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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min Mar 25. 2017

<숨결이 바람이 될 때> by 폴 칼라티니

새벽 이불속, 혹은 늦은 밤 집으로 굽은 골목길에서

'라이온' 씨에 의하면 죽음은 불청객이지만, 그 방문은 예고되어 있다고 한다. (폴라리스 랩소디) 어떤 의미에서 죽음이란 약속된 휴식이라는 말도 들었다. (드래곤 라자) 영원에 가까운 삶 속에서 매 순간은 누군가의 기일이 될 것이다. (그림자 자국) 소풍을 끝낸 시인은 행복할까. (귀천) 그래도 하루쯤은 맑았으면 좋겠단 생각을 했다. (사신 치바) 


요즘 들어 그런 생각이 든다. 이 시대에게 개인이 가질 수 있는 마지막 선택은 빨간 약을 먹는 것이 아닌가. (메트릭스) 아니면, '난 지금입니다'를 외치고 버텨내거나. (슬램덩크) 우리는 연결된 세상에 살고 있다. 정보는 우리 사이를 떠도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안까지도 떠돌고 있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읽고, 자살을 하는 이들도 있었다. 어떤 정보는 우리의 '죽음'의 선택까지도 관여하는 걸까. 의문이 든다. 


그럼에도 한 발자국씩 나가는 우리는 멋진 걸까.(천원돌파 그렌라간) 서로를 이해할 수 없는 세상이기에, 우리가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것은 거의 점에 가깝기 때문에(기생수), 우리가 서로를 먹잇감으로 바라보지 않기 위해서는 수백, 수천 년이 더 넘게 걸릴 테니까. (피를 마시는 새) 그러나, 그럼에도 누군가는 친구들은 지금쯤 무엇을 하고 있을지 걱정하고 있는 건 아닐까(루시드폴, <아직, 있다>) 


배가 수면 위로 떠오른다. 기억과 슬픔은 여전하다. 하늘에 리본이 떴다고 세상이 들썩였다. 글쎄, 많은 이들이 지적했듯 우리 어머니(mother nature)는 우리에게 큰 관심이 없다. 우주는 우리를 중심으로 돌지 않는다. 아름다운 이들과의 이별 속에서도 하늘의 별 하나 움직이지 않았다. 그럼에도 전장으로 칼을 움켜쥐고 달려 나가는 것은 '개 좆같은 적이 저기 있기 때문' 일까.(눈물을 마시는 새) 우리의 적은 무엇일까, 왜 우리는. 약속된 휴식을 두려워하면서도, 그 끝까지 달려 나가길 주저하지 않고 뒷일을 부탁한다는 말을 남기게 되는 걸까. 


슬프게도 세상에 정의가 이겼다는 뉴스를 들은 기억이 잘 없다. (피시 스토리) 이 미친 세상에 어디에 있더라도 행복하라고 말하지만 (브로콜리 너마저, <졸업>) 내 안의 괴물은 계속해서 자라나고만 있는 것 같다. (몬스터) 그 괴물은 지평선 넘어를 꿈꾸지 말라고 하는 것 같다. (오버 더 호라이즌) 그 끝에 도달하고 나면 우리의 무릎은 파열되어 버리겠지. 어쩌면 그 괴물이 나를 지켜주고 있는 것은 아닐까란 생각도 든다. 우리는 별을 바라볼 수 있는 눈을 가졌지만, 닿을 수 없는 팔 길이를 가진 짐승이니까. (폴라리스 랩소디) 


모두 같은 끝을 향해 간다면, 그 속도가 순위가 중요할까. 앞을 좇는 세상은 뜬 구름과 같은 걸까. (쟁선계) 증오의 연쇄는 막을 수 없는 걸까. 우리는 우리가 결정하여, 바꿀 수 있을까, 마음먹는 것 만으로. (뉴스룸) 더 나은 세상에 대한 급진적인 생각은 우리를 병들게 하는 걸까. '존 레넌'의 상상(Imagine) 은 그저 아름다운 선율로만 남아 있을까. 거울 안의 그 사람이 직접, 나서야만 하는 걸까. (Man in the mirror) 


