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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min Mar 15. 2017

<중국, 그래도 중국> by 왕이웨이

또 다른 슈퍼 파워인가, 미래를 위한 대안인가 

중국의 어제를 <아시아의 힘>을 통해 봤다. 오늘까지의 중국을 만든 원동력을 <야망의 시대>를 통해 살펴보았다. 물론 장대한 중국의 모든 것을 본 것은 아니다. 하지만 어느 정도 '지금'의 중국을 이해하는데 도움은 되었다. 그러다 보니, 이 책, <중국, 그래도 중국>(이하 책) 은 흥미로웠다. 앞으로 중국이 어떻게 움직 일지에 대해서, 다방면으로 상세하게 적혀있는 책. 지금의 시진핑 정부가 앞으로의 수십 년을 그린 그림이겠거니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은 '일대일로'에 대한 책이다. 일대일로란, 중국이 제시하는 미래에 대한 비전이다. 유라시아 대륙을 잇는 교통망, 태평양에서 인도양을 걸쳐서 발트해에 이르는 해양 운송망을 인프라로 삼은 거대한 인프라에 대한 이야기이다. 과거 존재했던 '실크로드'와 같은 물류망을 재건하는데 그 의의가 있으며, 그것을 기반으로 하는 거대한 경제적 공동체를 그 목표로 한다. 과거 실크로드의 단절을 한 이유로 대항해시대가 시작된 것을 생각해보면, 참 재미있는 상상이다. 


미래에 대한 장구한 상상을 다방면으로 분석, 기술한 저자 '왕이 웨이' 에게 경의를 표하고 싶어 지는 책이었다. 이 '일대일로' 전략의 의의와 그것을 달성하기 위한 전략들. 혹은 문제점들에 대해서 비교적 건조한 말투로 저자는 말을 잇는다. 그런 어투로 읽은 이 책은, '보고서' 이기도 하지만 '선언문' 같기도 했다. 우리는 이렇게 할 것이다. 가자, 새로운 세계로! 그렇게 외치고 싶은 것을 꾹 참고 보고서의 형태로 쓴 느낌을 받았다. '왕이웨이'는 꽤나 낙관주의자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아니라면 야망에 찬, 자신만만한 엘리트의 느낌이거나.


이 책의 서평을 어찌 써야 하나 고민을 조금 길게 했다. 그리고 네 가지 키워드를 가지고 한번 '일대일로' 전략과 국제정세, 그리고 우리가 취해야 할 길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갈이천정 渴而穿井


중국은 왜 '일대일로'를 주장하고 나서는가. 여러 측면에서 살펴볼 수 있을 것 같다. 가장 먼저는 중국 내륙의 불균형과 그로 인한 위험성이 있을 것이다.


상술한 대항해시대 이후 세계화는 시작되었다. 해양 물류망. 식민지 시대. 제국주의 시대와 세계대전을 걸쳐서 냉전에 이르기까지 물류의 패권은 '바다'로 향해 있었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육상 운송망을 통한 물류의 제약조건은 너무나 많았으니까. 거대한 배로는 무엇이든 실어 나를 수 있었다. 물론 그 이전에도 배, 바다와 관련된 산업은 발전되어 있었다. 그러나 세계가 좁아지면서 - 세계를 잇는 접점들은 그 물류의 경유지로 발전을 향유할 수 있게 되었고 자연히 연안 도시들은 과거보다도 더 큰 이점들을 누리게 된다. 한국의 제 2 도시는 부산이다. 중국의 거대한 메트로폴리스는 연안 지역에 밀집되어 있으며, 우리가 이름을 들어본 대다수의 미국 도시들도 부두를 낀, 항구도시인 경우가 많다. 


