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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min Feb 16. 2017

<편의점인간> by 무라타 사야카

그 누구도 아닌 '편의점인간'을 형성하는 것은 무엇일까. 

편의점 인간

아쿠타가와상!


나는 하루에 몇 번이나 편의점에 들를까. 적어도 1회 이상은 되는 것 같다. 혼자 살고, 차는 없는 나는 생필품도, 응급의약품도 혹은 외로운 날의 술 한잔도 편의점에 기대할 수밖에 없다. 심지어는 요즘 편의점 도시락이 매우 잘 나와서, 맘만 먹으면, 그리고 다양한 브랜드의 편의점만 주위에 있다면 3~4일은 편의점 음식만 먹으면서 살 수도 있을 것 같다, 나는.


처음 편의점 인간이라는 제목을 접했을 때, 그래서 나는 내 이야기인가 싶었다. 편의점 - Convenient Store - 편의를 위한 공간에 기대어 사는 사람. 어쩌면 그 공간을 채우는 것은 낮은 시급의 아르바이트생, 본사에 착취당하는 점주이겠지만 내 삶의 편의를 위해서 그것을 끊을 용기는 없는 나라는 인간에 대해서 생각해게 해 주는 책 제목이었다.


하지만 책의 내용은 그것과는 조금 다르게 전개되었다. 주인공은 '소시오패스' 적인 인물로 그려진다. 반사회적 인격장애 수준까지는 아니겠지만, 사람들이 사회생활을 하면서 지키는 어떤 암묵적인 룰에 대해서는 동의하지 못하는 인물이다. 아니, 이해하지 못하는 인물이다. 어떤 면에서는 이영도의 <오버 더 네뷸러> 가 생각나는 대목이었다. 세상을 움직이는 것은 하잘 쓸모없어 보이는 것일 수도 있다. 충치가 생긴 어린아이가 있을 때, 야단법석을 떠는 것보다는 당장 날랜 사람 한 명이 다가가서 이를 뽑아내는 것이 효율적이지만, 그 야단법석 떠는 것이 어쩌면 세상을 구성하는 큰 요소일지도 모르겠다 - 그런 생각들.


혈흔분석전문가, 사이코패스 그리고 연쇄-연쇄살인마-살인마!


그러나 또 다른 사회 부적응자가 나오면서 (이 용어는 정치적으로 올바르지는 않은 것 같다) 이야기는 전혀 달라진다. 주인공은, 본인과 사회의 타협점을 편의점에서 찾았었다. 룰로 규정되는 공간, 내가 부품으로 살 수 있는 공간. '내' 입장에서만 생각하면 슬픈 대목이지만, 주인공에게는 <덱스터>의 주인공이 연쇄살인마를 죽이는 것으로 본인의 살인 충동을 해소하는 것 같은 - 세상과의 조화를 위한 공간이었으리라. "쓸 만한 도구가 되고 싶어서 일하고 있는지도 모른다."라던 주인공의 말이 마냥 슬프게만 느껴지진 않았다. "이상한 사람한테는 흙발로 쳐들어와 그 원인을 규명할 권리가 있다고 다들 생각한다. 나한테는 그게 민폐였고, 그 오만한 태도가 성가시게 느껴졌다."라는 대사가 크게 와 닿았었고.


"단지 소수파라는 이유만으로 다들 내 인생을 간단히 강간해버려요"라고 말하는 주인공 같은 상황의, 그러나 정반대의 사람이 들어오면서 뭔가 이야기는 급전개가 된다. "모두가 이상하게 여기는 부분을 내 인생에서 소거해간다. 고친다는 것은 그것을 말하는지도 모른다."라고 주인공은 말하며, 상대방과의 관계를 통해서 본인을 바꿔보려 노력하게 된다. 처음에 그 사람은, 굉장히 내게 2년 전쯤 '일베'에서 떠돌던 논리를 가진 형태의 사람인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이야기가 진전될수록 그 사람은, '일베'와 같이 본인의 '강간당한' 일생을 마냥 타인에게 전가하는 방식으로 살아가는 사람을 넘어서서, 세상의 룰에 저항하는 것처럼 위장하지만 실제로는 어떻게든 기생하려는 사람인 것처럼만 보였다. 그때 든 감정은 (마찬가지로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않지만) 사회의 실패와 본인의 낙오로 생긴 피해의식을 가지고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룰을 강요하는 - 약자이고 소수파이지만 마찬가지로 '고나리' 짓을 하는 '꼰대'처럼 보였다. 


슬펐던 지점은 나 역시 그렇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그 사람의 말 중에서는 사회에 대한 꽤나 날카로운 분석도 있었고, 내적인 논리도 있었지만 결국에는 시스템에서 살아남거나, 시스템을 혁신하겠다는 생각보다는 - 혹은 주인공 같은 사람에 대한 공감보다는 그 안에서 기생하여 나 하나만 어떻게든... 하는 생각을 하는 부분이... 머지않은 미래의 내가 될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어서였다. 


테루테루보즈 인형


"시라하 씨! 지금은 현대예요! 편의점 점원은 남자도 아니고 여자도 아니고 모두 점원이에요!..."라고 주인공은 외쳤다. 정체성이란 무엇일까. "지금의 '나'를 형성하고 있는 것은 거의 내 옆에 있는 사람들이다."라고 주인공은 말한다. 이영도가 <드래곤라자> 에서 나는 단수가 아니라고 말했던 것처럼, '편의점' 밖의 주인공은, 그 사람이 아니게 될 수도 있었을 텐데, 그녀는 그러질 못한다. 그녀가 쓸 수 있는 가면은 단 하나밖에 없었을 것 같다. 어쩌면 주인공은 <20세기 소년>에서 봤던 '테루테루보즈' 처럼 얼굴이 없는 인형 같은 사람일 수도 있겠다. 그것은 좋고 나쁨의 영역이 아니라, - 아니 어쩌면 이 시대에서는 보기 드문 순수한 - 멸종해가는 종류의 인격체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글에 적진 못했지만 인상 깊었던 문장.


"우리는 이렇게 서로 전염하면서 인간임을 계속 유지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구매: 2017.02.14

완독: 2017.0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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