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도 위에서 시간을 조각하는 법: 반응과 계획의 이분법

2026 All-Day-Project (024/365)

by Jam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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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인터넷을 보고 생각 정리하기 037: 빠르게 일하는 날과 느리게 일하는 날 을 보고



1. 메이커의 이상과 매니저의 현실


"집중이 잘 되는 날은 몰입하고, 안 되는 날은 느리게 가라."


메이커(Maker)에게는 진리처럼 들린다. 창조적 업무는 공장식 컨베이어 벨트 위에서 이루어지지 않는다. 생체 리듬에 맞춰 업무의 강약을 조절할 때 좋은 결과물이 나온다.


프로덕트 매니저에게 이 조언은 판타지에 가깝다. 시니어 리더에게는 더욱 그렇다. 프로덕트 매니저의 시간은 프로덕트 매니저만의 것이 아니다. 시간은 공공재에 가깝다.


임원 보고가 떨어진다. 라이브 이슈가 터진다. 타 부서에서 조율을 요청한다. 이런 '통제 불가능한 파도'는 누구의 컨디션도 기다려주지 않는다.


파도에 몸을 맡기면 어떻게 될까. 흘러가는 대로 대응하다 보면 하루는 금세 지나간다.


"오늘 대체 뭘 했지?"


남는 것은 자괴감뿐이다.


프로덕트 매니저는 외부 변수에 빠르게 대응해야 한다. 동시에 조직의 방향을 결정하는 전략을 짜야 한다. 기분에 맞춘 리듬은 프로덕트 매니저에게 어울리지 않는다. 프로덕트 매니저에게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GTD(Getting Things Done)의 철학을 빌려오자. 리더의 시간은 두 가지 모드로 분리되어야 한다.


반응 모드(Reaction Mode)와 계획 모드(Planning Mode)


시간 관리에 실패하는 관리자들은 대개 두 모드를 섞어 쓴다. 장기 전략을 기획하다가 슬랙 알림이 울리면 반사적으로 반응한다. 요청을 처리하다가 지치면 의사결정을 다음 날로 미룬다. 이렇게 되면 깊은 사고가 필요한 일은 뒷전으로 밀린다. 얕은 대응만이 하루를 채운다.


시니어가 된다는 것은 혼재된 시간을 의도적으로 격리하는 과정이다.


반응 모드는 통제 불가능한 영역이다. 외부 요청, 이메일, 장애 대응이 반응 모드에 속한다. 반응 모드의 핵심은 '고민'이 아니다. 핵심은 '속도'와 '종결'이다.


계획 모드는 통제권을 확보해야 하는 영역이다. 회고, 전략 수립, 로드맵 설계가 계획 모드에 속한다. 계획 모드의 핵심은 '사수'다. 방해받지 않고 문제의 본질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을 확보해야 한다.


3. 자동화와 템플릿: 시간을 버는 무기


'계획의 시간'을 어떻게 확보할 것인가.


답은 '반응의 시간'에 있다. 반응의 시간을 얼마나 압축하느냐가 관건이다. 시니어의 연륜은 '템플릿'과 '자동화'라는 무기로 드러난다.


주니어 시절을 떠올려보자. 모든 업무가 새로웠다. 매번 백지에서 시작하는 것이 배움이라 여겼다. 시니어는 다르다. 시니어는 반복되는 패턴을 파악해야 한다. 패턴을 시스템으로 만들어야 한다.


자주 쓰는 문구는 미리 저장해둔다. 정기적인 보고서 양식은 템플릿으로 구축해둔다. 사고의 틀도 미리 정립해둔다. AI 도구와 워크플로우 툴을 활용한다. 단순 반복 작업은 기계에 위임한다.


도구가 많을수록 상황이 달라진다. 외부의 위기는 그저 처리해야 할 태스크로 바뀐다.


1시간 걸릴 보고서 초안을 10분 만에 끝낼 수 있다.


AI와 템플릿을 활용하면 가능하다. 게으름을 피우기 위함이 아니다. 남은 50분의 '생각할 시간'을 벌기 위한 전략이다.


4. 거절의 미학: No를 말할 수 있는 권리


시스템의 종착지는 어디일까. "No"라고 말할 수 있는 권한을 얻는 것이다.


시니어에게 요구되는 능력 중 하나는 거절이다. 우선순위를 조정하는 능력이다. 맹목적인 거절은 무능함으로 비친다. 불통으로 비친다.


설득력 있는 "No"를 위해서는 두 가지 전제가 필요하다.


첫째는 '여유'다. 발등에 떨어진 불이 없어야 한다.
둘째는 '논리'다. 요청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다는 것을 입증해야 한다.


자동화와 시스템을 통해 '해야 할 일'을 빠르게 처리해두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 빚진 사람처럼 끌려다니게 된다. "네, 알겠습니다"를 연발하게 된다.


미리 처리한 사람만이 거절할 수 있다. 시간을 확보한 사람만이 거절할 수 있다.


"그 건은 지금 중요하지 않습니다. 저는 지금 조직의 다음 분기를 결정할 전략을 고민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말할 수 있어야 한다.



5. 마치며: 통제는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쟁취하는 것


컨디션에 따라 업무의 속도를 조절하는 것은 이상적이다. '빠르게 일하는 날과 느리게 일하는 날'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것도 좋다.


폭풍우 치는 바다 위에 선 선장을 생각해보자. 선장에게 평온함은 사치다.


파도를 잠재울 수는 없다. 하지만 배의 키를 단단히 잡을 수는 있다.


파도에 반응해야 할 때가 있다. 그때는 빠르고 기계적으로 처리한다. 고요한 시간이 확보됐을 때가 있다. 그때는 깊게 사고한다.


균형 감각을 유지해야 한다. 스스로 시간을 조각해 나가야 한다. 이 능력이 대체 불가능한 시니어가 가진 경쟁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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