자연히, 국가 주도적인 발전정책을 수립한 중국도 제조업 중심의 경제 발전을 이룩하며 수출 기반 경제체제를 구축하였기에 연안도시들이 물류가, 그리고 돈이 모이는 것은 당연했다. 그러나, 바다를 낀 지역의 빠른 발전은 당연히 다른 지역과의 '불균형'을 야기한다. 비단 중국만의 문제는 아니다. 미국도 산업의 구조조정에 따른 지역 간 불균형 문제를 겪고 있다. 유럽이라고 크게 다를 것은 없다. 다만, 중국의 경우 - 혹은 냉전시대 빠르게 발전한 나라의 경우 - 그 효율을 위하여 부득이하게 특정 지역에 혜택을 몰아주어야만 했고, 이로 인한 문제는 이제야 드러나고 있다. 지역감정으로 야기되는 경우도 있고, 경우에 따라서는 인종, 민족적인 분쟁으로도 이어진다. 경제의 문제는 모든 것에 연결되어 있으니까. 곳간이 비면 인심이 떨어지는 것은 당연한 이야기이니까. 


거대함은 그 자체로 큰 기회이자, 위기이다. 중국의 거대함은 경제 성장에 있어서의 기회였고, 비대칭 발전으로 인한 큰 위기를 가져왔다. 지금까지 그 문제는 일당 독재의 체제 속에서 잘 감추어져 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필연적으로 연결되어 가는 시대에 이는 더 이상 가능한 일이 아닐 것이다. 때문에 중국의 입장에서는 내륙, 서쪽 지방에 대한 투자가 필요하다. 중국의 막대한 외환보유고 역시 마찬가지이다. 그 거대함이 가져오는 이득과는 별개로, 그 거대 자산을 보유하고 있는 중국에 대한 시선은 곱지 않으며, 돈이란 돌지 않으면 정체되기 마련이라는 것을 중국 사람들은 매우 잘 알고 있는 듯하다. 알려진 세계를 지배한 경험이 역사상 천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나라의 후손들은 이 기회와 위기를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고민했을 것이다. 수양제가 되어 대운하를 건설할 것이냐, 진시황이 되어 만리장성을 건설할 것이냐. 영락제가 되어 정화의 함대를 구성할 것이냐. 


중국의 입장에서도 기존의 세력 - 결국 미국 중심의 세계화 체제에 편승하는 것은 마음에 들지 않을 것이다. 때문에 해양 물류로 이어지는 체제에 대항할 수 있는 대안 체제를 구축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 게다가, 그 지역들은 대체로 아직 '개발도상국' 들이 존재하는 곳이다. 발전의 가능성은 둘째 치고, 새로운 세상의 패권을 쥐기 위해서 본인들의 입김을 마음껏 댈 수 있는 곳으로 보이진 않았을까 하는 의심이 든다. 어쨌든 공산주의 노선의 연대는 사실상 붕괴되었고, PAX AMERICANA 에 대항하는 새로운 연합체로의 PAX CHINA를 만들고자 한다면, 우군을 형성하는 게 중요하니까. 왕이웨이(이하 저자) 가 <중국, 그래도 중국>(이하 책)에서 다룬 것처럼 세계의 6할 이상이 일대일로의 범위에 있으니, 이를 위해서는 참 좋은 도구가 될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든다. 결국은 중국의 대국굴기를 위해서 '일대일로'는 필수적인 전략이라고 보인다. 


물론, 중국 입장이 아니더라도 장기적인 관점에서 일종의 '노선 경쟁' 이 필요한 부분도 있다, 세계의 균형을 위해서는. 이념적 갈등, 냉전 시대의 종식으로 인한 세계 질서의 재편은 결국 국가 권력보다는 다국적 기업들에서 이제는 Tech Giant 의 금권에 좌우되는 측면이 분명 존재한다. 그들의 능력에 대한 의구심은 둘째 치고, 그들의 의도에 대해서는 매우 우려하는 시선도 존재한다. 기업, 주주의 이익을 우선하게 되며, 결국 그것은 빈익빈 부익부의 현상으로 이어지고. 제러미 리프킨이 지적한 '한계 비용 제로 사회' 가 실현된다면, 결국 자본주의의 패권은 애플, 구글, 아마존 등에게 넘어가게 될 가능성이 높다. 물론, 이에 대한 대안이 중국과 미국의 노선 경쟁으로 만들어질 수 있을지는, 또 다른 문제이다. 그러나 권력을 완전히 해체할 수 없다면 이런 식으로 적어도 권력 간 견제를 할 수 있는 형태의 미래가 조금 더 바람직스러울 것이다. 


