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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min Apr 26. 2017

<제로 투 원> by 피터 틸

아홉을 열으로,  아흔아홉을 백으로 만드는 하나에 관한 소고 

믿기 힘들 수도 있겠지만 이 글은 피터 틸의 <제로 투 원>(이하 책)을 읽고 쓴 독후감입니다. 



자, 게임을 시작하지.



<I'm the boss>라는 보드 게임이 있다. 한 명의 투자자가 되어서, 부루마블과 같은 형태의 보드 판에서 협상을 통해 'Deal Making'을 하는 형태의 보드 게임이다. (여담이지만, 꿀잼이다.)


여기서 Deal Making을 위해 중요한 것은 사람(캐릭터)이다. 어떤 사람이 있어야 사업이 진행되고, 안되고 가 결정된다. 내가 어떤 캐릭터이고, 어떤 캐릭터와 손을 잡느냐에 따라서 사업의 진행 여부가 결정된다. 그리고 그 사업에는 돈이 걸려 있다. 때문에 나는 내 캐릭터와 상대 캐릭터를 보고 그 돈을 어떻게 분배할지 고민한다. 


사업은 결국 돈과 사람이 하는 것이다. 기술과 자산은 어쩌면 부차적인 것일지도 모르겠다. 얼마만큼의 돈과 사람을 쏟아부어서 어떤 결과를 얻을 것인가. 가볍게 보면 사업도 결국 그런 게임에 하나일 것이다. 대신 <왕좌의 게임>처럼 모든 것을 얻거나 모든 것을 잃는 것에 가까운, 냉혹한 게임인 것도 마찬가지지만.


그런데 '책' 은 그 이전에 '어떤 사업'을 할 것인지 제목에서부터 물어본다. 좋아, 사업은 돈과 사람이 하는 거지. 그 외에 여러 가지, 사업계획이나 의사결정 방법 등등을 알려주지만, 결국은 어떤 사업을 해야 하는지를 묻는다. 결국, 어떤 게임에 들어갈지를 먼저 결정하라는 것이다. 


보통은 이런 질문에서는 야구 선수가 축구 게임에서 무슨 힘을 쓰겠냐며, 핵심역량(Core competency)을 파악하고, 거기에 맞추어 사업을 전개하라는 것이 일반론이었다. 경영학 원론에서 읽은 기억이 난다. 그런데 이 책은 아무도 플레이하지 못해봤을 법한 게임으로 가라고 한다. 이미 게임이 진행되고 있다면 게임의 룰을 바꾸라고 한다. 창조적으로 독점하라고 하면서, 독점이 악이 된다는 '경제학'의 전제를 뒤엎는다. 


그렇다면, 우리는 도대체 어떤 게임을 시작해야 한다는 말인가? 




0에서 1, 9에서 10


물론 사업, 경영은 큰 개념이다. 때문에 모두가 피터 틸이 말하는 게임에 뛰어들 필요는 없다. 애초에 책의 재료가 되는 스탠퍼드에서의 강의도 '창업'에 대한 내용이었으니까. 결국 모든 것을 거는 게임이라면 창조적 독점을 할 수 있는 곳으로 가라는 이야기이다.


Next Facebook 은 무엇인가에 대해서 한참 고민한 적이 있었다. 적어도 Facebook 의 다음 주자는 SNS 서비스는 아닐 것이라고 단정 지었었다. Next Google 이 검색엔진이 아닌 것처럼. 말장난처럼 보이겠지만, 중요한 사실을 알려준다고 생각한다. 


첫 번째 무언가. 책의 제목처럼 0에서 1로.(Zero to One) 그 하나는 무엇일까 참 어려운 문제이다. 그것을 위한 방법론으로 린 스타트업이니, 그로쓰 해킹이니 하는 여러 가지 이야기가 나왔었다. 특히 린스타트업의 경우, 그 1은 우리가 짱구를 굴려서 알아낼 수 없으니 계획이니 나발이니 일단 뛰어들어라(매우 거칠게 요약하면) 하는 식의 이야기를 한다. 아니라면 길을 바꾸고(Pivot). 


하지만 피터 틸은 나쁜 계획도 없는 계획보다는 낫다고 말한다. 생각해보면 린 스타트업의 개념에서도 계획은 필요하다. 우리는 어떤 계획을 가지고 시장에 가는가. 어떤 예상을 가지고 있는가. 우리의 1은 무엇이고, 이것을 증명하기 위한 Key Index는 무엇이냐. 무에서 유를 창출하기 위해서는 목적지에 대한 정보는 있어야 할 것이다. 어떻게 가야 할지는 바뀔 수 있지만 말이다. 


그러나 책을 읽으면서 9에서 10에 대한 부분이 많이 설명되지 않았다는 생각을 했다. 왜냐면 Death Valley를 지나온 좋은 회사들도 완전히 무너지는 꼴을 많이 봤기 때문이다. 짐 콜린스가 Good to great를 쓴 것처럼. 회사는 회계적으로 '영속기업'을 가정해야 한다. 그러나 사회의 발전 속도가 빨라지고, 창조적 독점을 원하는 0-1wannabe 들이 생겨날수록 그 가정은 크게 의미 없는 것이 되는 게 아닌가 생각을 한다. 