폴 칼라티니씨는 어땠을까. 그의 마지막 순간까지. 그의 머릿속에 있는 수많은 이야기들은 그에게, 무엇을 속삭였을까. 처음 의심하는 순간에, 아내와 함께 침대에 누워서도 잠들지 않는 그 순간에. 일을 열심히 해서 잊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일까. 그는 경계에 서 있었다. 삶과 죽음이 교차하는 곳. 그 속에서 그가 생각한 '죽음' 은 좀 다르지 않았을까, 섣불리 짐작해본다. 그 사이에서 그는 무슨 결심을 했을까. 그가 책을 내기 위해 생각한 것은 무엇일까. 그 자신과의 약속은 무엇일까. '숨결이 바람이 될 때'는 무엇을 위한 표현일까. 그 표현 속에는 무슨 생각이 담겨, 책을 통해 나에게 까지 전해 졌을까. 


삶도, 죽음도 우리가 공동으로 상상하는 체계 속에서 체감된다. (사피엔스)


다시, 배가 떠올랐다. 여러 이름들이 떠오른다. 무엇이 중헌디. (곡성) 글쎄. 나는 수년을 고민 속에서 지내왔다. 그 고민이 무엇인지를 그런데, 이젠 잊어버렸다. 여러 가지가 있었다. 원칙과 수단의 문제, 혹은 그 안에서 나는 어디까지 감내할 것인가. 다수의 의견은 항상 옳은 것은 아니다. 모든 제도는 허점이 있다. 쏠 것인가 말 것인가. (은하영웅전설) 딜레마 속에서 나는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다크 나이트) 그 딜레마까지도 잘라내야 하는 것이 아닐까. (발틴사가) 


나는 비겁한 사람이다. 스물아홉 해를 살면서 변하지 않은 하나는 이것이다. 나는 두렵다. 그렇기에, 눈물을 흘리지도 못했다. 사람들에게, 계속해서 화내 주세요 말을 하면서도, 난 진실로 화낸 적이 있었는가. 더 나은 미래를 말하면서도 난, 도망치고만 있었다. 어쩌면 그건, 폴 칼라티니씨가 맞이한 것과 같은 것일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었다. 모든 인간은 죽어, 단백질로 돌아갈 것이다. (GTO) 난, 그게 두려운 것일까. 잊히는 게 무서운 것일까, 다르게 기억되는 게 두려운 것일까, 잘 모르겠지만 나는. 내 안에 세계를 구성하지 못하고 타인과의 관계 만으로 스스로를 형성하고만 있었다. 껍데기가 물러가고 나면, 내 안의 알맹이가 남는 게 두려웠다. 그것을 마주할 수 있는 순간이 오면- 어디 도망칠 곳이 있을까. 죽음 앞에 겸허해질 것인가. 발악할 것인가. 그 사이에서...


3년이 지났지만, 그 날의 몇몇 기억이 생각난다. 아래로, 아래로. 떠나간 이들이 기억난다. 화를 내던 친구가 기억난다. 노래들이 떠다녔다. 사람들은 모였고, 소리쳤다. 나는 침잠하고만 있었다. 쉬운 길만 바라보고 있었다. 노래를 불렀지만, 어울리질 못했다. 광장엔 외침이, 깃발이 그리고 생각들이 떠다니고 있었지만 나는 관찰자였다. 언제일까. 받아들일 수 없는 무언가를 보고 나서 계속해서 도망쳐 온 것 같다. 포기하거나, 비겁해지거나, 잔인해지지 말고 나아가고 싶은데 나도. (The day of the Doctor)


당당해지진 못할 것이다. 숨어 버릴 것이다. 당황한 채로 여러 날을 맞이하겠지. 내가, 그의 상황에 처한다면. 남은 시간을 탕진하며 살 것 같다. 그러면 안되는가? 글쎄. 아직까지는 그래도 되는 것 같다만. 적어도 그전까지는 당당해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뭐 어때? 라며. 그리고 그때가 되면 이 책을 다르게 읽을 수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지금은. 그저.  십수 년 전부터 지금까지 내 도망쳐온 길들 만이 보였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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