주구장창 써 두었지만, 중요한 것 하나. 적어도 '중국'의 입장에서 보면 일대일로는 정말로 필요한 전략이다. 앞으로 100년, 200년을 위해서는. 어쩌면 이 전략은 저자가 책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세계에도 바람직한 일일 수도 있다. 하지만 분명 그중 가장 목마른 것은 '중국'이고, 그러니 그들이 직접 우물을 파고 있다고 밖에 해석이 되지 않는다. 아직 성장의 물결이 끝나지 않았을 때, 다음을 위한 큰 그림을 그리는 중국, 이것을 어떻게 바라보고, 대응해야 할지는 - 어쩔 수 없이 다른 국가들의 문제이다. 책과, 중국 정부의 움직임은 적어도 당분간 '일대일로'는 계속될 것임을 알려주고 있으니까.  



동문동궤 同文同軌 


영화 <영웅> 은, 진시황의 폭군적 기질에도 불구하고 천하가 통일되어야 함을 역설한다. 난세를 종식할 필요성을 언급하면서. 지금의 시각에서 볼 때 이것이 합당한 선택인지는 의문이다. 그러나 한 가지, 모두가 동의할 수 있을 법한 부분 중 하나는 있다. 바로 진나라의 통일 이후로 나라의 글자를 통일시키고, 측량법을 통일되었기에 '중국'이라는 한 거대한 나라가 지속되었다는 점이다. 


<인포메이션>에서는 정보의 처리 방법, 이를 어떻게 표현하는가에 대한 역사를 다루고 있다. 어쩌면, 인류의 역사는 이 측면에서 해석이 될 수도 있다. 우리는 언어를 발명하기 이 전에도 몸짓, 표정 그리고 특정한 소리의 구분으로 서로가 정보를 나누었다. 하지만 이 방법으로는 작은 집단을 벗어난 생활을 하기는 어려웠으며, 고등의 사유를 나눌 수는 없었다. 이를 그림으로 그리며 문자를 만들었고, 또 어떻게 하다 보니 정보를 인코딩하고 디코딩하는 법을 만들게 된다. 그리고 이를 통해서 우리는 우리가 다룰 수 있는 정보량들을 늘려 나가게 하였고, 내가 가진 정보를 저 멀리까지 퍼질 수 있도록 만들어내었다.


실크로드를 통해 동서를 이었던 것은 비단, 도자기 만은 아니었다. 물류망을 통해 전달된 것들은 각 문명 간의 최신의 정보들이 공유될 수 있었다. 문명의 상호 발전을 위해 이런 정보 교류는 필수적이다. 현대 사회에 들어서, 실크로드는 사라졌다. 하지만 이 교류의 속도는 훨씬 빠르고, 쉬워졌다. 우리는 비행기를 만들었고, 인터넷을 만들었다. 비트로 쪼개진 정보들은 수개월씩 걸린 실크로드의 교역상의 수천 배 빠른 속도로 각자의 이야기들을 공유하고 있다. 잠깐, 과연 그럴까. 단절된 문명 사이에서 일어난 정보의 교류 - 실크로드 시절의 교류는 생각보다 더 잘 되었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민족적, 사회적인 충돌이 비교적 적지 않았을까. 괴상한 물건이라고 해도 어차피 우리와는 다른 세계의 물건이다. 때문에 만약 우리 마음에 들지 않으면 채택하지 않으면 그만일 수 있지 않았을까. 