어느 한 지점에서 사업은, 모험가가 아닌 장인의 정신으로 마무리지어져야 하는 때가 온다. 영속하는 혁신을 만들어 내는 것은 오히려 반대로 완벽함에 대한 집착에서 올 것이라고 생각한다. 0에서 1이 어렵듯, 9에서 10 역시 어렵다. 불완전을 완전으로 끌어올리는 마지막 하나의 1. 삼성의 핸드폰이 터지지 않게 하는 1. 애플의 밴드 게이트가 터지지 않게 만드는 1. 


창업의 단계가 0-1이라면, 사업의 완성은 9-10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쨌든 그 1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게 뭔지 물으신다면, 그걸 알고 있으면 제가 이 글 쓸 시간이나 있겠어요, 돈 세느라 바빴겠지 라고 답하겠다. 


 


시험지는 모두 다르다.




사실 상술한 1의 문제를, 내가 찾지 못한 것은 공부가 부족해서만은 아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험지가 다르기 때문임에 더 큰 이유라고 생각한다. 내가 이룩하고자 하는 0-1 이, 9-10 이 무엇이냐에 따라서 그 1은 너무도 다르니까. 


신규 사업을 발굴해야 하는 개인의 입장에서 볼 때에는 어쩌면 0-1, 9-10 자체도 크게 의미 없을 수도 있고. 그저 누군가가 하고 싶은 일을 한다거나, 아니면 당장 돈을 벌어서 재무제표를 아름답게 만드는 일을 해야 할 수도 있으니까. 아름다운 실리콘 밸리의 전설은 전설로, 당장 내 앞에 떨어진 일은 현실로 오는 거겠지. 


또한 실리콘 밸리와 구로, 테헤란 혹은 판교는 너무도 다르니까. 피터 틸이 말한 원칙들은 아름답게 빛나지만 사실 그건 참고 대상이지 바이블이 되어서는 안 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지 않을까. 경영을 공부하면서 사례를 배우는 것은 판단을 위한 연습이 되어야 하지, 판단의 공식을 외우기 위한 것은 아닌 것처럼. (그런 의미에서 경영학, 전략적 판단에 대한 학문이 가능한 것인가에 대해서는 좀 더 고민을 해봐야 할 것 같긴 하다.)


물론 Innvator's dillema 에 나오는 low-end distruption 같은 그래프를 보고 있자면 우리가 어떤 일을 선택해야 할 까는 좀 더 분명해 보이기도 하지만. 그건 어쩌면 실존하지는 않는 법인격의 레벨에서, 혹은 회사를 실제로 경영하거나 소유한 사람의 입장이기도 하고. 반면에 Business owner 라도, 적당히 호구지책의 회사가 있을 수 있고, 큰 그림을 그리는 회사가 있을 수도 있고. 


어떤 측면에서 그렇게들 외치는 4차 산업혁명시대에는 치열하게, 0-1을 고민해야 할 수도 있겠지만. 여전히 - 시험지는 다르다고 생각한다. 피터 틸이 페이팔에서 팔란티어까지, 지금의 트럼프를 선택하는 게임에서 마주한 시험지는 좋지만, 우리는 지금 수능 공부를 하는 것이 아니니까. 참고하되, 베끼면 안 되겠지. 





우리는 왜 이 게임에 뛰어들었는가


그래서 갈 것이냐 말 것이냐. 사업 제안을 하거나, 신규 사업을 검토할 때. Go or not go anlysis를 하게 되면 대체로는 재무적인 판단에 의해서 하게 된다. 그래서 이게 몇 년 안에 투자금을 회수할 수 있는데? 노래방 기계를 10대를 사면 그 투자금을 몇 년을 뼈 빠지게 일하면 갚을 수 있는 건데? 


대체로 이런 판단 이전에 당장의 호구지책 때문에, 혹은 누군가의 꾐에 빠져 자영업자들은 생겨나기도 한다. 혹은 누군가의 성공을 바라보면서 나도 한번?이라는 생각에서 나타나기도 한다. 애초에 선택지가 없는 상황에서 어떻게든 발버둥 치다가 들어와 버린 게임이, 보드게임 <I'm the boss> 가 아니라 <Game of throne>인 것을 알게 되는 순간 사람들은 매우 힘들어한다. 


뭐 그런 시험지들은 그대로 있다고 치고. 그럼 나는. 혹은 사업을 선택하는 누군가들은 이 게임에 왜 들어오는가. 돈을 많이 벌고 싶어서? <부의 추월차선>에 나오는 것처럼 빠르게 '머니 트리'를 심고, 살아가기 위해서? 아니면 꿈을 이루기 위해서? 


창업에 있어서 미션과 비전이 중요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멋진 말이다. 나는 이 세상에서 무슨 문제를 해결하고 싶은가? 그러기 위한 목적지는 어디인가? 그곳으로 가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거창하고 가슴 뛰는 일이라서 여기에 혹하는 경우도 많다.


그러나 그것을 더 단순히 표현하면 '왜' 다. 우린 왜, 이 땅에서 굳이. 하필이면 이 길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는가. 그게 우선해야지 그다음 0-1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물론 기본 전제는 가지고 있다. 상술한 것처럼 미래의 기술 변화는 기존의 Tech giant 의 움직임은 개인이 0-1을 찾지 않으면 도태될 수밖에 없는 미래를 만들어낼 가능성이 크다. 기본소득이나 받으면서 프라모델이나 만드는 미래. (꽤 괜찮아 보이긴 하지만) 


그것을 거부하면서 우리가 무언가를 선택해야 하는 이유를 찾은 다음에, 0-1 이 어디에 있는지 고민할 수 있는 게 아닐까. 책을 덮으며 그런 생각을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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