입니다:


"내가 만든 시스템은 사용자가 예상하지 못한 무언가를 발견하고, 그것을 통해 자신도 몰랐던 새로운 가능성을 창조할 수 있게 하는가?"


이것이 단순한 기능도, 단순한 플랫폼도 아닌, '발견의 장(Field of Discovery)'을 디자인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는 철학이 오래전부터 우리에게 말해온 것, 즉 삶의 가치는 정해진 목적이 아니라 예측 불가능한 생성의 과정 자체에 있다는 진리를, 디자인의 언어로 구현하는 작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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