지금은? 세계는 평평해졌지만, 사람들의 사고는 그렇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수백 년 전의 누구보다 더 빠르게 다른 세상의 정보를 취할 수 있지만, 정작 내 옆 사람의 이야기를 무시하는 필터 버블에 갇히기 시작했다. 우리는 다른 지적 생명체의 존재가 전지구에 퍼져 있음을 알고 있으며, 그 사이를 떠도는 공유된 상상 - 인류애, 휴머니티 등등 - 을 건설하고 있기도 하지만, 그 반동으로 서로 분리되는 현상을 겪고 있기도 하다. 때문에 멀리 떨어진 정보들이 둥둥 떠서 내게 다가온다고 하여도 - 오히려 예전보다 더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좀 더 단순화해서 말하자면, 단순한 교역 관계를 벗어나서 이제 정치, 사회, 종교 그리고 문화적인 경쟁, 갈등 상황이 국제 사회에 나타나기 시작했고 미국 중심의 문화 제국주의가 아무리 발전해도 넘을 수 없는 선들이 있다는 것이 각국에서 등장하는 '반미운동' 등에서 보이고 있다. 


실크로드 시절엔, 국가-민족 간 문화가 다르고, 종교가 달랐고 말이 달랐으며 소통의 방식은 지금에 비해 엄청 낙후되어 있었다. 그러나 단순한 교역 관계, 물리적인 거리 단절로 인한 완벽에 가까운 타자화는 상호 간에 큰 갈등을 안 일으킬 수 있을 정도 - 이 교역 관계는 자국에 유리하다는 식의 생각을 할 수 있거나 - 혹은 아예 그런 관점 자체를 가지지 않을 수 있는 상태를 유지하게 만들어 주었다. 중국의 그 누가 종이 제작기술이 저 멀리 나가게 되어서 어떤 결과를 가져오게 될지 상상이나 했겠는가. 하지만 지금에야 그런 '특허' 들은 '국가기밀' 수준으로 보호가 될 것이다. 이런 특수한 것이 아니더라도, 진짜 과격하게 말해 대륙간 탄도미사일(ICBM)을 보유한 국가들은 더 이상 상대 문명/국가와의 실제적인 거리가 멀지 않은 상황이다. 수틀리면 다 죽자를 시전 할 수 있는 상황이 되었고 - 때문에 수십여 개 국가가 매달려야 하는 이 '일대일로'는 그런 위협을 버틸 수 있을 만큼의 이득을 보장해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다른 한편으로는, 저자도 책에서 어느 정도 언급하고 있듯이, 이 일대일로는 왜 하는가에 대한 모두의 공감이 우선되어야 하고 - 이 안에서 흐르는 것이 '물류' 혹은 '자본' 만이 아니라는 게 - 중요하다. 일대일로가 '마셜플랜' 이 아니라면, 이념적 새로운 노선이 아니라면, 책에서도 언뜻 보이는 중화 중심적인 사고의 발현이 아니라면 이 동문동궤는 무력을 통한 '천하통일' 보다는 공자가 수레를 타고 떠돌았단 것처럼 우리가 공유해야 할 '상상'을 잇는 일이 되어야 할 것이다. <사피엔스>에서 유발 하라리가 지적한 바와 같이, 우리는 더 나은 세상을 상상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닌 동물들이며, 그 상상을 공유함으로 사회를 구성한다는 말이 옳다고 보면 - '일대일로'는 어쩌면 '세계화'에 결여되었던 철학과 이념을 찾아내어야 하는 사명을 띤 프로젝트여야 한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미국 중심의 세계화에 대한 단순 반동이라면, 이것은 그저 새로운 갈등 상황을 통해 자본주의의 생명을 연장시키는 것에 불과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그런 일을 '공산당' 이 진행한다는 것은 조금 웃기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였다. 




교우이신 交友以信


우리가 공유된 상상을 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서로의 인지 능력이 비슷해야 하며, 이를 공유할 수 있는 수단 - 정보를 전달할 수 있는 방법이 발전되어 있어야 할 것이며 무엇보다 - 상대방에게서 오는 정보, 그리고 나로부터 나가는 정보에 대한 믿음이 전제되어야 한다. 더 나는 세상을 모두 같이 말하지만, 저 녀석 배신하는 것 아냐?라는 생각이 든다면, 이미 그 상상은 공유된 것이 아니다. 일대일로와 같은 거대한 프로젝트에서는 소수의 배신 만으로도 치명적으로 위험한 일이 발생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 연대가 너무도 크고 - 때문에 아직은 느슨해서 그 체제가 공고화 되기 이전에 일탈행위들이 발견되기 시작하면 그 근간이 무너질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일대일로는 대- 결국, 지금의 세계화의 방향은 문제가 있으니, 대안을 만들어 보자. 중국은 지금 여력이 있으니 우리가 선봉에 서겠다. 하지만 종국에 우리가 그 중심국이 아니어도 된다. (저자의 말에 따르면) 하지만 우리에게는 이런 노력이 필요하다!라는 말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세계 질서와 세계 경제를 구성하는, 발전된 형태는 아니더라도 보충재의 역할을 할 수 있는 무언가를 구성해야 한다는 생각 자체에는 매우 동의한다. 그러나, 중국이 그 중심에 서지 않아도 된다는 말은 너무도 허망하다. 중국 인민들이 가지고 있는 그 민족주의적인 사고를 중국 정부가 그저 무시할 수 있을까? 아니 사실 중국뿐만이 아니다. 애초에 경제학적인 인간에 가까운 사람들의 집단이 정부이고, 사회라고 가정했을 때, 각자가 최선의 이익 추구가 결국 일대일로를 움직이는 원동력이 된다고 가정한다면 초기 그 투자 규모가 크고, 앞으로도 영향력이 클 수밖에 없는 중국이 종주국의 역할을 하지 않을 일은 거의 없다고 보인다. 이 체계를 바꾸지 않는 이상에는 말이다. 


때문에, 철저히 일대일로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저자도 강조한 것처럼 중국에 대한 주변 국가들의 신뢰가 전제되어야 한다. 아프리카, 중앙아시아 등지에 계속된 투자는 그 신뢰에 플러스 요소가 되었겠지만, 반대로 그것을 깎아 먹는 사례는 너무도 많다. 그것이 오해인 경우도 분명히 있지만 - Semi Super Power 가 감당해야만 하는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총칼을 든 사람이 아무리 난 그것을 쓰지 않을 거야 라고 말한다고 해도. 세상은 대체로 연극과 같아서 1막에 등장한 권총은 어떤 식으로라도 사용되기 마련이다. 그리고 실제로 이 힘이 가지는 것은 예전처럼 무력을 통한 상호 확증 파괴를 만드는 것은 아닐 것이다. 물론 그런 부분도 있겠지만, 새로이 등장할 Super Power 라면 당연히 - 선배의 전례를 따를 것이다. 정치, 경제, 사회적인 압박들을 지금의 중국이 행사하게 되면 어떻게 될까? 생각 자체로도 이미 두렵다.


친구를 사귐에 있어서는 믿음이 전제되어야 한다. 하지만 국가는 인격체라고 보기 어렵다. 각자의 국민의 총의에 의해 결정되는 것들은, 아직은 그 사회 유기체가 만들어내는 움직임이 개별 인격체라고 보기에는 어렵고, 그래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국가의 기조는 변할 수도 있다. 때문에 국가 간 외교에 있어서는 결국 이 믿음을 보장할 수 있는 장치들을 만들어야만 한다. '일대일로'가 완성되고, 그 번영이 모두에게 퍼지고 있다는 상황에서는 모든 참여 국가가 이것을 지키기 위해 자발적으로 노력할 수도 있지만, 불확실한 미래로 다 함께 걸어가기 위해서는 하다못해 말 뿐인 약속이라도 여럿 걸어두어야만 하는 것이다. 그리고 자연히 이 약속은 평등하기는 힘들다. 


제도적인 장치에 더불어서 중국 사회의 안정성 문제도 확인을 해야 한다. 우리가 잘 알지 못하는 중국은 안정화될 수 있을까? 사실 과거에 거대한 제국을 경영한 경험이 있다는 것 만으로 그것을 확신하기는 어렵다. 또한, 그 제국들이 강대한 초창기에 비해 빠르게 그 안정성을 잃은 적이 몇 번 있음을 상기해본다면 말이다. 그리고 이 안정에 관한 믿음의 문제와 더불어 중국이 국가와 사회적으로 '타자'를 대하는 태도도 분명히 문제가 될 것이다. 중국의 입장에서 베이징 올림픽을 크게 응원하는 것이야 뭐라 말하겠냐만, 그것이 과해지는 것은 분명 큰 문제를 가져오게 된다. 


솔직히 차라리, 미국 중심의 질서에 대항하는 대안 체제를 만든다고 선언을 한다면, 줄타기도 쉽고, 믿을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존재하지 않을 수 있는 어떤 새로운 체제를 믿기에는, 지금까지 중국의 행보가 마음에 걸린다. 금번 사드 배치에 있어서의 행보도 그렇고. 결정적으로 중국의 정체성은 아직 모호하다. 어쩌면 시진핑 정부가 수립하는 신 중국 체제가 정착을 하게 된다면 보다 더 신뢰할 수 있는 파트너가 될 것 같단 생각은 든다. 하지만 그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짐작이 가지 않는다. 다행히 일대일로는 십수 년을 바라보는 프로젝트는 아니라고 저자는 말했다. 물론, 그 장구한 시간 동안 우리가 서로를 믿을 수 있을까에 대한 문제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는다. 






대의명분 大義名分


Start with Why. 사이먼 시넥의 TED 강의는 여전히 유의미하다. 우리가 무엇을 구매한다고 하면, 미국 대신 중국이 중심에 서는 새로운 국제 사회 질서 서비스를 구매한다고 하면 결국은 그 스펙을 따지겠지만, 그전에 이게 '왜' 필요한가. 이 안에 있는 신념은, 이념은 무엇인지를 먼저 설명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야 우리는 믿을 수 있고, 그렇게 해야만 우리도 목마르게 될 것이다. 일대일로는 중국 외의 나라에게도 필요한 일인지는 단순히 경제적인 문제로 귀결되진 않는다고 생각한다. 피부 색깔부터 종교, 식습관까지 모든 것이 다양하다. 이들을 하나로 묶는 무언가 한 가지가 있을 수 있을까. 


중국의 입장에서 유럽은, 어쩌면 무협 소설 속의 '사파'처럼 그려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동도서기'를 외칠 때, 저들의 '초식' 은 훌륭하지만 '내공'은 이상하다는 인식이 있었던 것 같다. 이런 얕은 비유를 대면, 미국은 '마교' 쯤 될 것 같다. 뭐 어쨌든 '정파' 였던 중국은 '사파'에게 무너지고 진짜 마교라고 할 수 있는 '파시즘'에 굴복당했었으며, 어쩌면 그 정체성 명에서 '마교'에 가까운 '공산주의' 이념에게 그 왕좌를 내주었다. 그러나 '공산주의'는 쌀을 주지는 못했다. 양탄일성이 성공할 때까지, 그리고 지금도 중국의 인민은 많은 수가 가난함에 시달리고 있다. 


외부의 입장에서 보면. 한국의 입장에서 보면, 중국의 지금의 모습은 명일까 청일까, 원일까. 어떤 과거의 중국의 나라를 닮았을까. 북한이라는 장벽, 냉전의 장벽이 있는 동안에는 그저 영향력을 끼치기 어려운 다른 나라 중 하나였다. 하지만 이제는 그렇지 않다. 북한이라는 장벽은 냉전의 장벽이 걷히면서 의미가 없어졌다. 육로는 아직까지 크게 중요하지 않으니까. 의심이 들기 시작한다. 중국은 뭘 원하는 걸까. 동북공정을 통해서 우리 역사를 삼킨다고 하는 위기의식은 그저 민족주의적인 국수주의에서 발생하는 것이 아니다. 상술한 것처럼, 양탄을 들고 있는 거대한 이웃사촌이 있다면 피해망상에 가까운, 히스테릭한 반응을 보이는 것이 어쩌면 더 자연스럽다. 우리가 무엇을 보고 그들을 믿는가? 기껏해야 조공외교를 하던 사이이고, 우리는 관점에 따라 수천 년간 사실상 그들의 지배국이 아닐 수 있기 위해 투쟁해 온 것은 아니었나. 


러시아의 입장에서는 종주국의 입장을 내려놓고서라도 일대일로에 참여하고자 하는 의지를 보이는 것 같다. 푸틴의 새로운 짜르 등극에 가까운 권력 독점을 통한 행보라고 해석할 수 있지 않을까. 판을 흔들어야 한다는 생각을 공유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중앙아시아의 국가들은 어떨까. 아프리카 북부의 나라들은? ISIS 가 판을 치는 중동에서는 어떨까. 유럽은 또? 각자가 각자의 시각으로 일대일로를 바라보고 있고, 이것은 중국의 발걸음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 아직까지는 Semi Super Power 이기에, 그들의 움직임의 파격은 그렇게 크진 않다. 아니, Super Power 가 된다고 해도, 이 모든 이들을 어느 정도 만족시켜주지 않고서는 이 프로젝트는 진행될 수가 없다. 


왜 공존해야 하는가, 함께 가야 하는가. 일대일로에 관한 이익 교량을 넘어서 이 이야기에 대한 해답을 좀 더 클리어하게 내놓을 수 있어야 한다. 당연한 이야기는 모두 알고 있다. 그것으로 움직이기는 쉽지 않다. 인류의 번영이라거나, 잘 살아보세에 선동당할 만한 만만한 사람은 별로 없다. 그건 다 좋지, 하지만 내겐 이게 더 중요해라고 말할만한 것들은 여전히 많다. 때문에 준비해야 할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함께하자'이다. 국가가 사람이라면, 예전에 칼로 찌르고 찔린 국가들도 있고. 지금도 그 기억에 트라우마가 걸린 이들이 있다. 세계대전이 끝난 지 100년이 지나지 않았다. 각국의 역사책들은 세계사적 관점만 보여주진 않는다. 우리는, 우리는 그리고 우리는. 중국이 이 일대를 실효 지배하는 수준으로 장악하지 않는 이상 - 제국주의 국가가 되지 않는 이상 이 장벽을 뚫기가 쉽지가 않을 것이다. 저 '우리'를 어떻게 더 큰 '우리'로 만들 것인가.


그런 점에서 아직 국가 내에서도 훌륭한 통합을 완성하지 못한 것으로 보이는 - 신장 위구르, 티베트 - 중국의 행보는 의심스럽고, 걱정이 된다. 심지어는 그 통합의 방식도 일부 대상의 신격화, 프로파간다, 정보통제, 경찰국가 체제, 언론 탄압 등으로 이뤄지고 있다고 보이기에 더더욱 그렇다. 책에서도 함께 사는 게 중요하다고 한다. 하지만 왜? 당연하다는 말은- 다시 의미가 없다. 당연한 것이지만, 격을 파괴하는 메시지가 필요하다. 콜럼버스가 달걀을 깨던 순간과 같이 말이다. 공허하고, 의미 없어 보이지만 그러나 피를 끓게 한다거나. 아니면 그래야지 고개를 끄덕이게 만드는. 허접해 보이지만 <야망의 시대> 등장인물 '탕제'의 이야기들처럼 말이다. 


하지만 그런 수준 낮은 메시지는 쉽게 가라앉기 마련이다. 그러니 <사피엔스>의 해석을 빌리면 중국이 먼저 만들어야 할 것은 다음 수백 년을 갈 공동의 상상을 만드는 것이다. 중국이 정말로 무협 소설 속의 '정파' 라면, 사파와 마교와는 대비되는 '큰 뜻'을 가지고 있어야만 한다. 장예모의 <영웅>에서 그려진 것과 같이 말이다. (물론 정말로 그 수준이면 곤란할 것이다) '대의명분'. 정파가 그렇게 수모를 당하고, 맨날 지고, 무림맹을 만들어 이합집산이나 하다가 처발려도 다시 살아나고 - 새로이 제자를 들이고 세력을 넓힐 수 있는 것은 말 뿐이지만 가지고 있는 '명분' 이 있기 때문이다. '의' '협' 이런 것들. 중국이 지금 진행하는 유교에 대한 프로젝트도 이런 것들이어야 한다. 인간은 왜 살아야 하는가. 인간은 왜 함께 살아야 하는가. 전국 시대의 가치관을 뛰어 넘어서 새로운 백가쟁명을 열고, 그 안에서 온고지신을 하던, 침 튀기는 말싸움을 하던! 답을 찾아야만 한다. 




쉽지 않은 책이었다. 책은 보고서 형태와 가까웠다. 왜 설득이 되지 않았을까. 이렇게 장대한 자료와, 훌륭한 글에. 다시 생각해보면 '왜' 가 충분히 매력적이지 않았던 것 같다. 지금 우리에게 목이 마르게 만들어서 우물을 찾게 하는 전략이라, 기분이 나쁜 것 같기도 하다. 저 우물 맛이 끝내주니, 같이 파서 마시자!라고 외치는 포인트가 없었다. 설득을 위한 책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많은 공부가 되는 책이기는 했다. 현재의 국제 정세를 보는 중국 지식인의 시각과 그를 통한 재편의 전략에 대한 부분. 그러기 위해 거쳐야 하는, 확인해야 하는 여러 가지 관문들. 그 지식을 어떻게 엮어서 만들어 낼 것인지에 대한 것들. 고려해야 할 수많은 것들. 


적어도 일대일로에 대한 관심이 생기긴 시작했다. 여러 말을 했지만 사실 중국이 저렇게 질러 놓으니 다른 나라들은 - 어떤 의도인지는 모르지만- 모두 대응전략을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디테일은 몰라도, 저건 저대로 가겠다는 컨센서스는 이뤄진 느낌이다. 그럼 한국은, 우리는 잘 하고 있을까? 잘 모르겠다. 지금까지 얕은 머리로 관찰한 결과는 아직은 우리는 미국의 손을 더 들어주고 있는 느낌이다. 글쎄, 그게 맞냐 안 맞냐는 중요하지 않다. 오케이, 그럼 카운터 전략은 있는가가 궁금해진다. 중국의 신뢰에 대해서 열심히 비판했지만 - 미국이야말로 원주민을 학살하고, 세계의 문화를 강간하고 다니며, 폭력으로 대다수의 지역에 실효 지배권을 획득하는 나라인데. 그들을 믿는 건 너무나 바보 같은 일인까.


중국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과거, 현재를 잇는 미래에 대한 하나의 구상. 이미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는 일대일로에 국가가 아닌 내 개인이 받을 영향과 그를 대비하는 전략에 대해서 고민해봐야겠다. 다음 책을 읽기 전까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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